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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1880-1917, 청동Bronze, 680×400×85㎝, 파리 로댕미술관
청동에 새겨진 조각들은 그동안 로댕이 제작했던 작품들로 이루어졌고, 위쪽은 고뇌(苦惱)하는 단계, 아래쪽은 지옥(地獄)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원래 이런 구성은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이면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내용과 구성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로렌쪼 기베르티(Lorenzo Chiberti, 1378-1455)의 <천국의 문(Gate of Paradise)>을 보고 연구하면서 만든 <천국의 문>에 반한 작품이기도 하다.
<천국의 문>은 피렌체의 두오모성당(Duomo di Firenze)) 세례당의 문으로, 기베르티가 27년 동안 제작하였는데 문에 표현된 부조의 내용은 천국과 관련내용이 없으면서도 미켈란젤로가 ‘낙원의 문(Gate of Paradise)’라고 감탄하였다 하여 <천국의 문>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부조된 내용은 아담창조, 아담의 옆구리로부터 탄생하는 하와, 아벨의 살해, 노아의 방주, 이삭의 희생, 모세의 십계명, 여리고의 몰락, 필리스틴과의 전투,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 구약성서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지옥의 문>은 5m 높이의 문짝 2개를 각주와 상인방으로 둘러싸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인간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자 그는 소용돌이치는 상상력의 조수에 빠져들었다.
<지옥의 문>에 들어갈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걸작에 속한다. 맨 위의 세 사람은 ‘세 사람의 망령(The Three Shades)’으로 여기에는 고뇌하는 아담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체 작품을 압도하는 플롯(Plot)의 시작이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1880-1917, 청동Bronze, 680×400×85㎝, 파리 로댕미술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지옥의 문-세 망령(Porte de l`Enfer-The Three Shades)〉은 '지옥의 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조각 '세 망령'을 상징하는 '아담(Adam)'.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지옥의 문(Porte de l`Enfer’은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Divine Comedy) 중 지옥편(Inferno)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에서 영향을 받았는다. 이 문의 주인공인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은 지옥의 문 중앙 위쪽에 있다. 높이는 6.35미터이고 폭은 3.98미터, 두께는 0.85미터며 무게는 7톤이 넘는 대작이다. 로댕의 작품 대부분을 총망라한 불후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념비의 맨 위에 고립되어 특수한 지위를 갖는 군상은 품위와 위엄에 있어 단연 눈에 띈다. ‘세 망령’으로 알려진 이 군상은 동일한 한 작품을 세 점 복제하여 다른 각도로 배치한 것이다. 그 각각에는 독자적인 개성이 부여되어 있다. 작가가 애정을 보인 ‘프로필’ 이론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입증해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세 명의 다른 인물상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세 망령’은 혼란스런 저주받은 영혼 무리를 지배하며 질서를 유지시킨다. 이들은 발밑에 펼쳐지는 아비규환에 속해 있다. 짐 진 고뇌로 다리가 구부러진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지탱하며 똑같은 고통으로 결속된다. 운명의 무게는 셋을 짓누르며 육체적 힘의 무상함을 주장하므로 훨씬 위압적으로 보인다.
지상을 떠난 망령의 무언의 절망은 어떤 비명이나 신음보다도 무시무시하다. 이는 가장 대담한 내면의 갈등의 정점에 선, 로댕의 예술이다. 그는 ‘자연을 모방’했고 비현실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숙인 머리와 목 그리고 어깨는 연결되어 거의 하나의 수평선을 형성하며 운동선수처럼 구부리고 있는 육체의 모델링은 ‘청동시대’를 능가하는 해부학적 지식을 보여준다. ‘청동시대’에 대해 조각가는 솔직하게(솔직은 곧 그의 예술적 양심이다) 말하고 있다. “그 이래로 완성도는 더 높아졌다” 장엄하게 구성된 군상인 ‘세 망령’의 존재는 망자가 가득한 섬뜩한 영역 위에서, 고통스럽게, 엄숙한 성가처럼 울려 퍼진다.
<지옥의 문> 문설주를 채우는 육체는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고 위로 상승하지만 운명의 무게를 지고 있다. 패널에서는 저주받은 영혼들이 한 줄기 격렬한 빛이 비치는 광포한 심연 속으로 곧바로 떨어진다. 부푼 젖가슴, 긴장한 엉덩이, 부채꼴 허벅지를 가진 여성, 짓밟히고 상처 입은 남성, 사티로스(Satyros)와 켄타우루스(Centaurus), 욕망으로 몸부림치는 여성 커플 등 혼란스럽게 연이어진 누드 형상은 육체적 쾌락과 탐욕스런 욕망의 지옥(地獄)을 나타낸다.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1840~ 1917), 〈지옥의 문-세 망령(Porte de l`Enfer-The Three Shades)〉. 1881-86. Bronze. 97.3x92.2x49.5cm, 로댕미술관(Musée Rodin)
'세 망령(The Three Shades)'은 지옥입구를 지키는 망령을 뜻하며, 전시장 독립 조각 작품들 중 가장 먼저 등장하도록 배치돼 있다. 1880년 무렵 로댕이 제작한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이탈리아 여행 당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감명 받아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강건하고 근육과 약간 뒤틀린 형태는 작품 '아담(Adam)'과 함께 줄리어스 2세 교황의 무덤을 위해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노예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아담'은 1875년 로댕이 이탈리아 여행 중 그리스의 조각 작품들이 아름다움과 죄에 대한 기독교적 의식을 결합시킨 미켈란젤로의 작품 '아담과 이브'를 성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서 보았다. 로댕은 그의 작품 '아담과 이브'를 제작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아담과 이브'의 특징과 해부학적 형태를 정확히 기억해 냈다. 즉 앞으로 뻗친 '아담'의 집게손가락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을 나타내며, 그리고 아담의 굽힌 무릎, 가슴을 지나는 비스듬한 팔, 어깨 쪽으로 숙인 머리 등은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의 '피에타(Piet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프랑스 바로크시대 조각가 피에르 퓌세가 제작, 마르세이유미술관에 소장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닮고 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 1917),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은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그는 꿈을 꾼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몽상가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로댕이 밝힌 '생각하는 사람'의 의미다. 단테, 혹은 로댕 스스로가 모델이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로댕의 작품으로 통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에 앉아, 현세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들을 관조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 <신곡(神曲)>에 대해 명상하는 시인 단테를 묘사하기 위해 제작한 로댕의 예술의 정상을 차지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아마도 로댕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1장에서 영감을 받아 <지옥의 문> 전체를 지배할 인물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옥편 제1장에서는 지옥의 심판관인 미노스(Minose)가 육체의 죄를 범한 영혼에 대한 심판을 주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이 단순히 단테를 상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의 고뇌에 찬 모습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짙다.
말하자면 ‘생각하는 사람’은 신비한 빛에 고양된 인간이 동물적인 차원보다 높아지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최초의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수축은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로댕은 수축된 근육을 묘사함으로써 숭고해지려는 인간의 정신적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뇌에 찬 몸부림인가를 공간 속에 구체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 1917),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 세종특별자치시 베어트리 파크(Beartree Park)
상인방은 가장 복잡한 부분일 것이다. 이는 전체 구성의 중심주제로 지배적인 주체가 된다. 천사의 죽음과 죄 지은 사자 및 카미유 클로델의 슬픈 얼굴, 그리고 시인의 죽음 등 중간쪽 중앙에는 고뇌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의 양편은 모두 얕게 장식되어 있지만, 로댕은 광적인 인물로 빼곡한 원근감 깊은 광경을 창조해냈다. 무정형 무리들은 사방의 틀 밖으로 나오려 하고 사각 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흩어지는데, 이로써 상인방은 누드로 가득 메운 동굴 입구처럼 보인다. 왼편의 인물들은 공중을 떠다니고 오른편의 경우는 땅으로 추락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이다. 그는 굵은 눈썹, 황소 같은 목, 야성적인 용모를 갖고 있다. 가공할 만한 근육에서는 힘이 느껴지지만 고도의 집중력은 고개를 숙이고 숙고하는 듯한 형상에서 발산된다.
문에 부조로 장식된 망자들의 몸부림 위에 자리한 이 환조상은 이들의 운명에 대해 숙고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 기성비평가들로부터 조소를 받았다. 가브리엘 무레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부금 모금 형식으로 항의운동을 벌였다. 청동으로 주조되어 훨씬 위력을 갖춘 ‘생각하는 사람’은 파리시에 기증되어 팡테옹 앞에 세워졌다. 1906년 화려한 제막식이 거행되었지만 1922년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비롱저택으로 옮겨지게 된다.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는 팡테옹 광장에 품격을 부여했고, 파리의 관례적이고 평범한 조각상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레옹 도데는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이 상을 위해 광장이 만들어진 것처럼 광장을 채우고 있다.
로댕의 작품들은 초시간적이지만 주어진 사건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공공기념비를 제작한 것이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카르포), Jean-Baptiste Carpeaux, Ugolino and his Sons〉.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Ugolino and his Sons)’은 '설교하는 성 요하네'의 모델이 된 이탈리아 Pignatelli가 이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간 전쟁에서 적에 생포된 우골리노 델라 게라르데스카는 반역죄를 선고받고 두 아들 및 손자 2명과 함께 피사에 있는 '기아의 탑'에 투옥되어 탑의 열쇠는 강으로 내던져졌다.
아사상태에 이른 우골리노는 배고파 죽은 자신의 아들 시신을 먹고 '마지막 생존자'가 됐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금기시한 이러한 행동으로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입맞춤(Kiss)〉, 대리석, 코펜하겐 Ny Carlsberg Glyptotek.
'파올로와 프란체스카(Paolo and Francesca in the Clouds)' 혹은 '입맞춤 The Kiss'은 단테 '신곡' 지옥편 5곡에 나오는 'Paolo and Francesca(육욕의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13세기, 젊고 잘 생긴 시동생 파올로에 반한 형수(兄嫂, gudtn) 프란체스카의 불륜 이야기를 묘사했다.
그러나 조각 자체는 대단히 아름답게 묘사됐으며, 이 두 사람이 그 유명한 조각 '입맞춤'의 모델이 됐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의 두 여인을 재현한 이 작품은 뜨거운 숨결과 부드러운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데, 원래 <지옥의 문> 오른쪽 아래에 '입맞춤' 을 제작하였으나, 로댕이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떼어내고 살롱전에만 출품했다고 전해진다.
‘순교자’는 1889년 처음 전시된 이래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순교자지만, 뒤틀린 몸을 지면에 누이고 있고, 그 표정은 고통스럽다. 이는 로댕이 가진, 인간에 대한 진실 추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옥의 문> 중 '무릎 꿇은 목신'이 받치고 있는 두 남녀의 기원이 됐으며, 대리석조각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유리디체 모델이 되기도 했다.
‘허무한 사랑(Fugit Amor)’은 단테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이야기. <지옥의 문> 왼쪽 문 가운데와 오른쪽 문 꼭대기에 방향을 바꾼 형태로 각각 조각되어 있다.
그 중의 남성은 작품 '탕아(蕩兒)'에 다시 나타난다. 관능적인 인간의 사랑을 느끼게 하며, 달아나는 여인을 붙잡기 위해 뻗치고 있는 남성의 두 팔을 보면 잡을 수 없는 여인의 아름다운 매력을 더욱 느끼게 하고 있다.
로댕은 같은 주제로 많은 브론즈 작품들을 제작하였고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도 여럿 있다. 여인의 등은 깊이 파였으며, 남자의 토르소(Torso)는 평평하고 다리가 늘어져 있다. 이중 젊은 남자의 얼굴을 로댕은 '슬픔의 머리(슬픔의 두상)'라고 불렀다.
‘슬픔의 두상’은 자연미에 고통이 뒤섞여 더욱 통렬하다.
‘돌을 지고 있는 여인(Fallen Caryatid)’은 <지옥의 문> 왼쪽 기둥 꼭대기 부분에 위치한다. 비참한 그러나 고통을 인내하는 이미지다. <지옥의 문> 왼쪽 기둥 꼭대기에 주름에 약간 가려진 채로 건축물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883년부터 로댕은 이 주제를 소재로 한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이 앉아있는 여인상의 오래된 주제, 즉 그리스조각에 나타나는 대로 물건을 나르는 여인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새롭게 재창조하였다.
로댕은 작품 생활 초기에 브뤼셀에서 장식적이고 근육이 발달한 역학적인 앉아있는 여인상을 빚었었는데 인간의 존재를 억누르고 있는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이 여인이 돌 무게 때문에 지치고 찌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도록 표현함으로써 마치 여인이 운명 때문에 슬픔에 잠겨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로댕은 돌 대신 유골단지를 메고 있는 다른 여인의 모습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부드러움과 젊음은 살이 늘어지고 비썩 말라 죽음에 처한 ‘한때는 투구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여자’와 대조를 이룬다.
'한때는 투구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여자'
'유골단지를 들고 있는 여인(The Fallen Caryatid with Urn)'
‘탕아(The Prodigel Son)’는 비통한 몸짓의 인물으로 <지옥의 문> 오른쪽 문 아래에 있다. 1894년 처음으로 단독작품으로 출품되었을때 사람들은 이 작품을 '세기의 아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버려진 아이의 기도' 혹은 '죽어가는 군인' 등으로도 불리었다.
‘추락하는 사람(Falling Men)’은 육상선수의 모습으로 <지옥의 문> 왼쪽 문 위에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다. 힘이 강하고 역학적인 근육을 가진 사람을 묘사함으로써 로댕에게 많은 영향을 준 미켈란젤로의 작품세계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나는 아름답다(I Am Beautiful)’는
"오, 인간들이여! 나는 꿈꾸는 석고상처럼 아름답다네. 모든 이들을 상심케 하는 나의 가슴은 시인에게 물질과 같이 영원하고 침묵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네. 물질같이 영원하고 말이 없는 사랑을..."
<지옥의 문> 오른쪽 모서리 부분에 받침돌 위에 써있다. 이 작품은 오른쪽 기둥 꼭대기에 있는데, '추락하는 사람'과 '웅크린 여인'으로 가각 한 사람씩의 독립된 작품으로도 제작되었다.
각각 다른 작품들을 서로 결합 및 접합시키는 기법은 로댕이 자주 사용한 기교로 여기서는 놀라운 동질성과 강력한 힘의 효과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원래 제목이 '납치'였다. '나는 아름답다'라는 제목은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시 '아름다움'에서 따온 것으로 첫 번째 시 구절이 받침돌 위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시와 조각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이 유행하던 시기에 만든 작품이라는 것만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영향은 로댕의 '저주받은 여인들'이란 작품에서도 민감하게 나타난다.
✺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시(詩) 중에 하나
- 어느 순교자, 미지의 스승에 관한 소묘 -
작은 병들, 금은 실로 장식된 천들과
관능적인 가구들,
대리석들, 그림들, 호화로운 주름으로 짜여진
향기로운 드레스들,
온실에 있는 듯 공기가 위험하고 치명적이며,
유리관들 속에서
죽어가는 꽃다발이 마지막 숨결을 내뿜어내는
미지근한 방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해갈된 베개에다
시뻘겋고 살아 있는
피를 강물처럼 흘려보내자, 천은 풀밭처럼
탐욕스레 젖어든다.
그림자가 낳는 파리한 환영들과 비슷하고
우리의 눈과 머리를
자신의 어두운 길가와 보석들
무더기로 묶어놓고
머리맡 탁자에서 미나리아재비처럼 쉬어라,
그리고 생각을 비우면,
뒤집힌 눈에서 여명처럼 희미하고 하얀
시선이 새어나온다.
침대 위에는, 스스럼없이 벗은 몸통이 더할 수 없이
포기한 태도로,
자연이 그에게 선물한 비밀스런 찬란함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과시하는데,
가장자리에 금박장식이 된 빛바랜 분홍색 스타킹이
추억처럼 다리에 남아 있고,
즈타킹 고무 밴드는 작렬하는 비밀스런 눈과도 같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눈길을 쏘아댄다.
도발적인 태도만큼이나 도발적인 눈이 돋보이는
초췌한 큰 초상화와
그 고독이 특이한 면모가 어두운 사랑을
드러내 보인다.
나쁜 천사들 무리가 커튼 주름 속에서
헤엄치며 즐기는
죄스런 기쁨과 지옥 같은 입맞춤들이 가득한
이상한 축제들,
그런데 윤곽은 조화롭지 못하나 우아하게
야윈 어깨와,
좀 뾰족한 엉덩이와, 성난 파충류처럼
팔팔한 허리를 보면,
아직 그녀는 정말로 젊다! - 격앙된 그녀의 영혼과
권태로움에 물어뜯긴 감각들은
방황하고 헤매는 욕망들을 굶주린 무리에게
방싯 열었을까?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네가 살아 있을 땐 충족시키지 못하던
복수심 강한 남자가.
너의 무기력하고 너그러운 육체에서 자신의 어마어마한
욕망을 채웠을까?
대답해라, 불순한 시체야! 열에 들뜬 팔로 너의 뻣뻣한 머리를
붙잡아 너를 일으켜 세우며,
내게 말해봐, 소름끼치는 머리야, 마지막 작별인사를
네 차가운 이빨에 달라붙게 한 거니?
조롱하는 세계로부터 멀리, 불순한 군중으로부터 멀리,
호기심 많은 사법관들로부터 멀리 가서,
평화로이 자라, 평화로이 자라, 이상한 여인이여,
너의 신비로운 무덤 안에서.
너의 남편은 세상을 쏘아다니고, 너의 불멸의 형체는
그가 잘 때 그 곁을 지키고,
그 또한 너에게 너만큼 정절을 지킬 것이며,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것이다.
-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젊은 여인의 토르소(아델의 토르소, Arched Torso of a Young Woman)'는 <지옥의 문> 왼쪽 위 패널에 위치한다.
‘시벨레(Cybele, Seated Woman)’
‘웅크린 여인(Crouching Woman)’는 신비로운 얼굴을 어깨와 허벅지에 기대고 있는데 이렇게 비틀어 구부린 자세를 외설적이지 않으면서 부조리하지도 않게 다룰 수 있는 이는 로댕뿐이다. 여기에서는 현란한 기교를 찾을 수 없으며 조화로운 무심(無心)의 인상을 받는다.
흔히 로댕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사람’이나 ‘키스’ 등을 떠올리지만, 미술사가들은 ‘지옥의 문’을 로댕의 전 예술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이라 평가하곤 한다.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시 ‘신곡’을 테마로 제작되었다. 작품 안에는 단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생각하는 사람’을 필두로 19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 구성의 중심이 되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로댕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30년 넘게 구상하고 많은 고뇌를 했던 모양이다. 그 과정 중에 탄생한 작품들이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을 필두로 ‘추락하는 사람(Falling Men)’, ‘세 망령(Les Trois Ombres)’, ‘웅크린 여인(Crouching Woman)’, ‘입맞춤(Kiss)’, ‘아담(Adam)’, ‘이브(Eve)’ 등이다. 한마디로 ‘지옥의 문’은 로댕의 전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은 미술관과 같다 할 수 있다. 문 위에 있는 세 명의 인물은 지옥에 거주하는 ‘세 어둠(Trois Ombres)’을 묘사하였는데, 세 형상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을 표현한 작품을 변형한 것이다. 인간의 정념과 야수성 및 잔인한 본성에 대한 질문을 수많은 육체의 엉킴 속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이런 인간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 1917), <망령의 토르소>. 청동. 100x73x49cm. 삼성문화재단
코가 찌부러진 사나이, 순교자, 서있는 요정들, 몸단장하는 비너스, 빅토르 위고(Victor Hugo)기념상,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 파올로와 프란체스 등 186명의 인물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거친 듯한 마티에르와 당시까지 보기 힘들었던 검은색의 독특한 무채색으로 생명이 없는 조각이나 조소작품들 하나하나가 감정이 들어있고 말을 하는 모습으로 숨을 쉬는 모습, 살아있는 모습으로 승화하는 모습들이다. ‘돌을 이고 넘어진 여인’도 비참한 그러나 고통을 인내하는 이미지다. 그 부드러움과 젊음은 살이 늘어지고 비썩 말라 죽음에 처한 ‘한때는 투구제작자의 아름다운 아내였던 여자’와 대조를 이룬다.
‘순교자’는 뒤틀린 몸을 지면에 누이고 있고, ‘슬픔의 두상’은 자연미에 고통이 뒤섞여 더욱 통렬하다. ‘웅크린 여자’는 신비로운 얼굴을 어깨와 허벅지에 기대고 있는데 이렇게 비틀어 구부린 자세를 외설적이지 않으면서 부조리하지도 않게 다룰 수 있는 이는 로댕뿐이다. 여기에서는 현란한 기교를 찾을 수 없으며 조화로운 무심(無心)의 인상을 받는다.
로댕은 단테를 읽으면서 ‘우골리노’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같은 주제들을 선택했다. 하지만 단테와 미켈란젤로가 지옥에 대해 내린 해석은 형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 신앙이 없던 로댕은 이교적인 지옥을 그려냈다. 미켈란젤로의 망자들은 혼령인 반면, 로댕의 경우는 육체이다. 남녀의 육체는 거룩한 빛을 빼앗기고 서로 고통을 가하는 운명에 처해 공허한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미켈란젤로의 누드는 지상의 낙원에서 추방된 피조물의 형태를 띠는 반면, 로댕의 누드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칠 뿐 아니라 절망적인 욕망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들은 스스로를 해치며 불행을 자초한다. 로댕은 상상력을 자유로이 펼쳐놓았다. 그는 성서의 신을 고대 그리스의 신과 결합시켰고, 단테의 영웅을 보들레르의 저주받은 여성과 결합시켰다. 사실 예술만이 그의 도덕이고 종교이며 구원의 개념이었다.
조각가 로댕은 평평하거나 돌출된 수많은 인물상에 어떤 대칭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형상은 20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유동적이어서 헤아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미리 짜여진 계획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개미군집 같은 혼돈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무원칙적인 발생과정 때문인 듯하다. 각 형상은 모호한 개인철학에 따라 전체 구성 법칙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음 형상을 생성시킨다.
서로 간에 여러 번 오해가 있긴 했지만, 로댕에게 평생 존경심을 품었던 부르델이 어느 날 작업실에 들어서면서 <지옥의 문>의 돌출된 부분에 모자를 걸었다. 이 경솔한 행동에는 상당한 비판이 들어 있었다. 로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자를 그대로 두었다. 이는 자기 작품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그는 모자걸이에 지나지 않은 것에 몰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델은 사소한 일이 이처럼 가슴 아픈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로댕은 열정 때문에 길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국가로부터 주문받은 본래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지금 이 작품은 고통스럽게 상상력을 발산하는 출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품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오귀스트 로댕 소묘〉, 1898, 42×29.8cm,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
[참고문헌 및 출처: 로댕(베르나르 샹피뇔르 지음, 김숙 번역, 시공사, 2006)/ ENJOY 파리(김지선 외. 넥서스)/ 파리 로댕미술관 로댕의 지옥의 문‘-'다나이드'(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불로그)/ Daum·Naver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