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장 광야로 가셨다. 사십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시험하는 자가(사단) 와서 그를 시험했다. 시험은 늘 그렇게 절박할 때 찾아온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을 가지고 타협을 요구한다.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사단은 세 번의 시험에 세 번의 의문을 던졌다. 그 가운데 두 번이나 똑같이 물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자주자주 질문을 하시곤 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질문하심으로 제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셨다. 하지만 사단은 질문 대신 의문을 던진다.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의 구름을 입히고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의심을 일으키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하거든 재빨리 그 사람으로부터 달아나라 그는 당신을 위하는 척하지만 천사의 가면을 쓴 마귀요 사탄이다. “저런, 불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어찌 이런 꼴을 할 수 있겠어요.” 무척 위하는 것 같지만 불신과 불만을 일으켜서 결국 하나님과 그분의 섭리를 불신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멸망으로 이끌어 가려는 작전이다.
세상에는 믿음에 대한 큰 오해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심령의 평안 대신 세상이 주는 편안으로 대체하고 고난과 시련에서의 승리보다는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약속하는 신앙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의문 안에는 온갖 사단의 의도가 다 들어 있다. 부정적인 마음, 의심, 믿음에 대한 오해, 세속주의 그리고 기복신앙까지.
마치 에덴에서 간교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을 때처럼 은근히 하나님이 사랑이 아닌 것처럼 오해하게 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부풀리고, 확대해서 불평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믿음의 저버리게 만드는 것이 사단이 하는 일이다.
참믿음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보장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참믿음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만용이 아니다. 참믿음은 원하는 대로 세상의 재물과 영화를 가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믿음은 현세적인 양식의 고갈 속에서도 말씀에 대한 약속을 의심치 않는 것이며, 자신의 무능력과 부족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능력을 의심치 않는 것이며, 편안하고 안락한 길을 버리고 고난과 시련의 길을 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이다. 바로 그 증거가 선구자 침례 요한의 이야기이다. 요한은 한때 믿음이 흔들렸지만, 마침내 헤롯의 감방에서 시험을 이기고 순교로 승리했다.
요한과 예수님은 바로 그런 믿음을 보여 주셨다. 비록 사단이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을지라도 그의 의심에서 사단의 정체를 간파한 예수님은 한 번도 그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믿음이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오늘날 교회 안으로 세속적 믿음의 물결이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성경의 원칙과 약속은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믿기 편한 방향으로 믿어 버리는 그런 믿음, 곧 상황 믿음, 철저히 인본적인 사람 중심의 믿음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 예수 믿음이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사단은 광명한 천사의 가면으로 쓰고 우리들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접근합니다. 세상이 주는 위로와 안락을 보장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게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냐?” 조롱하며 유혹합니다. 저희에게 예수 믿음을 주십시오. 주님에 대한 의심치 않는 믿음과 원수의 제안에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