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낚싯바늘이요 가시다>
정 충 화
친분이 두터운 만화가 한 분이 아들 子 자의 삐침 획 끝을 낚싯바늘로 묘사하고 “자식은 낚시바늘, 평생 부모 목에 걸린”이라 덧붙인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자식은 부모 목에 걸린 가시”와 마찬가지로 깊이 공감이 가는 표현이었다.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에 이르렀지만 나 역시도 여전히 부모 목에 걸린 낚싯바늘이요, 가시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어머니는 작년 11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암 판정을 받고 항암 투병 중이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가끔 직접 전화를 걸어 가녀린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으며 걱정을 쌓으시곤 한다. 일터가 지방에 있어 집을 두고도 6년째 자취 생활을 하는 아들이 행여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이 엄동에 불이나 제대로 지피고 사는지 걱정스러우신 게다.
팔순을 넘긴 노모가 이순에 다다른 아들 걱정을 하고 계시니 내가 어머니 목에 걸린 낚싯바늘이요 가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는 게 변변치 못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늘 부모님께 걱정이나 안겨드리는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훌륭한 부모님이 계셔서 늘 고마운데 내게는 훌륭한 아들과 딸까지 있어 과분한 복이라 여기고 있다. 반듯하게 자라 저들 삶을 훌륭히 살고는 있으나 아들딸 역시 내 목에 걸린 낚싯바늘이요 가시 같은 존재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아들은 이미 몇 년 전 제 그늘을 가졌고 그 역시도 아들과 딸을 얻어 지방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다. 덕분에 나는 또래들보다 일찍 할아버지가 되어 가끔 손자 손녀 재롱 보는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
사실 아들딸 키울 때는 여러모로 살기가 팍팍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살가운 정을 쏟지 못해 미안함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아들딸이 어렸을 적 한때 내 잘못으로 인해 결핍의 시간을 안겨주기도 했던 터라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하여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아들에게 다하지 못한 정을 손자 손녀에게 마음껏 쏟으려 한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작년 초에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시작한 아들의 사업이 아직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지 못한 점이다. 모쪼록 아들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고 승승장구하기를, 그리고 손자 손녀가 탈 없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서른한 살이 되는 딸은 지금 수만 리 먼 타국에서 홀로 지내고 있어 내가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이름 없는 전문대학 졸업장을 가지고선 이 땅에서 도저히 발붙일 곳이 없다고 판단한 녀석은 외국에서 제 앞길을 새로 열겠다며 작년 가을 영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시집 갈 나이에 이른 녀석이 부모 곁을 떠나 피붙이 하나 없는 이국에서 직장을 찾겠다는데도 도저히 주저앉힐 수가 없었다. 아비로서 아무것도 도와줄 게 없었고, 학벌의 굴레 때문에 제 깜냥을 다해도 국내에서는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할 것을 나도 알기에 외려 등을 떠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슴 아프게 떠나보냈고 늘 안위가 걱정스러운데 고맙게도 딸은 두 달 만에 보란 듯이 현지 기업에 합격하였고, 정초부터 근무를 시작해 아비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녀석은 대기업 두어 군데서 몇 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해외 무역 업무를 수행해왔고 캐나다 어학연수며 미국 지사 근무 등으로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왔으므로 언어 소통과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을 터이다. 또 도전정신이 강하고 외국인들과의 교류 폭이 커서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작 극복하며 씩씩하게 지낼 것이다.
요즘은 통신 여건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에 국제통화료 한 푼 안 들이고 SNS 계정을 통해 날마다 딸과 문자나 무료 통화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자식이 먼 이국땅에 홀로 가 있는데 어찌 내 마음이 편할 것인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오가는 길에 위험은 없는지, 동양인이라고 함부로 대우받지는 않는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어머니에게 내가 늘 그렇듯 아들과 딸 역시 내 목에 걸린 낚싯바늘이요 가시 같은 존재이므로 늘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것이리라. 하지만 내 목에 걸린 낚싯바늘과 가시는 이제 나를 거의 찌르지 않는다. 아들과 딸이 자신의 자리에서 저들 삶을 훌륭히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질없는 걱정을 쌓을 게 아니라 그들 삶을 응원하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것이 아비로서 내가 취할 최선의 역할이겠구나 여기고 있다. 그들이 날카롭지 않은 낚싯바늘이요 가시로 내 목에 걸려 있음을 항상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월간 에세이> 2017년 3월호
첫댓글 이제는 서로를 자랑스러워 하면서 사셔도 될듯 합니다.
형님도 충분히 훌륭하십니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잘 살면 되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