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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작은 이야기들의 큰 울림
- 박해경 디카시집 『달을 지고 가는 사람』
황순원디카시공모전 대상 수상한 박해경 시인이 디카시집 『달을 지고 가는 사람』을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디카시 대표시선 21번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2014년 《아동 문예》 동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동시집 『딱 걸렸어』 『두레 밥상 내 얼굴』 『하늘만침 땅만침』 『우끼가 배꼽 빠질라』 디카시집 『가장 좋은 집』 『달을 지고 가는 사람』을 펴냈다. 2019년 올해좋은동시집, 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청소년 북토큰 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제2회 동심디카시 문학상, 황순원디카시공모전 대상, 울산 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잎사귀 경첩
신춘문예 · 14
부창부수 · 16
해고 · 18
바쁜 조문 · 20
진심 · 22
선인장 · 24
열꽃 · 26
팔랑귀 · 28
잎사귀 경첩 · 30
꿈과 현실 · 32
타인의 봄 · 34
붉은 입술 · 36
배꼽 · 38
눈으로만 가는 길 · 40
좋을 때는 몰라요 · 42
제2부 달을 지고 가는 사람
허공 · 46
취하다 · 48
울산 큰애기 · 50
요리사 · 52
안식처 · 54
나무 자서전 · 56
소금밥 · 58
또 하나의 나 · 60
연필심 · 62
달을 지고 가는 사람 · 64
명예퇴직 · 66
교실 · 68
자궁 · 70
동아리 · 72
민얼굴 · 74
제3부 기억상실증
밤의 흉터 · 78
첨삭되지 않는 문장 · 80
뜨거운 머릿속 · 82
나무의 손 · 84
거짓말 · 86
속울음 · 88
신생아 · 90
아버지 발자국 · 92
자화상 · 94
사춘기 · 96
부부 · 98
욕망 · 100
기억상실증 · 102
떠나가는 엄마 · 104
재개발구역 · 106
제4부 흰 뼈가 동강 나다
풀무덤 · 110
촛농 · 112
꿈 · 114
신혼생활 · 116
섬진강 재첩 · 118
내 나이 계란 한 판일 때 · 120
혀 · 122
자존심 · 124
따뜻한 국화 · 126
흰 뼈가 동강 나다 · 128
고향 · 130
바람 부는 날 · 132
花無十日紅 · 134
옹기사랑 · 136
인생이 그렇다 · 138
해설 / 작은 이야기들의 큰 울림_오민석 · 140
책 속으로
눈앞이 침침하다
물기를 머금은 희뿌연 구름이
앞서 달린다
누군가
울고 있는가보다
--- pp.20-21 「바쁜 조문」중에서
젖을 빠는 보드라운
저 입술이
가족을 일으켜 세웁니다
--- pp.90-91 「신생아」중에서
오늘 밤
빨갛게 지새웠다
비가 온다는 내일은
그대 만나지도 못하고
떠날 수 있어
--- pp.134-135 「花無十日紅」중에서
출판사 리뷰
4부로 나뉘어져 총 60편의 디카시를 수록한 박해경 시인의 디카시집의 가편들은 대부분 일상에서 나온다. 그것들 은 관념의 외피를 입지 않는다. 그녀는 스마트폰(디카)으로 일상 을 찍고 그것에 문자 기호를 융합하는 디카시의 문법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사진도 그녀의 문자도 스펙터클(spectacle)이나 큰 이야기(grand narrative)를 흉내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진과 이야기가 합쳐질 때, 그것들은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일상의 저변에 있는 크고 깊은 의미를 건드린다.
박해경 시인은 일상이 의미의 충만한 바다임을 잘 안다. 그는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의 촉수로 일상을 포착하고 일상에 녹아 있는 삶의 비밀과 역사를 읽어낸다. 그가 평범한 일상에 디카시라는 미적 형식을 입힐 때, 죽은 일상이 다시 태어나고 평범한 대상이 낯설어진다.
가난해서 늘 비어 있었지만
존재만으로도
할머니의 자존심이었다
- 「민얼굴」
옹기 함지박은 지금은 골동품이 되어 버렸지만, 오래전엔 일상의 가장 흔한 사물 중 하나였다. 할머니가 사용하던 그것이 “가난해서 늘 비어 있었다”는 구절은 그것만으로도 할머니의 고단했던 삶 전체를 압축한다. 이 간단한 문장 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어 있나. 함지박은 할머니의 얼굴처럼 아무런 장식도 꾸밈도 없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함지박을 “민얼굴”이라 은유한다. 함지박을 가득 메웠던 음식물이 하나둘 동이 날 때마다 할머니의 마음 밭도 가을 들판처럼 썰렁해졌을 것이다. 함지박을 거쳐 갔던 음식들은 그 자체 하나의 계보가 되어서 한 집안과 지역과 민족의 먹거리 문화사를 이루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늙고 문화도 변하여 함지박이 쓸모가 없어진 다음에도 함지박엔 할머니의 헌신과 노고와 불안과 행복의 생애가 고스란히 닮긴 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또한 함지박의 “존재만으로도” 가난하고 험한 세상을 잘 견뎌 온 것에 대하여 “자존심”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젠 할머니와 거의 하나가 되어 버린 함지박을 후손들도 함부로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두 개의 함지박 뒤편엔 쌀뒤주로 보이는 옹기도 있고, 대나무 바구니들과 곡식의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던 키도 걸려있다. 한눈에 보아도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물건들이다. 이렇듯 디카시의 사진 기호엔 문자 기호로 채 설명을 하지 않은 뒷담화가 많이 남아 있다. 디카시를 읽을 땐 이렇게 생략되거나 침묵하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까지 잉걸불 을 뒤집듯 자꾸 끄집어내 읽으면 좋다.
엄마
아부지
크게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쓸쓸하게 돌아섰다
- 「허공」
아파트와 연립주택, 개인주택, 상가, 공공건물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 사진은 “엄마/ 아부지”가 살았던 '복잡다 단'했던 생애를 반추하기에 매우 적절한 풍경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얼마나 다양한 삶이 저 산동네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을지 능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저기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지금 홀로 울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작은 성취에 환호하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분노를 삭이고 있을 것이다. 저기 저 골목에서 누군가는 얼마 전 고단한 생애를 내려놓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직도 창밖이나 담 너머로 저런 풍경을 바라보며 삶을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디카시의 재료가 되는 사진은 이렇듯 특별한 예술성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감성을 찌르는 다양한 푼크툼(punctum)을 담고 있는 것이면 좋다.
시인은 사진 안에서 무덤덤하고 평균적인 느낌의 스투디움(studium)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찌르고 자극하는 푼크툼을 읽어낸다. 가령, 박해경 시인은 이 사진에서 이제는 세상을 뜨고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읽어낸다. 그들은 사진과 똑같은 곳이 아니었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삶의 복잡한 골목들을 평생 오르내리며 시인의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을 새겨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지상의 공간에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존재 하지 않는다. 시인이 아무리 "크게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는 순간에 사진의 건물들보다 사진의 “허공”이 더욱 크게 확대됨을 느낄 것이고, 그 확대된 허공 속에 울려 퍼지는 슬픈 메아리를 듣게 될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앞에 보이는 저 풍경의 어디에도 없으므로 그 자체 “허공”의 존재이다. 시인은 그들의 부재와 마주하고 있다. 적어도 이 순간 그들이 부재하는 풍경은 화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화자는 “쓸쓸하게 돌아섰다”. 화자마저 돌아선 허공은 이제 더 큰 공허의 공간이 된다.
박해경 시인은 거대서사를 동원하지 않는다. 큰 울림은 큰 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 이야기가 큰 울림을 얻으려면 작은 이야기들로 엮어져야 한다. 구조물만 있는 거대서사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 박해경 시인은 처음부터 작은 이야기(petit narrative)로 시작한다.
흐트러지지 않게 반듯했고
날아오를 꿈도 가지고
간혹,
오지랖 떨어 산통 깨질까
매사 조심하며 살았다
- 「내 나이 계란 한 판일 때」
“계란 한 판”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사물이어서 대부분은 그 것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낯설게 하기’의 개념으로 유명한 쉬클로프스키(V. Shklovsky)는 「기법으로의 예술」이라는 에세이에서 톨스토이의 일기를 인용한다. 톨스토이는 이 일기에서 침상의 먼지를 털려다가 그것의 먼지를 앞에서 털었는지 털지 않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다. 톨스토이가 그것을 지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자주 반복되어서 ‘습관화’되고 ‘자동화’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많은 ‘반복’으로 습관화, 자동화되어 있는가. 습관화는 우리의 지각을 죽이고 감각을 죽이며, 기억을 죽이고 세계를 죽인다. 쉬클로프스키의 말마따나 “느끼지 못하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경치는 부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인은 이렇게 너무나 친숙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친숙하지 않게, 새롭게 느끼게, 즉 낯설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서 쓰잘 데 없어 보이는 계란 한 판에서 시인은 자신의 30대를 회상한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계란 한 판처럼 “흐트러지지 않게 반듯했고” “날아오를 꿈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상력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계란이 (결국은 날지 못하는) 새의 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인은 “오지랖 떨며 산통 깨질까/ 매사 조심하며 살았다”고 회상한다. 시인이 그 흔하디 흔한 계란 한 판에서 이런 푼크툼을 읽어낸다면, 독자들 역시 저마다 다른 의미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디카시는 이렇게 쓰잘데 없는 것에서 고귀한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는 특수한 미적 형식이다.
할머니는 등이 굽은 삼촌을 위해
둥근달만 보면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삼촌은 달을 등에 지고 할머니보다 먼저
소나무가 우거진 땅 밑으로 떠났다
- 「달을 지고 가는 사람」
시인은 굽은 나무와 가로등을 “등이 굽은 삼촌"”과 할머니가 그것을 보며 소원을 빌던 “둥근 달”에 은유한다. 사진 기호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이런 문자-은유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야 말로 훌륭한 디카시인의 자질이다. 박해경 시인은 어떤 사진 기호든 문자 기호로 바로 은유화할 수 있는 감수성의 소유자이다. 이질적인 재료들을 이렇게 바로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엘리엇(T. S. Eliot)은 ‘통합된 감수성(associated sensibility)’이라 불렀다. 문자시에서의 은유가 문자 기호를 (다른) 문자 기호로 은유한다면, 디카시에서 시인은 사진 기호를 문자 기호로 은유한다. 그러므로 디카시에서 감수성의 통합은 사진과 문자라는 전혀 다른 질료들 사이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더욱 독특하다. 박해경 시인은 은유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쓰잘 데 없어 보이는 것을 서사화(narrativization)하는 데에도 탁월한 소질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나무와 가로등을 삼촌과 둥근 달로 은유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로 발전시킨다. 할머니가 소원을 빌던 “달을 등에 지고 할머니보다 먼저/ 소나무가 우거진 땅 밑으로” 떠난 삼촌의 이야기는 얼마나 슬픈 가계사인가. 박해경 시인에게 ‘쓰잘 데 없는’ 일상은 없다. 그는 모든 일상을 디카시로 만들고 그 안에서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의미를 생산할 줄 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박해경 시인의 디카시들은 일상이 어떻게 예술이 되고, 쓰잘 데 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고귀 한 의미들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들은 생명과 죽음의 두 축 사이에 펼쳐진 일상을 왕복 운동하면서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를 융합하고, 그렇게 통합된 감수성의 지평들을 소서사로 발전시키며, 마침내 거대서사로 이어지기도 하는 디카시의 독특한 전략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이처럼 박해경 시인의 디카시집 『달을 지고 가는 사람』을 펼치면 일상의 작은 서사들이 거대한 서사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메타포를 만날 수 있다.
시인의 말
『달을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집을 지어 한 가족이 된 자연과 사물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달을 지고 가는 사람』은 살면서 꼭 받아들여야 하는 아픔을 좀 더 무디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완충제였습니다. 『달을 지고 가는 사람』을 발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소중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4년 가을
박해경
추천평
박해경 시인의 디카시는 소재가 다채롭고 그 범주가 자유분방하다. 그는 일상의 어디에서나 시를 추수하는 생활 밀착의 디카시를 쓴다. 사정이 그러하니 곳곳에서 삶의 쉼표와 느낌표를 발견한다. 「첨삭되지 않은 문장」 같은 시가 그렇다. 그의 시는 사람과 사람 또 사물과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현상의 배면을 투시한다. 「진심」이 그렇다. 또한 그의 시는 사진이 건네는 말을 들으며 이를 시적 언술로 치환한다. 「또 하나의 나」와 「거짓말」 같은 시가 그 범례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특이한 풍경의 포착과 이의 재해석에 남다른 기량이 있다. 「혀」를 보면 알 수 있다. 요약하면 그는 디카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 핵심에 정문일침을 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디카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 김종회 (문학평론가,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8274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