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 편의 시: 김정수 시인의 「볕뉘」
김완
볕뉘
김정수
저녁 햇빛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산 정상 산책로가 흙을 풀어 웅성거렸고
꽃향기가 길바닥에 풀썩거렸다
내리막길과 아카시아 사이로 어둠살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늘진 볕뉘의 계단에
꿀벌 한 마리 눈높이에서 날고 있었다
움직이는 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빠른 정체는 정지해 있었다
지구 돌아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투명한 날개만큼
속이 보일 듯 얕은 바람이 불어왔다
총알을 피하듯 몸을 숙여
햇빛과 꿀벌 사이를 내려오는데
전생을 지나오는 듯했다
잠시 멈춰선 세상도 해의 날개처럼 고요했다
-시「볕뉘」 전문, 시집『사과의 잠』 청색종이, 2023년 중에서
볕뉘란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추는 햇볕이나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말합니다. 8연 15행의 잘 짜여진 시입니다. 시에 나오는 아카시아는 한국에서는 아카시아 나무가 없기 때문에,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 나무라고 불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까시나무(영어: black locust)는 콩아과(Faboideae)는 낙엽교목입니다. 가짜 아카시아라고도 부릅니다. 우리 주변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꿀을 제공하고, 오염 물질을 정화합니다. 아카시아 꿀은 국내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양봉 산물로 양봉 농가의 주요 소득원입니다. 5월 초순부터 하얀 꽃이 피는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 5월, 저녁 산책을 갔다 내려오는 “내리막길과 아카시아 사이로 어둠살이 올라오고 있었다”라고 합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이지요. 시인들에게는 시가 찾아오는 짐승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늘진 볕뉘의 계단에/ 꿀벌 한 마리 눈높이에서 날고 있었다”, 자연을 보는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움직이는 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빠른 정체는 정지해 있었다”, 꿀벌들의 날개짓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지 공중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꿀벌의 날개짓은 1초에 200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분당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 허공에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습니다. 그 순간을 시인이 포착했습니다. ‘찰라의 고요’입니다. 그 순간은 “지구 돌아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햇빛과 꿀벌 사이를 내려오는데/ 전생을 지나오는 듯했다”, “잠시 멈춰선 세상도 해의 날개처럼 고요했다”라고 합니다. “잠시 멈춰선 세상”의 고요 속에서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 햇빛과 어둠, 현세와 전생까지 떠올리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그렇습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인간의 존재는 아주 작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햇빛 그것도 볕뉘와 꿀벌 사이’에서 발견한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슬픔, 의문과 경외감이 이 시를 황홀한 존재의 심연(深淵)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강호제현의 일독을 권합니다.
시인 김정수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이 있다. 경희문학상 수상.
#김정수_시인_시_볕뉘
#김정수_시인_시집_사과의_잠
#청색종이_청색시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