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것만 길이 아니다
12월초부터 스무날동안 한국의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두루 돌며 주로 C3비자자들의 D4기술연수와 H2방문취업 비자 변경과정, 그리고 한국생활실태를 살펴보게 되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의 출입국으로부터 시작하여 학원등록과정, 학원연수내막, 연수자들의 현실상황, 정책제정의 취지와 의도. 관리단의 시행과정 등에 대한 료해를 하면서 학원이며 려행사, 관리단, 시골하우스, 음식점, 조선족밀집지역 등지로 발폭을 넓혔다.
결국 로무자들의 로무수입에 대해서는 코 빠는 아이로부터 허리 굽은 로인, 실업자로부터 정부관원들까지 모두 관심이 크다. 하지만 그들의 로무과정에 대해서는 살밭은 이의 관심과 배려, 봉사를 제공하는 분야가 별로 없었고 그들의 처지를 리해하고 보살펴주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로무자대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그들은 허허벌판에 외롭게 서서 모든 폭풍우를 맞받아나가야 한다. 그들은 한발작 움직일 때마다 우선 돈부터 앞세워야 하고 도처에서 사고와 사기의 위험에 봉착하게 되며 시시각각 좌절과 실패의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이름할수 없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악착같은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여나가고있었다.
물론 한국로무생활에서 뜻을 이루고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도 역시 이러한 과정을 겪어오면서 경험을 모색하고 출로를 찾아 한발작 한발작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러나 남들이 잘됐다고 나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것이다. 남들이 간다고 무작정 덩달아 떠나지 말자. 하기는 우선 부딪쳐보는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대가를 치를 준비와 각오는 있어야 할것이다.
아무리 《무연고자》라 하지만 거처할 곳도 없이 한국땅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어요. 오면 방법이 생긴다고들 하길래.》한 려행사를 찾아와 1전 한푼 없다며 어처구니 없이 연수등록을 해달란다.
한국에 온지 7, 8년씩 몇해를 넘겼지만 벌어놓은 돈도 별로 없고 지금은 겨울철이라 마땅한 일감이 없어 놀고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더러 왜 귀국하지 않냐 물으면 집에 가서 뭘 하겠는가? 하는 거의 비슷한 대답들을 한다.
허물없이 터놓는 속심의 말: 《생활의 질? 말이 아니지. 무슨 문화생활을 하는가. 그저 낮에는 쌍일을 하고 저녁에는 지친 몸으로 반지하방에 꾸박혀 자고. 맨날 그 일과를 반복할 뿐이지.》, 《우리 집 화장실보다도 못한 방에 들어 살면서 가족 서로 떨어져있고 무슨 멋에 이러고사는지 몰라. 돈푼이 된다고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얻는것보다 잃는것이 적지 않을걸》. 그러면서도 《중국에서 한국 와 일하는 절반만큼 했어도 언녕 부자가 되였겠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들이 《할일이 없다》는 중국 이 고장에서 관내 한족들은 아주 터를 잡아가며 돈도 잘 벌고있다. 한창 흥기하는 부동산건설현장에서 인테리어장식 기술일군들은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에 가정집 주방과 위생실에 사기를 붙여주고 2000원(인민페)을 받는다. 벽지 바르는 아줌마들도 알뜰한 일솜씨에 달 평균 3000원은 번다고 한다. 만약 자기 집에서 안정된 살림살이를 해가며 이만한 수입을 올린다면 외국수입이 그렇게 부러운걸가?
그동안 한국에서 익힌 기술과 일본새, 그리고 모은 자금으로 본토 일터를 지키고 개발하고 확장하고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있다. 물론 돈값차이가 여직껏 한국에 눌러사는 공동의 리유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고장 현지에서 기술인력의 보수는 여전히 외국땅의 보수와 별 차이가 없다. 하기에 마땅한 기술을 챙겨가지고 어서 빨리 국내로 발길을 돌려보자. 국내에서 터를 먼저 잡는 사람이 장래를 잡게 된다. 들어오는것도 길이다.
하다면 나가기를 초조히 기다리는 사람들,유리한 시기를 기다릴줄도 알아야 한다. 기다림도 지혜다. 돈이다. 불리한 때 나가 숱한 고생을 해봤자 나머지가 없으면 그건 안 버는거나 다름없다. 조급성을 삼가하고 때를 기다리면서 자기 발밑에서 일감을 잡아보자.
《한국에 가 일하는 절반만큼만 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