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공이 대낮에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육마(六馬)를 탄 채 부인을 거느리고 정규(正閨)를 나서고 있었다.
이때 다리가 잘린 형벌을 받은 죄인이 꿇어 앉아 있다가 그의 말을 치면서 반의(反意)의 분을 표시하였다.
“너는 나의 임금이 아니다.”
이 말에 경공은 부끄러워 조회를 열지 못하였다. 안자가 예오라는 사람을 만나자 이렇게 물어보았다.
“임금은 무슨 일로 조회를 열지 않는 답니까?”
이에 예오가 이렇게 일러주었다.
“지난번 대낮에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부인을 거느린 채 정규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어떤 다리 잘린 형벌을 받아 풀려난 죄수가 말을 치면서 이렇게 비난하였다 하오. ‘너는 나의 임금이 아니다’라고요.
임금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감히 외출을 하지 못한다 합니다. 그래서 조회를 열지 못하는 것이라오!”
이 말에 안자가 입조하였다. 경공이 안자를 보자 먼저 털어 놓았다.
“지난번 내가 죄를 지었소. 피발(被髮)에 육마를 몰고 정규에서 나오고 있을 때,
어떤 다리 잘린 자가 그 말을 치면서 반의를 품고 내게 ‘너는 나의 임금이 아니다.’ 라고 하더군요.
나는 천자의 대부로서 사명(賜命)을 받아 백성을 거느리고 종묘를 지키는 자요.
그런데 지금 다리 잘린 자로부터 사직에 욕을 당하였으니, 내가 이 제나라를 제후들에게 어떻게 보이게 하였겠소?
이에 안자가 이렇게 안심시켰다.
“임금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아래로 직언을 해주는 자가 없고 위로 임금을 감싸주는 자가 없으면,
백성들은 말하기를 꺼리고 임금은 교만해 진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에 어진 임금이 윗자리에 있으면 그 아래에는 직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임금이 위에 있으면서 선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거리낌 없이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 임금께서 잘못된 행동을 하였을 때 다리 잘린 자가 직언을 하였다면, 이는 곧 임금의 복입니다.
그래서 제가 와서 축하드리는 것이니,
청컨대 그에게 상을 내려 임금께서 능히 간언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밝혀 보이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경공이 웃으면서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고, 안자역시 “되고말고요!”라고 답하였다.
이에 그 다리 잘려 꿇어앉은 채 다니는 자에게 두 배의 재물을 주고
세금을 받지 않도록 명을 내리자, 즉시 조정이 무사해졌다.
✼ 정규(正閨): 왕의 정침소(正寢所).
-《설원(說苑)》-
첫댓글 좋은글 많이 배움니다
황금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댓글은 달지 않지만, 님께서 올려주시는
글도 감사히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늘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