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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9월 29일 금요일 한가위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고 수확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이웃과 서로 나누며 살아온 조상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읍시다. 자신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으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도 나눔을 실천하기로 다짐하며 주님의 잔치에 참여합시다.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무심하신 주님
나는 ‘주님께서는 너무 무심하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불의한 사람을 그냥 두시고,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사상이나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고 생각 하곤 합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도대체 어느 곳으로 가 있는 것인지 답답한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주님이 잘못하는 사람들을 엄벌하러 오셔서 위선자들과 음흉한 사람들을 벌주시고 다시는 그런 사기꾼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일벌백계로 다스려 주셔야 우리가 아주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때마다 주님은 내 곁에 계시지 않은 듯 생각되기도 합니다. 분명 주님은 내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신 분 같아서 섭섭하게 생각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아주 비참해졌을 때, 가난해서 송사에 졌을 때, 내 재산을 빼앗기고 사기를 당했을 때, 내 진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을 때, 살만하니까 불치의 병에 걸려서 죽게 생겼을 때, 형제간에 재산으로 싸우며, 내게 잘못한 사람이 더 잘되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외롭고 괴롭고 서러워서 주님께 매달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이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잘라 말씀하십니다. 그런 세상의 일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세운 재판관이나 중재인이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는 나라들이 서로 이기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할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탐욕과 사욕에 의한 세상의 일에는 외면하신다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에 내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느 돈이 많다고 생각했던 노인이 아주 쓸쓸하게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분은 자손이 많은데도 자손들이 구두쇠 아버지를 싫어해서 집을 찾아오지도 않고, 또 자신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 재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노인은 아내를 여의고 아주 쓸쓸하게 살았지만 건강해서 십년은 더 살 것처럼 느껴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찾아온 자식들은 유언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고인은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더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장례를 치르기 전에 형제들은 재산을 가지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부동산은 이미 매각되어 있었습니다.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자 현금을 어디에다 숨겼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손들이 집안을 보물 찾듯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이불이며 베게까지도 전부 찢어 속을 뒤집어 보아서 집안은 완전히 쓰레기장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찾은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상가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의 어른들이 자손들을 꾸중하고 소리 질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과 어른들이 수습하고 없어진 재산을 지금 어떻게 찾을 것이냐고 설득하여 겨우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남은 부동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소송을 제기하고 전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나중에 이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노인은 죽기 전에 재산을 정리해서 익명으로 장학금도 내 놓고, 병원에도 내 놓고, 소년소녀 가장들 20여명에게 돈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하였지만 자식들 교육을 잘못 시킨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산 앞에서 돌변하는 자식들을 잘 가르칠 부모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어른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재산 앞에서 탐욕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라는 생각이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먹고 살만큼만 있으면 행복하고 감사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아주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나는 자식들에게 나누어줄 재산이 없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오직 주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를 결심한답니다.
오늘 추석 명절을 맞아서 모든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고 가족 간에 화목하며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메아리와 아지랑이 - 정채봉 / 참 맑고 좋은 생각 중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공동묘지의 여러 무덤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교사가 한 무덤 앞에서 발을 멈추고 말했다.
“여기 이분은 살아생전에 이 세상을 한바탕 들었다 놓았다 한 사람이다.”
한 학생이 묘비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선생님 이 묘비명을 좀 설명해 주십시오.”
그 묘비명은 이랬다. ‘메아리와 아지랑이를 알고 가노라.’
교사가 말했다. “메아리는 권세를 뜻하는 것일 테고, 아지랑이는 부귀를 뜻하는 것일 터이다.”
교사가 물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무엇이겠느냐?”
한 학생이 대답했다. “허망입니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16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축일9월 29일 미카엘 (Michael)
신분 : 대천사
같은 이름 :마이클, 미가엘, 미겔, 미구엘, 미키
성 미카엘 대천사는 교회가 전례에서 공경하는 세 천사(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 중 하나이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을 지닌 성 미카엘 대천사는 구약성경에서 2번(다니 10,13 이하; 12,1), 신약성경에서 두 번 언급되었다(유다 1,9; 묵시 12,7-9). 다니엘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로, 요한 묵시록에서는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용과 맞서 싸우는 천상 군대의 지휘자로 등장한다. 성 미카엘 대천사는 성경보다 외경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나고 있다.
성 미카엘 대천사에 대한 공경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에서 시작되어 서방교회로 확산되었고, 교황 젤라시오의 재임 기간(492-496년)에 북이탈리아의 가르가누스 산에 발현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그의 발현 지점에는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미카엘 대천사는 악랄한 용과 싸워 승리를 거두는 천상의 장수로 또는 최후의 심판 때 죽은 영혼의 잘잘못을 저울질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9월 29일)은 로마(Roma)의 살레리아노 가에 세워진 성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이다. 1970년 그의 축일에 성 가브리엘과 성 라파엘 대천사의 축일이 합쳐져 같은 날 기념하게 되었다. 여성형 이름은 미카엘라(Michaela)이다.
축일9월 29일 가브리엘 (Gabriel)
신분 : 대천사
같은 이름 : 가별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교회가 전례에서 공경하는 세 천사(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 중 하나이다. 가브리엘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강한 사람, 영웅’을 뜻하는 게베르(gever)와 ‘하느님’을 뜻하는 엘(El)이 합쳐진 이름으로 ‘하느님은 나의 강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구약성경에서 다니엘(Daniel)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천사이다(다니 8,15-9,27). 다니엘이 뜻을 몰라 애태우던 환시의 내용은 ‘기름부음 받은 영도자’가 온다는 메시지였다. 이런 이유로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자연스럽게 신약성경 루카 복음 서두에서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 사는 다윗 집안의 요셉(Josephus)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Maria)를 찾아가 구세주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로 등장한다(루카 1,26-38). 그리고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의 꿈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아내로 맞아들이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천사 또한 가브리엘 대천사라고 교회 전승은 전해주고 있다(마태 1,18-25).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 즈카르야(Zacharias)에게 발현해서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할 선구자로 세례자 요한(Joannes)의 탄생을 알리며 희망을 전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루카 1,5-25). 그리고 이슬람교에서도 예언자 마호메트를 인도한 천사가 가브리엘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성경 안에서 중요한 인물의 출현을 알리는 희망의 메신저로서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중개하며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고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1951년 1월 12일 성 가브리엘 대천사를 텔레커뮤니케이션(라디오, TV, 전화, 전신, 우편배달, 심부름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교회 미술에서 성 가브리엘 대천사는 보통 손에 지팡이와 홀, 그리고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들고 등장한다. 특히 주님 탄생 예고 중에 들고 있는 세 송이의 백합은 마리아가 출산 이전에도 동정이셨고, 출산 중과 출산 후에도 동정이셨다(Ante partum, In partu, Post partum)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들고나오는데, 올리브는 말씀의 육화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이 새롭게 맺은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성 가브리엘 대천사의 축일인 9월 29일은 본래 로마의 살레리아노 가에 세워진 성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인데, 1970년 세 대천사의 축일이 합쳐지면서 같은 날 기념하게 되었다. 성 가브리엘 대천사의 여성형 이름은 가브리엘라(Gabriela)이다.
축일9월 29일 라파엘 (Raphael)
신분 : 대천사
성 라파엘 대천사는 교회가 전례에서 공경하는 세 천사(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 중 하나이다. 구약성경 토빗기에서 토빗과 사라가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를 주님 앞에 전해 드린 천사가 바로 성 라파엘 대천사이다(토빗 12,12). 또한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12,15). 성 라파엘 대천사는 아자르야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천사임을 감추고 토빗의 명으로 메디아로 떠나는 아들 토비야의 길잡이가 되어 동행했고(5장), 엑바타나에서 마귀에 들려 고생하던 라구엘의 딸 사라가 마귀에서 벗어나 토비야와 혼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8장). 또한 메디아의 라게스로 가서 토빗이 친구인 가바엘에게 맡긴 돈을 찾아왔고(9장), 마침내 토빗의 시력도 되찾아주었다(11장). 히브리말로 ‘하느님이 치유하신다.’라는 이름의 뜻처럼 성 라파엘 대천사는 토빗과 사라에게 하느님의 치유를 선사해주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요한 복음 5장 4절의 벳자타 못에 관한 말씀에서 등장한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는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에는 명시적으로 그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교회 전승에 따르면 이 구절에 등장하는 주님의 천사가 바로 치유의 천사인 성 라파엘 대천사라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라파엘 대천사는 주로 토비야와 동행하는 여행자와 순례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내장을 담은 병이나 물고기, 개 등과 함께 등장한다. 성 라파엘 대천사는 여행자와 눈먼 사람 그리고 청소년의 수호천사로 여성형 이름은 라파엘라(Raphaela)이다. 성 라파엘 대천사의 축일인 9월 29일은 본래 로마의 살레리아노 가에 세워진 성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인데, 1970년 세 대천사의 축일이 합쳐지면서 같은 날 기념하게 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형제들과, 미카엘라, 가브리엘라, 라파엘라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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