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My Camcorder, 영광의 퇴장
참 애썼다.
그래서 고맙다.
내 그동안 늘 손에 꼭 쥐고 다녔던 SONY 캠코더를 보고 하는 말이다.
우리 맏이가 장가들던 그해에, 한창 동영상 촬영에 빠져있던 내게 맏이가 선물한 것이었으니, 내 이 캠코더와 함께 한지 딱 10년 세월이다.
그동안 참 많이도 써먹었다.
이 캠코더를 선물 받던 그 즈음은, 내가 카페지기인 지금의 우리들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 전신인 Daum카페 ‘참 아름다운 동행’을 개설해놓고 이 글 저 글 무차별적으로 글쓰기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그리고 한 편 한 편 그 글에는 꼭 영상을 첨부했었다.
일부의 글은 사진만 첨부하기도 했지만, 쓴 글의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경우는 동영상을 빼놓지 않았다.
어림잡아서 하루 5편 정도의 글을 썼다고 보고, 그 한 편 글에 동영상을 첨부하기 위해 또 5편 정도의 영상을 찍어서 편집했다고 보면, 하루 25번에 한 해 1만여 번이나 동영상 촬영을 한 셈이다.
그래서 10년 이니, 내가 이 캠코더 폴더를 10여만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했다는 것이고, 그리고 동영상 한 편 찍을 때마다 평균 5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추산한다면, 그동안 50여 만분 그러니까 8천여 시간을 캠코더와 함께 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1년 꼬박의 길고 긴 시간이다.
그렇게 해서, 2007년 12월에 맏이 결혼의 순간들도 포착했었고, 2010년 5월에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가 태어나던 그 날부터 여덟 살 나이가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17년 올해에 이르기까지의 그 성장과정,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한 그 모든 어울림,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대표법무사로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이 캠코더로 다 촬영해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이 캠코더가, 이제는 더 이상 사진도 못 찍고 동영상 촬영도 할 수 없게 됐다.
아차 하는 순간의 내 실수로 인한 것이었다.
서너 달 전인 지난 한 여름의 일이었다.
딱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가는 어느 등산모임에 아내와 함께 따라 갔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행사 진행자가 이날의 간식용으로 바나나 2개와 백설기 떡 하나가 든 비닐봉지를 각자 하나씩 나눠줬었다.
당장 먹을 것은 아니어서 일단 옆에 밀쳐놨는데, 그때 마침 손에 들고 있던 캠코더가 거추장스러워서 그 비닐봉지에 같이 담아놓게 됐다.
운명의 장난은 거기서 부터였다.
목적지에 당도해서 버스에서 내리는데, 옆으로 밀쳐놓은 비닐봉지를 깜빡 잊고 만 것이었다.
산행을 끝내고 버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바나나는 푹 녹아 있었고, 끈적거리는 바나나액즙이 캠코더를 푹 적셔놓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싶어서 물수건으로 살살 닦고 캠코더 폴더를 열어서 영상촬영을 시도해 봤었다.
촬영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캠코더 몸체가 도리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차 하고 폴더를 덮었다.
그리고 곧바로 서초동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어 평소 자자 다니는 SONY대리점에 수리를 맡겼다.
“비용이 많이 들어도 괜찮아요. 무조건 고쳐주세요.”
내 그렇게 주문했다.
이 캠코더에 대한 유독 깊은 애착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서너 달이 지난 어제, 그 답이 왔다.
“이 기종이 생산 중단된 것은 이미 오래됐고요, 부속까지도 모두 소진 됐다고 하네요. 전국 대리점에 다 문의해봤는데, 중고 부속도 구할 수가 없었어요. 이 캠코더는 이제 못씁니다.”
너무나 아쉬운 답이었다.
결국 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퇴장, 우리들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의 카페지기인 내게, 그 역할 해줄 만큼 다 해주고 난 그 끝이었다.
곧, 영광의 퇴장이었다.
첫댓글 아마츄어용 켐코드로 정말 긴세월 그리고 그렇게 많이 사용된것이 있을까요?
주인을 잘못만나 혹사(?) 당했다고 하면 잘못된 표현이겠지요...주인의
애지중지속에 늘 세상 움직임을 함께하며 추억을 담아주는 측근이 였으니
후회는 없었으리라 봅니다. 원섭이 친구 말대로 영광의 퇴장이 되겠네요.
나도 지난 세월 뒤돌아 봅니다. 이 세상 퇴장하는 날 얼마나 의미있고
추억할만한 삶을 살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