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로를 찾아라~
/梅谷堂 김 경숙
오랫만에 떠나보는 무박산행
길이다. 수원톨게이트를 지나
남쪽으로 달리다보니 일기예
보에서 처럼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다.
다섯시간 정도를 달려서 예상시
간 보다는 조금 이른 시각인 3시
20분경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해
남군 삼산면과, 현산면에 위치해
있는 두륜산, 쇠노재에서 A코스
(두륜,주작,덕룡 완주)를 타는 사
람들을 내려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B코스(주작,덕룡)를 타기 위하여
오소재로 이동하였다.
새벽 4시로 향하는 시간, 열이렛날의 환한 달빛을 받으며 주작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행코스..
오소재 - 작천소령 - 주작산 - 작천소령 - 덕룡산 - 소석문.. 첫번째 지도 파란 줄(8시간)
쇠노재 - 위봉 - 가련봉 - 능허대 - 오소재 - 주작 - 덕룡 - 소석문..
곡소리 난다는 연장코스로 파란 줄과 이어진 분홍 줄..(12시간)
어둠을 뚫고 헤드랜턴의 불을 밟고 20여분을 오르니 목재계단이 나타났다. 숨가쁘게 오
르고 있는데 앞서 오르고 있던 단풍잎님이 앞질러간 남정네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
다. 뭔가 심상찮은 기미를 느끼면서 뒤를 쫓아 오르고 보니 초장부터 직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게 아닌가?
서산을 넘고 있는 달빛아래 땅속에 솟은 서릿발이 날카롭게 동공을 찔러온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절정에 이른 정상의 부근도 아니요 기껏해야 20여분을 올랐을 뿐인데
난관에 부딪치고 보니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주작의 능선들이 걱정으로 눈앞을 스쳐지
나갔다. 온 몸에 맥이 풀려옴을 느끼면서.....
발을 디뎌야 할 벽에 물이 흘러 빙벽을 이루고 있었다. 4-5미터 되는 빙벽을 한 줄 로프
를 타고 올라야 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단풍잎님은 계속 남정네들을 불러 도
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날렵한 단풍잎님은 그래도 오를만 하였던가 보다. 먼저 올라 위에서 내려다보며 코치를
한다. 아만다님이 오를 듯한 태세로 덤비더니 중간에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후퇴를 하고
내려선다. 아찔한 순간이다. 이미 버스는 목적지인 소석문을 향하여 떠나버렸고, 이곳에
서부터 주저앉아 버리면 혼자 포기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잠시 걱정에 휘말렸다.
첫번째의 빙벽을 뚫고...(이산님 촬영)
박꽃향기가 먼저 해보겠다 나서보았다. 하고 안하고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고로 죽을
힘을 다하여 빙벽을 올라야만 했다. 박꽃향기 오르는 것을 보고 섰던 아만다님이 용기
가 솟았던가 보다. 힘을 내어 무사히 빙벽 통과, 얼마간은 무난히 주작의 능선을 타고
오를 수 있었다.
40여분을 올랐을까 어둠속으로 멀리 남해바다가 어슴프레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닷
바람이 불어와 오르막을 오르며 흘렸던 땀을 앗아가 버린다. 일단은 능선에 올랐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또 다시 우리 일행은 길을 가야만 했다.
나중에서야 닉을 알게 되었지만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던 이산님이 기념촬영을 하자고
서라 하기에 이쁘지는 아니하나 어둠속에서 한컷(cut)하였다.
그나마 보름을 이틀 넘기고 있는 둥근달이 칠흑의 밤을 어느정도 벗겨내고 있었다. 오
소재에서 올라 한시간은 그렇게 걸었음직하다. 그랬기에 배낭주머니에 들었던 휴대폰
에서 5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으리라.
무박산행을 하기 위하여 밤을 꼬박 밝혀야 했지만, 집에 있었어도 그 시간이면 일어나
야 할 시간, 당연히 움직여야 할 시간이란 위로를 스스로에게 전하며 후미에 젤존하나
님의 든든한 보호를 받고 거친 능선길을 한발 한발 딛고 나아갔다.
6시를 넘기며 바위능선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털모자에 두터운 장갑에, 복장은
완전 한겨울의 모양새다. 아만다님이 그래도 사진은 찍고 싶었던가 보다. 남정네들을
졸라 사진 몇장 찍고 그 곳을 내려갔다.
여명이 밝아오자 멀리 두륜산의 높은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라남도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에 솟아 있는 해발 700m,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있으며 다도해를 조망
하기에 적합한 산으로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봄의 춘백,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동백 등으로 유명하며 유자(柚子), 차(茶)의 산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보물 제320호인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대흥사
(大興寺)가 있는 산이기도 하다.
바닷가재가 여의주를 머금은 듯 기이한 형국을 한 가장 남쪽의 산이라 할만하다. 육산
덩어리여서 듬직하기는 하나 잘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산 보는 데 일가견이 있
던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衣鉢)―옷가지와 밥그릇을 그곳에 가져다 놓으라고 한 것을
보면 뭔가가 있음에 틀림이 없을 듯하다.
두륜산엔 그냥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긴 봄날 골짜기 장춘(長春)계곡
을 걸어 가봐야 한다고 전한다. 다음, 정상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올라가봐야 하며 향로
봉(469m).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산의 형세를 살펴봐야만 두륜산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좌청룡은 도솔봉(673.2m)에서 내려오고 있다. 우백호는 고계봉(638m) 줄기다. 입수(入
首)는 두륜봉(630m)에서 비롯되었는 바 모두 대흥사 앞 계곡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 입수가 솟구쳤다 내려앉은 가랑이 사이의 명당에는 서산대사의 사당 표충사(表忠祠)
가 있다. 대사의 의발은 오대산 상원사 같은 위치에 모셔졌고 두륜산은 그만한 지덕(地
德)이 있었던 것이다.
고계봉, 상봉 가련봉, 두륜봉, 국립지리원 지도에 대둔산으로 표기된 도솔봉(672m), 연
화봉(613m), 혈망봉(379m), 향로봉의 7봉이 명찰 대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또아리 지형
이다. 400미터 등고선을 이어보면 거대한 바닷가재가 여의주를 머금고있는 형세이다.
이런 기이함이 있었기에 두륜산은 대흥사를 키울 수 있었고 그 덕에 명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들은 주작산을 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온 능선이 바위로 이루어졌는지,
누군가 어둠속을 가르며 그런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지금이 밤이라 아무것도 앞
이 보이질 않으니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환할 때 주작의 본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지금처
럼 산행을 계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는...
어둠을 밀치고 차츰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6시까지는 그래도 무사히 바위능선을 잘
통과하였다. 어쩜 그렇게도 오르고 내리는 곳이 거의가 직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곳
엔 단 하나의 로프가 매여져 있었을 뿐이었다. 줄에 매어달려 오르고 내리다 보니 조금
씩 지쳐가고 있었다.
6시 20분이 지나는 시간, 능선의 이름도 직벽의 구간도 아무것도 모른 채, 또 하나의 어
려운 관문을 내려야만 하였다. 혹시 모르니 여러사람이 줄을 잡을 수가 없어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밑에서 먼저 내려가 기다려주는 일행들이 있었기에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모두 무사
히 잘들 내려 갔으니 나도 그들처럼 내려가면 되리란 생각을 했을 뿐이지.
사고는 순식간에 오는 것이다. 사고를 예측하고 겪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위
벽을 탈때는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고나서야 뉘우치게 된다
는 사실이다.
아슬아슬한 순간을 중간쯤 내려가 그야말로 발디딜 자리 하나 없는 바위벽에서, 밑에서
누군가 좌측으로 내리라는 말을 믿고 줄을 왼쪽으로 댕겨 내리려던 순간, 로프가 제자리
로 튕겨져 가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팔에 힘을 잃게 되었던가 보다. 아찔하는 순간 팔에
힘이 풀리면서 줄을 놓쳐버렸다. 또 한번의 경험, " 이렇게 하여 내가 추락하는가 보다."
1, 2초도 안되는 찰라에 불과한 추락의 순간 수없이 많은 감정이 교차하였다.
그렇게 하여 박꽃향기는 밑으로 떨어져내리고 밑에서 누군가 받아주는 것 같기에 일단
은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 또 다시 밑으로 떨어져야만 하였다. 박꽃향기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갔는가 보다. 이산님이 받으려다 그만 놓쳐버리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고 왼쪽 다리 부상입었던 곳이 번쩍하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그와 함께 약간의 통증이 따랐고 그대로 잠시 진정을 할 시간이 필요하였다. 정신
을 차리고 보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 하였다. 그만 하기가 얼마나 다행이던지, 땅에 떨
어지는 순간 이산님께 "감사합니다~"라는 인삿말을 잊지 않았다.
그 순간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벼랑에서 떨어져내리며 누군가에 의해 받아질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행운이 아니었을까. 잘못하였다간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을 순
간 별일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이산님, 정말 감사합니
다."
한가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로프를 탈 때 반드시 줄이 늘어지는 방향으로 타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경사면이 아닌 직벽에서의 상황이라
면 더욱 더.....
추락하기 직전 박꽃향기 모습, 왼손은 이미 밧줄을 놓아버린 상태이다. (아만다님)
그렇게 하여 새벽 6시 26분 위기를 넘긴 우리 일행은 또 다시 바위벽을 올라 6시 40분경
일출을 목격할 수 있었다.(젤존 하나님)
황홀까지는 안하였어도 이제부터는 밝은 세상을 걸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기쁨이 앞서
왔다.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지는 암벽과의 결투,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여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날이 밝자 함께 하던 남정네들의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디에선가 아침식사
들을 하고 있다가 다시 만나게 되리란 생각을 하고서.....ㅎ
남정네들이 사라지고 나니 단풍잎이 앞장서게 되었다. 누군가를 의지해야 그 길을 갈 수
가 있었는가 보다. 여차하면 불러제끼는 이름이 단풍잎님~~ㅋㅋ
(끝까지 후미를 지켜주신 단풍잎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많이많이 고마웠습니다.
^*^)
이어지던 주작의 바위능선.....ㅋㅋ
능선위에서의 조망..
무시무시한 바위봉의 모습과 기암들..... (탱크바위, 비둘기바위, 거북바위)
밤새 오락가락하던 눈발이 꽁꽁 얼어붙은 땅에 살짝 뿌려져 제법 미끄럽고 위험하다.
온전치 못한 다리로 균형을 잃어 조심에 조심을 하였으나 여차하면 박꽃향긴 넘어지기
일수, 앉아서 징징거리는 모습이 아만다님과 상영씨 눈에 꽤나 재미 있었는가 보다.
( ♬ 이건 아니야~ 정말 아니야~ 산행 아니야~ 정말 아니야~ ♬ 다신 무박산행 오나
봐라~~)
몇번 넘어지고 나니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막막하여지고 멍하여 왔다. 박꽃향기 띨한
모습.....ㅋㅋ 멍청히 서서 뭘 그리 생각 했을까?(아만다님)
아침에도 눈발은 계속 날리고, 미끄러운 바윗길을 어찌 내려가야 할지 망설이기도
하면서.....ㅎ
바람소리는 왜 그리도 세차던지 온 산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데, 바위봉을 오르는
길옆 한떨기 야생란이 추위를 이겨내며 꽃봉우릴 터뜨리고 있었다. 주저앉고 싶은 것
을 야생란을 보며 힘을 부추겨보았다.
주저앉고 싶을 땐
열이레의 달빛이
마른 숲속에 잦아드는 밤
무박산행인의 헤드랜턴에 비친
서릿발이
날카롭게 어둠에 꽂힌다.
자연이 빚어놓은 직벽에는
해빙을 꿈꾸는 주작산이
빙벽을 이뤄 인간의 접근을 막고 있는데
소름이 끼치도록 일어서는 두려움
바위를 부술 듯
북서풍은 불어제껴도
다소곳이 꽃을 피워내는
풍란 한떨기
요란하지 않은 무게가 있다.
바위와 바람과 눈보라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
주저앉고 싶을 땐
풍란을 보라.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야생란,
바람의 소리에도
눈보라에도 끄떡하지 않고
우주를 닮고 싶은 작은 몸짓이여
그들은 바람속을 솟으며
빗줄기를 가른다.
구름처럼 날아
우주를 꿈꾼다.
주저앉고 싶을 땐
주작산의 풍란을 보라.(09.03,14)
밤을 함께 밝힌 둥근달이 졸리운 눈으로 서산을 넘으며 이제 자기도 잠자러 간다며 인
사를 전해온다. 고마운 달, 박꽃향기 헤드랜턴이 중간에 흐려져서 허우적일 때 달빛은
더욱 밝게 주작산을 향해 빛을 쏟아주었다. 거친 산행길에 많은 위로를 전해오더니....
그렇게 4시간 30여분을 암벽과 싸우며 오는 사이 지칠대로 지친 후미 일행들이 드디어
난농장 갈림길에 이르렀다. 안부에 내려서니 지푸라기 다된 억새풀이 누렇게 뜬 몸둥이
를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길게 누워있었다. 북풍한설에 시달려온 긴 겨울날의 고통이 느
껴져 오는 순간, 바람이라도 없으면 그 곳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덕룡은 어떤 모습으로 우릴 맞을지 몰라 안일한 생각을 지워버려야만 하였다.
안부 4거리에서 주작산 주봉을 가기 위하여 직진.. 10여 미터 오르니 거리표시판이 세
워져 있었다. 주작산 1.68km 양란재배장 0.32Km, 그러나 우린 주작산 주봉으로 가지를
않았다. 지금쯤 선두들은 그곳에서 아침 식사들을 하고 있을테지만, 바라보니 바다를
조망하는 일 외에는 시간 까먹을 일밖에 별 의미가 없을 듯 하였다.
바라만 보는 주작산 주봉.....
난농장 갈림길 안부에서 바라본 주작산 바위능선의 모습..... 그 뒤로 멀리 두륜산의 봉
우리도 보인다.
9시가 채 안되는 시간 난농장 도착, 큰 길에 내려서고 보니 다시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
이 없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을 덕룡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무엇 할 것인가? 올려다보니
길에서 보이는 덕룡산은 동네 뒷산만도 못해 보였다.
산악회 리본이 주렁주렁 걸린 숲길로 들어갔다. 산을 향해 오르다보니 다시 세찬 바람의
공습을 받으며.....
능선에 오르기 전 도저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중턱에 주저앉아 컵라면 하나씩으로 아
침식사를 해결하고, 떡과 과일 그리고 커피까지 한잔 하고는 앉아 있자니 주작산 주봉으
로 향하였던 젤존하나님이 여자 일행 한분과 함께 올라오셨다. 그 곳에서 다시 6명이 합
류하여 능선을 오르다보니 이산님이 뒤를 쫓고 있었다. 7명이 선두가 되어 덕룡산을 향
했다.
덕룡산 주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진촬영을 하였다.
주작산 주봉엘 가지 않아 약간은 서운하였는데 덕룡산 주봉엘 오르니 주작산 정상석이
그곳에 있었다. 가짜 주작산 주봉, 그곳에 주작산 정상석을 세운 이유는 무엇인지?
농땡이 치고 주작산 주봉 안간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었는가 보다.
박꽃향기가 이걸 미끼로 주작산을 들렀노라 하겠다 하였더니 이산님이 금방 받아쳐서
말을 한다.
"그럼 내가 '그건 가짜 정상석이다'라고 댓글을 달아야지?"
"설마 그러실라고요? 그러지 마세요."
그 바람에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힘이 들어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산행길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되면서.....ㅎㅎ
덕룡산 주봉에서 바라본 주작산의 모습, 뒷쪽으로 높이 솟아보이는 것이 두륜산이다.
주작산은 산세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하다 해서 주작이라는 이름이 붙었
으며 곳곳에 긴 바위능선이 많고 정상에 서면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덕룡산 주작산은 해남 삼산면 오소재에서 북동향으로 강진 도암산 석문산 못미쳐 봉황
천까지 직선거리로 약 10 km 걸쳐 있는 산이다. 덕룡산은 지형이 다채로워 거친 암릉길
과 억새능선이 반복된다. 위험하고 힘든 산행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암릉길과 억새밭으
로 이어지는 주작 덕룡산은 산이 반드시 높이에 따라 산세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여주는 산이다. 400m를 넘는 산이지만 산세는 1000m급의 어느산에도
뒤지지 않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날카롭고 웅장한 암봉의 연속, 말 잔등처럼 매끈한 초원
능선등 약 10km의 능선에 걸쳐서 산이 표출할 수 있는 모든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산이
다.
또한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옮겨 놓은 듯하다 보조자일도 때로는 필요한 구간이있다 .반
드시 경험자와 대동하여야 한다. 정상으로 펼쳐진 초원길을 걷다보면 점점이 박혀있는
바위들이 수석처럼 아름답다. 힘든 코스를 마치고 정상 오르면 멀리 남해의 조경이 바라
다보인다. 아스라히 펼쳐지는 남해의 수평선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스레 반
겨준다. 장쾌한 능선과 우거진 숲 특히 10월의 산행은 갈대와 어우려져 금상첨화를 이루
는 곳이다.
그 이름처럼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닌 주작산(朱雀山,475m), 원
래 주작은 봉황처럼 상서로운 새의 상징으로 풍수지리학상 좌청룡,우백호,북현무와 더
불어 사현신으로 남쪽의 최전방을 지켜주는 신장(神將)으로 통하고 있다.따라서 주작산
은 한반도의 최 남단을 떠 받치는 영산(靈山)이라 할 수 있다. 옛부터 이산에는 8명당이
있다고 하여 풍수지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는데,장군대좌(將軍大座),노서하전(老鼠
下田),옥녀탄금(玉女彈琴),계두혈(鷄頭穴),정금혈(井金穴),월매등(月埋燈)옥등괘벽(玉
燈掛壁)운중복월(雲中覆月)등의 8개 대혈을 일컬음이다.
이 산은 주작이 머리를 서쪽으로 돌린 형상을 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덕룡산처럼 날카
롭지 않고 두리뭉실하다. 그러나 이 산을 직접 올라 본 사람은 첩첩 이어진 날카롭고 거
친 암릉에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된다.
덕룡산은 아기자기한 암릉의 산이라기 보다는 험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줄기라고 표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암릉이 아닌 암봉으로 이어진 산이기 때문이다. 안내도에선 1봉,
2봉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실제론 1봉, 2봉을 구별하기 어렵고 봉우리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암릉등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원하고 장애물이 없는 조망을 즐기며 낭떠러지와
벼랑 위에 서서 아슬아슬한 등반의 묘미를 느끼길 좋아한다. 특히 바위봉의 아름다운 모습
과 하나하나 이어진 암봉들을 오르는 기쁨은 최고라 할 수 있겠다.
이곳 덕룡산은 한국의 암봉들이 그렇듯 낙락장송과 어우러진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용아능선을 아름다운 암릉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덕룡산과
주작산의 암릉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물론 434m란 높이가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암
릉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주 어렵고 힘들다.
덕룡산은 진달래가 많은 곳으로 4월 중순이면 온 산이 진달래 밭을 이루곤 한다. 또한 덕
룡산 맨 남쪽의 암봉과 첨봉 사이 잘록이는 넓은 초원이라 여름철이면 색다른 멋을 내곤
한다. 규모는 작지만 넓은 초원과 시원한 바람이 이국적인 맛을 느끼게 한다.
덕룡산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내내 바다를 조망하며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월출산은 물론이며, 수인산, 제암산, 천관산, 완도의 상황봉이 보이고 해남 두륜산의 노승
봉과 백운봉 등 산행중 줄곧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덕룡산 주봉에서의 남해쪽 조망..
억새능선을 따라 편안한 길을 앞으로 덕룡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지 조차 예측하지
못한 채 7인의 일행은 서봉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박꽃향기는 덕룡산 주봉에서 보이던 거
친 바위봉 2개가 전부인줄 알았다. 그것이 서봉, 동봉인줄만 알고서.....ㅋㅋ 그 이후 그 것
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알게 되리라.
서봉을 향하여 가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다.
두개의 바위봉을 옆으로 스치며 지났다. 이번 산행길에 이럴 때도 다 있구나 하고서.....
바위봉을 직접 오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이던지, 그러나 뒷쪽으로 돌아가서 또
다시 만나게 되는 바위봉, 바람은 왜 그리도 못되게 불어쌌던지.....
단풍잎님이 먼저 그 곳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잘못하였다가는 바람에 날라가버릴 것 같
기도 하고 다리엔 힘이 없어져 바윗덩이에 붙어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아만다님과 밑으
로 돌아가는 길이 없는가 하고 찾아보았다.
길은 오로지 한길 뿐이다. 바위봉을 오르는 길..... 그러나 이젠 저 바윗덩이를 더 이상
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좌측으로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바위봉을 돌았다. 누군가
박꽃향기처럼 그 숲을 헤쳐나간 듯한 발자취를 따라서.....ㅋㅋ
암봉 밑에서 만난 고드름..... 그늘 밑에 열려있는 그것이 얼마나 맑고 투명하여 보이던지,
박꽃향기는 하나 따서 맛을 보고야 말았다.
다시 암릉으로 올라가 암봉을 타고 넘어온 단풍잎님과 합류, 서봉을 향하여 걸었다.
서봉을 앞에 두고 A조의 선두 3인과 만나게 되었다. 마루님과 지나치며 인사를 나누고서..
맞은편 능선을 바라보자니 억새밭 위에 누군가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영
님이었다. 다가가 보니 상영님이 탈진한 상태로 더 이상 못가겠노라 의사표시를 하여왔
다. 앞서 갔는줄 알았던 젤존하나님이 뒤돌아 오며 탈출을 권유하였다. 모두 지쳐가는
모양이었다. 박꽃향긴 그래도 포기해야겠단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었는데, 탈출을 하
자하니 얼른 거기에 동의를 하게 되었다.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봉을 앞에두고 좌측으로의 탈출, 탈출로는 없었다. 그러나 젤존 하나님이 앞장을 서
실테니 따라오라 하기에.....ㅋㅋ
다섯사람의 기를 죽여놓았던 무시무시한 서봉의 모습이다.(미소)
서봉에 이르기 전 소석문쪽에서 산행을 해오던 남정네 두분의 "이제 시작인데 힘들어서
어찌 하실래냐"면서 탈출을 권유하던 그 말이 얼핏 생각났기에, 탈출을 결정하는데는 그
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질 않았다. 서봉 너머로도 아직 그런 암봉들이 10개는 더 있다는
말에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미련없이 돌아서 가야만 했던 탈출로였다.
동양란 농장에서 좋은 길을 두고 탈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고 그곳에서는 4Km나 들어와 있었기에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방법은 오로지 한가지 뿐, 젤존 하나님의 뒤를 따르는 수밖엔 없었다.
이럴 땐 왜 그리도 수풀림이 우거져 있던지, 청미래넝쿨이 너무도 미웠다. 온몸을 할퀴
고 후려치고..... 오지산행도 그런 오지산행은 예전에 해본적이 없었다. 묵을대로 묵어있
는 계곡의 숲길을 한발한발 헤쳐나가는 수밖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물이 흐르고 있
는 계곡의 밑바닥까지 한시간 30분정도를 뚫고 내려와 대나무숲속을 비집고 겨우겨우 찾
아낸 숲속길, "아 길이다~" 얼마나 반가웠으면, 길이 있다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그토
록이나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길을 찾고도 동네까지 내려오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앞서가던 젤존 하나님이 승용차가
오는 것을 붙잡고 뭔가 흥정을 하시는 듯 하였다. 가까이 가서야 알게 되었지만 운전자
분께 부탁하여 택시를 부르고 계셨던 것이었다.
오메 반가운 것, 동네길을 얼마간 걸어내려오고 있자니 반대편쪽에서 택시 한대가 와
서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일행 5명은 5천원을 주고 은하수차가 있는 곳까지 편히
도착하게 되었다.
소석문쪽에서 바라보는 덕룡의 암봉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뻑~ 소리가 난다더니만, 참
으로 그런 소리가 날만 하였다. 만족스럽진 못하였어도 중도에서 탈출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던지, 그렇지 않았다면 안전산행을 보장 받을 수 있었을런지?
부총무님 끓여놓으신 김치찌게에 수리대장님 사놓으셨다던 홍주 한잔, 힘이 드니 술생
각이 저절로 나던차에 한잔 들이키고는 5시 20분경 소석문을 떠나 수원으로 향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A조에서 완주하신 분은 4명뿐, 다른 분들은 모두 두륜산에서 애초
에 알바를 하는 바람에 늦어진 데에다 빙벽까지 만나 그곳에서 탈출을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는 시간을 남해 어느 횟집에서 회식으로 대신하며 즐거움을 나누
셨다는 이야기.....ㅋㅋ
함께 고생하셨던 31인의 회원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른 산행길에서처럼 전원
이 모두 완주하는 산행은 못되었지만 나름대로의 보람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무박산
행길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쉬운 마음은 훗날 재도전의 기회로 돌리고
그나마 큰 사고없이 돌아올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모두 건강하시옵고 화창한 봄날의 영광이 일행님들 앞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다음 산행길에 다시 뵙길 기원합니다.(09.03,14)^*^
* 사진 - 주작산에서의 아슬아슬하였던 순간(上, 젤존하나님 촬영), 주작산에서(下)
(연주곡) 봄을 닮은 소리 플릇 연주곡
첫댓글 그래도 무박 또 가자하면 가실꺼죠
싫여
나도 싫어
왜여 , 나랑 함께 합시다, 우리 대빵님은 무박을 몇번 함께하였으니 아만다님 동행하시어 함께합시다 , 날 버리지 마세요 조금만 기다려주^^ 난 늘 은하수 그님들을 기다리는데...
고덕아찌님이 함께 하자하면 집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죠. 근디 다리가 쪼께 아프다오. 발잔등까지 통통하니 부어가지고서리..... 다리 좋아지걸랑 무박 뜁시다요
체력은 ``국력인데 대단한 체력입니당!!!
그토록 체력이려본 산행은 처음입니당
자세히도 메모하셧군요 ㅎㅎ두륜,덕룡은 한번 다시 하고싶다 오소재는 순 암릉산이다 우회로도앖고 ㅋㅎㅎ
벌써 잊었는가요 못가겠노라고 손을 휘젖던 그 때를.....
음~,중독 되셨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 봅디요. 그 사이 그 악몽을 잊으셨는가 봅네다.
정말 그날의 산행은 한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어 지네요..... 제목 :특공대 4인방 감독: 젤존하나 출연자: 박꽃향기 .아만다.단풍잎. 이상영 까메오출연:이산 찰영지:주작.덕룡산 배급사: 은하수산악회
영화는 나중에,... 아만다님 제가 빠졌어요, 지나가는 행인 1로 출연허고잡픈마음 ^^
지가 주연으로 출연시킬라요
그날의 산행을 4자성어로 함축..... 동고동락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여럿이 어울리다보니거움이 더하는 것 같지요
사진만 보아도 얼굴표정들이 너무나 힘든 표현들이군요~~~백운산은 함께하여 알것 같은데 ~~~~~`주작 덕룡산은 글로 읽으니 참 난해하였군요~~~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주작/덕룡에서 수고를 마니 하셨군요!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써 대신합니다! 아픈곳 치료 잘하셔서 앞으로도 즐거운 산행 하시길요!~~~~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