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12월 (15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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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12월 초1일 (정사) 맑다. [양력 1월 7일]
1008
맑고 따뜻했다. 아침에 경상수사 입부 이순신(李純信)이 진에 왔다.
1009
나는 배가 아파서 저녁나절에야 수사를 보고, 그와 종일 이야기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1010
12월 2일 (무오) 맑다. [양력 1월 8일]
1011
날씨가 너무 따뜻하여 봄날 같다. 영암의 향병장 류장춘(柳長春)이 적을 토벌한 사유를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곤장 쉰 대를 쳤다.
1012
홍산현감 윤영현(尹英賢) ∙ 김종려(金宗麗) ∙ 백진남(白振南) ∙ 정수(鄭遂) 등이 와서 봤다.
1013
밤 열시쯤에 땀이 배어 젖었다.
1014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1015
12월 3일 (기미) 맑다. [양력 1월 9일]
1016
바람이 세게 불렀다. 몸이 불편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1017
12월 4일 (경신) 맑다. [양력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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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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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김윤명(金允明)에게 곤장 마흔 대를 쳤다. 장흥 교생 기업(基業)이 군량을 훔쳐 실은 죄로 곤장 세 대를 쳤다.
1020
거제현령 및 금갑도만호 ∙ 천성보만호는 배메기하는 데서 돌아왔다. 무안현감 및 전희광(田希光) 등이 돌아갔다.
1021
12월 5일 (신유) 맑다. [양력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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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공로를 세운 여러 장수들에게 상품과 직첩을 나누어 주었다.
1023
봉제(奉 )가 김돌손(金乭孫)을 데리고 함평 땅으로 갔다.
1024
보자기를 수색하는 정응남(鄭應男)이 점세(占世)를 데리고 진도로 갔다. 배를 새로 만들 때 나쁜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볼 일로 아울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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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독동(禿同)을 처형했다.
1026
전익산군수 고종후(高從厚)가 왔다. 김억창(金億昌)이 왔다. 광주의 박자(朴仔)가 왔다. 무안의 나덕명(羅德明)이 왔다.
1027
도원수의 군관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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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전관 편에 들으니,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아직도 상제라 하여 방편을 따르지 않아 여러 장수들이 민망히 여긴다고 한다. 사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라 일이 한창 바쁘다. 옛사람의 말에도 `전쟁에 나아가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다.'고 하였다. 전쟁할 때의 용감이란 소찬으로 기운이 없는 자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예기에도 `원칙과 방편'이 있으니, 꼭 원칙대로만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은 내 뜻을 짐작하여 소찬에 더하여 방편을 쫓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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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면서 고기반찬을 하사하셨으니, 더욱 비통했다.
1030
해남의 강간 ∙ 약탈한 죄인을 함평에서 자세히 다스렸다.
1031
12월 6일 (임술) [양력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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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덕준(羅德峻) ∙ 정대청(鄭大淸)의 아우 정응청(鄭應淸)이 와서 봤다.
1033
12월 7일 (계해) 맑다. [양력 1월 13일]
1034
12월 8일 (갑자) 맑다. [양력 1월 14일]
1035
12월 9일 (을축) 맑다. [양력 1월 15일]
1036
종 목년(木年)이 들어왔다.
1037
12월 10일 (병인) 맑다. [양력 1월 16일]
1038
조카 해 ∙ 아들 열 및 진원(珍原)이 윤간(尹侃) ∙ 이언량(李彦良)과 함께 들어왔다.
1039
12월 11일 (정묘) 맑다. [양력 1월 17일]
1040
경상수사와 조방장이 와서 봤다. 우수사도 와서 봤다.
1041
12월 12일 (무진) 맑다. [양력 1월 18일]
1042
12월 13일 (기사) 가끔 눈오다. [양력 1월 19일]
1043
12월 14일 (경오) 맑다. [양력 1월 20일]
1044
12월 15일 (신미) 맑다. [양력 1월 21일]
1045
12월 16일 (임신) 맑다. 저녁나절에 눈오다. [양력 1월 22일]
1046
12월 17일 (계유) 눈바람이 몹시 섞여치다. [양력 1월 23일]
1047
조카 해와 헤어졌다.
1048
12월 18일 (갑술) 눈오다. [양력 1월 24일]
1049
새벽에 해는 어제 취한 술이 깨지 않았는데도 오늘 새벽에 출항했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1050
12월 19일 (을해) 종일 눈이 내리다. [양력 1월 25일]
1051
12월 20일 (병자) [양력 1월 26일]
1052
진원(珍原)의 어머니와 윤간(尹侃)이 올라갔다. 우후가 교서에 숙배했다.
1053
12월 21일 (정축) 눈오다. [양력 1월 27일]
1054
아침에 윤홍산이 목포에서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배 조방장과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몹시 취하여 돌아갔다.
1055
12월 22일 (무인) 눈비가 섞여 내리다. [양력 1월 28일]
1056
함평현감(손경지)이 들어왔다.
1057
12월 23일 (기묘) 눈이 세 치나 내렸다. [양력 1월 29일]
1058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기별이 먼저 왔다.
1059
12월 24일 (경진) 눈이 오다 개이다 하다. [양력 1월 30일]
1060
아침에 이종호(李宗浩)를 순찰사에게 보내어 문안했다. 오늘 밤 나덕명이 와서 이야기하는데, 머무르고 있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모르니 한심하다.
1061
밤 열시에 집에 편지를 썼다.
1062
12월 25일 (신사) 눈오다. [양력 1월 31일]
1063
아침에 열이 돌아갔다. 제 어머니 병 때문이었다.
1064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 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1065
오후 여섯시에 순찰사가 진에 왔으므로, 함께 군사에 관한 일을 의논하고, 연해안 열아홉 고을을 수군에 전속하게 하였다.
1066
저녁에 방안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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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 (임오) 눈오다. [양력 2월 1일]
1068
방백과 함께 방에 앉아서 은밀히 군사 대책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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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에 경상수사(이순신)와 조방장 배흥립(裵興立)이 와서 봤다.
1070
12월 27일 (계미) 눈오다. [양력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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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은 뒤에 순찰사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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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갑신) 맑다. [양력 2월 3일]
1073
경상수사와 조방장 배흥립(裵興立)이 와서 봤다. 비로소 경상수사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 왔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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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을유) 맑다. [양력 2월 4일]
1075
김인수(金仁秀)를 놓아 보냈다. 윤□□에게 곤장 서른 대를 치고서 놓아 보냈다. 영암좌수(座首)는 문초를 받고 놓아 주었다. 두우(杜宇)가 종이감으로 백지 ∙ 상지를 아울러 쉰(장...이 아래 글자가 지워져서 알아볼 수가 없음)을 가져왔다.
1076
초저녁에 다섯 사람이 뱃머리에 왔다고 했다. 그래서 종을 보냈다.(이 아래 글자가 지워져 알 수 없음) 그것이 무슨 듯인지 알 수가 없다. 거제의 망령됨을 알만도 하다. (이 아래 글자가 지워져 알 수 없음) 다친 팔과 손가락을 물로 씻었다고 했다.
1077
12월 30일 (병술) 입춘. 눈보라가 몹시 휘날렸다. [양력 2월 5일]
1078
□□□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봤다. 평산포만호 ∙ 영등포만호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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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찰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오늘밤이 일년의 마지막 날이 되는 그믐밤이라 비통한 생각이 한결 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