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러시아의 산불로 인하여 러시아 정부에서 밀 수출을 규제하기로 전격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두
고 국내 언론에서는 식량무기화가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이바구를 찌는 것 같습니다. 만약, 러시아라는 나라
가 식량이 너무나도 아쉬운 특정국가를 상대로 해서 군사기지를 제공하지 않거나 자국이 연계된 분쟁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주지 않으면 식량을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이라도 놓는다면, 이는 확실히 식량의 “무기화”가 맞
을 것이나, 올해 러시아에 가뭄이 얼마나 심했으며, 또 산불까지 겹치는 악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고려하
는 자세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국민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물론 이는 이론적인 것이며, 특정 국가
들의 정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예”라고 답변 못합니다. 어느 나라인지는 묻지 마시길...)
자국의 수요가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으면 당연히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한 국가의 고유하
고 정당한 주권의 행사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19세기 말 일본으로의 곡물을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을 시행
한 바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시행했던 방곡령이 일본을 길들이기 위해서였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러시
아와 우크라이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자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지요.
사정이 이러한데도 구태여 “무기화”라는,아마 예전에 산유국들이 OPEC을 창설한 행위를 빗대서 하는 표현이
든지, 아니면 러시아에 대한 증오심(미국이 못 마땅해 하면, 우리는 아예 펄펄 뛰며 증오해야 하는 것을 우방
국 국민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때문인지 확실하게 댈 수는 없지만, 살벌한 용어의 사용까지 서슴치 않은 일
부 언론들의 행태는 정말 짜증이 납니다. 무기화를 말을 사용하자면,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인지 정확하게 적
시를 해야 합니다.
하긴,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인지 적시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도 그렇고,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당
장 즈그들이 너무나도 아쉬우니까 그러는 것이니... 수출 물량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모두 내수로 돌
려서 충분한 양을 확보하고, 가격을 최소한이나마 안정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책무이니, 그들은 그들
의 극히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서구사회의 그 대단한 선진국들 치고 농업을 사양산업이랍시고 포기하려고 용쓰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습
니다. 돈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스위스조차도 미-스위스 FTA 대신 자국의 농업을 선택
했습니다. 카길 같은 거대한 농장기업들이 있어 자영농이 진짜 존재하기는 할까 싶은 미국조차도 농업보조금
으로 쳐바르는 돈이 연간 850억달러선입니다. 이런 사정들을 몽땅 제껴버리고 비교우위가 이러쿵, 소비자의
권리 저러쿵하는 얼치기 자유경제시장국가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어디 미국뿐이겠습니까? 영국은? 독일
은? 프랑스는? 일본은? 호주는? 캐나다는? 대문 걸어잠고 안에서 하는 짓거리는 대한민국 빼면 세계 공통일
걸요?
(예전에 MBA지 NBA지 준비한다는 후배 녀석 하나하고 대판이 싸운 적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은 농업보조금
을 지원해 준다고 하니까, 그 녀석이 우리나라도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지 않냐고 반박한 것입니다. 보조금하
고 대출금도 구별 못하는 친구가 그런 어려운 것을 준비한다니,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
더군요. 보조금은 내 주머니에 그대로 꽂히는 돈이고, 대출금은 아무리 저금리라 하여도 "원금"과 "금리"로 발
생한 이자를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공부에 너무 열중했던 나머지 하루 세끼
안 먹으면 죽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 우리 스스로 2008년 초반의 “애그리플레이션”을 웃으며 넘긴 적이 있잖습니까? 쌀이 아니면 죽음을 외
쳐댄 농민단체의 좌빨 같은 행동 덕에 전 국민이 덕을 본 것입니다. 애담 스미스가 말하던 나에게 덕이 되는
너의 이기심을 피부로 체험한 것이지요.
이제 정신을 차릴 때가 됐습니다. 중국의 주용기 전총리가 WTO 가입해도 필요하면 농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념이 생존을 압박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우리 빼고 다 정상입니다. 이제 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농업은
사양산업이 결코 아닙니다. 최첨단 산업입니다. 왜냐?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고, 자기 식구들 쫄
쫄 굶겨 가며 이웃에 쌀 팔아줄 쌀가게 아저씨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경제학원론에
서만 존재하는 것이지요.
식량이야말로 최고의 상품입니다. 죽었다 깨도 수요가 없어줄 수도 없고, 줄어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삼성
애니콜에서 엘지 싸이언으로 바꾸는 거야 내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때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지만, 밥에
서 빵으로 식생활을 바뀌는 것은 내 손바닥으로 옆에 아가씨 엉덩이를 때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다들 아실텐데...
서구선진국이라고 해서 기업들이 싸구려 농산물을 관심이 없을까요? 아주 많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엥겔계수
가 떨어져야 자기들 영업하기가 수월해질테니... 하지만, 그들 역시 이번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처럼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위기, 그리고 이 순간에도 모니터 앞에서 눈이 히떡 뒤집어져서 한 방의 순간만
을 노리고 있는 투기세력들의 존재 앞에서는 모골이 숙연해지는 것입니다. 최소한 쥐똥만큼의 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농업, 꼭 해야 합니다. 아니면 굶든지...
첫댓글 식량 자급률 20%대의 한국인들이 아무 걱정없이 살아가는 것이 정말 행운이지요. 행운이 계속 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국민들의 주식량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쌀의 과잉공급만을 이야기하는 정부와 언론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행여나 농업도 재벌들한테 갖다 바쳐야 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될까 걱정입니다, 그려...
싱가포르는 농업이 없어도 잘먹고 잘 삽니다.
우리는 싱가포르나 홍콩같은 도시국가가 아닙니다. 제가 통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싱가폴이나 홍콩같은 아주 특수한 케이스의 도시국가들을 우리 한국에 비교 적용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그 두 도시국가보다 훨씬 많은 "일반"국가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