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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0-1
개봉에 있는 백초당이라 불리던 건물이 있던 폐허 안으로 들어선 정각 대사와 양평은, 우울한 얼굴로 담장만 남고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한 그곳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사부님, 소구는 무사할까요? 동정호 주변에 있는 마을은 몽땅 해일로 사라졌다는 소문을---."
"양평아, 그만하거라.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소구가 그 정도의 일로 죽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정말로 소문대로 소구가 미쳐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벌였을까요?"
"----."
양평의 마르고 하얀 얼굴은 대답 없는 사부에게서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여자에게로 향했다. 눈처럼 새하얀 치마와 저고리 차림의 두 여자와 갈색의 허름한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있는 한 여자가 폐허의 한 가운데에서 모여 서서 담장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미타불, 소구가 말한 아내들이 시주들인 모양이구려?"
한 소리 불호를 외우며 정각 대사가 다가서며 말문을 열었다.
"정각 대사님?"
취하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정각은 그렇다는 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다, 한기를 뿜어내고 있는 백초당 한가운데 뚫려 있는 구멍으로 시선을 던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 안의 한기를 없애지 않으면 들어가실 수 없을 거에요."
취앵이 합장하며 인사하고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취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둘다 같은 생각이라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기를 뿜어내는 지하로 깊숙이 뚫려 있는 구멍 안으로 뛰어내렸다.
"대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소녀는 무림의 친구들이 적혈마향이라고 부르는 양려군입니다."
묵묵히 한기를 뿜어내고 있는 지하로 뚫린 구멍만을 내려다보고 있던 양려군이 합장하면서 인사했다.
"아! 양 여협이셨구려. 협명이 자자한 양 여협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구려."
"저는 양평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곳까지 오면서 여자의 몸으로 천하에 협명이 자자한 양 여협을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양평이 깜짝 놀란 얼굴로 포권하며 그렇게 인사하고, 양려군의 입가로 서글픈 미소가 스쳐갔다.
"말 많은 자들이 지어낸 헛소문에 불과합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보니 생겨난 소문들이니--, 그보다 정각 대사님 종구 오라버니를 살릴 수 있겠는지요?"
그녀의 질문에 정각 대사는 황폐해진 백초당을 난감한 얼굴로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살릴 수 있을 지는 아직 상태를 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천하에서 가장 많은 약초를 가지고 있는 백초당이라 약재와 치료에 필요한 도구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백초당이 이런 꼴이 되었으니---."
정각 대사의 말을 듣고 양려군의 입가로 다행이라는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싶습니다. 백초당의 지상은 이렇게 폐허로 변했지만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약재창은 무사합니다. 원하시는 약재는 어떤 것이든 바로 갖다 드릴 수 있어요."
양려군의 대답에 정각 대사와 양평의 입가로도 미소가 흘렀다. 한가지 근심이 덜어진 것이다.
"이제 내려 오셔도 됩니다!"
수직으로 지하 깊숙이 뚫린 구멍 아래에서 취하의 고함이 지상으로 울려 퍼졌다.
"사부님, 밑에서 뿜어져 나오던 한기(寒氣)가 가셨습니다."
양평이 땅 밑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정각은 고개를 끄덕이며 구멍 아래로 뛰어내리고, 양평과 양려군도 서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바로 밑으로 뛰어내려갔다.
두께가 적어도 반장은 되어 보이는 철로 된 열 두 개의 문에 난 구멍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는 세 사람은 속으로 경악을 삼켰다. 보통의 쇠로 만들었다해도 반장이나 되는 두께의 문에 이렇게 구멍을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 문들이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양려군의 경악은 더했다.
'천하에 그 누가 있어 이 문을 이렇게 뚫고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양려군은 백초당을 폐허로 만든 자가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고수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문이 닫혀 있다면 암기와 기관장치들도 작동했다는 의미였다. 수백 개의 기관 함정들이 작동도 하기 전에 반장이나 되는 두께를, 그것도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만년한철로 만든 철문을 뚫고,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천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는 믿어지지 않았다.
정각 대사 역시 밑으로 내려가면서 놀라고 있었다.
'저런 색깔의 쇠라면 분명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문일진데---, 흔적을 보아하니 단숨에 철문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 것 같은데---?'
경악으로 물든 눈을 하고 마침내 두 발을 땅에 디딜 수 있게 된 세 사람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 지상으로 뚫린 구멍을 바라보았다.
'문의 숫자가 열 두겹이었어. 나라해도 하나의 문에 구멍을 뚫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그 다음엔 내공이 바닥나서 움직일 수 없겠지? 도대체 백초당에 누가 왔던 거야? 사람이 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아!'
허공에 작은 점으로만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양평은 속으로 중얼거리다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온 것인지 모르지만 백초당을 공격한 그 누군가와 양평은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소구를 보면서 괴물이라고 느꼈지만 지금 본 광경으로 그는 세상에 소구말고도 또 하나의 괴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을 하던 그는 황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부와 양려군이라는 여자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던 세 사람은 무릎 위에 붉은 금을 올려놓고 죽어 있는 한 여자의 시신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양려군은 앉은 채로 죽어 있는 방수련의 시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단 하나뿐인 친구였던 방수련은 죽어서도 오라버니인 방종구를 지키려고 했는지, 무섭게 앞을 노려보고 있었고 눈가에는 한 방울의 눈물이 얼어붙어 있었다. 이미 그녀가 죽었다는 말을 취하와 취앵에게서 들었지만 그녀는 시신을 직접 보게 되자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이 아이는--?"
"소구의 누나인 방수련입니다. 대사님."
방종구가 잠들어 있는 지하를 얼려놓았던 한기가 사라지면서 얼어붙었던 방수련의 시신도 녹기 시작하고 있었고, 몸을 한 겹 가리고 있는 얼음의 막이 녹아내리고 있는 방수련의 시신을 보면서 정각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러시죠?"
양려군이 눈물을 글썽이는 눈으로 정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딘가 좀 이상하군."
말을 하면서 정각 대사는 금광이 일렁이는 손을 뻗어 방수련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 여자는 누구지?"
정각 대사는 한 장의 인피면구를 들고 양려군을 바라보며 질문하고, 방종구가 잠들어 있는 투명한 관 앞에 서 있던 취하와 취앵이 놀라 옆으로 달려왔다.
"이 여자가 누군지 아는 사람 없나--?"
정각 대사가 세 여자를 차례로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지만 세 여자는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사부님, 먼저 소구의 형이라는 방종구부터 치료하고 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양평이 투명한 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얼었다가 몸이 바로 풀리면--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일단 치료부터 해보자."
지하에 모여 있는 다섯 사람은 당장의 의문은 접어두고 일단 방종구를 살리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콜록 콜록, 여보 힘들면 쉬었다 가요."
몸에 병이 들었는지 파리한 안색에 곰보 자국이 가득한 얼굴을 한 여자가 기침을 토해내며 말하자, 그녀를 업고 있는 깡마르고 얼굴이 검은 남자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니, 아직은 힘이 남았으니 걱정 마시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주에 도착할 수 있으니 그때는 우리도 편히 쉴 수 있을 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침내 하나의 언덕을 넘어 정상에 선 남자가 아래를 손짓하며 말했다.
"저기가 정주요."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여자가 시선을 던졌다. 수백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하나의 커다란 성도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다 왔군요."
"어서 갑시다."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얼굴에 곰보자국이 가득한 아내를 바라보며 말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정주라 불리는 도성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을 걷는 내내 많은 사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들 한 쌍의 못생긴 얼굴의 거지 부부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정주라 불리는 땅 안으로 들어선 그들 한쌍의 부부가 멈춰선 곳은 정주에서 가장 번화한 금수로 안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음식점으로 알려진 소림채관이라는 건물 앞이었다.
"장사도 안 되는데 이번에는 거지까지 문 앞에 와서 말썽이네? 그것도 부부가 쌍으로 와서?!"
장마로 인해 황하의 범람이 시작되고 그러면서 손님이 뚝 끊어져 속이 상해 있던 소림채관의 점소이 호진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문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웬만한 장정보다 몸집이 커다란 호진이었다. 거기에 언제 집어들었는지 식당 안을 청소하는 싸리비를 들고 나와 하늘을 향해 휘두르며 소리쳤다.
"지금 장사도 안돼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여기로 왜 와? 구걸하려면 얼른 다른 데로 가라고! 줄 건 아무 것도 없으니 어서 이곳에서 꺼wu!"
잔뜩 흥분해서 소리치고 있는 호진을 한 쌍의 거지부부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바라보았다. 우습다는 듯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거지부부의 모습에 잔뜩 열이 오른 호진의 빗자루가 크게 휘둘려졌다.
빗자루가 거지부부의 얼굴을 때리려는 순간 남편의 등에 업혀 있는 못생긴 얼굴의 여자가 살짝 손을 들어올리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 순간----.
"아이쿠!"
비명을 내지르며 호진은 빗자루와 함께 그대로 뒤로 대굴대굴 굴러 그가 일하고 있는 소림채관의 담에 부딪치고, 담에 기대앉게 된 그는 놀란 눈으로 앞에 보이는 한 쌍의 거지 부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성 총관을 불러 오라."
초라한 누더기를 입고 있는 한 쌍의 거지부부 중 남자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결코 인생의 밑바닥을 기어가는 거지가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많은 자의 위에 서 있는 지배자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호진은 눈앞에 보이는 한 쌍의 못생긴 거지부부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거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부정리에 여념이 없을 성 총관은 호진이 부르기도 전에 문 밖으로 달려나왔고, 소림채관의 경영을 맡아서 하는 성 총관은 비가 내려 질퍽거리는 땅에 엎드려서 거지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모두 도착했는가?"
"예, 방주님. 모두 먼저 도착해서 방주님이 지시한 일을 끝낸 상태입니다."
"피곤하군. 오늘은 일단 쉬고 보고를 듣도록 하지. 내가 쉴 곳은 어디인가?"
소림채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호랑이에게 불리는 성 총관이 저렇게 쩔쩔매며 굽실대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호진은 믿어지지 않았다.
"마차를 대령할까요?"
소림채관의 총관 성하웅의 말에 넋을 잃고 주저앉은 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호진을 흘낏 쳐다본 남자 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군."
잠시 뒤 한 대의 마차가 소림채관 앞으로 달려와 한 쌍의 거지부부를 실어서 어디론 가로 가버리고, 그 때까지 주저앉은 채 꼼짝을 못하고 있는 호진에게 성 총관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많이 놀란 게로구나."
"그 거지들은, 아니 그분들은 도대체 누구죠?"
"조금 전 대화를 듣지 못했느냐? 내 입에서 방주님 소리를 누가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 조금 전의 그--그 분들이 그--그----?"
더듬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충격이 가득한 얼굴로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호진은 사색(死色)이 되어서 총관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그분들을 향해 빗자루를 휘두르며 욕을 했는데--, 아이고! 난 이제 죽었다!"
새파랗게 질려서 비명을 터트리는 호진의 머리 위로 노인답지 않게 매운 성 총관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아야! 왜 때려요?!"
머리 위로 볼록 올라온 혹을 쓰다듬으면서 호진이 성 총관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아, 할 일이 얼마나 많은 분들인데 조금 전의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겠느냐? 게다가 신분을 몰라보고 저지른 일인데 그런 하찮은 일로 너를 죽이겠느냐? 정신차려라. 평생에 한번 뵙기도 힘든 분을 만나고 그분들의 말을 듣기까지 하지 않았느냐? 영광으로 알고 너는 얼른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점소이들과 숙수들에게 최고의 귀빈이 내일 이곳에 온다고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이르거라."
호진은 머리에 튀어나온 혹을 쓰다듬으면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애꿎은 점소이들과 요리사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쓸고 닦고, 쓸고 닦고 소림채관이라 불리는 커다란 건물 전체에 먼지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청소를 하면서 밤을 세워야 했던 점소이들처럼, 소림채관의 요리사들 역시 다음날 맞이할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최상급의 요리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밤을 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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