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 불확실성에서 통제가능에로]
낙서장 2009/01/03 01:35.49
자본주의의 종말을 인간의 수명에 비유해서 나름대로 이해하자면, 인간의 수명을 100살로 봤을 때 자본주의는 이제 46.6세를 맞이하였다.(자본주의의 수명을 500년으로 보고 자본주의의 역사를 아담스미스의 <국부론>(1776)에서 출발하였다고 가정함)
자본주의는 성장기의 고통을 여러번 겪었고 이제 장년의 나이가 되어 노후에 대한 대비를 해야할 때이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가 얼마전에 갑자기 위암에 걸렸을 확율이 높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위암 초기인지 중기인지 말기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자본주의는 결국 수술대 위에 올려져야만 할 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술대 위에 올려놓으려 하지 않고 각종 명약을 찾기에 바쁘다. 혹자는 암이라는 험악한 질병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설상가상으로 침을 놓거나 쑥뜸을 놓자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환자의 심정은 어떨까? 환자는 우선 의사의 오진이기를 바랄 것이고, 누가 어떤 약을 먹고 암을 깨끗이 치유했다는 소문에 귀를 기울일 것이며,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생사의 갈림길에 대한 상념에 빠지다가 곧 체념 상태가 되어 병의 상태가 초기이기만을 소원할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나온 인생의 여정을 되집어보면서 후회와 자기연민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MRA를 찍고 수술대 위로 올려져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것은 필연적 수순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생에 대한 포기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2009년의 화두를 '불확실성'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위암 환자에게는 이 불확실성이 수술대 위에 올려져 배를 가르고 뚜껑을 열어보기 전 까지는 제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1세기 금융자본주의라는 환자는 수술대 위에 올려지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다들 명약을 찾는 중인 것 같다. 가령 녹색성장이라는 명약을 찾기도 하고 대운하라는 만병통치약을 구하기도 한다. 다들 배를 가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배를 갈라서 뚜껑을 열었을 때 과연 치료가능한(통제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태에서 용기란 배를 가르고 뚜껑을 여는 것 뿐이다. 그것을 도외시하고 만가지 약을 찾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모함에 지나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통제 가능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 때 자본주의는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 갈 수 있다. 통제 가능한 상황이란 보호무역으로의 회귀나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뜻하지 않는다. 전자는 '거짓원인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후자는 '범주착오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통제 가능한 상황이란 인지 가능한 상황 혹은 이해 가능한 상황이요 따라서 치료가 가능한 상황을 말한다.
kjm _ 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