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라는 기상천외한 조합어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밀레니엄이 막 문을 연 이천 년대 초반이었다. 이 말의 어원은 최근 들어 관계가 악화된 바다 건너 일본에서 비롯되었다.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
일본에서는 보통 줄여서 ‘히키ひき’라고 지칭하는데 단어의 뜻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방에 틀어박히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러 가지 국면으로 악화된 한일관계 속에서 굳이 좋지도 않은 단어를 가져와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층 남성들 사이에서 매우 심각할 정도로 ‘히키코모리’가, 아니 ‘은둔형 외톨이’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한 후배 아들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세상과 담을 쌓은 젊은이가 있다. 그는 이십 년 전부터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문을 닫고 자기만의 어두컴컴한 방 안을 새장 삼아 날개를 꺾어버렸다. 그렇게 명문고에 재학 중이던 어린 아들이 어느새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후배 부부는 딸 둘에 아들은 그 녀석 하나뿐이다. 더구나 첫째였다. 학교에서 왕따 비슷한 걸 당한 뒤로 우울증이 왔는데 육사 출신으로 무역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한 후배에게 그따위 나약한 감수성은 시궁창에 버려도 시원찮을 못마땅한 의지박약이었다.
학교 가는 것이 무섭다던 어린 아들에게 후배는 아프리카 물소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풀러 채찍처럼 마구 휘둘렀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를 피해 방문을 잠갔고, 강제로 문을 부수고 끌어내자 벽이며 소파 모서리에 이마를 찧는 자해로 맞섰다.
일흔이 넘은 후배는 지금도 현역이다. 중국이다 베트남이다 왕성하게 활동한다. 다행히 두 딸은 온전히 자라 시집을 보냈고 외손주들로 북적이는 그의 집은 겉보기엔 다복하다.
그러나 평창동에 있는 후배의 이 층짜리 석조주택 처마 아래엔 일 년 열두 달 커튼이 젖혀지지 않는 작은 창문이 숨어있다. 그 작은 창문 안쪽에 후배가 감추고 싶어 하는 사십 먹은 아들이 세상의 빛을 피해 숨어있다.
현재 일본은 40세에서 70세 사이의 중장년층 히키코모리 숫자가 약 80만 명에 달한다. 이것도 그나마 당국에서 확인한 수치가 이 정도다. 독거세대이거나 가족들이 숨기고 있거나 지역 보건시설의 조사가 불가한 사각지대에 놓인 인원을 합친다면 최대 200만 명이라는 충격적인 예상도 있다. 이들 중 80퍼센트 이상이 남성이다. 후배 아들처럼 어려서부터 방문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채 나이가 든 케이스가 대부분이지만 최근 들어 보건당국이 주목하는 변화는 50대 이후 히키코모리로 편입된 신종 케이스의 급속한 출현이다.
개인적으로 참 기분 나쁜 견해인데 사회 구조적으로 일본은 우리가 겪을 미래상을 어느 정도 담아내는 거울이라는 평가가 있다. 회사는 가족이라는 맹목적 충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문화, 인간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가부장적 서열체계,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조직주의 등 비슷한 데가 많다. 게다가 산업화의 방법론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어 성공의 단맛도 비슷하게 맛보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폐단과 좌절과 절망도 거의 흡사하게 겪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한발 앞서 나갔기에 성공의 열매도 먼저 따먹었고, 반대급부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닥쳐올 폐해를 임상 실험하듯 먼저 겪고 넘어지는 거울 효과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중장년층이 겪고 있는 히키코모리의 증가는 머잖아 우리의 삶에서도 그림자처럼 확산될 위험이 다분하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 또한 어느 지점에서는 은둔이 편했고, 외톨이가 된 듯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평생을 사람들 속에 파묻혀 글 쓰고 만나고 함께 책을 만들어 세상과 교통했다고 믿어온 공유된 삶이었음에도 왠지 혼자가 된 듯한 불안감이, 단절되었다고 의심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예감이 가장 지독했던 때는 역시나 퇴직 직후였다. 퇴직하고 제일 먼저 뼈저리게 체감한 후회는 친구가 없더라는 것이다. 동창모임도 있고, 신문사 퇴직모임도 있어 정기적으로 만나 술잔도 기울이고 산에도 가고, 부부 동반으로 여행도 다녀오기는 했다.
그런데 그때뿐이다. 친구란 망년회 때 얼굴 한 번 보거나, 벚꽃 필 무렵과 단풍질 때쯤 관광버스 같이 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 육개장을 나눠 먹는 사이가 아니다. 보고 싶을 때나 보고 싶지 않을 때나 생각나지 않을 때나, 언제든 그렇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해나가는 사이다. 근처에 있든 멀리 있든, 몇십 년을 보지 못해도 편지가 됐든, 전화가 됐든 이메일이 됐든 그날 있었던 나의 특별한 순간에 번뜩 생각이 나서 그 특별함을 같이 나누고 싶은 사이를 말한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봤을 때 내겐 친구가 없었다. 한 명이어도 족했을 텐데 그 한 명이 내겐 없었다. 수십 년 쌓아올린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무기력했고, 회사 밖에 나열된 사회적 관계들은 내가 회사를 떠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회사 밖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의 양복 외투 안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명함 한 장의 가치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온 동안 가족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했고, 뒤늦게 도착한 나를 낯설어하며 부담스러워하며 기대만큼 반겨주지 않았다.
나는 서재에 틀어박혔다. 좋아서 틀어박힌 게 아니라 방 세 개, 거실과 화장실 두 개, 다용도실과 드레스룸을 갖춘 서른여섯 평 아파트에서 갈 데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서재에 숨어든 것이다.
중년 이후 발생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특징은 가난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돈이 없으면 돈을 벌러 밖으로 나간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 간호사라도 만난다. 같은 병을 공유하는 환자들끼리 공동체 비스무리한 네트워크가 조성되기도 한다. 그건 나름대로 외부활동이 된다.
위험인자는 오히려 정상적인 형태로 살아온 사람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들, 사회적인 지위가 충분히 높았던 사람들에게서 더 크게 작동한다. 상실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변화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방문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기대만큼 아름답지 못한 은퇴자의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뾰족하게 가시를 돋우고, 불편해진 나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대상을 물색하다 가족에게 날을 세우고, 혼자가 된 듯 외로움에 빠져들고, 혼자인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책에서 태어난 무능력한 자아에게 생활이라는 먹이를 던져주기 시작한다.
만년설로 견뎌낼 줄 알았던 빙하가 녹듯 견고할 것만 같았던 나의 인격과 나의 위상이 물처럼 녹아 땅을 적신다. 수십 년 쌓아올린 인생이 건조하게 말라버려 흔적조차 없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사라짐의 후폭풍으로 방향을 상실하고 목적을 잃고 생활을 포기하고 덧없이 은둔에 접어드는 것이다.
내가 느낀 바로는 눈에 보이는 은둔보다 보이지 않게 마음으로 진행시키는 은둔이 더 위험했다. 마음의 은둔은 나와 가족을 속인다는 점에서 보다 치명적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데 평소와 달라진 것이 없는 듯 살아갔다. 다름없이 살아가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어디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가장 큰 병폐는 무기력이다. 도무지 의욕이라는 힘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 기분은 우울증과는 또 다르다. 우울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마음이다. 텅 비어서 처음부터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것 같은 비어버린 인생. 앞으로도 담을만한 것이 안 생길 거라는 예견적 좌절엔 약도 없었다.
장년층 이상에서 게임중독과 스마트폰 중독이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연령층을 보면 50대 이상이 과반수를 점유한다. 게임중독, 스마트폰 중독, 인터넷 중독은 ‘은둔형 외톨이’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우울증과 은둔형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게임도 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해 닫아버린 마음의 빈 공간에 가상의 화려한 게임 그래픽이 채워지고, 말하지 못해 답답해진 마음을 인터넷에 댓글로 낭비한다. 친구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는 대신 간편하게 스마트폰을 켠다. 시골 작업실 근처 고추밭에서 일하던 할머니들이 잠깐의 휴식을 틈타 나무그늘에 몸을 숨기고 한마디 말도 없이 핸드폰 게임을 하는 걸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시대를 역행해 있던 핸드폰마저 없애버린 내 선택이 차라리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변화된 시대상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함정의 극히 작은 단면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세상은 빙하가 녹아내린 물줄기처럼 차갑고 의지할 데 없고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지도 못하고, 비틀대다 넘어지려 할 때 붙잡아도 물처럼 손가락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갈 것인데 우리의 면역력은 이 불확실한 시대를 버텨내기엔 마음과 정신 모두가 허약하기만 하다.
허약해진 근본원인으로 산업화니 물질문명이니를 따지기엔 너무 늦었다. 우리의 의사와 별개로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더 외로워질 테고, 서로에게 벽을 쌓고 그 벽에 문을 달아 잠가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최악의 결과로 모두가 외톨이로 지내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사는 것은 어차피 오늘 하루뿐이고, 내일은 돼봐야 아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은 아직 늦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친구가 없고,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듯싶지만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나의 친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고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으나 나는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고 이 글을 읽은 분들은 그들의 삶으로 내게 대답해줄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변명 같은 자기변호냐, 하실 수도 있지만 그 들리지 않는 대답을 상상하며 나는 닫힌 서재의 문을 열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내 목소리가 읽힌 오늘 하루 동안만큼은 외톨이가 아닌 셈이다. 내 목소리를 들어준 여러분도 외톨이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출처: 행복한 은퇴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