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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믿음입니다(눅 17:11-19)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감리교회의 한 사모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고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 암이 많이 퍼져서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포기하였습니다. 어느날 크리스천 의사였던 주치의는 노트와 볼펜을 가져다주며 “사모님! 특별히 할 일도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적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마음먹고 감사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둘째, 못된 성격이지만 이렇게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째, 우리 아이들이 믿음안에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답니다.
그렇게 감사를 적었을 때 의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까 “사모님 이제 복수에 물이 차면 와서 한 번씩 빼시면 될 것 같고 이제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다”고 퇴원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감사일기를 적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감사를 적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은혜가 충만해졌습니다.
내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살았는가를 깨닫게 되고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가서 전도도 하고 또 기도도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했습니다. 교인들은 걱정했습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고 미음이나 죽을 먹고 또 밥을 먹으면 소화도 못 시키는데 어떨 때는 그냥 밥을 먹는데도 소화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고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를 한 의사는 깜짝 놀라며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 해동안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예수님께 나와 인생이 변한 사람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한 마을에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병은 당시 불치의 병입니다. 당시에 나병에 걸리면 자기 집과 고향을 떠나 멀리 떨어진 골짜기나 토굴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불쌍하고 버림받은 나병 환자들은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저 나병이라고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그의 삶은 죽은 것과 똑같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나타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우고, 멀리서서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쳐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를 어길 경우 돌로 쳐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서 불치의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소망 가운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 지긋지긋한 불치의 나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할 사람들인데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뭐라고 했습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만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나병에서 고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육신의 질병, 지금까지 아무런 효험도 없이 고통하며 약을 먹고있는 질병,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힌 마음의 질병이 있으신 분들은 이들이 외친 것처럼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만나 상한 심령 위로받고, 예수님 만나 아픈 질병 치유받고, 예수님 만나 고질적인 문제 해결받고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의 반응은 간단했습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안수하거나 어루만지지 아니하시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만 하셨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나병환자들을 진단해서 격리시키거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판단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병에 걸린 그들은 제사장에게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면 맞아 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케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의 말씀은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오늘 교회당에 처음 나오신 분도 오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믿음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믿으면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마 저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순종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당시 나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최종적인 완치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기 위해서 가는 도중에 뜻밖에 나병이 다 사라지고 깨끗해졌습니다. 제사장 앞에 가기도 전에 완치를 받은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가던 길을 멈추고 너무 감사해서 다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쳤던 것보다 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앗수르 사람과 유대인의 혼혈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로부터 짐승 취급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물어 보십니다. 무엇을 물어 보십니까?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침받은 나머지 9명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돌아온 이 한 사람은 육신의 질병만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얻어 영원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는 이 말씀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몇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감사가 믿음입니다.
현대인에게 만연되어 있는 것이 감사 불감증입니다. 신문을 보십시오. 감사는 없고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너무 풍요로운 세상을 살다보니 감사 불감증에 걸린 시대입니다. 119 구급대의 발표에 의하면 긴급 상황이 생겨 병원에 이송한 사람 중에 '감사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비율이 9:1이듯 사람은 감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사람의 죄성 때문입니다.
왜 사마리아 사람만 왔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의 교만한 죄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은 죄악된 습성이 있어 감사거리보다 원망거리를 찾는 속성이 있습니다. 잃은 것만 보고 원망하고 있는 것 보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없는 것 보면서 불평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성입니다.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돈을 적게 벌어 오는가? 왜 다정다감하지 못하는가? 다른 집 남편은 진급을 하였는데,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출세를 하지 못하였는가? 우리 아들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가?”
자꾸 남과 비교하며 없는 것 안 되는 것만 찾아내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있는 것 주신 것을 보고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감사거리를 찾지 않으면 늘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인간의 죄성에 대하여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만나를 내려주셔서 일용할 양식을 먹었습니다. 뜨거운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물이 없다고 하면 반석에서 생수를 솟아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물이 없으면 물이 없다고, 물이 있으면 물이 쓰다고, 밥을 주면 왜 고기를 주지않냐고 불평과 원망거리만 찾아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입술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감사 불감증에서 벗어나려면 의도적으로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는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 때문입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평생질병인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그런데 죄인처럼 취급받던 사마리아인은 감사했는데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해 버리고 감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만 고쳐 준 것도 아니고 10명 다 고쳐 주었고, 죽은 자도 살리고 수많은 질병 고쳐주었는데 뭐 대수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소가 있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니까 산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땅이 존재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물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교회가 있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남편이 있는 것, 아내가 있는 것, 자녀가 있는 것 당연히 생각하니까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공기 속에 있으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물고기가 물속에 들어 있으면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자신에게 힘든 일을 있든지 마음에 거슬린 말을 들으면 감사하기보다는 원망하고 비난합니다. 교회 다니면서 자식도 결혼시키고 아버지 어머니 장례도 치르고 직분도 받고 사업도 일어났는데 조금만 서운한 일이 당하면 “사랑이 없다. 돌봐 주지 않는다. 뜨거움이 없다. 말씀에 능력이 없다. 프로그램이 없다.”등 갖가지 구실을 붙여 원망합니다.
웰즈라는 분은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찾아낸다 하여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것을 느끼면 나에게 먼저 사랑하라고 하시는 군요라고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그 가운데 가만히 살펴보면 받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감사의 조건들이 더 많아지고 신앙생활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셋째는 해석을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해석입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김정화라는 텔런트 겸 찬양사역자 유은성전도사의 사모가 증언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어느 에이즈에 걸린 고아소녀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자기가 저에게 많은 것을 주고 저의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소녀를 만나고 나니까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 불쌍한 어린 소녀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그의 인생의 목적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의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불평과 원망의 제목들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다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축복받은 한국에 태어난 것도 감사하고, 건강한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고 내가 숨을 쉬는 것조차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해석의 변화입니다. 어떤 일이든 감사로 해석할 수 있고 불평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바울은 늘 감사로 해석합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할 때만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로 해석하면 보약이 되지만 불평으로 해석하면 독약이 됩니다.
신앙인들은 조건적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든 무슨 일이든 절대적인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불확실에도 불구하고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이로 H 게이트는 "신앙을 알아보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실속있는 감사를 하느냐로 판명될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2.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열명의 문둥병 환자를 고쳐주신 주님은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 한 명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17,18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주님께서는 9명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1명만 돌아온 것에 대하여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는 놀람입니다. '그럴 수 있는가'라는 반응입니다.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놀람이란 예측을 못했다는 의미도 됩니다. 둘째는 슬픔이기도 합니다. 실망이자 배신감같은 감정이 주님의 말씀 속에 서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 10명이 다 돌아오기를 원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들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였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못했습니다.
주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가 있는데, "감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일"이라는 사실과, "우리는 주님을 자주 실망시킨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감사를 원하시며, 우리가 감사하지 않았을 때 실망하신다는 것을 본문에서 배우게 됩니다.
돌아오지 않은 9명의 유대인들이 주님을 부정적으로 놀라게 했다면 돌아온 1명의 사마리아인은 긍정적으로 주님을 놀라게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주님을 놀라게 하고 있는가?"라고, 결국 주님은 우리때문에 놀랄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주님을 놀라게 하고 있는가입니다. 부정적으로 놀라게 합니까, 아니면 긍정적으로 놀라게 합니까? 감사하지 않음으로 주님을 놀라게 합니까, 아니면 감사함으로 주님을 놀라게 합니까?
분명히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들로 보아 당연히 감사해야 할 사람이 감사하지 않을 때, 반면에 인간적으로 그렇게 감사할 조건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감사가 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목사인 제가 그런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면 우리 주님은 어떠실까요? 아마도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더 많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애타게 감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3. 감사하면 더 큰 축복을 누립니다.
감사하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주어지겠습니까? 18절,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9명은 고침을 받고도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명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감사하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또 성경은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감사, 잘 되어도 감사, 건강해도 감사, 병들어도 감사, 성공해도 감사, 실패해도 감사, 잘 생겨도 감사, 못 생겨도 감사, 합격해도 감사, 불합격해도 감사 이렇게 모든 일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뿐 만 아니라 감사를 표현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나아와 감사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질병을 치유받을 뿐 아니라 영혼도 구원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감사한 결과 더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해 보십시오. 진짜 부자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료이며 풍요로운 삶의 재료입니다. 감사는 마치 전기와 같아 단순히 어둠을 물리치는 데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감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며, 감사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여 준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으로써 건강을 증진하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할 뿐 아니라 심장이나 몸 그리고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이 떨어지고, 소화 작용을 촉진할 뿐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감소하게 해 준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감사를 표현해 보십시오. 서양 속담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 있습니다. 감사의 문으로 행복이 들어옵니다. 감사하면 천국이 되지만 불평하면 가정도 지옥으로 변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고, 감사는 직업 환경을 향상시키고,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이끌어 내어 자신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갖게 해 준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감사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다가와도 믿음은 감사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없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삶이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예측하며 두려움과 근심의 늪에 빠져 계신 분 있습니까? 지금 주어진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쁘다고 도피하고 싶으신 분이 있습니까?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았다고 포기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지금 주어진 짐을 벗어버리면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고 현실을 피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불평한다고, 원망한다고, 도피한다고, 포기한다고,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하면 감사 조건은 더 많아 집니다. 감사를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언제나 생기가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질병, 육신의 질병, 영적인 질병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근심걱정이 없어집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시기와 질투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탐욕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감사하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상처받아도 사랑합니다. 감사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미래가 보장됩니다.
감사를 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범사에 항상하는 감사하는 성도가 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