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들이 고객의 휴면보험금을 사용해 수천억대 이익을 챙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휴면보험금은 보험료 납입을 중지 또는 연체해 보험계약이 효력을 상실했거나 계약 만기가 상당 기간 지났음에도 계약자가 보험금을 찾아가지 않아 보험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환급금을 말합니다. 해지(실효) 환급금, 만기보험금, 계약자 배당금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찾아가지 않은 휴면보험금 8300억원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보험사 휴면보험금 잔고 현황'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국내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휴면보험금은 총 144만8182건, 8293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그 규모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7년 총 4945억원이었던 휴면보험금 총액은 5년 후인 지난 7월 말 기준 약 두 배 늘어난 수치를 기록했는데요.
보험업권 별로 살펴보면 생명보험이 6054억원(88만7651건)으로 전체 휴면보험금의 73.0%를 차지했습니다. 손해보험은 2239억원(55만 8531건)이었습니다.
문제는 보험사가 보관 중인 막대한 휴면보험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보험금 청구 사유가 발생한 시기에 따라 나뉩니다. 청구 사유가 2015년 3월 이전에 발생한 경우는 2년, 이후에 발생한 경우는 3년입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휴면보험금은 보험사가 직접 보관하거나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출연됩니다.
보험금의 서민금융진흥원 출연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서민금융법) 및 금융회사와 서민금융진흥원의 휴면예금 출연 협약이 규정하고 있는데요. 규정에 따라 2003년 이후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휴면보험금은 서민금융진흥원으로 향해 햇살론이나 청년희망적금 등의 사업에 쓰입니다.
강민국 의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휴면보험금 중 일부를 연 1회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고 있지만 출연금 규모는 전체 휴면보험금의 7.7%인 637억원에 그쳤습니다.
더욱이 보험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휴면보험금은 별도의 계정으로 관리되지 않은 채 보험사 자산운용에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수입 총액이 정확히 산출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3년)가 지난 휴면보험금의 경우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됐다는 기록만 있을 뿐 별도의 이자가 계산되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에 강민국 의원실은 금감원을 통해 보험업권에 휴면보험금 현금보관, 예금 보관, 투자, 이자 수익 현황 등의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각 보험사로부터는 "휴면보험금 규모를 별도 관리하고 있으나 해당 금액을 별도로 분리하여 운용하지 않아 휴면예금 및 현금 보관현황과 이자수익 내역을 산출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간 출연되지 않은 나머지 휴면보험금이 제대로 관리됐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방증입니다.
강 의원은 "보험사가 고객의 수천억원대 휴면보험금을 일부만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고 나머지 보험금은 예금, 자산운용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면서 이자 지급도 없이 모두 챙기고 있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보험사들이 보유한 휴면보험금 8293억원 가운데 권리자들이 정상적으로 찾을 수 있는 보험금은 71.2%인 5903억원에 달했습니다.
고객이 휴면보험금을 찾아가지 않은 구체적인 사유로는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지만 권리자 본인이 보험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5889억원(71.0%)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밖에 '공동명의'나 '임원단체명의' 계좌여서 지급이 가능한데도 잊혀진 휴면보험금이 각각 9억원(0.1%), 5억원(0.06%)을 차지했습니다.
나머지 29.2%의 휴면보험금은 지급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압류계좌' 2014억원(24.3%), '지급 정지 계좌' 333억원(4.0%), '소송 중 보험금 미확정 건 등' 78억원(0.9%)과 같은 사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에 보험사들이 휴면보험금을 권리자에게 돌려주려는 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휴면보험금을 기타 자금과 구분하지 않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 제기됐습니다.
강 의원은 "보험사들이 휴면보험금을 별도 계정으로 관리하지 않은 채 여러 경로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조속한 검사 착수를 요구했습니다. 이어 "금융위원회는 보험사들이 휴면보험금을 통한 자산운용을 할 경우 이를 별도의 계정을 두어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 의원은 또 "그 이자를 돌려주거나 서민금융진흥원에 전액 출연하도록 법·규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제도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휴면보험금 되찾는 방법은?
내 보험 찾아줌:https://cont.insure.or.kr/cont_web/intro.do
휴면보험금의 소멸시효가 완성돼 돈을 찾아갈 수 없는 원권리자는 영영 보험금을 잃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휴면보험금은 보험사와 서민금융진흥원이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권리자가 지급을 요청하면 이를 되돌려줘야 합니다. 보험금이 보험사 측에 있다면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고객센터에 연락을 취함으로써 이를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된 보험금은 본인 계좌로 환급받을 수 있음은 물론 기부도 가능합니다. 우선 보험금을 현금으로 돌려받고자 하는 원권리자는 온라인으로 환급을 신청하거나 해당 보험금을 출연한 금융회사의 영업점 또는 전국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하면 됩니다. 온라인 신청 시엔 본인 계좌로만 환급이 가능합니다. 지급 신청이 정상 접수되면 신청 당일 내로 입금 처리됩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기부된 휴면보험금은 신용 및 소득이 낮아 제도권 금융회사 이용이 어려운 사람들의 근본적인 자활과 자립을 위한 금융 지원 및 비금융 지원 서비스의 재원으로 쓰입니다. 원권리자가 자신의 보험금을 기부하는 경우 해당 금액이 세법상 공제 한도 내라면 개인은 15% 또는 30%, 법인은 100%의 세제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휴면보험금에는 따로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휴면보험금은 하루라도 빨리 찾아가는 것이 유리한데요. 그러나 본인에게 휴면보험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보험계약자가 많습니다. 이에 대부분의 보험사는 휴면보험금 발생을 막기 위해 보험계약 종료 수개월 전부터 안내장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보험금을 찾아가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권 또한 매년 '숨은 내 보험 찾아주기 캠페인'을 공동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가 숨어있는 자신의 금융자산을 쉽게 조회하고 찾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는데요.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캠페인을 통해 작년 한 해 동안 휴면보험금 2643억원, 올해 상반기에 606억원이 원권리자에게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