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경호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서 천정을 보고 있다.
세진과 연희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이상한 것은 세원, 세진이 나타난 직후부터,
연희의 주변에서 연이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연희의 목숨에는 그다지 위험은 없었다.
이상하다. 왜 연희지?
만약 세진이 그 모든 걸 꾸민다고 해도, 얼마 전처럼 목숨을 걸고,...... 아닐 것 같다.
사고를 당한 세진을 보니, 조금만 방향이 달랐거나. 칼이 깊었다면,
죽음이나 중상 이였을 것이다.
복수를 한다면, 자기를 죽을 위험에 처하게는 안 할 것 같다.
세진을 연희와 연관 지으려 해도 세진은 10년간 미국에 있었는데,......
아, 모르겠다.
경호는 뒤척이며, 며칠 전, 연희를 보러 미술실에 갔었다.
세진이 미술실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묘한 느낌을 받은 것을 떠올렸다.
그때의 세진의 옆모습에서 슬픔이랄까, 아픔이랄까, 감싸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을 느낀 경호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아래서 당혹한 감정에 차가운 물을 받으며 벗어나려 했지만
더 깊이 세진을 생각나게 했다.
오히려 세진의 항상 가식적으로 웃는 모습,
화난 얼굴,
싸울 때의 모습.
항상 공허한 눈을 하고 있는 모습,
세원과 단둘이 있을 때의 누나 같은 모습.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는 모습은 어떨까?
세진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몰래 훔쳐 본 세진의 모습은 연희를 향한 경호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어 놓았다.
아니 이미 이성은 감정에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된 것 같다.
결국 일은 떠지고 말았다.
귀를 막아도 더 뚜렷이 들리는 심장박동 소리에 욕탕 바닥에 주저앉았다.
낮의 일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는다.
방과후, 세진을 항상 미행을 했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세원도, 연희도 떼어놓고
홀로 학교를 나서길래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진이 버스를 타고 가서, 혹 들킬까 염려되어 자신은 택시를 타고 미행을 했었다.
세진은 서울 토박이인 자신도 잘 모르는 곳에서 골목으로 들어가기 전, 뒤를 힐끔 보았다.
경호 역시 택시에서 내려 뒤쪽아 갔었다.
얼마 앞에 세진이 보여, 발소리를 죽여 가며 천천히 뒤따르는데,
골목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길에서 놓쳐버렸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 도리어 자신이 길을 잃어버려
이곳을 벗어나는 출구를 찾아다니는 꼴이 되어버렸다.
한심한 자신을 탓하며 털레털레 걷는데,
한 골목길에서 손이 나오더니 자신은 벽에 밀어 붙여져 있었다.
세진의 자신을 향한 분노의 눈에, 스스로도 역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왜, 그 순간에 미술실 창문에서 보았던 세진의 모습이 생각났을까?
“왜 날 미행하러 왔지?”
“......”
“뭐냐구?”
“저, 그게,......”
결국, 그는 얼굴이 붉어지는 바람에 말을 끝맺지 못하자,
세진은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흐느끼듯 웃는다.
자신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통에 감정이 북받치며 이성이 정지해 버렸다.
“이런 일, 있지, 가끔! 너, 나에게 반했냐?
그럼,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지?”
경호의 눈이 커져서는 세진의 얼굴에 꽂히고 말았다.
“무멀?”
“ㅋㅋ큭, 너 정말 귀엽게 군다.”
잠자고 있었던 이성이 이제야 눈을 떴나보다.
세진의 말이 하나하나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놀리지마!”
장난치듯이 빙글거리는 세진의 얼굴이 진지하다 못해 그늘이 졌다.
“놀리는 건 너 아냐? 내가 아니라.”
그는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놀리는건 아니지만,...... 미안하다.”
세진은 가만히, 아무런 말도 없이 비난도 비웃음도 없이 날 바라봐 주었다.
오히려 그 시선이 날 죄책감에 빠뜨렸다.
그 절망적이고 뭔가가 욱죄여 오는데 세진의 시선을 피해 땅만 보았다.
세진의 손이 내 얼굴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더니,
입술로 시선을 옮기며 망설이듯 보고만 있었다.
세진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내게로 그의 입술이 내려 왔다.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나의 심장도, 이성도, 시간도. 나의 육신도.
하지만 감정만이 살아 움직이며 내 육신을 조금씩 조정하기 시작했다.
나의 팔이, 손이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며,
세진이 시작한 공격에 경호는 그의 육신을 가두어 지배하기 시작했다.
얼마동안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얼마의 순간이였는지,
얼마의 시간이였는지,
우리가 떨어졌을 땐, 숨을 쉬기 바빴지만, 시선은 서로에게 메여 있었다.
먼저 이성이 자리 잡은 것은 세진이였다.
내게서 등을 돌리며 좀 전의 열정은 꿈인 것처럼 지워버렸다.
“다신 내 곁에 다가오지마!”
걸어가는 세진의 등을 보며 겉잡을 수없는 감정에 부정도 긍정도 못한 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여전히 그 순간을, 그의 입술을, 그 느낌을 느끼고 있다.
차가운 물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적시는데 자신의 입술만이 뜨겁게 달아올라있다.
세진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경호는 자신의 계획에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연희에게서 때어놓을 존재일 뿐, 자신의 인생에 낄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왜?
무엇 때문에?
복수는 어쩌고?
지금 존재는?
동생의 애인이였는데?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야?
하지만 부정 할수록 그 순간의 감정이 이성을 몰아 내 버렸다.
미국에서도 남자 애인은 두고 있었다.
당연히 여자 애인도 있었지만.
하지만 이런 감정은 아니었다.
무엇인지 모르겠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맞서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감정이 모든 것을 망칠 것 같다, 복수를, 내 존재를.
세진은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때렸다.
이렇게 감정과 이성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밤은 점점 깊어 갔다.
지원은 세진과 세원을 앞세워 제주도의 0000호텔에 들어섰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라, 체크인하고 올게.”
지원은 많은 사람들로 분비는 로비를 곧바로 카운터로 갔다.
“세진아 여기 꽤 괜찮은 것 같아!”
“그래, 좋으네!”
“엄마 따라 오길 잘한 것 같다.”
호텔 로비를 둘러보는 세진과 세원은 카운터 앞에 서서 우리 쪽을 보며,
웃고 있는 엄마를 기다린다.
지원은 의학 세미나 핑계를 대며 세진, 세원과 시간을 보내려고 고집을 부려 둘을
거의 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원을 통해 세진의 정황을 들은 그녀는 딸의 두려움을 덜어 주고 싶었다.
알고 있었다.
세진이 얼마나 기다라고 또 기다렸는지.
그녀는 세진이 멈추길 바랐고, 그 일을 잊기를,
더 좋은 것은 그 기억만큼은 기억상실하기를 바랄정도지만.
죽은 언니, 혜원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었을 때도,
그녀의 큰 아들이 되어 버린 시간부터 지금에도,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렸음에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니, 도와줘요.
언니의 소중한 딸, 지원이 과거의 악몽을 잃어버리고 스스로의 삶을 즐길 수 있게.
언젠가 자신의 모습이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세진과 세원은 그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세진은 자라면서 점점 부드러워 지고 섬세해지고, 세원은 그의 아빠를 닮아가고 있었다.
지원은 마음 한쪽이 아려는 것을 숨기며 웃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비엽과 연희는 방에서부터 계속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1층에 도착하는 벨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연희가 투덜거리며 먼저 나선다.
“아빠, 나 괜찮다니까!”
“연희야, 제발 아빠 업무가 마치면 같이 나가자, 응?”
“아니, 난 지금,...... 세진아!”
“세진이라니?”
연희는 세진을 보자마자 달려가다시피 했다.
비엽 역시 세진을 보자 한 숨이 나왔다.
연희와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며 세진의 모습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연희와 세진의 시선이 자신에게 쏘여지는데 , 또 한명의 시선이 비엽과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심장이 숨 쉬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
아마도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느끼는 심정이 이럴 것이다.
얼마나 보고 싶은 그녀인데,
평생을 맘 한 곳을 자리 잡은 그녀인데,
어떻게, 어떻게 그녀가 살아있지?
내가 분명 죽였는데.
어떻게 내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으로,
날 향하여 웃어줄 수 있는거지?
아닐거야, 혜원이 아니겠지.
비엽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여전히 웃고 있는 그녀와 마주서니.
심장박동 소리가 비엽의 몸을 터질 것처럼 들렸다.
“안녕하세요, 연희아버님?”
“아,......안녕하세요?”
“저희 애들이 연희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오히려 세진군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어머, 아니에요.”
지원의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어깨너머로 부른다.
“이 지원씨?”
“어머, 선생님!”
“혹시나 했는데, 역시 자네였군......”
지원은 세원과 세진에게 방 열쇠를 주고, 비엽과 연희에게 간단히 목례를 한 후,
노신사와 커피숍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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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2.
[ 중편 ]
비밀가족-8-
곰수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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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31 14:2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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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재밋게 잘 읽고 있답니다^^!
^^감사. 감사. 끝까지 재밌게 읽어주시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