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년, 문학과 지성사)에 실린 작품으로 시인의 시적 경향이 잘 반영되어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이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이 시집에 실린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 문학상을 수상했다. 황지우 시의 미학은 반어와 풍자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서민 문화의 전통에 도도히 흐르는 맥과도 같은 것이어서 적어도 시인의 시 정신은 뿌리 깊은 이 전통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시인으로서 살아내야 했던 칠, 팔, 구십 년대는 그야말로 현대사의 대 격변기라 아니할 수 없는 시대였다. 사회적으로 군국주의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 속에 놓여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탈농업사회의 기치 아래 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환경 문제, 부의 편중 문제, 인권 말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 문제들이 동시에 혼재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시인이란 천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사회적 부조리 상황에 치열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적 시대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써 시인은 반어와 풍자라는 전통성을 응전 방식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암울하다. ‘슬픔, 폐허’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비극적 현실 인식을 강조하고자 처음 세 행을 각각 한 연으로 꾹꾹 눌러 쓰고 있다.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망가지고 부서졌으니 슬프지 않을 수 없고 폐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적 화자의 내면은 생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 신전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현실의 무생명성을 극복하고자 고뇌한다. 이 작품의 미학적 압권은 비로소 7 연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통렬한 반어가 나타난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는 앞선 시행에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와 대비된다. 따라서 ‘뼈아픈 후회’는 그 어구의 사전적 의미를 벗어난 함축적 내포적 의미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반어의 힘은 그 내포적 의미의 무한한 확장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미학적 방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슬픔을 웃음으로, 결핍을 넉넉함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이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초극의 경지라 할 수 있다.
8 연에는 시인의 시 정신이 나타난다. 시인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헌법에 반대하다 강제 입대 당했으며, 1980년 봄에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되어 고초를 겪는다. 이는 도덕이 시킨 경쟁심이었다. 인간다움을 지키겠다는 스스로의 노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지막 연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는 시 구절은 그리스의 소설가, 시인, 정치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이는 둘 다 절대 고독의 사막 신전에 처한 자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시인의 시 정신의 단면이 엿보이는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2000년을 여는 젊은 작가 포럼’에서 시인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과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만 있을 필요가 있는, 신분 없는, 다만 정신일 뿐인 귀족주의! 나는 그것이 문학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장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문학의 귀족성을 나는 요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