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분야
전공:정치사회학/산업사회학/사회변동론/사회운동과 NGO
*현직: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겸 시민사회복지대학원 NGO교수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위원장
--빚진 심정으로 사는 한 지식인의 삶의 이야기
과거를 돌아보니, 철든 이후로는 그야말로 '허겁지겁' 달려왔던 듯 싶다. 80년대 우리 사회가 너무도 역동적으로 변화하여 왔기 때문에 역동적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삶 역시 역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사회생활 속에서도 10분의 여유, 1시간의 여유, 1일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 수는 없었던가 하는 반문을 요즘은 많이 해본다. '내가 이 길을 하루 이틀 갈 것도 아닌데'라고 여유를 가져보려 애써본다.
비판학술연구자로서의 나의 삶을 끌어온 하나의 힘을 든다면 아마도 동시대를 치열하게 산 친구들에 대한 자괴감과 '빚짐'이 아니었던 가 싶다. 돌이켜 보면, 나는 부끄럽게도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삶'의 모습으로부터는 한 발쯤 비켜 살아왔다. 그런 비껴 있는 삶에 대한 자괴감과 가장 치열하게 사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있었다. 70년대 후반 암울하였던 유신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았던 친구들,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으로 달려가 자신의 삶을 불태웠던 친구들,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20여년이 넘는 긴 세월을 지금까지도 헌신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그러한 헌신 속에서 모든 생활고를 인내하면서 살고 있는 친구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를 내던지는 헌신을 하였던 친구들에 대한 빚짐이 나의 나태한 삶을 추수리는 동력이 된다. 비판적 지식인 중에서는 그래도 나 자신이 가장 치열하게 산 사람 중의 하나라고 자부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나는 지식인이 시대를 치열하게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시대를 몸을 던져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간'을 지적으로 채우며 활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적당히 유명하게 되고 적당히 바른 말하는 지식인이 될 까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되새겨 보는 적이 많다.
보수적 청년신자에서 사회비판적인 기독교인으로 통상적인 분류로 하면 나는 보수적인 기독교 교회에 다니는 대단히 열성적인 신자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교회생활 속에서 사실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면서 그냥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신자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는 비판적 기독교인으로 바뀌어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 '겨자씨'라는 모임에 나가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겨자씨는 여러 보수교단 내에서 활동하는 개혁적 크리스찬들의 모임이었는데, 70년대 후반 함석헌 선생의 영향을 받아 복음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사회비판적이고자 하였다.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된 이 모임이 '가능성 있는' 고등학생들을 모아 조기에 '의식화' 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고등학생을 몇몇 선발하여 훈련시키는 계획을 세웠고 내가 그 의식화 대상에 선발된 셈이었다. 감수성 높은 고등학교 시절에 대학생 선배들이 하는 세미나의 뒷켠에서 세미나를 지켜보며 나는 사회문제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던 것 같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마틴 루터 킹과 간디의 전기 등을 읽고 가슴 벅찬 느낌을 가졌던 시절이 생각난다.
'불온한' 선배와의 만남
겨자씨 모임에서 이루어진 초보적인 의식화에서 더 나아가 본격적인 사회비판의식과 감수성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대학교 입학 이후의 이념써클에서 였다. 75년 대학교에 입학하고 '불온한' 선배들을 만나면서 나의 인생을 달라지게 된다.
관악산으로의 이주로 인하여 '운동권'이 뿌리 뽑히지 않기 위한 선배들의 노력은 관악산 세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이념써클 결성으로 나타났는데, 나는 사회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복지연구회에 '포섭'된 셈이었다. 당시 사회복지연구회는 양관수 선배의 지도 아래 꾸려졌다. 양선배는 70년대 후반 재야운동의 중심적 인물로 활동하다가 80년대에는 일본으로 망명하여 있었고 얼마전 98년 5월 한국에 다시 입국할 수 있게 되어 오랜만에 해후하게 된 선배였다. 세미나 학습과 농촌활동, 각종 데모 등 실천적 활동에의 참여가 아무래도 중요한 활동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해 당시에 나는 이념써클 멤버 중에서도 전투적인 친구들에 속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2선에 위치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써클 활동 속에서 점차 유신체제의 반민주성과 독재, 민중수탈 등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켜 갈 수 있었다. 이처럼 이념써클에서의 이념적 인식의 심화는 기존의 보수적 기독교 교리와 점차 갈등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이념써클을 통해 의식화의 정도는 높아가고 보수적 기독교의 교리와 사이에서 갈등은 커갔다. 나는 그 갭을 매꾸기 위해서 보수교회를 떠나 진보적인 기독교회로 선회하게 된다. 세문안교회, 연동교회, 향린교회 등등 모모한 진보적 사회참여적인 교회들을 전전하고 틸리히 등 현대신학자들의 저서들을 통해 이러한 긴장과 갈등을 조화시켜 보려 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기독교적 열성 자체가 식게 되면서 교회로부터 나의 교회와 점차 멀어져 가게 된다.
'젊은 둘째'에서의 만남들
교회생활의 마지막 기착지는 경동교회의 대학생 모임인 '젊은 둘째'였다. 70년대 후반은 교회가 사회운동의 정치적, 정신적 '우산'으로 존재하던 시기였고 그 결과 재야운동에서 기독교운동이 갖는 비중은 대단히 컸고 많은 운동가들이 당시에는 교회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었다. 젊은 둘째에서 많은 신선한 만남들이 있었다. WCC 총회에서 '굿을 해서' '연희(演戱)신학'의 대표자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이대 정현경 교수, 페미니스트 영문학자인 효성여대 태혜숙, 민주노총의 문성현, 그의 처인 이해자, 사로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현재는 영어의 몸으로 있는 박노해와 그의 처 김진주, 민중교회 목사인 임진철 목사, 젊은 둘째의 지도목사인 한국신학연구소장 김원배 목사 등등 많은 젊은 만남들이 이어졌다. 내 스스로 지금은 교회 밖으로 벗어나 있지만, 젊은 날의 많은 추억과 경험들은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감동적인 언변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과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던 박노해의 모습, 이강백 씨가 연출하던 사회풍자적인 전통 마당극에 출연하였으나 연기력 부족으로 많이도 '쿠사리'를 먹던 일, 교회친구들과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뚝섬의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1달여 동안 뚝섬의 한 양은공장에서 노동자생활을 하였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아침이슬의 세대로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나는 내가 살았던 긴급조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신세대 대학생들이 그 시대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곤 한다. 돌이켜 보면 다분히 희극적인 시대였고 우리는 그 희극을 희극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희극적인 그 시대는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추천하고 이들을 만장일치로 체육관에서 '선출'하던 시대였다. 헌법을 비방하거나 그 개정,폐기를 주장하면 곧바로 구속되고,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제적당하던 시대였다.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한두마디 던진 '말'이 문제가 되어 집을 수색당하고 투옥당하던 시대였다. 옥중에서 긴급조치 폐지를 외쳤다고 하여 '추가로 형을 받아' 출감하던 날 재수감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이 먼 '선사시대' 같은 시대가 바로 20여년 전 우리가 살았던 유신말기 '긴급조치 9호 시대'였다. 각 세대들은 각자의 운동적 낭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기가 살았던 청춘의 낭만을 아름답게 안고 살아간다. 긴조시대 우리가 겪었던 운동적 낭만은 학교 밖으로 내쫓겨지고 감옥으로 끌려간 친구의 아련한 모습을 떠올리며 김민기의 '친구'를 부르던 낭만이었다. 긴밤의 시련을 견디고 '풀잎마다 맺힌' '아침이슬'을 보며, 기나긴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견뎌 가던 낭만이었다. 모든 토론의 광장이 봉쇄되고 일체의 비판적인 책이 불온서적으로 불법화되던 상황에서,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밀실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탐독하던 낭만이기도 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붉은 황토길을 헉헉거리며 달려가는 정서로 이루어진 낭만이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80년대의 우렁찬 진군가나 인터내쇼날 가(歌)보다 김민기의 '친구'와 같이 슬픈 시대를 음유하는 우울한 노래가 좋다. 긴조시대는 어떤 점에서 참 불행한 세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무명(無名)의 세대'였다. 박정희정권이 '불순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자연히 대중적인 명망가가 배출될 수 밖에 없었던 민청학련 세대나, 총학생회장 등 대중적인 저항스타를 가진 80년대 세대와 그런 점에서 구별된다. 양심적인 저항운동이 일체 언론에 보도될 수 없었던 가혹한 시대를 산 결과로,이 세대는 '유명한 소수'로 대표되는 이전 및 이후 세대와 달리 '무명 다수'(無名 多數)로 이루어지는 세대였다. 때로는 긴조 시대의 우리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그런 '올빼미' 같은 속성을 본다. 우리는 20년이 지난 95년 5월 "1975년에서 1995년으로"라는 제목으로 "'긴급조치 9호 시대' 반독재 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나의 생에 있어 분명한 전환점은 아무래도 70년대 후반 감옥에 가게 된 것이었다. 박정희 붕괴를 상상하지 못하였던--특히 학생들이었던 우리들에게는--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치 인생이 끝장나는 것 같은, 그래서 한평생 고생문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나는 지금도 70년대 후반 감옥에 끌려들어가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때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주류에 선--물론 약간 비판적일 수도 있겠지만--많은 교수 중의 한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연구주제도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암울했던 유신시대에 일체의 것을 박탈당하고 앞길이 꽉 막힌 것같은 조건 속에서 감옥에 가게 되니, 그동안 존재적 구속으로 지체되었던 의식발전이 가속화되게 된 것 같다. 나는 감옥에서 비로서 돕, 스위지, 루카치 책을 읽었고 밖에서 읽지 못한 많은 책을 읽었다. 감옥은 학교라는 생각이 난다. 서대문은 나에게서도 비판적 연구자로서의 학교였다. 70년대 후반은 학생운동의 의식과 실천에 있어 '혁명'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단초의 시기였던 것 같다. 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이 시기에 급진적인 방향으로 학생들의 의식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바로 이 시기부터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진보적이고 때로는 맑스주의적인 책들이 학생운동권에 유입되어 읽히기 시작하였다. 민주출판운동의 일환으로서 영어 원서나 일어 원서들을 영인본으로 찍어 팔기 시작하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 자본론을 복사하기 위하여, 서울 시내에 '감시가 소홀한' 복사집을 찾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복사하다 걸려 감옥에 가야할 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실천적으로는 현장주의가 대두되고 학생운동의 선진인자들이 학내활동 중심에서 현장으로 이동하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 일종의 현장 콤플렉스 같은 것이 생겨나게 된 시기도 바로 이시기였다. 가장 치열한 운동적 삶이 노동현장으로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긴조세대들은 '대학생 친구 하나가 없어' 고민하던 전태일'의 곁으로 본격적으로 다가가고자 하였던 첫 세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대학생들이 대규모로 학교를 그만두고 현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80년대 초반의 일이나 현장주의적 경향의 단초는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 같다. 70년대 후반 학생운동 세대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감옥에있는 동안 현장으로 가는 꿈을 많이 꾸었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가고 싶지 않은 솔직한 심정을 억누르기 위해 많이도 스스로를 채근하였던 기억이 난다. 79년 8.15에 우리는 석방되었다. 10.26 두달전의 일이었다. 나는 아버님이 계시던 이리로 내려갔다. 당시는 유신체제의 붕괴를 전혀 예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앞이 않보이던 시기였다. 이 때를 생각하니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숨이 생각난다. 그것은 일제부터 해방공간을 거쳐 현재까지에 이르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나오는 한숨이었다. 괜히 운동하거나 반정부운동하다가 평생 먹고살기도 힘들고 자식새끼도 고생시킨다는 아버지의 탄식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버님은 당시 나로 인해 마음고생을 무던이도 하셨던 것 같다.
*논문
@학위논문
조희연, [종속적 발전과정에 있어 자본과 노동유형의 변화에 관한 연구], 석사
학위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3
조희연, [한국 사회운동조직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1992
@대학논문집
조희연, [1970년대 조직사건에 대한 연구], {성공회대학논총} 제5호, 성공회대학 교 출판부, 1991
조희연, [레닌의 전위당론에 관한 연구-초기 논의를 중심으로], {성공회대학논 총} 제6호, 성공회대학교 출판부, 1992
조희연, [지역감정의 '정치적 구조화' 과정에 대한 연구], {성공회대학 논총} 제 7호, 성공회대학교 출판부, 1994
*국내학회학술지
조희연, [종속적 발전과정에 있어 자본과 노동유형의 변모에 관한 연구], {제3 세계와 사회이론}, 한울, 1983
조희연, [한국기업의 하청관계와 근로자의 실태에 관한 조사연구], {연세사회 학} 제6집, 1984. 12
조희연, [제3세계 정치변동 연구시론], {사회연구} 제1집, 경남대 사회학과, 1985. 8
조희연, [종속적 산업화와 비공식부문], {한국자본주의와 노동문제}, 돌베개, 1985
김진균·조희연, [분단과 사회상황의 상관성에 관하여--분단의 정치사회학적 범주화를 위한시론], {분단시대와 한국사회}, 까치, 1985
김진균·조희연, [한국사회의 하층계급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의 계급연구 (1)}, 한울, 1986
조희연,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의 현황과 그 평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론(1)}, 한 울, 1986
조희연,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시론], {연세사회학] 제7집,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1986
조희연, [현대한국사회의 구조변동에 대한 연구시론-- 1960년대 이후를 중심으 로], {제3세계와 한국의 사회학} ,돌베개, 1987
조희연, [분업과 연대성 및 도덕성--뒤르켕의 사회이론의 재조명], {현대자본주 의와 공동체이론}, 한길사, 1987
조희연, [80년대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의 일 정리(1)--초기논쟁을 중심으로], {현 단계} 제1집, 한울, 1987
조희연, [80년대 한국사회와 학술연구자의 과제], {역사비평} 봄호, 역사비평사, 1988
조희연, [80년대 사회운동과 사회운동론의 전개과정], {사회비평} 겨울호, 나남, 1988
조희연, [한국사회 성격논쟁에 관한 일 연구], {一浪 고영복 교수 화갑기념논총(1)- 사회운동과 사회계급}, 전예원, 1988
조희연, [80년대 사회운동과 사회구성체논쟁], {한국사회구성체논쟁} 제1권, 죽산, 1989
조희연, [현단계 사회구성체논쟁의 구도와 쟁점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구성체논 쟁}제2권, 죽산, 1989
조희연, [북한의 통일노선과 통일정책에 대한 연구--시론적 분석], 한신대 제3 세계 문화연구소 편, {한국민중론과 주체사상과의 대화}, 풀빛, 1989
조희연, [전후 한국사회운동의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 {동향과 전망} 겨울호, 백산서당, 1989
조희연,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과 하청 및 계급에 대한 연구], {민족문제논총} 제1집, 부산대학교 민족문제연구소, 1990
조희연, [1950-80년대 사회운동에 관한 연구], {민족문제논총} 제1집, 부산대학 교 민족문제연구소, 1990
조희연, ['통혁당'사건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연구 - 조직사건 분석을 통한 60년 대 사회운동의 검토], {경제와 사회} 여름호, 이론과 실천, 1990
조희연, [해방 이후 인문사회과학사의 비판적 재검토 - 학문적 종속과 민족 적·민중적 학문의 전개], {한국사회론}, 한울, 1990
조희연, [현대 한국사회운동사], {한국사회론}, 한울, 1990
조희연, [1950년대 조직사건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연구], {경제와 사회} 제6집, 여름호, 한울, 1990
조희연, 김동춘 [80년대 비판적 사회이론의 전개와 '민족,민중사회학'], 한국사 회학회 편, {한국사회의 비판적 인식}, 나남, 1990
조희연, [1970년대 비합법전위조직의 이념에 관한 연구--'남민전'을 중심으로], 한 국역사연구회 편, {역사와 현실} 제3호, 역사비평사, 1991
조희연, [현시기 논쟁의 새로운 전개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구성체논쟁} 제3 권, 죽산, 1991. 11
조희연, [한국사회와 사회운동(15장)],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사회학강의}, 미래 사, 1992
조희연, [소련 및 동유럽 사태와 우리 사회의 변혁론 논쟁], {한국사회구성체논 쟁} 제4권, 죽산, 1992
조희연, [한국사회운동의 발전과정에 대한 연구--1950년대로부터 1970년대까지 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운동사}, 죽산, 1992
조희연, ['80년대 民主化運動과 體制論爭], {현대한국체제논쟁사 연구},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1992
조희연, [사노맹: 비합법전위조직에 대한 조직사회학적 분석], {역사비평} 제18 호, 가을호, 1992
조희연, [지역감정'과 한국의 민주주의], {창작과 비평} 여름호, 창작과 비평사, 1993
조희연, [새로운 정치현실과 진보운동의 진로], {경제와 사회} 여름호, 한울, 1993
曺喜 , [金泳三政權の性格と社會變化の展望], {日本 Forum} 1993. 6
조희연, [민중운동과 시민사회, 시민운동], {실천문학} 겨울호,실천문학사, 1993
조희연, [변화하는 정치현실과 한국사회의 전망], {날로 새로워지는 그리스도인 들}, 녹두, 1993
조희연, [한국군부정권의 '해체'과정에 관한 정치사회학적 연구], {동향과 전 망}, 93년 겨울/94년 봄 합본호, 1994
조희연· 김영범 [민주주의 이행과 진보정치세력화: 브라질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국산업사회연구회 편, {한국사회의 변동}, 한울, 1994
조희연, [1994년 한국사회운동 연구 평론], 한림대 사회조사연구소, {한국사회학 평론} 제1집, 사회비평사, 1994
조희연, [한국사회변동과 복합실천], 한국공간환경연구회 편, {일상공간과 생활 정치}, 대윤출판사, 1995
조희연, [동아시아 성장론의 검토--발전국가론을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겨 울호, 1997,
조희연, [경제위기 속의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과제], {당대비평} 봄호, 1998
경제위기 속의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과제], {당대비평} 봄호, 1998 .
조희연, "한국의 경제성장과 정치변동", {성공회대학논총} 제13호, 1999.
조희연, ['종합적 시민운동'의 구조적 성격과 그 변화의 전망에 대하여", {당대비평}, 1999년 겨울호.
조희연, "'정치지체'와 낙천·낙선운동", {창작과 비평} 2000년 봄호.
조희연, [민주주의 이행과 제도정치·제도정치·민중정치·시민정치], {경제와 사회} 46호, 2000년 여름호.
@국외학술학회지
Hee-Yeon Cho, [Korea, Social Movements: Retrospects and Prospects], {Asian Exchange: Biannual Bulletin of the Asian Exchange for New Alternatives} Vol. 11 No. 2, 1995
Hee-Yeon Cho and Eun Mee Kim, ['State Autonomy' and its Social Conditions for Economic Development in South Korea and Taiwan](with Eun Mee Kim), Eun Mee Kim ed., [The Four Asian Tigers,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San Diego, CA: Academic Press, 1998.
Hee-Yeon Cho, [Civic Action for Global Democratic Rule in Response to Neo-liberal Globalization], Inter-Asia Cultural Studies, Routledge No. 1, Spring 2000.
Hee-Yeon Cho, [The Structure of the South Korean Developmental Regime and Its Transformation---An Analysis of the Developmental Regime of Statist Mobilization and Authoritarian Integration in the Anticommunist Regimentation], Inter-Asia Cultural Studies, Routledge Vo. 1, No. 3, Autumn 2000.
Hee-Yeon Cho, "Democratic Transition and Changes in Korean NGOs", Korea Journal Vol. 40. No. 2, 2000 Summer.
@외국대학 협력실적
July 7-11, 1993 : "A Study on the Democratization of the Military Regime in Korea", A Presentation Paper at the Conference 'Transform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toward the 21th century 'at Michigan State Univ.
February 17-18, 1995 : "Transition to Democracy and Social Movements in Korea", Prepared for the Workshop on "Korean Transition to Democracy in Comparative Perspectives: Theoretical, Empirical, and Methodological Issues", Bunche Hall, UCLA.
April 11-14, 1996 : "The Democratic Transition and the Change of Social Movements in South Korea", Prepared for the Panel, "The Aftermath of Democratization in South Korea", at the Annual Meeting of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Honolulu, Hawaii
April 20, 1996 : "Social Movements in the 'Post-Development' and 'Post-Militiary Regime in South Korea" at the 'Southern California Korean and Korean American Studies Group Colloquium', USC
August 16-20, 1996: "'State Autonomy' and Class in the Economic Development of South Korea--Social Conditions of the South Korea Industrialization", prepared for a Section of the Annual Meeting of the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New York
1995. 8 - 1996. 12 :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교환교수
1995. 8 :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강의, 'Political and Economic Development after Cold War'(Department of Sociology. Co-instructor)
1996. 1학기 :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강의, 'Economic Development, Democratic Transition and Social Movements in South Korea'(East Asian Studies Center)
1996. 2학기 :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강의, 'Korean Society and its Change in Historical and Comparative Perspective'(East Asian Studies Center)
1996. 12 - 1997. 6 : Lancaster University, U.K 교환교수
1997. 6--1997. 8 : 대만 국립대학교 교환교수(省鄕硏究所)
December 15-16, 1997 : "Democratic Transition and Social Movements in South Korea" presented for the Conference on 'Democracy and Social Contentions in South Korea', Center for Korean Studies,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 학회 및 사회활동
1994. 9 - 200.2: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겸 협동사무처장
2000. 2 - 2000.8: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2000.9-현대: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위원장.
1999.11 - 현재: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소장 겸 민주화운동자료관 관장.
1984 - 현재 : 한국산업사회연구회(학회) 회원 겸 운영위원
1988 - 현재 : 학술단체협의회 정책위원
1988. 12 - 현재 : 한국사회과학연구소 회원 겸 연구기획위원
1991. 12 - 1992. 12 :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1993. 12 - 1994. 12 : 한국사회학회 이사
1994. 1 - 현재 :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기획위원회 부위원장
1997. 12 - 1998. 12 : 한국산업사회학회 이사
1998. 4 - 현재 : 한국정당연구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