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봉을 다녀와서...
여왕의 계절답게 온 산천이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5월 주말이다. 오전에 약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아직 우산은 필요 없었다. 아침을 부라부라 마치고 8시 15분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준 고속도로보다는 한가한 들녘을 바라보며 드라이브하는 여유를 갖고 싶어 국도를 택했다. 이제 막 심은 벼 모종이 가냘픈 줄기를 지탱하느라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림이 크고 길옆 풀숲에는 사람 키만큼 자란 갈대가 우리를 반긴다.
초행길이라 예정보다 20여분 지체되는 상황을 전화로 알리고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제비봉 입구 장회휴게소 주차장, 이미 도착한 친구들과 인사겸 상견례(아내들)를 하는 사이 나머지 친구도 이내 도착하였다. 이 얼마만인가? 두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며 포옹을 한다. 헤어진 지 32년이 흘렀지만 엊그제 헤어졌던 사이처럼 낮이 익다. 처음 만나는 친구 부인들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것은 친구가 운영하는 다음카페에서 본 사진 덕분인가 보다. 주차장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등산로로 향한다.
안내 초소를 지나자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고 100여 개의 나무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중턱,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젖혀 충주호를 바라본다. 강물처럼 보이는 산속의 호수는 청록색의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멋진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하늘은 옅은 구름이 있고 호수를 가르며 지나가는 관광 배를 바라보노라니 2년전 다녀온 스위스 레만 호수 풍경이 재현되듯 떠오른다.
학교 졸업 후 살아가는 재미와 아이들 키워온 이야기, 은사님들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있는데 앞서가던 친구가 여린 소나무에 매달린 새싹 봉우리 향내를 맡아보라며 건네준다. 자연이 주는 녹색과 송진향이 어우러져 목 언저리에 맺혔던 땀을 잠시 지연시킨다. 산행을 할 때 힘이 들면 이야기를 아껴야 오래 걸을 수 있다는 친구의 애정 어린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목이 컬컬하다. 때마침 친구가 준비해온 오이와 참외로 갈증을 해소하고 배경이 좋은 쪽을 뒤로하여 사진 한 컷 누르고 좀더 산을 오르기로 한다.
제법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714미터 정상은 아직 멀리 보인다. 이때 한 친구가 꾀를 내서 한마디 한다. “우리가 꼭 정상까지 가야 할 이유가 있나? 여운을 남겨두고 여기서 식사하자!” 또 다른 친구가 “그래, 비도 내리기 시작하니 위험하지 않게 천천히 내려가자!”라고 맞장구를 친다. 나는 좀더 가도 괜찮은데......하고 싶었지만, 모처럼 가파른 산을 오른 아내가 조금은 버거워하고 때마침 빗방울도 더해지는 상황인지라 말없이 기다려보았다. 역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하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눈 앞에 보이는 정상은 사진 배경으로만 남기고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니나다를까 앞서가는 사모님 한 분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쪘다. 다행히 아줌마의 몸매(?) 덕분에 가벼운 찰과상으로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우리부부는 행동도 느리고 조심하느라 맨 뒤에 따라가며 여유 있게 저 멀리 보이는 금수산 투구봉을 마음껏 즐겼다.
아침을 서두르고 나왔더니 벌써 시장기가 있다. 시계를 보니 한시가 넘었다. 반쯤 내려온 곳에서 한적한 자리를 찾아 우리모두는 둘러앉았다. 각자 준비한 점심도시락을 이집저집 꺼내놓기 시작한다. 맛과 정성으로 보아 이른 아침부터 준비한 맘씨 고운 사모님이 있는가 보다. 우리부부는 모임 시간도 제대로 못 맞추고, 오는 길에 사온 김밥 두 줄을 꺼내놓으려니 좀 미안하였다. 친구들이 내놓은 상추와 오이, 잡곡밥, 정갈스런 오브쌈밥도 맛있었지만 공기 좋고 전망 좋은 곳에서 3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하는 점심은 굳이 반찬이 필요 없었다. 더구나 이곳 지역에서 준비한 막걸리 한잔으로 후식을 하니 감성 무딘 내 가슴에도 시 한 수가 떠오를 듯 만사가 평온하다.
허기진 배가 포만감으로 바뀌었고 적당한 운동 뒤에 오는 노곤함을 느낄 쯤 우리 일행은 숙소인 한화콘도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하고 화두가 시작되니 오늘 만난 친구들의 옛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카페지기 문상......우리 반 친구중에 내가 제일 가까이 못했던 친구였다. 신중한 성격에 말이 없고 나보단 성숙한 이미지 그리고 한 주먹 하는 어깨가 늘 듬직한 사나이였다. 학교 졸업 후 선견지명이 있어 국가 자격증을 일찍이 획득하고 다방면의 사업을 경험하여 이젠 여유 있는 사업가로 변해있었다.
광희......어쩌면 내가 동경한 학창시절을 만끽한 친구이다. 노래와 기타치기를 즐기고 남들보다 일찍 담배도 배웠고 가끔은 말썽도 부릴 줄 알고 잘못을 핑계대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멋진 친구다. 사업을 일찍 시작하여서 인지 노련한 행동이 믿음직스럽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모 통기타 가수 콘서트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늘 부럽다.
윤태......일한만큼 소득을 내는 특수작 전문가, 약간 그을린 친구의 얼굴에서 인생의 무게를 느꼈고 소박한 말투에서는 시골의 풍류를 엿보았다. 도심에 사는 나보다 더 심오한 철학과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친구들을 생각하여 정성스레 준비한 매운탕거리는 내가 감히 흉내 날 수도 없다. 그리고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도 내게 좀 분양 해주었으면 좋겠다.
두연......사실, 키 차이만큼이나 나는 두연이를 잘 모르고 지냈다. 어린 시절은 어디에서 지냈는지? 아이들은 다 성장하였는지? 현직으로 있는 공직생활은 어떤 보람이 있고 어떤 아쉬움이 있는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지만 심문(?)하는 기분을 줄까봐 참았다. 단둘이 만나면 하나 둘 묻고 싶은 관심사이다. 지금껏 그 자리에 있기까지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거라 짐작하고 존중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불편한 치아도 빨리 회복되기를......
성기......이름으로 한번씩 웃음주는 친구, 10여년 전 대구 성서에서 잠시 만나고 이제 만났다. 오늘도 짧은 시간이지만 압축된 서로의 삶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지난 세월에 대하여 굳이 말로 설명이 필요 없듯이......건네준 명함과 얼굴에 담고 있는 경륜 그리고 가족의 행복한 사진 몇 장이 지난 일을 가름하게 된다.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여 정년퇴직 없이 꾸려갈 수 있는 일터가 있음에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주생각이 났던지 아니면 벌써 시장 끼가 들었는지 식당으로 이동하자는 친구 제안에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다. 이곳 지역에서 주 메뉴로 등장하는 올갱이와 꿩 샤브샤브를 한 상 받고 소맥으로 분위기를 돋구니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른다.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심통 났는지 식당주인은 예약손님이 있다는 상술로 우리를 계산대로 몰아놓는다. 그 정도 눈치가 없는 우리가 아닌지라 작은 소리로 매너 있게 한마디하곤 숙소로 이동하였다.
이제부턴 적당한 취기와 함께 못다한 넋두리를 마음껏 펼 수 있는 공간이 보장 되었다. 음식점에서 나올 때부터 이 지역 일명 삐기 청년이 명함을 건네며 무료 차량운행과 널찍한 룸을 소개한 노래방도 있고 개구리소리 뻐꾸기소리 들리는 야외벤치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호 통제라......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어린애를 떼어놓고 시장 가는 부모 마음처럼 안타까웠지만 우리가 먼저 갔다고 이어지는 흥을 잠재울 친구들이 아님을 알아채곤 서둘러 숙소를 출발 하였다. 괜한 머뭇거림은 떠나는 사람 보내는 사람 모두에게 아쉬움만 더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늘 만난 친구 중에 누구누구는 어떠했고 누구는 어떠했는지를......하지만 모든 추억은 드라마의 여운처럼 아름다움과 행복한 마음으로 연상되었다.
오늘 만난 모든 친구들, 가정이 화목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여유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욕심을 낸다면 더 많은 동기생들이 함께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해 본다.
사춘기 때 제복을 입고 3년 함께했던 동기생 들이여! 늘 건강하기를.......
피에스: 노래방 못간 미안함을 나의 애창곡 가사로 전달한다. 들어봐~~~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말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역시 그런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당신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내어
울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2절 생략, 앵콜생략...) 끄읕
첫댓글 감동이 서린 문장이다....눈물이 다~날라칸다! 긴 장문 쓰느라 노고 많았다. 모두가 마음에 속 와닿는 말이네 그려....!
부족한 글에 공감해준 친구 덕분에 힘이 난다. 땡큐.
근데말이쎄! 먹을거다처먹고는 비린내난다.맛없다.카는데...가을에 송이 먹기로 한거 취소다.
에라이~촌놈아..! 송이는 강물고기하고는 냄새가 벌써 틀리잖아...! 그라고 메운탕 끊일때 고추가루도 한줌 없었다 아이가...!
종두야 경상도 말로 한마디! "우리가 다리가" 표준어로 번역하면 "우리가 남이가" 이것도 말이 잘않맛내...ㅎㅎ
한번 친구는 영원한 동반자 아이가! 이말 할려고 한거지?
후기글을 읽어 나가노라니 전체 화면이 고스란히 지나가네..요즘 좀 바빠서 카페도 입장만 했다가 휘리릭 나가곤 했는데 좋은 모임을 알려줘도 참석못하여 부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다음에 또 이러한 기회가 꼭 있을거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사실...친구와 함께가려고 전화했던거지...근황은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혹시나하고. 세상살이가 녹록치않으니 서로 서로 부딪기며 지내자구...전화 받아줘~
느낀대로 본대로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운 하루였다. 쪼금 아쉽더라 너들 놀고있는 모습이 아른거리더라.
자주 만나자 종두야...
엉~ 알았소!
나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기회에는 꼭 함께할수있기를 고대하며 그날의 모습이 잘 연상되어진다.
선약이 있어 아쉬웠지만, 늘 기회가 있으니 기다린다. 친구의 백담사와 설악산 사진 잘 보았고...
나도같이만나 산에 갔다내려와 한잔하면서 많은애기를 한것같은 착각할 정도의 섬세한글잘 보았다 언제한번보자
태진, 정말 오랫만이군. 이곳에서의 사진과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근황은 알고있지만 궁금하군...언제 기회가 있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