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국(格局)과 용신(用神)에 집착하다 보면 일간(日干)의 기능(機能)에 대해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격용(格用) 공부에 상당한 진척(進陟)이 있는 학자가 문득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일간도 생극제화를 하는가?”
질문해 놓고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명리학자로서 할 수 있는 질문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격용(格用) 중심으로 명운(命運)을 해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고서가 일간을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오행으로 인식하게끔 터무니없는 논리를 전개하였는데, 이것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습니다.
고서의 중세(中世) 명리가 현대(現代) 명리에 끼친 악영향 중의 하나가 바로 ‘일간도 생극제화를 하는가?’라고 의심하게 만들어 마침내 공부하던 학자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역술인들을 대규모로 양산해 놓았으니, 고서는 중죄인이기도 합니다.
'일간을 쪼다로 만들어 놓은 죄'
그 죄를 응징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주는 팔자로 구성되어 있고, 팔자의 모든 글자는 생극제화를 합니다. 일간은 여타의 오행들과 함께 생극비설상(生剋比洩傷)의 작용(作用)을 합니다.
일간은 사주의 주인(主人)이며 나(我)입니다. 나의 사주팔자 안에 있는 나의 십신들의 이름이 왜 식상이고 왜 재성이겠습니까? 그것은 일간이 생하고 극하는 작용을 하고 있기에 식상이고 재성입니다.
일간은 경쟁의 주체이고, 표현의 주체이며, 경제활동의 주체이고, 관리의 주체이며, 학습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일간이 인성을 만나면 생(生)을 받고, 관성을 만나면 극(剋)을 받으며, 비겁을 만나면 비(比)하고, 식상을 만나면 설(洩)하며, 재성을 만나면 상(傷)합니다.
일간인 내가 작용(作用)하기에 사회활동을 하고, 돈을 벌고 쓰며, 명예를 얻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것입니다.
일간인 내가 관계(關係)를 맺기에 잡다한 일이 생기며, 대인관계도 성립하는 것입니다.
즉 일간은 사주체에서 가장 중심 역할을 하는 오행입니다.
왜 일간을 쪼다로 만들어 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