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화평교회 방문
황 목사님 문자였다.
‘목사님, 월요일에 비 예보가 있네요.
남해 가시는 길 문제없겠지요.’
‘장로님 7시 30분 전대병원 모셔 드리고 출발하게요.
비 오면 내 승용차로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요.’
‘제 차로 모실게요. 9시 30분까지 교회로 갈게요.
해남 윤 목사님은 농사철이고,
방통대 마지막 기말시험이라 참석 어렵고,
조도 윤 목사님은 바다 사정 보고 따로 출발한다 하네요.’
‘예, 목사님..’
전날 젊은이들 틈에서 3시간 격한 몸놀림으로 몸이 천근이었다.
아침 운동할 틈이 없어 홈 트레이닝으로 풀었다.
2주 전, 입당 예배 참석을 못 해 헌금 봉투를 챙겨 마음을 담았다.
‘주님, 한 여름 굵은 소낙비 같은 은혜로
남해 언덕 아래 화평교회를 세워 주심 감사합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복음의 무성한 텃밭을 일구게 하시고,
영혼의 포도 열매가 담장을 넘게 하옵소서.
남 목사님 부부 오직 주님 바라보게 하사
아버지께서 익게 만드신 과실을 거두는 큰 부자 되게 하옵소서.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분주한 시간 해남 목사님이 애써 농사 지어
보내준 햇양파 두 개를 다듬었다.
칼질에 눈이 매웠다.
달걀에 볶아 달달한 맛으로 공복을 깨고 서둘러 나셨다.
날씨는 기랑 비에 옷 젖을 정도였다.
자욱한 안개가 구름처럼 산허리를 두른 모습이 아름다웠다.
조도에서 첫 배를 탄 윤 목사님과 섬진강 휴게소 만남 위해 시간을 쟀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먼저 도착해도 맛있는 점심 약속에
군것질을 참고 처마 밑 제비처럼 기다렸다.
윤 목사님은 허기짐을 못 견디고 도중에 배 채운 만큼 늦었다.
‘목사님! 너무 비가 쏟아져 돌아가고 싶었어요.
목사님 운전이 옛날 같지 않아요.’
사모님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일단 하동으로 빠져 하나로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수박 한 덩어리 구입 후 윤 목사님 차에 함께 탔다.
서로의 친근함이 더했다.
풀빛에 물든 자연, 푸르름이 흥건하게 번진 숲속을 한 시간 밟았다.
짙은 녹음을 뿜어내는 길이라 마음에 신록이 우거졌다.
초록빛으로 곱게 물든 마음 그 자체가 힐링이었다.
푸른 길을 따라 신나는 만남의 시작이었다.
눈으로, 코끝으로 푸른 혈맥이 뛰며
펄펄 살아 숨 쉬는 거리였다.
산을 넘어 바다로 풍덩 빠지는 길,
산자락에 핀 노란 꽃을 보고
조도 사모님이 ‘너무 예쁘다!’ 감탄사를 날렸다.
독일 마을 입구에서 남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목사님, 몸은 여전하시네요.’
인사를 받고 겉으로 웃으며
‘배보다 가슴 더 나오게 할 거요.’ 말을 삼켰다.
방문을 환영하며 최고로 대접하려는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생전 보고 듣지 못한 독일식 경양식에 포크 잡고 나이프를 쥐었다.
배고픈 탓에 접시를 전부 비웠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위치에 교회가 세워졌다.
140호 은점 마을의 등대였다.
아담한 예배당 공간이 새로웠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
섬 교회를 건축, 유지, 보수의 달인
윤 목사님의 조언은 참고할 사안이었다.
음향 시설도 만만치 않았다.
소리가 탁월하여 공간을 채웠다.
사택으로 갔다. 거실에서 바다와 섬의 뷰가 끝내줬다.
사모님께서 차와 과일을 내놓았다.
‘선배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일어서서 ‘전능하신 하나님!..’ 한 마디에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개척자로 하나님 일하신 감동에 기도를 이을 수 없었다.
낮은 소리로 구했지만 그 심정을 알기에 끝까지 울먹거렸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작으마치 4억의 건축비를 들여 진주화평교회와 순천화평교회가 세웠다.
두 교회가 3년간 성역비를 책임진 일도 복된 사역이었다.
새롭게 목회 시작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펜션에서 1년간 동네 섬기며
연단 기간을 통과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제 준비된 예배당에 한 사람,
한 사람 제자 삼는 일은 거룩한 부담이었다.
벌써 칼갈이 봉사단이 섬기고 간 흔적이 보였다.
박우석 선교사님 이모인 권사님께서
일정 기간 사택에 머물며 전도의 헌신자로 나섰다.
다가올 여름에 방문해서 함께 할 팀들을 들먹여 감사드렸다.
오락가락한 비에 네 가정이 은모래 바닷가를 찾았다.
자연석으로 메운 방파제에 서서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잔잔한 물결과 비단결 백사장이 하모니를 이룬
송림은 상쾌한 바람을 선물하는 공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울창한 소나무
길을 걸으며 청년 시절을 소환했다.
40년 전 여수에서 배를 타고
이곳에 내려 늦은 시간 금산으로 올라갔다.
커피 한잔 마시고 해수욕장을 보는데 야구장 같았다.
거기서 머뭇거리다 길 잃고 당황해 다시 올라가 방향 잡고 내려왔다.
목사님들과 삶을 나누며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공휴일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다녀갔는지 원하는 메뉴 재료가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나눠 먹는 즐거움이 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빗길을 뚫고 왔다.
황 목사님께서 운전대를 잡아 자면서 피로를 풀었다.
윤 목사님 카톡이 떴다.
‘목사님!, 집에 들어가셨나요? 오늘 즐거웠네요.
저녁 식사 맛있었네요. 저희는 순천에서 자고 가려고요.’
‘예, 목사님! 방금 도착했네요. 순천에서 잠, 잘 생각하셨어요.
오늘 함께 즐거운 시간 누림이 행복했네요. 편한 밤 되세요.’
초청해 주신 사모님께 뒤늦은 감사 전화를 드렸다.
오히려 멀리서 함께 와 주심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마음의 쉼과 힘을 얻은 좋은 만남을 전하며 또 초청했다.
‘목사님, 사모님 언제든지 바람 쐬러 오시면
이제 집 밥 대접할게요? 김치찌개로요!’
2023. 6. 3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