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에 악어가
1호선 경기도 양주역에서 오전 10시 47분에 버쁘바 뻐드타와 엉까페 까토나 노객(老客) 넷이 만난다. 간만에 양주시청을 품고 있는 불곡산(佛谷山 해발470m)으로 향하는 날이다. 일명 불국산으로도 불리운다. 오늘 2021년 6월 12일(토)의 날씨는 기온이 31℃까지 오르는 불볕 더위 날씨이다. 택시에 몸을 싣고 백화암 입구에서 하차를 한다. 엉까페는 근처에 모신 어머님 묘역에서 친척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산행 후에 함께 회식을 하기로 한다.
산세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동여지도에 양주의 진산으로 나와 있다. 양주시 유양동 및 산북동의 경계에 솟아있으며 산의 규모는 작으나 기암들로 이어진 오밀조밀한 산세를 자랑한다. 봄철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는 산이다. 산 중턱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이 있다. 백화암 밑에 있는 약수터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고 전한다.
백화암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한 편이다. 곳곳에는 바위들이 엉키어 있는 계곡 같은 등산로이다. 첫 발걸음부터 맥이 빠지고 지치는 노객들이다. 10여분도 못되어 수시로 나무 그늘에 다리를 뻗고 숨을 추스린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양주시와 의정부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고구려는 불곡산 능선을 따라 9개의 보루성을 쌓았다. 보루성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돌로 쌓은 작은 산성. 불곡산에는 9보루 까지 안내표지가 있는데 주봉인 상봉(468m)이 6보루, 상투봉(432m)이 7보루, 임꺽정봉(445m)이 8보루이다.
불곡산엔 조선시대 의적(義賊) 임꺽정이 태어나 활동하던 청석골과 임꺽정봉이 있다. 임꺽정봉, 상투봉, 주봉인 상봉은 암봉으로 밧줄이나 철사다리가 설치된 암릉구간이 여럿 있었으나 2009년 등산로를 일제정비하여 위험구간에는 데크계단이 설치되었다.
임꺽정은 명종 시대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을 한다. 임거정(林巨正), 임거질정(林居叱正)이라고도 한다.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불린다.
16세기 중반 연산군에서 부터 명종대까지 몰락한 농민과 백정, 천인들을 모아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을 한다.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있다. 지배층은 그를 흉악무도한 도적으로 민중들은 의적(義賊)으로 영웅시하고 있다.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기록한 사실도 있다. 역사적인 판단은 그 당시 상황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제각각일 수도 있다.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여 정상인 상봉에 오른다. 사면 팔방이 탁 트여서 시원스런 정경이 내려다 보인다. 저 건너편에는 도봉산 북한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상투봉을 거쳐서 근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뻐드타가 옥상에서 유기농으로 수확한 오이 세개가 고작이다. 버브바의 초코렛과 크로켓이 허기를 달래주고 갈증은 오이 한개와 음료수로 갈무리 한다. 양주 불곡산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생수와 밀로 만든 불곡산 생막걸리가 생각난다.
정상인 상봉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바위가 펭귄바위이다. 상봉을 오르고 상투봉을 거쳐서 임꺽정봉을 바라보며 능선타고 하산을 한다. 도중에 공기돌바위 코끼리바위를 볼 수가 있다.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다고 하산을 재촉한다. 임꺽정은 노객들의 투정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이다. 볼멘 소리를 귓등으로 흘려 바위틈에 묻고 일어선다.
악어가 기어오르고 있는 악어바위로 향할뿐이다, 이곳 양주의 불곡산에는 불가사의한 동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기암절벽의 비경(秘景)을 품고 있는 산이다. 펭귄과 코끼리와 악어가 공존하는 산이다. 아직도 수직 바위를 기어 오르고 있는 악어 앞에 서서야 노객들의 웃음꽃이 솟는다. 몇년 전에 왔을 때와 거의 같은 위치 그 자리에서 아직도 기어오르고 있다. 굼뱅이도 저런 굼뱅이는 없을 터이다. 90도 가파른 바위를 거의 다 오르고 있는 상태이다. 어느 세월에야 완등(完登)을 하려는가. 힘들면 다시 내려오든지 꽁무니를 밀어 올려주고도 싶다. 악어는 약 2억 2천만 년 전에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물가에 매복하였다가 물 마시는 누, 얼룩말, 들소 등을 잡아 먹는다. 물을 수는 있어도 씹지는 못하기 때문에 잡은 동물들을 빙글 돌리면서 몸통을 잘라 통째로 먹는다. 동족(同族)도 거침없이 살생하는 거칠고도 악랄한 파충류이다. 물이 가득한 늪도 없고 잡아먹을 동물도 없는 바위 절벽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가 있을까. 통닭이라도 한 마리 사다가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펭귄이라고 불리는 조류는 극한기후대에서 수중 활동에 가장 잘 적응된 종류이다. 펭귄은 비록 날지 못하는 데다 육상에서 잘 걷지 못하지만 물 속에서는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바다에서 1번에 수주일 동안 물고기, 오징어, 갑각류 등을 먹으며 산다. 이런 펭귄이 바위 위에 홀로 우뚝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극의 혹독한 추위와 얼음으로 둘러쌓인 바다가 무척이나 그리울 터이다. 따가운 햇살에 버티고 서있는 녀석은 누군가가 오징어 한 마리와 아이스케키를 갖다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런지 모르겠다.
코끼리는 육상동물 중 가장 큰 것으로 몸무게가 7,500㎏부터 2,500Kg이나 되고 어깨높이가 3~4m에 이른다. 풀과 다른 식물들을 하루에150~ 225㎏ 이상이나 먹어 치우는 대식가(大食家)이다. 바위 절벽에 서 있는 대식가에게 물 한 모금 토끼풀 한줌도 기대할 수가 없는 사악한 자리가 아닌가. 헬기로 커다란 오동나무 몇그루를 배송하면 어떨까.
수 많은 산객들이 오르내리며 그들을 배경으로 폰샷을 누르고 있다. 그토록 외롭게 홀로 서있는 코끼리 펭귄 악어 등에게 시원한 얼음은 커녕 물 한 모금 들이미는 객들은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이 노객들도 예외는 아니니 어찌할까나.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언제 다시 악어와 펭귄 그리고 코끼리가 자신들의 낙원(樂園)으로 회귀할 수가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면 머리 속은 복잡하고 발걸음 또한 무겁고 더딜뿐이다.
양주역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각이다. " 야 !!! 지금 어디냐, 어 ~ 엉~ " 산 아래에서 재촉하는 엉까페의 폰이 귀청을 때린다. 공기돌바위 악어바위를 지나서 삼단바위를 스친다.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마음뿐이다. 돌뿌리에 걸려 자빠지기라도 하면 어쩐다.
군졸들과 맞닥드려 계곡과 계곡을 바위와 바위 사이를 맹수처럼 넘나들던 임꺽정이 그립다. 더듬거리는 노객들의 안타까움을 저 너머 임꺽정은 알고나 있으련가.
대교아파트 앞에 버스정류장에서 엉까페를 마주한 시간이 오후 네시를 가리키고 있다. " 이렇게 힘들고 험한 바위산을 ~~~ 애라이 미* # 아 "라고 핏대를 올리는 세명의 노객들이다. 뻐드타 버뿌바 엉까페의 쐬주 한잔의 황홀함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버스로 양주역 정류장에서 하차를 한다. 1호선 양주역에서 승차를 하고 어디로 갈련가. " 종로3가 ? 도봉산역 ? 아니면 망월사역 ? " 각자의 의견을 주절이는 전철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노객들인가 보다.
그냥 가까운 도봉산역 근처의 맛집으로 들어선다. 출입구 근처의 창가쪽으로 자리를잡는다. 공기가 제대로 소통이 되고 타객들과의 거리두기는 습관화가 된 현상이다. 2년여 가까이 아직도 전 세계는 COVID-19와 전쟁은 진행중이다. 대중교통 음식점 어디를 향하든지 마스크는 생활의 필수품이 된 요즘의 생활상이니 어쩔 수가 없다. 시원한 맥주와 소주를 곁들이는 벗들의 표정은 환하게 웃고 있다. 언제 힘들고 땀나고 허기지고 갈증으로 산행을 했는지 기억도 사라진 모양이다.
거침없는 얘기꽃으로 함박웃음이 터지는 이 자리가 바로 우리 세대들만의 낙원이 아닌가.
2021년 6월 12일(토)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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