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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뚫은 종
21: 2-6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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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속한 사람으로 주인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대상29: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어느 것 하나 주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속한 것은 부자유나 불행이 아니라
참 자유요, 진정한 행복입니다.
(고전7:22)에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나 부자유한 종이 아니라 죄에서 놓임을 받은 자유로운 종입니다.
오늘은 은급주일입니다. 목회를 하시다가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광의(廣義)에서는 신앙인 모두가 종입니다. 그러나 협의(狹義)로는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옛날 이스라엘에는 두 종류의 종이 있어 귀를 뚫지 않은 종이 있고, 귀를 뚫은 종이 있음을 말합니다.
귀를 안 뚫은 종
그는 평생 종노릇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6년 동안만 주인에게 속하여 있으면 됩니다. 주인이 돈을 주고 사온 사람으로 그 돈의 가치는 6년 동안입니다. 율법에 7년째, 즉 안식년이 되면 놓아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혼자 주인의 집에 들어왔으면 혼자 나가면 됩니다. 장가를 들었으면 아내와 함께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아내가 주인이 돈을 주고 사와서 그 종에게 아내로 준 상태라면 아내는 물론 그 낳은 자식도 주인의 소유가 되어 혼자만 나가야 됩니다. 좀 비정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원래 종 제도입니다. 종은 인격체라기보다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때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면 안됩니다. 옛날 이스라엘 종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것을 한시적으로 누리고 사는 것이지 내 것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 자녀, 가족, 학식, 직함… 여기에 예외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이것을 잘 아는 종이 지혜로운 종입니다. 욥이 그랬죠.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귀를 안 뚫은 종은 시간이 지나면 주인의 소유권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일단 주인의 집에서 벗어나면 아주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종이었던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정이 아주 없는 사람이 아니면 주인의 집에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대개는 처자가 딸리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처자를 버리고 자신만 자유롭자고 나가는 종을 어찌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혹 그렇게 나갔다고 해도 밤새 처자 생각에 잠을 못 잘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차라리 지옥일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신만 편하면 되고, 자신만 누리고 살면 된다는 생각하는 부류들이 아주 많습니다. 진정 편한 게 아니고, 진정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 같은 거죠.
귀를 뚫은 종
같은 유대인들끼리 종을 삼았다면 질 년 째 되는 안식년에는 반드시 자유인으로 신분 환원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된 사람이 주인을 위해서 평생 종이 되겠다고 하면 재판장의 허락을 받아 송곳으로 귀를 뚫어 영원한 종이 된 것을 표시합니다. 여기서 '재판장'이라고 번역된 것은 실은 '엘로힘', 즉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생 종이 되기를 서원하는 것입니다.
귀를 뚫은 종은 아내나 자식들 때문에 주인을 떠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원하는 종입니다. 이 사람은 평생토록 그 주인을 섬깁니다. 해방될 날이 없습니다. 죽는 날이 해방 받는 날입니다. 혹 주인의 집에서 나가려고 한다면 주인이 그의 귀를 재판장에게 보이면서 귀를 뚫은 종임을 말하면 재판장은 그를 못나가게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귀를 뚫었던 흔적이 그를 평생 종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손과 발의 못자국, 허리의 창자국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와 죽음과 심판의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종으로서 그 분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해방된 종, 자발적 노예라는 사실을 철저히 간직해야 합니다. 진짜 자유로운 사람은 주님을 위해 종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그렇습니다. 귀를 뚫은 종을 스스로 종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귀를 뚫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날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은급주일을 맞아 그 어떤 사람들보다 귀뚫린 종으로서 일생을 주님을 위해 종노릇한 원로목사님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쉽게 지난 것들을 잊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기억들은 잊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결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일생 종노릇한 이들을 관심가지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름진 얼굴엔 귀를 뚫었던 종들과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난한 살림엔 일생 귀뚫린 자로 주인의 것만을 위해 산 흔적이 묻어있습니다.
은급주일은 지내면서 원로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의 배려를 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들도 귀 뚫린 종으로 살기를 각오해야겠습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
사랑에 매인 종
출 21: 5-6
(출 21: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출 21: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 사회에 있었던 노예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적 규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종이 되는 경우는 사람이 너무 가난하여 경 빚을 지게 되고 그것을 갚지 못하여 채권자에게 의해 팔려가서 종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출애급기 21: 2절에 보면 “종을 사면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종을 사면 ..... 이라는 말은 경제적 이유로 채무를 값지 못하여 채권자에게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종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팔려간 종은 6년 동안 일하고 7년 되는 해에는 값없이 자유를 얻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단지 가난 하다는 것 때문에 영원히 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칠년이 되는 해 즉 안식년이 되면 주인은 그 종의 빚이 얼마가 남았건 간에 해방 시켜야 했습니다.
이것은 한번 종으로 삼으면 죽을 때까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던 이방의 관습에 비하여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6년 일하고 칠 년이 되어 섬기던 주인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자 할 때 자유하는 종의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미혼 때 종이 되어 독신으로 해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는 결혼한 부부가 함께 종이 되었다가 함께 자유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셋째는 독신으로 종이 된 자가 종 된 기간에 주인의 선처로 주인의 여종을 아내로 얻어 살며 아들 딸 낳고 살다가 자유하는 기간이 되어 자유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 아내는 여전히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자는 한 번 종으로 팔려 가면 그 집에서 평생 종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남종은 부인과 자녀들까지 주인의 종으로 남겨둔 채 혼자만 자유의 몸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혼자 자유를 얻느냐 아니면 그냥 종으로 주인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이 경우 종이 자유를 얻지 않고 주인집에서 영원히 종 되기를 원하면 그것을 허용하도록 말씀하였습니다.
은혜와 사랑에 매인 종
출20:5-6절을 읽어봅시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했습니다.
5절에서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 ” 라고 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종이 자기 아내나 자녀를 사랑해서 종이 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자기를 부리는 상전을 사랑하여 영원한 종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 25:39-40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레 25:43절에서는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지켰고 그 결과 주종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종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형제처럼 대우하고 사랑하였기에 그것을 아는 종들은 주인이 베푸는 사랑에 감격하여 그 주인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유하는 시기가 되었음에도 스스로 나는 평생 주인님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서약하고 평생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종은 주인에게 종의 서약을 하고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서 영영히 그 상전의 종이 되었다는 표식을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 받았고 은혜 받았습니다.
종이 상전에게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상전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은혜입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돈멀루의 「붐비는 우회로」라는 책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 회사의 자금 중 수천 달러를 몰래 빼돌린 한 젊은 회사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부정 행위는 적발 되었고, 젊은이는 사장실에 가서 그 경위를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질 법적 조치가 두려웠습니다. 그의 행위가 모두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깜짝 놀랄 만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자네를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젊은이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대답했습니다. "예, 사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이 일로 인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사장이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네. 가서 일을 계속하게."
젊은이와 대화를 끝내면서 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어.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갔다가 관용을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 사람이야. 첫 번째 사람은 나야.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었지. 자네가 받고 있는 자비를 나도 받았다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상전되신 하나님의 너그러운 관용의 은혜를 받은 종들입니다.
은혜와 사랑에 매인 종의 흔적
그렇다면 우린 본문 출20:5-6절에 있는 것 처럼 모두 귀를 뚫어야 합니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귀고리는 자신이 은혜와 사랑에 매인 종이라는 표식이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은혜를 베푼 상전에 대하여 감사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쳐 종이 되겠다고 서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종이라는 표식을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것에 매여 삽니까?
히 2:15절의 말씀처럼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자” 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산다는 것에 매이면 일생에 매인 종입니다.
오직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감격해서 기꺼이 평생 주님을 따르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옛날 히브리 노예들이 주인의 은혜에 매이고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에 매여 평생 종이 된다는 의미로 귀를 뚫어 귀고리를 달고 다닌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은혜에 매인 종이라는 흔적을 가져야 하고 사랑에 매인 종이라는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은헤와 사랑에 매인 종이었습니다.
갈 6:17절에 보면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의 흔적이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는 고생을 의미합니다. 주를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자들에게 끌려가 수 없이 맞아 터지고 상한 상처의 흔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 때문에 받은 영광의 상처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자신이 죄인 괴수라고 고백한 그는 은혜받고 보니 구원받고 보니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넓은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격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얻어진 상처... 그것은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상처의 깊이 만큼 자신이 주님을 사랑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매인 종은 은혜의 힘으로 일합니다.
은혜에 매인 종은 은혜의 힘으로 일하고 사랑의 힘으로 일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힘의 원리와 은혜의 원리입니다. 세상 나라는 힘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고 하나님 나라는 은혜의 원리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힘이란 "동물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힘살의 작용"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과학적 의미에서의 힘이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을 말하고 사회적 의미에서의 힘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을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동물 세계를 "정글의 사회"라고 말하는데 정글 사회란 힘으로 지배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힘은 능력, 실력, 권력, 세력, 체력, 재력, 매력, 영력 등으로 설명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 힘이 돈일 때는 재력이라고도 하고, 벼슬일 경우에는 권력이라 하며, 지식일 때는 실력, 육체적 건강일 때는 체력, 숫자일 때는 세력, 아름다움 일때는 매력, 영적인 것일 때는 영력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약육 강식, 적자 생존, 자연 도태' 등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어지듯이 각종 힘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힘을 소유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사람이 힘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힘이란 정당하게 취득하고 정당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늑대와 어린 양'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목이 말랐던 어린 양 한 마리가 골짜기에서 물을 마시려는데 늑대가 나타나서 "내가 마실 물을 감히 더럽히는 무례한 놈" 이라고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할 수 없이 어린양은 스무 발짝쯤 아래서 물을 마시겠다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늑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한다는 소리가 "네 이놈, 지난해 나한테 욕을 했겠다?"였습니다.
어린양은 "지난해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는 걸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네 형이나 아비, 어쨌든 네 식구가 틀림없어" 라고 늑대는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린양을 숲 속으로 끌고 가 냉큼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은 "강한 자의 주장이 언제나 정의"라는 사고가 통용된 루이 14세 시대 라 퐁텐가 풍자한 우화입니다. 어느 시대나 강자들이 지배해 왔습니다.
힘있는 자, 권력있는 자, 지식있는 자, 돈있는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해 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제도에 의해 종속되기도 하고 부에 의해, 권력에 의해 사람들은 종속되어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힘은 오용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힘이 사유화되어 본디의 목적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해서도 아니되고 절제력을 잃고 폭력으로 행사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권력의 이동(power Shift)"에서 권력의 원천은 폭력. 부. 지식이라고 규정한 엘빈토플러는 폭력은 가장 질(質)이 낮은 저품질의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기업들의 전쟁"이라는 책에서는 힘 있는 기업이 어느 날 힘을 잃는 이유는 "자기 만족(complacenct), 과신(confidence), 오만(conceit)"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결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은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은혜로 섬기는 곳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였습니다. 힘의 원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에 의한 구속의 방법입니다. 힘으로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은혜로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3일 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잘 생기고 체격이 좋은 노예를 3일 동안 왕으로 삼았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3일 천하" 그야말로 짧은 시한 부 왕을 말합니다. 이 3일 동안 "시한부 왕"은 세상에서 좋다는 옷을 다 입어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어 보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해 본다고 합니다. 3일이 지난 후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3일 천하"를 호령하던 노예 왕을 잔인하게 죽이면서 축제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힘은 잠깐입니다. 3일 천하의 주인공으로 살다 인생을 끝내서는 안됩니다.
은혜로 섬겨야 합니다.
세상 힘을 왕으로 섬겨서는 안됩니다.
은혜의 힘을 믿고 사랑의 힘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든 일도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은혜에 매이고 사랑에 매인 종은 종으로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럽거나 고생스럽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니까 스스로 아무런 댓가가 주어지지 않아도 기쁘게 헌신 봉사 했습니다. 스스로 7년 동안 사랑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 29:18절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춘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하니 칠년을 봉사 즉 종으로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 29:2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칠년이 몇 일 같이 흘렀습니다. 사랑에 매이고 은혜에 매이면 수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은혜에 매여 일하는 종은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사랑에 매인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기꺼이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종으로서의 삶을 삽니다. 종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종의 삶은 오직 주인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은혜에 매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에 매인 종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