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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반을 은혜가운데 잘 보내고 이제 남은 일 년중 반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맥추감사절은 먹을 것이 없어 보리고개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다가 새해 첫 추수로 밀을 추수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예배드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초실절’ ‘맥추절’을 근거로 우리 한국교회도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처음 추수한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반기의 시작인 7월 첫 주일에 상반기의 결실에 대해 감사드리고 하반기에도 좋은 결실을 얻게 하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맥추감사의 의미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23년도 올해 이제 상반기를 은혜가운데 보내고 이제 딱 반 년이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이 후반기 올 해 남은 반 년, 이 기간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고백하며 오늘 이 예배를 드립니다. 저와 여러분 상반기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하반기에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가 충만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며 2023년의 은혜가 더 풍성하기를 기대하며 남은 2023년 나머지 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힘든 형편속에서도 참 기쁨이 넘치고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시에 루스드라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루스드라’라는 지역은 갈라디아 남부 루가오니아 지역의 한 도시로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30km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튀르키예라는 나라에 속해 있는 지역입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 곳에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우상숭배가 강한 곳입니다. 그리스신화를 믿으며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지역 신으로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럽 곳곳에 가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신전 유적이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도 고대 도시로서 그리스신화의 신을 섬기고 그리스신화의 신전을 세워 그 곳에서 제사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 앞부분에 보면 이 루스드라지역에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장애가 있어 다리를 쓸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 다리를 쓰지 못하고 앉은 채 생활했던 그 사람이 사도 바울을 만나고 사도 바울이 일어나 걸으라 명령할 때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걷지 못하고 기어다니며 지냈던 사람이 바울이라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일어나 걸어라’했을 때 걷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복음을 막고 있던 이 지역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들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니 그 일이 사도 바울의 능력으로 이뤄진 줄 알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1,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제우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이며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신입니다. 올림푸스산에서 통치하는 12신 중 대표 신으로 불리는 신입니다. 번개와 독수리가 제우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기에 그림이나 동상같은 것을 보면 번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행한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 사람들은 바나바를 현실세계의 ‘제우스’라고 외칩니다. 그리스신화에 보면 ‘헤르메스’라는 존재도 등장하는데 헤르메스는 올림푸스산에서 신들이 정한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전령으로 표현됩니다. 즉 신탁의 수행자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언변이 뛰어났던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헤르메스’라고 높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능력이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나타난 것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신으로 대접받는 것을 절대 거부합니다. 왜냐면 신으로 대접받을 유일한 존재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여든 백성들에게 자신들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 사람에게 가르친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도 맥추감사주일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깨닫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그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5절 하반절입니다. 제가 읽어드립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셔서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 공간들을 창조하여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우리가 감사할 제목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보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특별히 항상 좋은 부모, 물질적인 풍요로움,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삼아 항상 자신의 태어남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참 좋은 환경, 남들이 부러워하는 환경을 보며 불평과 불만을 할 수 있지만 그럼 안 태어나는 것이 더 좋았겠냐라고 물어볼 때는 말로는 안 태어난 것이 좋다라고 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 자체는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사실 변변치 않은 부모라고 우리가 부모님을 판단할지는 모르지만 사실 부모님이 존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부모님이 우리 앞에 존재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부모님의 존재 이전에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이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 하나님의 계심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루스드라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만드셨고 인간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임, 키워주신 부모님이시기에 그 부모님이라는 존재 자체는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믿는 우리라면 하나님을 신으로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이 땅의 모든 동식물, 그리고 우리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는 그 창조주의 존재, 그리고 그 창조주가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이 땅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정하면 우리 인류를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의 세상에서는 우주의 발생에 대해 진화론이라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주가 우연한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 대폭발중에 우주 먼지가 어느 곳에 모이고 그 모아진 먼지덩어리가 행성을 만들고 어느 행성은 중력이 생기면서 그 중력으로 유기체가 생길 수 있는 기체들이 모이고 그런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공기가 있는 곳에서 유기 생명체 물질인 미생물이 생겨나고 이렇게 우연히 생겨난 어떤 미생물이 분화를 일으키며 진화해서 다세포생물이 되고 그 다세포생물들이 세포분열등을 일으키고 진화하면서 척추동물도 변화되어지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처럼 진화된 유인원이 인간으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결국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에서 인간은 우연히 만들어진 어느 미생물의 발달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생명의 가치도 그냥 미생물의 발달로서 하나의 생명에 불가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생물체의 세계에서 치열한 적자생존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존재가 인간이라고 가르칩니다. 한 동안 진화론이 정설인 것처럼 배워왔지만 요즘은 진화론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가르칩니다. 진화론에서도 많은 오류가 발견되어지고 오히려 창조론보다 더 허술한 과학적 근거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너무 허무맹랑하고 가설로 세운 다음 단계로 넘어갈 확률이 불가능에 가까운데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에 배워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분명히 하나님이 온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 한 명만 꼽으라고 하면 아마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가 건설되기까지는 천 년하고도 수백 년이 걸렸지만 프랑스에 있는 한 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해 버리는 것을 보여 주겠다”라면서 “성경은 100년 안에 다 없어질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평소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교회를 조롱하며 강의하며 다녔습니다. 그랬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무서워서 벌벌 떨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했구나. 의사여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 주시오. 그러면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소”. 그러자 의사는 “6개월은 고사하고 6주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볼테르는 “그러면 나는 지옥으로 가게 될텐데 당신도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죽은 후 제네바에 있는 성서공회에서 볼테르의 집을 사서 성서공회 창고로 썼는데 성경이 없어지기는커녕 그 창고에는 마루에서 천정까지 성경이 쌓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조만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던 성경책은 이 순간까지도 전 세계에서 매년 가장 많은 부수가 인쇄되어져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계셨고 스스로 존재하시며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며 영원히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90편 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계시록 4장 8절입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우리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창세전부터 계셨고 현재도 여전히 계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세상의 주관자시며 모든 시간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시간개념 ‘영원’,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공간개념 ‘무한’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우리가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존재인 하나님으로 인해 이 땅에 왔고 또한 그 분의 은혜로 그 분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가까이할 수 없는 그분이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처럼 보이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믿음,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깨달은 것에 감사하며 맥추감사주일 이 감사가 가장 큰 감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둘째로, 헛된 세상의 삶에서 우리를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5절 하반절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여기 보시면 루스드라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에 대해 말을 하면서 결국 이방인을 헛된 제사에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앞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유일한 신이시며 우리의 본질적 주인이 되십니다. 그런데 종이 주인을 몰라보고 아들이 아버지를 몰라보니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십니다. 우리 인간도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사랑을 몰라주면 질투도 일어나고 시기하는 마음도 생기고 사랑에 대한 감정으로 생활속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다른 신에게 절하고 신이 아닌 우상을 신이라고 말하고 절할 때 질투하는 감정이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하나님께서 감정적인 존재로 인간에게 질투하실까요? 이 말씀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질투라는 감정보다 하나님께서 당하신 배신감의 표현으로 이렇게 묘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도 그냥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면 되지 무슨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면 되겠냐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고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악한 생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모든 인간이 자기 멋대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을 다 인정해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 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버려 두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났다고 해서 우리를 완전히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를 새롭게 맞아주시고 기꺼이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55장 7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신약성경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에 대해 예화를 들면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부자집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세상에 나가 살고 싶어 아버지의 유산 중 자기에게 줄 할당량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그 유산을 다 받아 세상에 나가 사치와 향락생활을 하며 금방 가산을 탕진하고 맙니다. 이제 먹을 것조차 구할 수 없고 구걸하며 살아갈 지경이 된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 가서 용서를 빌고 노예로 살더라도 그 곳에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집 재산을 들고 나가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소를 잡고 잔치를 열고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 긍휼과 용서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앞에 죄인이지만 그 죄인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와 용서를 빌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죄를 없애주십니다.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임에도 하나님앞에 용서를 빌며 나오면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친구로 만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죽음의 인생, 멸망의 인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참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죽음, 영원한 멸망, 영원한 지옥형벌로 우리는 이미 죽은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참 사랑으로 이제 우리는 생명을 얻은 영원한 천국인생이 되었습니다. 구원받고 기뻐하며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이런 인생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쓸모 있는 인생, 기쁨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시고 우리의 죄 값을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 값, 즉 예수님짜리 인생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허락하신 하나님, 그 피값으로 우리는 사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의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마지막 셋째로, 때를 따라 도와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4장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의 비를 주장하시며 가을철에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자연현상가운데 임재하시고 다스리시며 모든 때를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햇볕과 비와 바람과 각종 자연현상을 허락하시고 결국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장 15, 1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능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치게 하시며 그의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중에 쓸모없는 것은 이 땅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종종 우리가 ‘이런 게 왜 세상에 필요하지?’라고 생각되는 것도 어떤 때는 정말 이런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속에도 이건 필요없어라고 생각하며 버렸는데 어떤 때는 그 조그마한 것이 급하게 필요해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지역은 여름철이 되었습니다. 여름철이 되면 장마와 태풍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피해 볼 걱정을 하게 됩니다. 왜 우리나라는 여름과 가을에 태풍이 오는 지, 또 왜 장마전선이라는 것이 생겨 거의 한 달 내내 엄청난 폭우를 뿌리며 비오는 날이 많은 건지? 어쩌면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이런 ‘장마’, 이런 ‘태풍’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장마’와 ‘태풍’이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과학자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만약 태풍이 없으면 지구 전체의 공기와 바닷속의 자원들의 순환을 할 수 없게 되기에 지구의 환경에 큰 문제가 생긴다고.. 태풍이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생겨서 잘 움직여줘야 지구가 제대로 숨을 쉬고 환경이 순환되어 지역에 합당한 기후가 생긴다고....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그 태풍이 안 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지만 그래도 태풍은 태풍대로 그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장마도 이 한반도지역에서는 그 역할이 있다고 하고요. 반드시 우리가 여름철이라고 말하는 이 시기에 꼭 장마와 태풍이 적절하게 생기고 적절하게 활동해줘야 건강한 지구환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68편 9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우리가 필요한 것을 따라서 우리를 돕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노래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잘 살 방법, 우리가 은혜가운데 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 하나님을 높이는 상황이라면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큰 도우심을 발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로운 인생이 되도록 만드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잘 되기 위해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삶인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등.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앞에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은 나를 돕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분이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버스 정류소에 가서 버스를 기다려야 버스를 타게 될텐데 버스가 오지 않을 어느 골목에 가서 왜 버스가 오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주일, 오늘은 2023년 상반기를 결산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상반기동안 우리는 힘들었고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더 많이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경험보다 날마다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있고 하루하루를 은혜가운데 보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든 시대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엄청난 뉴스거리가 많이 들리는 힘든 세상, 힘든 세월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은혜가운데 오늘 또 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 말씀의 역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명기 30장 9절의 말씀을 함께 읽고 오늘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신명기 30장 9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2023년 맥추감사주일, 우리는 2023년 상반기에 어떤 감사할 일이 있었는 지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감사할 게 별로 없고 힘들게 살았다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일어났습니다. 큰 질병, 큰 사고, 큰 전쟁...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조차 우리의 생각, 우리의 판단대로 안 되는 이 세상, 이 시기에 우리는 은혜를 경험하며 잘 살아가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안에서 세상의 어떤 풍파의 영향도 받지 않고 그 속에서 은혜가운데 지내고 있다는 것이 감사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겠다 죽겠다 할 때에 우리는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아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혼란하지만 나는 하나님안에 있기에 어떤 흔들림도 없이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고백이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언제나 감사가 넘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생겨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면 피할 길도 허락하시고 항상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갈 때 도움의 손길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일평생 감사로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