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萬物)의 영장(令長)이란?
<말선265-112> (1994,11,27, 벨베디아 수련소) 만물(萬物)의 영장(令長)이라는 것이 무엇의 영장(令長)인지 알아요? 동물(動物)은 1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해요. 매미 같은 것은 수중(水中)에서부터 7년동안 공(功)을 들여가지고 일주일(一週日)을 사는 것입니다. 일주일 사는 것이 수놈 한번 만나가지고 알까기 위한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죽어버리는 거예요. 하루살이 같은 것은 8년동안 공(功)을 들여도 공중결혼하고 그냥 죽어가는 거예요.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생명(生命) 전부를 포기하더라도 한 번 사랑한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아시겠어요?
<말선265-113> 만물(萬物)의 영장(令長)은 사랑하는 동물세계(動物世界)를 전부(全部) 주관(主管)할 수 있는 대장(大將)이라는 것입니다. 대장(大將) 알겠어요? 수천 종(種)이 이와 같은 사랑관계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물(萬物)의 영장(令長)이 뭐냐 하면 사랑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특권(特權) 권내(圈內)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것이 영원불변(永遠不變)의 상대(相對), 주체 대상을 중심삼고 초시간적(超時間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자랑이에요 그게 만물(萬物)의 영장(令長)된 특권(特權)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뭐가 만물(萬物)의 영장(令長)인지 몰랐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夫妻)끼리 사랑하는 것은 죄(罪)가 아닙니다. 참사랑은 소리를 지를수록 행복(幸福)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 소리를 다 듣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자던 새들도 깨고 자던 사람도 모든 생물이 그 소리를 듣겠다고 다 모여온다는 것입니다.
<말선207-41> 사랑은 언제나 할 수 있어요. 동물(動物)은 1년에 사랑을 한 번만 하면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만물(萬物)의 영장(令長)이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매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이 특권(特權)을 가진 것은 하나님과 마찬가지예요. 사랑은 무엇보다도 귀(貴)한 거예요. 영원히 찬양(讚揚)할 수 있는 사랑을 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말선290-227> 축복(祝福)해 온 지금까지 50년 기간(期間)에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낳은 새끼들을 어떻게 할 거예요? 독수리 밥이 되게 할 거예요. 고기밥이 되게 할 거예요? 그것이 지금 선생님(先生任)의 문제(問題)입니다. 이것을 처리(處理)하는 방법(方法)이 지금 원리(原理)에는 없어요.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축복(祝福)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先生任)이 어머니를 세운 후에 그러한 기준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98년 하나님의 날까지 모든 전부(全部)를 해서 완전히 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마리아가 뭐가 돼야 돼요? 어머니가 되어야 되겠어요, 뭐가 되어야 되겠어요? 어머니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❶딸이 되어야 되고, 상대가정(相對家庭)이에요. 마찬가지입니다. ❷아담의 동생(同生)자리에 가야 되고, ➌누나의 자리에 가야 됩니다. 동생(同生)까지 책임(責任)질 수 있는 누나입니다. 그다음에 ❹어머니가 되어야 하는데, 본처(本妻)와 첩(妾)이 하나 된 자리에 서야 됩니다. 돌아갈 때는 어머니가 둘입니다. 타락(墮落)한 어머니와 복귀(復歸)된 어머니입니다. 본처(本妻)하고 첩(妾)까지 사랑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걸 마리아가 해야 돼요. 처음부터 처(妻)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딸의 자리에서 어머니의 자리로, 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내의 자리로 내려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했어요.
마리아는 예수를 자기 아들로 생각하지 않고 왕(王)으로 모셔야 됩니다. 무슨 명령(命令)이든지 절대복종(絶對服從)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女人)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相關)이 있느냐고 했던 것이다.’ 이 말은 부모(父母)나 자식간(子息間)의 말이 아닙니다. 기(氣)가 막힌 말입니다. 그렇다고 어머니 자리라고 내가 어머니다, 할 수 있어요, 상대(相對)의 자리로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맏딸이 되는 것입니다. 3시대 (三時代)를 대신(代身) 가려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런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世上) 끝 날에는 가정파탄(家庭破綻)이 벌어집니다.
친족상간관계(親族相姦關係)라는 말이 나오고 할아버지가 손녀(孫女)하고 살고, 아버지하고 딸하고 어머니가 같이 살아요. 그것을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맞추고 돌아가지 못하면 다 지옥(地獄)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결혼(結婚)한 사람들이 다 그런 자리에 서야 됩니다. 여자(女子)들은 두 남자(男子)를 모시는 것입니다. ❶하나는 자기(自己)와 결혼(結婚)한 천사장(天使長)이고 ❷하나는 선생님(先生任)입니다. 똑같아요. 그래서 선생님(先生任)의 어머니 입장(立場)에 서고, 선생님(先生任)의 아내 입장(立場)에 서고, 선생님(先生任)의 동생(同生) 입장(立場)에 서는 것입니다. 거꾸로입니다.
타락(墮落)하지 않았으면 동생(同生)의 자리에서 아내의 자리로 어머니의 자리로 올라갈 텐데, 타락(墮落)했기 때문에 이렇게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누가 그걸 해결(解決)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전부(全部) 다 수평(水平)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런 모든 하늘의 비밀(秘密) 얘기를 누가 알아요? 사탄하고 하나님만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신학(神學)에는 그런 말이 없지요?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멀어요? 이것이 이론(理論)에 맞는 얘기입니다. 하늘이 찾아오는 여자(女子)가 많지 않아요, 마리아는 해와의 대신(代身)으로 국가(國家)의 대표(代表)입니다. 그걸 뒤집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와서는 과부(寡婦)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들을 낳지 않겠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짝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푸느냐 이거예요. 그래, 아들과 관계(關係)를 맺는 여자(女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世上)이 이렇게 파탄(破綻)되고 가정(家庭)이 파괴(破壞)된 것을 선생님(先生任)이 원칙(原則)을 통(通)해서 돌려 잡는 것입니다.
<말선254-276> 아담 해와를 두고 하나님이 사랑한 것은 뭐냐? 아담 해와가 아들딸로 자라왔다는 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자라 나왔다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아기와 같을 때가 있었고 형제(兄弟)와 같을 때가 있었고 부부(夫婦)와 같을 때가 있었고 부모(父母)와 같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창조(創造)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무형(無形)의 하나님이십니다. 무형(無形)의 하나님이 그렇게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들딸 같이 형제(兄弟)와 같이 부부(夫婦)와 같이 이래가지고 또 아들딸을 창조(創造)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담 해와가 자라는 것을 보니 자기(自己)는 보이지 않던 실체(實體)인데, 아담 해와 실체(實體)를 보니 자극적(刺戟的)이더라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서 나도 저 형제(兄弟)와 같이 저렇게 싸우면서 자랐겠구만, 그래 가지고 하나가 되어 부부(夫婦)가 되어서 부모(父母)가 되었겠구만, 이렇게 생각(生角)하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완성(完成)하게 되면 제2(第二)의 하나님 완성(完成)한 실체(實體)의 하나님 자리에 서가지고 하나님이 창조(創造)하던 것과 같이 아들딸을 낳아가지고 평면적(平面的)으로 실체(實體)를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더라도 실체(實體)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問題)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이 무형(無形)이시면 무형(無形)인 채로 그냥 그대로 있지 왜 창조(創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創造)했습니다. 사랑의 대상(對象)으로 창조(創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실체적(實體的)인 대상(對象)이 필요(必要)했느냐? 이게 문제(問題)입니다. 여러분이 손가락이 멀 때는 잘 보이지만 점점(漸漸) 가까워지면 보여요, 안보여요? 「안보입니다.」 왜? 하나 된 것은 못 본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例): 마음, 양심, 심장, 눈, 얼굴, 똥냄새, 사랑, 하나님>보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느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 되어 있기 때문에 못 느끼는 것입니다.
왜 못 느끼느냐? 그걸 느끼게 되면 외부(外部)에서 오는 충동(衝動)의 힘(力)을 잡아먹어요. 그런데 자기(自己)와 하나 되어 있으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外部)로부터 오는 충동(衝動)을 100퍼센트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안 느껴지는 것은 외부(外部)로부터 오는 자극(刺戟)을 100퍼센트 느끼게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10퍼센트를 느끼게 되면 90퍼센트가 하나 되어 있고, 50퍼센트를 느끼게 된다면 50퍼센트 밖에 하나 안 되어 있는 거예요. 100퍼센트가 안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된 것은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적(理想的)이에요. 하나 되어 있기 때문에 느낄 필요(必要)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트너가 나타날 때는 즉각(卽刻) 느끼게 됩니다. 당신(當身) 앞에 사랑하는 여편네가 있으면 피가 끓고 이래 가지고 사랑이 우우우 이러면서 느껴지는 거예요. 파트너가 없으면 그게 안 느껴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永遠)히 그렇다구요. 그래서 파트너가 필요(必要)한 거예요. 왜? 자극(刺戟)을 필요(必要)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대상(對象)을 창조(創造)한 이유(理由)가 그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중요(重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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