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혐의에 대한 20차 공판이 3주 만에 열린 8일, 국회에서는 법무부장관 후보 권재진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4일 먼저 열린 검찰총장 후보 한상대에 대한 청문회와 마찬가지로 시침때기와 거짓말만이 난무한 모양이다. 그나마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그것이 마치 제 일이라도 되는 양 비장한 표정으로, 때로는 비굴한 웃음까지 지으며 비호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준 여당의원들의 모습이 역겨워 TV를 꺼 버렸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 후보자들은 자신, 혹은 자식의 병역면제, 주식거래나 부동산거래로 얻은 부당이득, 탈세, 권력형 비리, 재벌과의 유착 등 각종 의혹 중에서 유일하게 위장전입사실만 “유감이다” 며 넘어갔다. 이명박 정권의 후안무치는 이제 그런 범법과 의혹 정도는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눈에 보이는 명박산성보다 더 한 이런 심리적 철벽 앞에선 “도대체 청문회는 뭐하러 하자는 건가”라는 한숨을 피할 도리가 없다.
차라리 야당의원들은 이들을 상대로, 검찰이 한 전 총리를 두 번이나 수사하고 기소한 과정에서 맡은 역할과 현재 재판 상황에 대한 입장을 집중적으로 물어 한 전 총리에 대한 정치탄압을 다시 한번 전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이 “그런 일 없다”며 양심선언을 하면서 “이 사건은 윗선에서 기획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했던 바, 그 시기 검찰의 최종 윗선이랄 수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바로 권재진이었다. 한상대가 서울지검장으로 부임한 것은 비록 기획이 끝나고 재판이 한참 진행 중일 때였지만 그 역시 한 전 총리 담당 특수부의 보고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고 지금도 보고를 받는 직속 상관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사청문회를 ‘한 총리 정치탄압 청문회장’으로 만들었다면…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재판을 하나?” 하고 놀랄 정도가 되어 버렸지만 앞으로도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은 최소 두 달은 더 가야 할 것 같다. 재판장은 “9월 19일 결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것도 아직 최종 확정된 건 아니다. 그날 결심하더라도 선고는 10월에 가서야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막바지에 이른 셈인데 그렇다고 재판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남은 증인들이라야 B급, C급들뿐이고 그마저도 재판정에 나오지 않기 일쑤다. 언론의 조명이 꺼진 건 이미 오래 전이다.
도대체 검찰은 이 지경에서 무엇을 더 노리고 있는 것인가. ‘옭아넣기’는 애초부터 글렀고 ‘흠집내기’도 이미 할 만큼 했으니 이젠 ‘괴롭히기’만 남은 것인가. 그렇다면 정치검찰의 의도는 절반은 성공했다. 실로 이런 모멸적인 상황이 연장되면 될수록 한 전 총리의 심리적 압박감은 점점 더 커지고 분노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질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찰권의 투톱으로 내정된 인물들을 상대로, 이미 내성이 생겨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병역비리 의혹 따위나 묻는 자리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기는 하지만, 한 나라의 총리를 지낸 야당 거물 정치인에 대한 이런 어처구니없고도 끔찍하기까지 한 정치탄압이, 청문회가 열린 바로 그 날 그 시간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야비한 정치탄압에 그들이 과연 어느 정도로 가담했는지, 가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철저히 추궁하는 자리로 만들었어야 검찰 수뇌부 예정자들에 대한 더 의미 있는 청문회가 되었으리라고 믿는 이유다.
변호인단이 요청한 증인들을 상대로 열린 이날 재판도 예정된 4명의 증인 중 단 한 명만 증언대에 선 가운데 열렸다. 한 전 총리를 오랫동안 모셨던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 박 아무개 씨다. 이번 사건을 처음 검찰에 제보한 법조브로커로, 검찰에서 조사받던 한만호 사장에게 “이 사건은 윗선에서 기획했다”고 말했다던 남 아무개씨는 이날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나는 특별히 아는 게 없다”는 출석 보이콧 이유가 기막히다. 또 한 사람은 바빠서, 또 한 사람은 출석요구서가 전달되지 않아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변호인단이 한 전 총리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던 비서 중의 하나인 박 아무개씨를 증인으로 내 세운 것은 그를 통해 한 전 총리가 평소 혼자서 차를 몰고 다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전 총리가 자신의 아파트단지 부근 이면도로로 직접 차를 몰고 가 한만호 사장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았다는 검찰 주장을 탄핵하려는 것이다. 변호인단의 의도야 훌륭하다고 치더라도 글쎄, 운전기사를 통해 그런 입증이 가능할까?
차를 몰고 가서 돈을 받지 않았다는 가장 완벽한 입증은 한 전 총리가 재직 중 단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았거나 아예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진데 무엇을 운전기사를 통해 입증할 수 있을까. 역시나, 이 증인에 대한 변호인단의 신문은 별 성과 없이 끝났다.
말귀에 어둡다 운전기사의 논리에 밀린 검사들
정작 문제는 반대신문에 나선 검사들이다. 이 증인의 증언 내용과 함량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명확했음에도 그나마 그런 증언마저도 철저하게 신빙성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묻어났다. 한 전 총리의 비서 김 아무개씨가 2004년 총선 선거운동 때 도움이 됐는지,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언니 집에 몇 번이나 왔는지 등 도무지 운전기사가 알 턱이 없거나 사생활을 묻는 질문들로 종횡무진 하더니 급기야 “한 총리는 운전을 잘하나”는 질문을 던진다. 딴에는 얼마든지 직접 차를 몰고 나가 한만호 사장을 만났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의도였겠다. 그런데 증인의 답변이 묘하다.
“잘 모르겠다.”
검사의 눈빛이 반짝 빛난다.
“잘 모른다니, 확실한가.”
이 대목에서 증인의 답변이 기가 막힌다. 실로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운전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한 총리가 운전을 하냐, 못 하냐고 물어보면 답하겠는데 잘하냐, 못하냐는 질문에는 답을 못 하겠다. 기준이 뭐냐. 나 보다 잘하냐, 못 하냐는 것인가”
검사의 눈빛이 반짝 빛난 이유가 있긴 했다. 머쓱해진 검사가 “검사의 의도가 뭔지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생각으로만 말하라”며, 자신이 증인의 답변을 추궁한 이유는 지난해 법정증언에서 이 증인이 “주말이나, 휴가 때는 (총리님을) 모시나요”라는 질문에 “총리님이 (운전을) 잘하시기 때문에 그 때는 모시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박 아무개 증인은 지난해 곽영욱 사건 때도 증인으로 나온 바 있는데, 아무리 고쳐 들어도 그 때의 “잘한다(운전을 할 줄 안다는 의미)”는 증언과 이날 “(운전을 아주)잘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답변이 왜 모순된 것이라고 여기는지 알 수가 없다.
검사들은 계속해서 “총리를 그만 둔 뒤 일정관리는 누가 했나” “한 전 총리의 풍동 자택에는 언제 가 봤나” “가 보니 어떻든가” 등 도무지 사건의 본질과는 관련이 희박해 보이는 질문을 거듭하더니 ‘핸드폰’에서 또 한 번 스탭이 엉기고 말았다.
“한 전 총리가 몇 개의 핸드폰을 썼나?”
“한 개를 쓰신 걸로 알고 있다”
“신분이 바뀔 때마다 바꾸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지금 총리에게 유불리 따지면서 답변하는 것 아닌가. 왜 지난해와 답변이 틀리나”
그러면서 검사는 다시 “기사로 근무하는 동안 한 전 총리가 몇 개의 핸드폰을 사용했나”를 묻고 증인이 “국회의원, 장관, 총리 등 신분이 바뀔 때마다 핸드폰을 바꿨기 때문에 몇 개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답변한 지난해의 법정증언 내용을 제시했다. 증인은 여기서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그때는 신분이 바뀔 때마다 새로 공용폰이 나온다는 의미였고 오늘은 개인용 핸드폰을 몇 개 사용했나를 묻는 질문으로 받아 들였다” 고 답했다. 핸드폰 사용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한 전 총리에게 뭔가 어둡고 음습한 이미지를 덧칠하려는 검찰의 얍삽한 의도를 증인이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변호인이 “토요일에도 모셨나요”라고 묻고 증인의 “가끔 모셨습니다”라는 답변에도 검사들은 “지난해 증언 때는 주말에는 안 모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발끈한다. 하지만 증인은 “모시지 않았다는 건 행사가 없을 때 이야기이고 공식 일정이 있을 때는 모셨다”고 자신의 답변내용을 명확히 정리했다. 아무래도 검찰은, 주말에는 운전기사도 쉬어야 하고, 그러니 공식행사가 있어도 ‘운전을 잘하는’ 총리가 직접 차를 몰고 다녀야 한다고 밀어부치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면 강박증이 지나쳐, 상대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난독증까지 생긴 것이거나. 그런데 이런 열띤 질문들이 오가고 난 뒤 곰곰 되씹어 보면 무럭무럭 의문이 피어난다. 도대체 이것들이 공소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이지?
다시 한번 증언대에 서게 될 한만호 사장
함량미달의 증인들을 불러 놓고 반복신문, 억지 신문, 헛다리짚기 신문 등으로 일관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다행히 이런 식의 낭비적인 재판도 이제 한 두 번이면 끝난다. 22일 21차 공판 때 5명의 변호인측 증인들을 부르기로 했지만 남 아무개 증인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끝끝내 나타나지 않을 것 같고 다른 증인들도 핵심인물들이 아니다. 그나마 마지막 증인신문을 위해 특별기일로 잡힌 29일에 예정된 한만호 사장에 대한 증인신문, 돈을 주고받았다는 풍동아파트와 아파트 근처 길거리에서의 현장검증이 볼만 할 듯싶다.(한 사장의 양심선언으로 전혀 허구의 공간이 된 탓에 사실은 전혀 볼 만할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재판장은 지난 번 기일에 변호인단의 현장검증 요청은 받아들이되 한만호 사장을 증인으로 다시 한번 부르겠다는 요청은 거부했는데, 이날 당초 결정을 바꿔 한 사장을 한 번 더 부르기로 했다. 한 사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압수한 문건들을 계속 증거로 들이밀고 있는 검찰측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기회를 피고인측에 주어야 옳다고 생각한 것 같다.
첫댓글 이게 우리나라 검찰의 모습이라니,
아악~~ 머리를 뜯고 싶다
괜히 떡찰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지요.
어이없는 검찰의 증인 심문은 아마도 초딩 수준일것이고
이건 아마도 통치자의 의중일 것이란 생각이 미치는 이유는 뭘까?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아직도 있다는 것인가
저도 참관해봤는데 초딩애들이 있었으면 아찌 이젠 그만해요 하겠더라구요.
절망 스럽네요.. 저런인사들이 국가권력이라니...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요...
黔擦이지...
한명숙 총리님,,끝까지 심지를 굳게 하시고 힘내세요,,,화이팅을 외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