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그 후(16)
돌아온 탕자의 변화(인격적 성숙)
행10:1-6
돌아온 탕자의 변화를 30가지로 분석해봤습니다.
온유 Gentleness | 자족 Contentment | 믿음 Faith | 분별 Discernment | 절제 Self-Control |
오래 참음 Long-Suffering | 넉넉함 Generosity | 신뢰 Trust | 기쁨 Joy | 열정 Passion |
나눔 Sharing | 사랑 Love | 감사 Gratitude | 진중함 Thoughtfulness | 미소(밝은얼굴)A Smile |
돌봄 Care | 자비 Mercy | 인내 Patience | 순종 Obedience | 책임감 Responsibility |
자상함 Kindness | 경청 Listening | 겸손 Humility | 행복 Happiness | 성실 Faithfulness |
| 성숙(인격)Maturity of Character | 화해 Reconciliation | 정직 Honesty | 배려 Consideration | 평안 Peace |
오늘은 이 가운데 열여섯 번째 말씀으로 인격적 성숙에 대하여 나누겠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받아 주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며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탕자는 종이 아니라 다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탕자의 변화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제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다시 살아야 했습니다.
몸은 돌아왔지만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이전과 같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의 재산만 원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돌아온 후 탕자의 삶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아들로 성숙해야 했습니다.
오늘은 좋은 인격과 참된 신앙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좋은 인격이 좋은 신앙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2022년 12월 13일 건강 전문 매체 코메디닷컴은 호주의 대인관계 및 정신건강 전문 매체 핵스피릿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신이 좋은 사람이란 10가지 특성」을 소개했습니다.
좋은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고, 힘들 때에도 인내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며 자신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봅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만 해당되어도 인격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 벤츄라교회에도 이와 같은 좋은 인격을 가진 성도님들이 많이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좋은 인격이 좋은 신앙을 보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좋은 인격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고넬료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백 명 정도의 군인을 지휘하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으며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고넬료는 경건했습니다.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왔으며 항상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를 칭찬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행10:22)
당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유대인들에게 칭찬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가 얼마나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좋은 인격이 그를 구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행11:14)
고넬료에게는 여전히 구원받을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경건했으며 구제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인격이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3)
죄 사함은 좋은 행동이나 구제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다고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고넬료에게 부족했던 것은 선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10:44)
고넬료와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행10:47)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 사건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사람은 좋은 인격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예수님이 필요하며,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거나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성격이 온순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도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남에게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살았다.”
“나는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왔다.”
이러한 일들은 귀하지만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탕자도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낭비했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아들로서의 책임을 버렸습니다.
그가 다시 아들이 된 것은 아버지가 그를 받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다른 사람보다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참된 신앙은 반드시 인격의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좋은 인격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반드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고넬료와 그의 가족이 복음을 믿었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23)
성령의 열매는 대부분 우리의 인격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입니다. 희락은 환경을 대하는 태도이며, 화평은 갈등을 풀어 가는 모습입니다. 오래 참음은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자비와 양선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충성은 맡은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세이며, 온유와 절제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목소리가 커지거나 기도를 오래 하고 성경 지식이 많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말이 달라집니다. 감정이 다스려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참된 믿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참된 은혜는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성품을 바꿉니다.
우리의 인격이 복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된 인격은 복음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하고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 어떤 말을 하는지, 손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예배 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