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우리는 일은 반복적이며, 같은 행위로 보여도 행위자에게 그 느낌은 다르다. 그것은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안의 시선의 차이이기도 하다. 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의 시선은 다르다. 차도 바로 그런 시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캠핑을 가기 전에 마실 차를 소분하는 것은 이제는 의례적인 일이 되었다. 캠핑에서는 많은 짐이 오히려 부담된다. 어떻게든 짐을 줄여보려고 하지만 매번 한차 가득하다. 도착하여 펼치면 막상 별것 없다. 다 그곳에서 필요한 것들 뿐이다. 하지만 한 차 안에 싣고 갈 만큼의 캠핑도구를 매번 잘 선별하여야 한다. 캠핑 도구는 한 차 안에 잘 정돈되어 쌓아야 하고, 차도구는 차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만 준비해야 한다.
작은 차통에 차를 담는다. 이번엔 어떤 차를 마실까? 보이차류에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마실 차들은 되도록 손대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같은 차를 쌓아두고 보관하는 펀은 아니다. 한 편 두 편씩 낱개로 구입하는 편이다. 생차여도 바로 마시기에 좋은 보이차는 고차수로 만든 차이다. 그래도 시간 안에서 숙성시켜 마시면 더 좋다. 한편으로 된 낱개의 병차를 구입하고 그 차를 차칼로 해괴하여 우려 마시거나 또 소분하다 보면, 차는 어느덧 바닥을 보인다. 차류 중에서 특히 보이차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숙성되는 상태가 달라진다. 생차일 때와 익어가는 차는 맛과 향이 다르다. 몇 년 지나서 마셔보면 그 맛이 또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그때 더 사놓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이내 사그라든다. 차는 그 자신의 형편 껏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차를 잘 골라서 마시려면 많은 종류의 차 시음과 시간 투여가 필요하다. 반면에 그런 시음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늘 그러한 것을 충족하며 살 수는 없다. 차생활은 늘 이런 마음과 갈등하며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늘 이겼기에 지금까지 차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지속하며 그 자신의 삶을 만드는 가에 차생활의 진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차생활도 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떤 무거움을 지속적으로 밀어내면서 가벼워지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차에 알맞은 다기를 고른다. 고른다는 표현은 조금 멋쩍기는 하지만, 실제로 고르는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태도 역시 의례적인 행위다.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마음 정돈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주 쓰는 다기가 선택되었을지라도 다기를 씻어서 마른 극세사 행주로 잘 닦은 후 포장하여 차가방에 정돈하여 넣는 일은, 어떤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차분함을 생성한다. 다기를 차가방에서 꺼내서 다시 정돈하는 때보다, 차가방에 다기를 정돈하여 넣을 때가 더 어떤 긴장감이 함께 한다. 여행을 떠날 때, 여행 가방을 싸는 기분도 그와 유사할 것이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다기를 차가방에 싸는 느낌은 어떤 침묵이 계속 함께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마도 이건 나 혼자서만 다기와 맞대면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머릿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조그마한 가방에 올망졸망 알맞게 자리를 잘 잡아서 가방 지퍼를 닫으면,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낱낱의 것을 하나에 다 집어넣어서 하나로 만든 순간은 어떤 기쁨을 준다. 작고 귀여운 그 가방은 마술가방이 되는 것이다. 단순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흩어져 있는 것들이 잘 정돈되어 하나처럼 보일 때가 아닐까. 하나의 단출함이 아닌 낱낱의 것이 하나가 되는 그 단순함에 어떤 전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느낌은 언제라도 차생활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느낌이 찻자리를 펼칠 때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고 어떤 막을 형성한다. 그 막은 일종의 경계다. 그런데 이 막은 또 쉽게 형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바로 이러한 것에서 또 어떤 경계를 본다. 이러한 것은 각각의 어떤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딪힘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은 서로 손발을 맞춰보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협화음일 뿐이다. 이 차이들을 상쇄하고 막 안에 가두는 것이 바로 차의 묘미일 것이다.
이번에 고른 차는 '오운산' 보이차, '덕굉 고차수'이다. 몇 년 전 차박람회에서 구입했던 차다. 그 사이에 맛이 들었다. 그때는 거의 생차였고 지금은 몇 년 지났다고 벌써 숙성된 맛을 전해온다. 향과 맛이 풍부해졌다. 잘 익어가면서 차는 어느 순간 바닥날 것이다. 모든 차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느 순간 이별하고 또 새로운 차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단이 사이클 크거나 작거나의 차이뿐이다. 한 해에 어떤 차를 만든 분량은 한정될 것이고, 그 차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오래 마시거나 누군가에게 팔아서 유통할 것이고, 그 차를 소량으로 가지고 있으면 일찍 동이 날 것이다. 계속 같은 원료로 만든다고 해도 그 차가 그 차는 또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모든 한정된 분량은 소진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차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렇게 계속 맞물리며 굴러간다. 그러니 지금 있는 것은 감사하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대하고 이별에는 초연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빈 공간이 마련될 수 있다.
* 여러 가방을 차가방으로 사용하여 보았지만, 캠핑에는 '레디 백'이 무난한 것 같다. 레디백은 작지만 그 안에 의외로 많이 들어간다. 나는 레디백에 다기를 담을 때 포장용 에어캡(뽁뽁이)으로 싼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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