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감사생활(느 1:9-11)
‘어르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큰 것만 보고, 멀리만 보고 살라는 뜻입니다.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는 것은 필요없는 작은 소리는 듣지 말고 필요한 큰 소리만 들으라는
뜻입니다.
-이가 시리고 약해지는 것은 따뜻하고 연한 음식만 먹음으로 소화불량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
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새는 것은 멀리 있어도 연세드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것은 지나간 복잡한 세월을 기억하지 말고, 다가올 천국만을 바라보라
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나빠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도 시리고 걸음걸이도 부
자연스럽습니다. 머리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고, 정신은 깜빡합니다.
젊었을 때는 세상이 무서운 줄 몰랐는데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점점 왜소해지는 자신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면, 굳이 속
상하거나 허무함을 느낄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일 년을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추수감사는 가인과 아벨이 시작했습니다. 농사를 지었던 가인은 땅의 소산인 곡식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고, 양을 치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물로 드
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
님이 받으시는 제사의 기준은 그들이 바친 제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렸느냐 그렇
지 않았느냐 입니다.(히 11:4) 그 결과 분노한 가인은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살인죄
를 저지르고 맙니다. 가장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감사 예배의 자리가 살인의 비극이 발생하는
저주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추수감사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바
른 믿음과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배드릴 때 믿음으로 드리지 않고 형식적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시험에 빠질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두 번째의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수장절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3대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을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3:14-17)
그 중 수장절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의 곡식을 거두고
난 후에 광야로 나아가 천막을 치고, 7일 동안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수장절을 초막
절,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이 11월 셋째 주일로 정해진 것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16세기 중반에 영국 성공
회는 신교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계속되는 극심한 핍박을 견디지 못한 청교도들이 1620년 8월 14일 스피드웰호
와 메이플라워호라는 두 배에 102명이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향해 갑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스피드웰호가 고장나는 바람에 메이플라워호에 옮겨탄 후 고생 끝에 그해
12월에 미국 메사츄세츠 플리머스 항에 도착했습니다.
하필이면 겨울에 도착하여 살인적인 추위와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절반이 목숨을 잃고 겨우
50여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듬해 봄이 오자 대지를 일구어서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짓고
가을에 추수를 하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처음으로 거둔 곡식으로 음식을 만든 후 그 지역 원
주민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추위와 질병 속에서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
의 예배를 드렸고, 이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한 것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절기가 아닌 신앙의 고백으로 드리는 감
사의 예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의 여정 속에서 초막을
짓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청교도들이 추위와 굶주림 속
에서, 그리고 절반이 죽은 상태에서 농사를 지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역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환경이 좋은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감사를 드릴 수 있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정한 신앙고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 역시, 단순히 매년 반복되는 형식적인 예
배나 물질만을 드리는 절기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
함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으로서의 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의 삶
을 앞으로 달려가게 하는 힘이요,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삶이 왜 우리의 인생을 형통하게 하는지를 오늘 본문에서 찾고자 합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조국을 방문했던 형제 중 하나인 하나니로부터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지금 고국에 남아 살고있는 백성들이 외부세력으로부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탔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을 사랑하는 자로서
역사의식이 투철한 자였습니다. 조국의 슬픈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무릎을 꿇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첫째, 크고 두려우시며 주의 계명을 지
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5)
둘째, 지금까지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들을 대신 자복하며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6-10) 셋째,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형통케 하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이 종이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11)
결국 느헤미야는 그 기도의 간구대로 응답을 받아,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유다 총독으로 임
명받아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경호원과 성벽 재건에 필요한 물자까지 제공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적들로부터 많은 방해 공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굳
센 믿음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과연 느헤미야는 어떻게 해서 탁월한 리더십을 통해 성벽을 재건하는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
을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 금식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긍휼하심을 간구했습니다. 둘
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고 범죄하는 조상들의 죄를 대신하여 눈물로 회개하
였습니다. 셋째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형통함을 얻는 은혜가 있기
를 간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
억한다는 것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다윗 왕도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
억하고 감사하는 자였습니다. 비록 사울 왕으로 인하여 쫓기는 삶으로 인해 피곤하고 지친 가
운데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기도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항상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시 115:12절에 보면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고 고백합니
다. 다윗이 비록 실수와 허물이 있었지만 바로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최고의 왕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를 하나님은
높여 주시고 그 인생을 형통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먼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성도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때로는 병들게 하심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
끔은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
입니다. 추진하는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사람들의 심정
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조상들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
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형통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받은 은혜와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눕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기에 하나님은 바로 그런 감사
의 사람에게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하며 예배하는 히메지 비전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느헤미야
의 신앙을 본받아서 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