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숙영과 보영에 관한 이야기도 하여야겠다.
누구 이야기를 먼저 할까?
먼저
보영이 이야기부터 하자.
군대 입대 후 거의 보름마다 오던 영섭의 편지가 상체를 벗고 찍은 사진을 보내준 후 두인가 세번인가 오더니 두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보영이 보내준 편지에 대한 답장도 물론 없다.
영섭을 잘 아는 보영은 영섭에게 무슨 일이 없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영섭의 일이 걱정이되 영섭의 부대로 면회를 갔다.
영섭이 두 달 전에 보내준 편지의 주소를 들고 어렵게 찾아간 부대에서 영섭은 면회 못 하고, 대신 만난 선임하사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고, 날벼락 같은 소리를 했다.
영섭이 한 달 전에 사회에서 저질은 잘못 때문에 헌병대에 잡혀갔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영섭의 사회에서의 생활을 너무도 잘 아는 보영이 아무리 생각해도 영섭이 사회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을 한 기억이 없어 서류상에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선임하사는 자기도 잘 모른다는 대답이다.
부대 주변에서 하루를 묵으며 중대장도 만나보고 다른 병사들에게도 물었지만, 영섭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영섭이 잡혀간 후 영섭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
많은 의문을 품고 발길을 돌릴 수뿐이 없었다.
부대를 다녀온 후 집으로는 무슨 소식이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다음 일요일 집에 내려가셔 영섭이가 있을 때도 안 갔던 영섭의 집으로 부모님을 찾아뵈러 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려드려 걱정하시게 하는 것이 염려스러웠지만 엉뚱한 오해로 영섭이 고생을 하고 있으면 집에 알려드려 조치를 취하시게 하고 자기도 최선을 다해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루에 앉아서 빨래를 손질하시던 어머니가
“안녕하세요?”
하며 대문에 들어서는 보영을 보시고 처음에는
“누구?” 하시다가 “보영이구먼 어서와.”
하시며 빨래를 한 쪽으로 밀어놓고 일어나 나오셔서 보영의 손을 잡으신다.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어쩐 일이야?”
병원에서 잠깐 한 번 본 보영을 기억하시는 어머니의 총기에 보영은 감탄하며
“안녕하셨죠?” 하고 인사를 했다.
“그야 우리는 잘 지내지. 보영이도 그동안 잘 지냈나?”
“네! 잘 지냈어요. 아버님 건강은 어떠세요?”
“많이 나아져서 요새는 낮에 집에 계시지를 않아, 낚시질 다니시느라고.”
“참! 고마운 일이군요.”
“잠깐 있어 내 시원한 얼음물 좀 가져올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야, 날씨가 무척 더워, 잠시 기다려.”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를 보며 보영은 누군지 이 댁으로 시집오는 사람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음물을 가지고 나오신 어머니가
“자! 더운데 한 모음 해.”
하시며 넘겨주신 컵에는 꿀이 들어간 얼음물이다.
시원하게 얼음물을 먹는 보영을 보시며 어머니는 보영이 같은 며느리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신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다니 나도 고맙군.”
“어머니! 요새 영섭이 한테서 연락이 와요?”
망설이던 보영이 이렇게 물었다.
“보영이가 그것이 궁금해서 왔구먼.”
“네! 며칠 전에 부대에 면화 갔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요.”
“우리는 영섭이가 면회 오지 말라고 와도 못 만다고 해서 안 갔었는데. 그 먼 곳까지 면회 갔었구먼, 그래 무슨 소식을 들었어?”
아들에 대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보영에 말에도 어머니는 침착하시다.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망설였지만 잘 못 됐으면 빨리 바로 잡아야겠기에 말씀드리러 왔어요.”
“그래! 어떤 소식을 들었는데.”
“영섭이를 잘 아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린데, 영섭이 사회에서 저지른 잘못 때문에 헌병대에 잡혀갔다고---”
보영으로서는 어머님이 듣고 놀라실까 봐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을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며칠 전에도 편지가 왔는데 지금 산속에서 건강하게 특수 임부를 하고 있데. 산속에 들어가 처음 한 편지에 무슨 특수한 임무를 받아 산속에 있는 절 암자에 가 있다더군. 그러면서 특수 임무 때문에 산속에 깊은 곳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편지하지 못 하고 집에도 전처럼 편지를 쓰지 못할 것 같으니 편지가 없더라도 건강하게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더군. 그리고 그것이 비밀이라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
하고 방으로 들어가 산속에 들어가 처음 보냈다는 편지와 얼마 전에 온 편지를 찾아서 가져다 내어 보이시는 편지에는 발신인 주소에 주소는 없고 영섭이 이름만 있다.
편지 사연은 간단하다.
특수 임무를 띠고 산속 깊은 곳 암자에 와 있지만, 건강히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이것은 비밀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라는 내용의
보영은 편지를 돌려드리며
“자세한 것은 영섭이를 만나봐야 알겠지만 군에서 무슨 특수 임무를 맡은 모양이군요.”
“그랬나 봐.”
“그런 걸 괜히 걱정했군요. 그렇겠죠. 영섭이가 사회에 있을 때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일은 한 적이 없는데.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마워! 보영이가 이렇게 영섭이를 걱정해주니 영섭이가 군 생활을 잘 마치고 나올 거야.”
“별말씀을요. 우리 영섭이가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로 해요. 어머니!”
어머니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보영을 보며 어머니는 보영이 며느리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영섭의 집을 다녀온 후 걱정은 안 됐지만, 보영은 영섭이 일이 더욱 궁금하여 졌다.
그러나 편지도 할 수 없고 편지가 오지도 않아 영섭이 제대를 해야 그 의문이 해소될 것이다.
요 며칠간 영섭의 일로 바삐 지내느라 도서관에 나가는 것도 태만의 좀 만나자는 제의도 거절했던 보영이 도서관에 들어가자 태만이 기다렸다는 듯이.
“요새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쁘신가?”
하고 물었다.
“아는 사람이 군에 가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알아보느라고.”
“아는 사람 누구?”
“누구라면 태만씨가 알아요?”
“옛날 애인인가?”
“옛날 애인이 아니고 지금 애인.”
그렇게 말을 하는 보영은 한쪽 가슴이 싸하니 아파온다.
왜 나는 영섭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나.
지금은 소식이 없어 희수와 영섭의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들 사이에 특별한 사건 희수가 영섭이 없는 동안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 같은 특별한 사건이 생기기 전에는 영섭의 성격으로 보아 변함이 없을 텐데, 자기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 그를 사랑하며 그가 없는 곳에서 태만의 지나친 접근을 피하려고 그를 애인이라고 부르는 자기가 참으로 못나 보여 보영은 한숨이 나왔다.
“웬 한숨, 애인한테 문제가 생겼나?”
“아니야.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왜 그래?”
“나한테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거 내가 싫어하는 것 알죠?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보영인 항상 성난 암고양이 같아.”
“그러니까 할퀴지 않으려면 조심해요. 그리고 올가을 사법시험에 합격하려면 나에게 지나친 관심은 접고 열심히 공부해야죠.”
“충고야 결벽증이야, 보영은 한번 생각하면 아주, 빠져버리는 외골수 같아. 특히 남녀 관계에서는.”
“맞아요, 나는 외골수야.”
둘의 관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영섭이 군에 있고 소식도 없어서 영섭의 문제를 한쪽으로 젖혀두고 나서 보영은 고시 공부에만 매달렸고 시간이 나거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사회에 진출하여 실내 디자인너로 활약하고 있는 혜선을 찾아 쓸쓸함을 달랬다.
혜선은 보영을 항상 동생처럼 대하여 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 보영도 혜선을 친 언니처럼 따랐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공부하는 동안에 간간이 현영을 만나면 현영이 자랑 겸 또는 공치사 겸 희수와의 관계를 말하며 영섭이 제대하면 잘해보라며 보영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희수가 현영의 애인이 됐다는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며 희망을 품으면서도 모든 것은 영섭이 제대하고 나온 후에 결말이 날 것이라고, 생각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4학년 11월에 실시한 사법고시에 보영은 응시를 했고 다음해 초에 발표한 합격자 명단에 보영은 이름을 올렸다. 2학년 때부터 준비한 것이 실패 없는 시험을 치르게 한 것이다.
보영에게 잘 보이려면 보영에게 뒤져서는 알 될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한 태만도 같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학 졸업식 날 보영은 혹시 영섭이 나타날까 기다렸지만, 영섭은 보이지 않았다.
태만은 그런 보영을 보고 무슨 사람이 애인 졸업식에도 안 오느냐고 놀렸고, 보영은 군인이 마음대로 외출하느냐고 대꾸했지만, 영섭이 왔으면 고시합격도 자랑하며 축하를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은 하늘 같았다.
졸업 후 보영과 태만은 사법 연수를 마치고 보영은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에 태만은 경기지방 검찰청 의정부 지청에 검사로 임명을 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구리천리향님1
무혈님!
다락방님!
감사합니다.행복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