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1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세상의 지혜가 하늘의 지혜를 삼키려 하나이다.
아들의 생명이 없는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명이 있다고 하는 나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오고 있사오니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아들의 생명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며 이런 공동체를 세우기 원하오나 내 속에는 선함이 없사오니 나의 선함이 아니라 오직 주의 선하심으로 채우소서.
곤고한 심령을 주의 의로 바꾸사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게 하소서.
오늘도 나를 심판하시고 주의 공으로 세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렘 18:1-12
제목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진정한 토기장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공동체로 세움을 받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늘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목적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완고함과 반역으로 하나님의 목적은 늘 위협을 받았다.
이들은 구원을 받고 영적인 공동체가 되었지만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언약 관계를 깨트렸다(렘 11:7-8).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만 복종하고 언약관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믿고 살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다윗이 하나님과 늘 교제와 사귐을 가졌는데 그것을 버렸다.
이런 그들을 하나님은 경고하시고 징계하시면서 회복되기를 원하셨고 또한 이를 반복하셨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을 마음대로 주무르듯 하나님은 뽑으시고 부수신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새로 빚듯이 하나님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새로 건설하고 심으신다.
토기장이가 빚는 진흙은 토기장이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생명 없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생명 없는 진흙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기계나 물질이 아니라 바로 인격체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사람을 진흙이나 기계처럼 다루지 않으신다.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얼마든지 진흙과 같은 물질과 같이 대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경고와 징계 등 심판을 통하여 이들을 회복하시기를 기다리고 원하시는 것이다.
언제든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말이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 어떤 사람이든 뽑고 부수려다가도 그들이 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거두신다.
그러나 어느 누구든지 건설하고 심으시려다가도 그들이 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복을 거두신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경고하신다.
(11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지로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만다.
(12절)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이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버리고, 단지 자기들의 목적대로 행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여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주의 백성들이 잘 빚어진 그릇과 같이 아름답게 빚어지는 것이다.
아름답게 빚어지는 것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그런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다 외면한 채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마치 최악의 길을 걸었던 사사 시대처럼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을 했던 애굽은 죄악된 세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셨다.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다름 아니라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기 위함이다.
언약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구원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관계 안에서 주신 계명을 잘 지키는 것, 이는 어떤 한정된 기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날까지 늘 행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죄로부터 구원은 곧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무덤에 장사되심, 그리고 새 생명으로 부활하심을 믿는 구속 사건이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이 곧 새 언약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죄에서 구원을 받고 새 언약 백성으로서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영생임을 알아야 한다.
언약을 유지하는 것, 곧 언약 안에 머문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은 자가 늘, 항상, 날마다 누려야 하는 진정한 복이다.
이 복이 곧 영생이며 사귐과 교제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는 것’이란 구약 히브리어에서는 ‘야다’로 표현되지만, 신약의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하나는 ‘기노스코’이며 다른 하나는 ‘오이다’이다.
여기서 ‘기노스코’는 늘 함께하며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며, ‘오이다’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목사나 선생들에게 들어서 아는 ‘오이다’가 아니라, ‘야다, 기노스코’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은밀한 것까지 알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야다, 기노스코’의 관계인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새 언약 백성들이 이런 언약 관계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길 원하신다.
그것은 오직 생명으로 가능한데 이 생명은 나의 생명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이며 이 아들의 생명은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만 얻을 수 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요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시간 하나님의 목적에 무지한 채, 나의 목적을 이루고자 절치부심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회한에 사무친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은혜로 나를 구원하시고 부활의 은혜로 영생을 주셨다.
영생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늘 교제와 사귐을 갖고 영생의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나는 십자가를 전하고 증거하였지만, ‘오이다’ 곧 지식에 지나지 않았고 실재가 되지 못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나의 목적이 더 중요했고 나의 뜻을 이루고자 내 야망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그러나 나의 야망을 이루기도 전에 절망과 낙심 그리고 실패를 맛보았다.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부르짖으며 애를 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상황이 전혀 역전되지 않았다.
나는 더욱 자괴감에 빠지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점점 죽어갔다.
그 때 통합복음을 알게 되었고 내 영의 눈이 열리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영생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목적임을 알게 된 것이다.
쇠락의 법칙에 의해 썩어지고 없어지고 사라질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 목회를 하던 나의 생각이 패러다임 시프트 곧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가지며 이곳이 바로 존재로 임하시는 카이로스 곧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는다.
나를 구원하시고 여러 가지 고난으로 주의 뜻과 목적을 깨닫고 날마다 주님 안에서 교제와 사귐으로 영생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자인데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모르니 내 뜻과 내 목적대로 살려고 했던 자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인 줄 알고 어떻게든 잘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쳤나이다.
그것이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주님...
그러나 이제 복음을 알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환경이나 고난이 내게 필요하기에 주신 것임을 믿기에 이런 환경이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절치부심하지 않사오니 나를 거두어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주의 나라에 살게 하옵소서.
오늘 이 자리가 주님의 나라임을 믿사오니 오직 주의 영광중에 거하나이다.
나 비록 자주 넘어질지라도 파레시아를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나를 받으소서.
높임을 받으소서.
찬양과 영광을 받으소서.
나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