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4. 02 나도 이젠 시인이다. 초안
박: 안녕하세요. 4월이네요. 이번 주는 식목일이 있는 주죠.
이: 달력을 자세히 보시나 봐요?
박: 나이가 든다는 것이겠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더 빨리 느껴진다는 의미도 될 수 있지요. 그러나 가끔 달력을 보다보면 살아가는 원리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지: 달력에 어떤 원리가? 저는 숫자밖에 안보이던데?
박: 식목일이 한식이지요? 한식날은 알고 보면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4대 명절 중에 하나지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성묘를 가곤 했지요.
이: 지금도 유교의 뿌리가 깊은 집안에서는 그렇던데.
지: 박윤배 시인님께서 한식에 대해 이참에 조금 더 깊이 알려주시죠?
박: 네 원래 한식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전래되어 온 풍습이지요.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 이지요 올해는 4월 5일 이네요.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풍습이지요. 조상의 묘를 돌아보고 미리 만들어둔 찬 음식과 약주, 과일, 떡, 국수, 식혜 등을 먹는 날 정도로만 간단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은 주로 묘지를 정비하는 날로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요
지: 식목일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봐도 될 것 같은데요? 옛날에도 불의 위험성을 선조들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요즘 산불나면 큰일 나요? 강 건너 불구경이란 말, 남의 문제가 아닌 듯, 산불로 인한 한해 피해액이 엄청나다는 것을 어느 기사에서 읽은 것 같아요.
박: 그렇지요 과거 산림녹화 계획에 의해 우리 국토는 그나마 많이 푸르러졌지요. 그리고 산림이야말로 엄청난 재산 인거지요. 후대 자손들에게 물려줄 재산 중에 가장 큰 재산이 숲이 아닌가 싶어요.
지: 그렇군. 봄날엔 절대로 불을 가지고 산에 가는 일은 없어야겠네요. 선생님은 혹 산불에 관한 기억은 없나요?
박: 있지요. 어릴 적 뒷동산에서 불장난하다가 혼난 적이 있어요. 결국 산소 몇 개를 태웠지요. 솔가지를 꺾어 불을 끄는데 정말 불이 날아다닌다는 경험을 한 거 같아요. 봄불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며 번지더군요. 다행이 많이는 번지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이 끄긴 했지만 온몸을 그을려본 적이 있지요. 그 후론 절대로 불장난은 ㅎㅎ
지: 봄 하면 희망이 먼저 떠오르는데, 시인님은 불이 생각나시는 군요.
박 : 그건 특별한 경험이죠. 아무튼 달력을 보게 되네요. 앞으로 올해에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때그때 선조들이 자연의 변화 그리고 인간이 해야 할 어떤 중요한 날을 제정해 놓은 걸 보면 참 재미있는 삶의 교과서가 달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이번 주에 선생님이 소개할 시도 봄과 관련이 있는 시인가요?
그리고 시인의 특별한 경험이 나타난 시 인가요? 궁금한데요?
박 : 네 특별한 경험은 아닌 것 같고 봄날 엉뚱한 생각하나를 툭 던져놓고 그 엉뚱한 생각에 자신을 들려다보다가 우주까지 들먹거려보는 시네요
재미가 제법 있는 시라고 해야겠죠? 이대흠 시인의 봄이라는 시 인데요. 짧은 시 입니다. 지동춘씨가 천천히 한번 읽어주시죠?
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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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대흠
아이를 낳아보고 싶습니다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
다 헐은 자궁으로
수국이나 박태기나무
여치나 개똥지빠귀 같은
살려내는 우주를 낳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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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대흠 시인은 남자분인데 아이를 낳아보고 싶다고 했네요?
박: 그렇지요. 아이를 낳겠다는 것이 아니고 낳아보고 싶다고 했지요. 엉뚱해서 그 다음이 궁금하지요?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 그것도 다 헐은 자궁으로 라고 전제를 하지요.
이때 다헐은 자궁은 자신의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현실에 얽매여 살다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진 자신에 대한 반성을 봄날에 비춰보고 있다고나 할까요? 수국이나 박태기나무, 여치나 개똥지빠귀 같은 그리운 것이 문득 떠오른 것이겠지요.
지: 멸종 혹은 소멸해가는 자연적인 대상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런 소멸을 다시 살려내는 우주를 낳고 싶은 게 희망의 봄날 시인이 소망인 것이지요.
박: 이이를 낳고 싶습니다와 우주를 낳고 싶습니다. 라는 엉뚱한 발상 안에 아주 현실적인/수국이나 박태기나무/ 여치나 개똥지빠귀같은 / 구체적인 대상물을 끼워 넣음으로 해서 상상과 현실 그리고 관념과 구체적 사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문장을 만들어 놓고 있지요.
이: 이처럼 봄날은 결국 모든 고통이나 절망 그리고 생명 없던 것들이 소생을 꿈꾸게 하는 계절인 거 같아요. 더군다나 이런 봄에는 시인들이 희망을 노래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봄은 ‘여성의 계절이다“ 로 만 볼게 아니라. 남자들도 봄을 그리워하고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던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박: 저도 봄을 좋아합니다. 얼마전에는 대구를 벗어나 가까운 봄섬에 다녀왔어요. 가고오는 길에 보니 저번 주에 붉던 잎자리가 이번에 보니 연초록으로 하루하루가 달라졌더라구요. 특히 봄밤의 아늑함이 좋지요. 수국이라도 피는 봄밤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겠죠. 저번 시간에 봄이고 해서 여성시인의 시와 청취자님의 시도 여성분의 시를 읽었는데, 남자 분들이 항의가 있더군요. 남자도 봄을 좋아한다. 그러니 남성 시인들의 시를 이번 주에는 선택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남자분의 시로 보이는 김상연님의 시 “꿈이란 황혼조차 빛나게 해요”를 선택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은 초로에든 남자분이 바라보는 노을에 관한 생각이고 계절적 배경에 가을이 등장하기는 하나 봄 그리고 꿈이란 측면에서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번에는 이소영씨가 읽어주시죠?
네: 네 제가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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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황혼조차 빛나게 해요.
김상연
노을에 물들어추억의 심상에 빠진
노인의 미소를 본적이 있나요?
그가 주는 온화함에 빠져
마음 깊이 느껴지는 여운에
스스로를 맡겨본 당신에게도
꿈이 있나요?
남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운
당신 꿈이, 슬피 울면서 달리고 있나요?
하찮은 꿈이란 없듯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한없이 사랑스러운 꿈
그 가을 물빛하늘처럼
이미 당신의 마음을, 꿈은 물들였을 테니까요
좌절이란 어차피 한번은
지나가야 할 감기니까요
믿어요, 당신이 가진 가능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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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노을을 노인의 미소로 표현했군요. 노인의 꿈속에는 젊은 날 꾸던 꿈도, 현재에도 아직 시들지 않은 어떤 꿈도 다 희망에 닿아 있음으로 아름답다는 것이군요?
박: 이시의 마지막 연은 특히나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를 주는 부분인 것 같은데요. /좌절이란 어차피 한번은 /지나가야 할 감기니까요 /믿어요, 당신이 가진 가능성을/ 이분은 단순히 꿈 희망만을 강조하지 않고 좌절을 이야기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울림에 가 닿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그럼 이 시가 매우 잘 쓴 시라는 뜻인가요?
박 : 그런 뜻은 아니지요. 내용 전달방식이 직선적이라는데 문제가 있지요. “시는 에둘러서 표현해야 한다”라고 하는 시 쓰기의 기본을 적용하면 다소 표현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지요? 노을에 대한 묘사에 있어 노인의 미소와의 관계를 어떤 상관성을 가지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꿈이나 희망을 드러낼 수도 있지요. 그런대 이시는 목소리로 다 말해버리니까? 낭송엔 어느 정도 좋은 시 일수 있으나 오래두고 감사하는 문학성은 떨어진다고 봐 야겠죠
지 : 상징성이 약하다는 말일 수도 있겠군요?
박: 그렇지요. 사실은 여성시대 홈페이지에 많은 좋은 시들이 올라 와 있지요. 특히나 한번 방송에 나간 분들이 지속해서 방송을 들으며 공부를 많이 하시는 것 같더군요. 시가 가일층 발전했어요. 오늘 이시를 선택한 것은 중복 방송을 피하고 남성을 찾다보니 선택되었고요. 다루는 주제가 꿈이라서 봄날 꿈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 시를 어떻게 첨하면 더 좋아질까요? 선생님이 보시기엔
박: 네 이미 제목과 앞부분을 첨삭 했지요
꿈이란 황혼에 아침조차 빛나게 해요.
황혼에 밝게 빛나는 노을에 물들어
과거라는 추억의 심상에 빠진
초로의 노인의 미소를 본적이 있나요?
그가 주는 따뜻함과 온화함에 빠져
마음 깊은 곳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여운에
스스로를 맡겨본 당신에게도
꿈이 있나요?
가 원본인데 /황혼에 밝게 빛나는 노을에 물들어/과거라는 추억의 /초로의 노인의/따뜻함과 온화함에/등 중복되는 이중의 표현은 지나친 설명에 해당되므로 시에서 적절하지 않아 하나로 선택했지요.
지: 그러면 이 분이 더 좋은 시를 쓰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박: 우선은 언어를 중복되게 쓰지 않아야 할 것이고, 주제를 바로 전달하려 하지 말고 에둘러서 분위기를 좀 잡아서 전달하는 게 효과적 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우리 청취자님들의 꿈도 헐은 자궁을 빠져나와 우주가 환해지는 박태기나무나 개똥지빠귀로 날아올랐으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박: 새로 나무를 심는 것 이상으로 불을 조심해야 겠지요. 그리고 마음속에 혹여 타는 불이 있더라도 시로 풀어내면 그 불은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속 불을 다스리는데 약이 될 것입니다.
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