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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0-6
숭산의 한 봉우리 위에서 천리경으로 방화련의 모습을 관찰하던 조기라르디니는 천리경을 땅에 떨구면서 한 순간 주저앉았다.
옆에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근보는 그런 조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조기, 무슨 일인가?"
조리라르디니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주저앉은 채 대답도 못하고, 근보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천리경을 집어들었다. 다음 순간 근보 역시 천리경을 땅에 떨구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마가---, 마마가---."
싸우고 있는 자들 한 가운데 가슴에 비수가 박힌 채로 땅에 쓰러져 있는 방화련의 모습을 본 근보는 방화련이 죽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말을 잊지 못하고 더듬거리던 근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조기라르디니의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소리쳤다.
"초상화를 빨리 그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나는 분노한 황제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조기라르디니 역시 근보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옆에 세워져 있는 화판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어서 그려야 했다.
한 장의 초상화는 빠른 속도로 완성되어 갔다.
가까이 갈 수가 없기에 멀리서 천리경으로 조금씩 방화련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초상화를 완성해가고 있었던 조기라르디니였다.
숭산의 한 산봉우리에서 한 장의 초상화가 완성되고 있을 때, 칠호는 열 넷의 분노한 암흑천사들을 상대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성녀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환혼경을 완성하고 성녀의 피를 환혼경에 떨어트려야만,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칠호였다. 그러나 암흑천사라 불리는 존재들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고, 성녀의 죽음에 분노한 암흑천사들은 자신들의 생명조차 무시한 공격을 칠호에게 퍼붓고 있었다.
허리를 베어오는 검과 함께 머리를 내리치는 도가 있었고, 목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검은 광채를 뿜어내던 칠호의 몸은 한순간 더욱 짙은 묵 빛의 광채를 뿜어내었다.
"캉!"
살과 쇠가 부딪쳤지만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칠호의 몸을 긁고 지나가는 칼에 불똥이 튀었다.
칠호가 이빨로 물고 있는 암기를 뱉어내고 있는 사이에도 암흑천사들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칠호는 비록 호신강기와 금강불괴에 가까운 몸으로 그들의 공격을 버티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계속 늘어났다. 날카로운 검기와 강기를 머금은 수많은 무기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그의 몸을 쉬지 않고 핥고 지나가는 동안 공격은 못하고 방어에만 급급한 칠호였다.
이대로는 안되었다. 혼이 육신을 떠나기 전에 환혼경을 완성하고 성녀라 불리는 여자의 피를 환혼경에 떨어트리지 않는다면, 칠호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칠호의 몸에 검은 용이 또아리를 트는 것처럼 묵빛의 강기가 감돌고 아주 감미롭고 향기로운 냄새가 암흑천사들의 코를 파고들었다.
칠호의 몸에서 향기가 퍼져 나가면서 암흑천사라 불리는 이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내공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그들의 무기에 맺혀있던 강기는 약해져 갔다. 대신에 칠호의 몸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사방을 휩쓸기 시작하고---.
'조그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현재 칠호가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공인 독룡출세(毒龍出世)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무공이었다. 위력이 엄청난 만큼 내공 또한 최소한 이갑자 이상이 되어야만 시전 할 엄두를 낼 수 있는 무서운 무공이었다. 내공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태에서 칠호가 선택한 최후의 패였다.
암흑천사라 불리는 존재들이 모두 쓰러지기 전에 내공이 끊어지는 일이 발생한다면 칠호는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끊어지려는 내공을 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공이 끊어지는 순간 죽는 것은 이들이 아닌 자신이 될 것이다.
마교 안에서 평생 독만을 연구하다 죽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다만 독마라 불리는 한 인물이 남겨 놓은 독룡출세라 불리는 무공이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것이 펼쳐진 효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내공이 사라지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암흑천사들은 하나둘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칠호의 손과 발은 바쁘게 움직이며 반격을 시작했다.
겨우 혼자 서 있게 되었을 때, 칠호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이곳에 서 있는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공격을 퍼붓던 암흑천사들로 인해 옆구리에는 한 자루의 비수가 깊이 박혀 있고, 얼굴 위로도 수 없이 가늘고 긴 상처가 나 있는 상태였다. 아니 넝마조각처럼 갈라진 옷 사이로 온 몸에 가늘고 길게 패인 상처자국이 가득한 칠호는 온 몸이 피로 뒤덮여 혈인(血人)이 되어 있었다. 내상마저 심각한 상태였다.
성녀라 불리는 여인의 옆에 떨어져 있는 환혼경을 향해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칠호는 만신창이로 변해 있는 상태였다.
품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두 개의 유리조각을 꺼내든 칠호는 그것을 구멍이 나 있는 환혼경의 조각에 갖다 대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다음 순간 환혼경은 하나의 완벽한 거울로 변해 버렸다. 지금까지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진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은 채 매끄러운 표면을 이루고, 은은히 붉은 광채를 내뿜고 있는 거울에 얼굴을 비친 칠호는 경악에 차서 중얼거렸다.
"진정---, 헉 헉 신은 있단 말인가? 헉 헉--- 이제 이것에 피를 뿌리면-- 커억!"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말하던 칠호는 심각한 내상으로 피를 토하면서, 얼굴 앞에 들이밀었던 환혼경이라 불리는 거울을 재빨리 옆으로 치웠다. 이것에 자신의 피를 묻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영혼을 봉인하는 거울, 절대로 자신의 피를 묻힐 수 없었다.
"모습이 비쳐지지 않는 거울이라니--? 헉 헉, 내상이--- 생각보다 심각---."
지친 듯 비틀거리면서 칠호는 다시 쓰러져 있는 방화련의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성녀의 피가 필요한 때였다.
쓰러져 있는 방화련의 손을 붙잡은 칠호의 지친 얼굴 위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었고 가늘게나마 맥이 뛰고 있으니 아직 기회가 있었다.
방화련의 손목이 그어지고 환혼경이라 불리는 거울 위로 그녀의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순간 거울은 붉은 광채 대신에 금빛의 광채를 뿜어내면서 그 위에 수천자의 조그마한 글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칠호의 얼굴 위로 희열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멀리서 우렁찬 장소성이 들리고 소리가 돌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칠호는 재빨리 판단을 내렸다.
"우 우 우!"
엄청난 내공을 느낄 수 있는 그 소리는 지금의 칠호에게 너무나 위험한 소리였다. 지금은 도망칠 때였다. 어제부터 악전고투를 거듭한 칠호는 내상과 외상이 심각한 상태였고, 지금 다가오고 있는 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설사 몸이 정상일 때라도 이길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은은히 금빛의 광채를 뿜어내는 거울을 죽은 시신의 옷을 찢어 감싸 광채를 감춘 칠호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아직은 지금 다가오고 있는 자와 싸울 때가 아니었다.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도망치는 일이라면 천하에 칠호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환혼경과 함께 칠호가 그 자리를 떠나 모습을 감춘 직후에 소구의 몸이 나타났다.
동정호에서 내상을 치료하고 바로 숭산으로 달려온 소구는 멍한 얼굴로 시신들의 한 가운데에 역시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누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실이라고는 절대로 믿고 싶지 않은 소구였다.
"누나, 장난치지마. 어서 일어나."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흔들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소구의 두 눈에는 한 방울씩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숨도 쉬지 않고 온 몸이 뻣뻣이 굳어가고 있는 누나의 모습은 산 사람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보는 순간 알아본 소구였지만, 이것이 누나의 장난이라고 믿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만의 바램이었다.
"이렇게 죽으려고 숭산에 온 게 아니잖아? 수련 누나도 죽었는데 화련 누나마저---."
소구는 방수련의 시신을 껴안고 중얼거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 몸을 검게 물들인 채 죽어 있는 자들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곳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시신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거지? 왜? 왜 자살해야 했던 거야?"
소구는 방화련이 다른 자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죽었다는 것도 알아본 상태였기에 더욱 슬펐다.
"내--내가 조금만 빨랐어도----. 누나, 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못한 거야?"
누이의 시신을 안고 흐느끼면서 중얼거리는 소구의 마음속으로 죄책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북해에서 늦게 돌아오면서 수련 누나가 죽었고, 자신이 미쳐 날뛰는 사이 화련 누나 또한 적들에게 쫓겨다니다 자살한 것이다. 자신이 이성을 잃지 않았더라면 화련 누나만이라도 죽지 않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구는 누이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었다.
"흑 흑-----."
소구가 누이의 시신을 안고 흐느껴 울고 있는 사이 어둠이 깔리고 밤하늘로 별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이 깔릴 무렵 길다란 핏자국을 남기며 움직이던 노인은 마침내 소구의 옆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누이의 시신을 안아들고 멍하니 밤하늘에 하나 둘씩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고 있던 소구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노인장은 누구요?"
소구는 배에 구멍이 난 채 기어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노인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누이를 자살로 몰고 간 자들에 대한 원한이 하늘 끝까지 사무치고 있는 상태였다. 잔잔한 말투였지만 소구에게 다가가고 있는 검혼이라 불리는 노인은 그 속에 담긴 가공할 살기와 몸 속에 간직한 힘을 느끼고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그래, 너라면--너라면 가능하다."
"무슨 소리요?"
"네가 안고 있는 그 여인은 너와 무슨 관계지?"
"내 누이요. 당신은---?"
"나는 검혼, 마교삼혼 중의 하나다. 마교에서 성녀라 불리는 이를 찾던 자들 중의 하나."
"마교? 마교도 백초당과 원한이 있소?"
"그런 것이 아니다. 난 너의 적이 아니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으니 그냥 듣기만 해."
노인의 말에 소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기어서 다가온 노인의 배에는 구멍이 뚫린 상태였고, 그 상태로 살아있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고통을 참고 아직까지 살아 있을 리 만무했다.
"마교에는 환혼경이라 불리는 저주받은 물건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가두고 쪼개는 역할을 하는 아주 사악한 물건이고---, 그 거울에 봉인된 여자를--쿨럭 쿨럭--, 마교에서는 그녀를 성녀라 부르지. 그녀는 그 거울로 인해 죽어도 자유롭지 못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일을 환생이라 한다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환생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쿨럭 쿨럭."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격렬하게 기침을 토하면서 피와 함께 조각난 내장을 토하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는 소구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회광반조의 현상인지 거친 숨이 고르게 변한 노인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환생을 하면 인간은 전혀 다른 인간으로 새로이 태어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마교에서 성녀라 불리는 여인만은 그렇지 못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마교에서는 환혼경이라 불리는 물건으로 다시 태어난 성녀를 찾아내었고, 그녀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같은 삶을 반복해야만 했다."
"내 누이가 당신이 말한 그 성녀라는 말이오?"
"그렇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고 이것은 긴 이야기다. 그냥 내 말만 들어다오."
땅바닥에 엎어져서 고개만 든 채 간절한 얼굴로 말하는 검혼의 노안을 바라보며 소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 가는 노인이었고 이 노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백년 전, 성녀라 불리는 여인은 같은 삶을 반복하는 일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몇몇 사람에게 환혼경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마교에서 그녀가 벗어날 길은 죽음 밖에 없었으니--, 그녀는 다시 태어나서 다른 삶을 살려고 한 것이지---. 나도 그 때 부탁받은 사람중의 하나였고 그래서 나는 성녀가 자살한 후, 그것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려고 별 짓을 다했지만 그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부수어지지 않았다. 생각도 못해 나는 무림의 손이 미치지 않은 황궁의 깊숙한 곳에 그것을 숨겨 버렸지만 그것은 다시 마교의 손에 들어가 버렸지---. "
검혼은 무심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구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소구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마교는 성녀를 찾아내어 성녀의 기억 즉 전생을 기억하게 만들고, 그녀를 다시 묘강에 있는 흑목애로 대리고 가려고 했다. 그녀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욱이 흑목애로 가고 싶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기 죽어 있는 자들은 성녀의 잠을 깨우고 성녀를 지키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암흑천사라 불리는 자들이지. 그리고---, 환혼경의 힘은 아주 강한 것이다. 성녀로서의 의식이 깨어났을 때 환혼경이 완전한 것이었다면 어쩌면 그녀는 자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의미요?"
"말 그대로다. 환혼경이란 마물은 영혼을 봉인하는 도구, 그것이 가까이 있다면 육신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물건이지. 그것은 결코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지옥의 것인지 천당의 것인지, 아니면 도가에서 말하는 선계의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죽어 있는 자들은 성녀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을---, 그것은 반혼의 의식이라 칭하지. 그 반혼의 의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환혼경이고. 나는 혹시나 싶어서 내 품속에 환혼경의 조각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또 한 조각은 칠호라 불리는 인간이 갖고 있었다."
"칠호?"
"그래. 나에게서 환혼경의 한 조각을 뺏어간 자는 스스로를 칠호라 했다."
"그자가 왜?"
"말을 끊지 말아다오.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알았소. 어서 말하시오."
"나는 성녀라 불렸던 여인의 영혼의 자유를 지키겠노라 백년 전에 맹세했었고, 맹세에 따라 이곳에서 벌어진 반혼의 의식을 저지하고자 했지만 내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그자가 바로 칠호였다. 원래 마교의 교주가 지니고 있던 환혼경의 조각을 어떻게 그자가 가지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자는 반혼의 의식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었고, 나는 그 의식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랬지. 그래서 그자와 싸우게 되었고 결과는 나의 패배,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 내 품에 환혼경의 조각은 없었다."
소구는 팔을 가늘게 떨면서 물었다.
"왜 그자가---?"
"환혼경에는 마교 최후의 힘이 숨겨 있다. 바로 천인천검과 지존삼식이라는 무공이--, 그 무기와 무공 때문에 마교에 성녀가 생겼다고 과언이 아니다. 칠호라는 자는 환혼경 속에 숨겨진 지존삼식이라는 무공과 환혼경이 변화한 형태인 천인천검을 얻으려는 자라는 것이 내 짐작이다. 그것은 성녀가 환생조차 못하고 검 속에 영혼조차 갇힌 채 고통스런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소구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노인장의 말은 그러니까 내 누이는 죽어서도 고통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환혼경은 칠호라는 자에 의해 모든 조각이 맞춰졌고 너의 누이의 영혼은 그 거울 속에 갇혀 있을 것이다.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겠지?"
"그 환혼경이라는 것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 한 누이는 죽어서도--, 영혼조차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제 이---해----."
평온한 얼굴로 말을 하고 있던 검혼은 만족한 미소를 흘리며 갑자기 말을 멈추면서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소구는 죽어서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누이의 얼굴을 새삼 다시 살펴보았다.
온 세상을 비웃는 듯한 미소가 걸린 얼굴이 보였다. 자살로서 자유를 찾고자 하는 누나의 의지를 느낄 수 있게 되었기에 소구는 더욱 비참해졌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최후에 하는 선택이 자살이었지만 그것으로도 누이는 영혼마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을 회오리치면서 소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누-----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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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서러워
남몰래 눈물 흘리고
가난이 싫어
악을 써 보지만
언제나
두 손은 빈 손
아무리 쫓아가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들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이 부러워
오늘도 악을 쓰고
기어서라도 간다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야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날들
맨땅에 맨 몸으로
박치기한다
몸은 고장나고
남은 것은 오기뿐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언제나 게으름을 부리는 것
다른 이들이 날고 있을 때
홀로 땅바닥을 기어가고 있으니
날 수도 없고
뛸 수도 없으니
오늘도
악을 쓰고 기어간다
오늘을 살기 위해
기어서 간다
------------------------------------------------------ 뇌려타곤 5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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