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日不盡 造惡日多 明日無盡 作善日少
今年不盡 無限煩惱 來年無盡 不進善提
오늘이 다하지 않다 보니 죄악을 짓는 일이 나날이 많아지고
내일이 끝이 없다 보니 선업을 짓는 날이 나날이 줄어든다.
금년이 아직 다하지 않다 보니 한없는 본뇌를 일으키고
내년이 끝이 없다 보니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발심하지 못하는 이유
33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먼저 배운다. 가
르치는 기성세대들이 사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
이다. 모든 것이 궤변이고 모순이며 거짓으로 뭉쳐 있는 것들을 다
음 세대로 끊임없이 전달한다. 대표적인 것이 곰 세 마리라는 노래
다. 엄마 곰과 아빠 곰은 절대로 한집에 살지 않는다. 한집에 살면
아기 곰은 아빠 곰에 의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갓을 쓰고 꽹과리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 그 노랫말
속에 간밤에 울던 제비라는 가사가 있다. 제비는 밤에 울지 않는다.
맹금류 외에는 그 어떤 새도 밤에 울지 않는다. 이것은 소양강 처녀
라는 노래에서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만큼이나 황당하다. 두견
새는 갈대밭에 내려앉지도 들어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이
모양이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다 보니 인생 자체
가 도대체 뭔가 뭔지 모르게 뒤엉켜버렸다.
성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찔레꽃이라고 한다. 고향과 추
억을 아련히 되새겨 주는 이 노래의 가사 말에 찔레꽃이 붉다고 한
다. 붉은 찔레꽃은 없다. 있다면 유전자 변형으로 나타났거나 아니
면 외래종이다. 우리의 향취와 토정에 전혀 맞지 않지만 그렇게 부
르고 그렇게 알고 그렇게 다 살고 잇다.
언덕 위에 초가삼간도 마찬가지다. 언덕 위에는 초가를 짓지 않
는다. 초가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으므로 바람에 몹시 취약
한다. 지붕을 묶어주는 새끼가 썩으면 바람에 의해 이엉들이 뒤집어
져 버리기 때문에 언덕은 초가집 터로는 최악의 자리다. 또 논밭으로
일하러 다니는 데 있어서 필요 없는 기력과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초가집에 사는 농부는 언제나 배가 고프고 일상이 팍팍하다. 그런 사
람들이 날마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경제적
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논밭에서 생산된 곡물을
높은 지대로 끌어올리는 것도 예사로 힘든 일이 아니다.
언덕 위에 살면 풍광은 좋다. 하지만 삶이 고달픈 농부의 눈에
는 풍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일신이 편하고 배부르면 그만
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물이 가장 필수가 된다. 그런데 언덕에는 물
이 없다. 아래로 내려가서 머리에 물동이를 이거나 지게로 잚어지고
날라야 하는데 그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위의 세 가지 문제 때문에 모두 다 언덕 밑에다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농부가 언덕 위에다 초가집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히
엽기적인 발상이다. 이 가사를 쓴 사람은 초가에 한 번이라도 힘들
게 산 사람 같지가 않다. 작사자는 도시 책상에 앉아 농촌을 그저 평
화로운 서정의 세계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노동에 찌들고 허기에
지친 농촌 출신들의 기억에는 이 가사가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그냥 고향을 그리고 농촌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로는 인기 있는 노
래가 될 수 있겠지만 농촌 초가의 생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쓴 가
사만은 적어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첫댓글 어느 보름날, 운문(雲門文偃) 선사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보름날 이전은 묻지 않겠다.
보름 이후에 대해 한 마디씩 해 보아라.”
아무도 말하지 않자,
자기가 대신 말했다.
“나날이 좋은 날이지(日日是好日).”
__()()__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명확하게.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