2023년1월24일 수요일 12시08분
여느때와 같이 백양산정상 들머리정자 있는곳의 햋볕이 내려앉은 벤치에서 이 글을쓴다.
어제는 백양산정상을 올랐었다. 어제부터 우리나라 전역으로 한파와 강풍주의보가 발효되고있다. 오늘 부산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12도 라고했다. 휴대폰으로 알리는 구포동지역 온도는 영하13도였다. 아마 이렇게까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부산 날씨로서는 믿기지않는 날씨다. 어제부터 내려진 한파경보는 2~3일 더 지속될 모양이다. 어제 백양산 정상을 올랐을때도 영하의 날씨에 강한 바람은 얼굴을 따갑게했다. 그 날씨에 4시간 반정도의 산행을하고 집에들어가니 손이곱아 물건을 잡을수 없을 정도였다.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 기온도 상상이상으로 떨어졌기에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습관은 나를 밖으로 내몬것이다. 집에서 10시5분전에 나왔으니 벌써2시간 이상을 걸었다. 지금기온은 영하5도로 나온다. 그러나 여기는 산쪽이라 체감온도는 더 웃돌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3시간을 조금 더 걸은것같다. 역시 산행을 하고나면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21일은 작은설날이었다. 아들네 가족이 오는 날이다. 설 젯상차림 준비는 어제 모두 끝내놓았다.
아들네 이부자리도 제대로 정리해두었다.
오전중에 목욕을 다녀왔고 마트에서 손자 손녀가 좋아할 먹거리와 음료를 잔뜩사서 챙겨놓는다.
오후3시가넘어 아들네 가족이 도착했다. 며느리는 토착 서울사람이고 손주들도 모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있다. 아들 며느리 두사람 다 직장따라 광주로 옮기게 된것이다. 손주 녀석들도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올해 큰놈, 손자는 중학교를가고 손녀는 3학년이된다. 처음에 아이들이 쓰는 말투가 서울말에서 지방사투리로 바뀔까 우려했지만 다행히 많이 바뀐것 같지는 않고 중간중간 사투리가 섞여있기는 하다.
저녁 8시에 메가박스 덕천점에 영화를 예약해두었다면서 그 시간에 맞추어 회전초밥집 예약을한다고 했다. 요즈음은 모든것에 예약은 필수다. 그 시간에 맞게 움직임으로서 허비되는 시간을 최소화 한다. 우리 세대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다. 짧은 길도 차로이동하고 목적지의 주치시설은 필수 확인코스다. 모르는 위치도 휴대폰 엡으로 해결되니 막힘이없다. 가까운 거리에 유명 초밥집과 극장이있어 시간에 맞추어 움직인다. 내 혼자서는 걸어다니는 거리다. 회전 초밥집, 초밥집을 택한것은 큰놈 희재의 선택이었다. 나는 모든것을 잘 먹기때문에 나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않다.
물론 형식적인 의사는 물어왔다. 나의 대답은 항상 아무것이나 괜찮다이다. 아이들이 우선이다.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처음들어가보는 회전초밥집의 광경은 내일이 설이라는 사실을 잊게만든다. 큰 홀에 꽉찬 손님들, 기계식, 타원형으로 길게 돌아가는 회전 벨트에 줄지어나오는 각양각색의 초밥들, 또 주문항목도있어 좌석마다. 설치되있는는 모니터로 원하는 품목과 수량을 입력하고 OK싸인을 보내면 곧이어 장난감 기차위에 실린 초밥이 선로를따라 달려와 우리 식탁앞에 멈춘다. 주문초밥을 내려놓고 OK싸인을 주면 곧바로 출발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나도 컴퓨터를 30년가까이 했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라 신기하면서 놀라웠다. 옛날 일본에서 유행하던 회전초밥집이 부산에 처음 들어왔을때 가본적은 있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에는 원탁회전 식탁안에 주방장들, 여럿이서 초밥을 만들면서 식탁을 인력으로 돌린것 같았는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곧이어 자전거 바퀴를 돌릴때쓰는 체인이 모터로 연결되어 식탁을 회전시키는 당시로서는 최신 아날로그 방식의 자동 시스템이 되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도 초밥값은 만만치 않았기에 별식으로 어쩌다 한번씩 가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란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초밥집을 이용하고 있다는것이 새삼스럽기만하다.
손자녀석도 능숙하게 좋아하는 음식을 모니터로 주문도하고 돌아가는 벨트위의 초밥접시를 잽싸게 잡이 내리기도 한다. 나는 손자한테 이것 저것 손가락으로 가르키기만하면 손자가 내려준다. 손자 손녀의 먹성도 보통이 아니다. 많이 다녀본 모양이다. 먹을수있는 시간은 가격대에 따라 조금힉 차이가 나는것 같은데 우리는 8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 사실도 식탁이 마무리 될때서야 알았다. 옛날에는 접시 숫자를 세어 계산했지만 지금은 시간제다.
상영시간이 임박하여 곧바로 극장을 향한다. 그런데 상영관을 들어가는데 나와 손자둘이다. 영화는 일본만화영화 "슬렘덩크"다. 알고보니 이영화를 손자는 벌써 세번째 보는 것이라고했다. 한번은 제 아버지와, 두번째는 어머니와 보고 내가 세번째 당첨이 된 것이다. 보고나서야 왜 우리만 봐야했는지 알았다. 영화는 완전 어린이를위한 영화였다. 아마 내가 제일 연로한 괜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상영 시간은 2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러나 내 생애 처음 손자와 둘이서 영화를 봤다는 것은 기념비적이 될것이다.
극장앞에 아들이 시간에 맞추어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를 이용해도 되는데 집에서 다시 우리를 태우러 온 것이다. 피곤할텐데 마음이쓰인다.
집에오니 며느리가 쇼핑을 했다면서 쇼핑백에든 방한용 점프를 입어보라고 한다. 극장 상영관을 들어갈때 내 몸싸이즈를 물어보길래 아무생각없이 100이라고 말해준것이 그때서야 이유를 알았다. 나도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만만찮은 가격때문에 그냥그냥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집에서 나올때 늘 입고다니는 7~8년이 넘은 점프를 아들이 추워보인다고 얘기했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괜찮다고 했을 뿐인데, 초밥집 들어갈때 내 모습이 좀은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다.
명절이면 아들네가 쓰는돈이 만만치 않을텐데 고맙기는하지만 왠지 기분은 떨떠름하다. 이뿐만 아니라 매월 생활비를 보내주고 이번설엔 고급스런 인삼액기스 팩과 공진단 환 한봉지도 가지고 왔다. 몸 움직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할 뿐이다.
아들네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지하는 것이 내 신념인데 나로인해 아들네 마음이 무거워질까 걱정이다.
설날아침 막내동생과 조카 정원이가 왔다. 제수씨는 연을 끊고 싶은것 같다. 혼자서 명절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젯상에 올리는 음식이 짜증스러워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이해하기로 했다. 강원도 동생네는 내 마음속에세 제외된지 오래다. 그들은 명절은 고사하고 부모님 제사에도 참석은 물론 연락도 하지않는다. 원망은 없다. 평생을 집안 일 처리를 혼자서 해 왔기에 그 책임도 나 한테 조금은 있을것이다.
아이들 한테 세배를받고 세배돈과 함께 올해 희재 중학교 입학 축하금으로 미리 준비해둔 은행신권으로 봉투에 50만원을 넣어 건넸다. 마음은 더 많이 주고싶었지만 내 능력의 한계에 따른 것이다.
제사가 끝나고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다.거의 아침겸 점심이다. 손자가 음복 두잔에 얼큰해 한다. 술이 맛있다고 했다. 크면 제법 술잔을 기울일 눔 같다. 제애비도 술이 센것 같은데 취한 모습은 한번도 본적이 없다. 식사후 동생과 조카는 바로 떠나고 이어 아들네도 떠날 준비를한다. 에비가 제아들보고 잠시 잠들어있는 제에미를 깨우라고하니 잽싸게 에미방으로 뛰어가 제에미를 신나게 깨운다. 자기들 집으로 간다고하니 신났던 모양이다. 내가 묻는다. 집에가는게 그리 좋아 하고 물어니 예, 하고 힘차게 대답하고는 아차 싶었던지 들어가는 소리로, 아니요 한다. 벌써 내기분이 어떨지 짐작한 모양이다. 할애비 기분도 살필줄아는 손자가 오히려 대견하다.
모두가 떠난후 뒷정리는 내몫이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힘든다. 나이는 점점 많아지는데 이짓도 언제까지 할수 있을지 걱정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해야할 일들에 마음에 부담이 커도 보고싶은 얼굴로 위로를 삼지만 모두가 떠난 허전한 공간에서는 더욱 기력이 빠지는데 시간도 지루함을끼고 힘도 배가든다.
이것도 지나갛 것이고 언젠가는 끝이나겠지.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보는 것이다.
얘들아 또 추석에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