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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세계엔n 스크랩 와인이 맺어주는 아름다운 인연들
권종상 추천 0 조회 72 09.10.08 05:21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아내가 와인 계통에서 일하는지라, 와인 도매상의 초청을 받아 부부동반으로 테이스팅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하하, 청출어람이라 하였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원님덕에 나팔분다고, 덕분에 마셔서 기쁜 와인들을 꽤 마시고, 좋은 음식들도 같이 했습니다.

이 도매상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숨어 있는 보석같은 와인들을 많이 내 놓는 곳들이었는데, 특히 스페인산의 프로토스를 이 회사에서 수입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회사의 사장 부인인 레나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출신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더군요. 러시아어와 아르메니아어를 조금 할 줄 아는지라, 약간의 외조를 해 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왔다기에 "바쿠?"라고 했더니 그 우아한 자태의 부인께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바쿠를 알아?"하고 되물어오더군요.

"바레브 본세스!(아르메니아어로 'How are you?' 에 해당)" 라고 인사하고 장난스럽게 러시아어로 되물어봤습니다. "비 가바리떼 빠 까레이스끼?(한국말 할 줄 아세요?)" 아주머니가 깔깔거리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지리와 언어에 관심이 많은 모양인데?"

본격적으로 와인 시음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 맛본 것은 프로토스였는데, 템프라니요부터 시작해 리제르바, 그란 리제르바까지 골고루 마시면서 스페인 와인의 포텐셜에 대해 더욱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그 다음엔 캘리포니아산 진판델과 시라로 옮겨갔습니다. 파소 로블레스와 나파 밸리에서 와인을 빚고 있는 '5 Mile bridges' 와이너리의 와인 메이커이자 이 와이너리의 주인이기도 한 밴스 로즈가 이 자리에 직접 나와 있었습니다. 로즈는 실력있는 와인메이커로 특히 진판델 쪽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과거 나파밸리의 여러 와이너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지요. 과거에 USA Today 지에서 그와 그의 와인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지라 무척 흥미로운 자리가 됐습니다.

밴스는 자신의 와이너리를 2005년에 세웠고, 지금은 진판델과 시라만을 만드는데, 연간 5천 케이스 정도만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와인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해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진판델들이었습니다. 꽃향기가 앞서면서도 점점 둔중해지는 와인의 무게감, 그리고 화려한 꽃향기에 섞인 감초향... 아내에게 말해서 이곳의 진판델은 사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했더니, 자기가 주문을 해 보겠다고 합니다. 즐거워라. 밴스의 명함을 받고, 저도 제 명함을 주었더니, 블로그에 들러보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오늘쯤은 캘리포니아 어딘가에서 밴스가 나타나 자기 얼굴만 내 블로그에서 확인하려 할 테니, 얼른 올려줘야겠군요.

 

그 다음에 시음한 와인은 워싱턴주에서 첫 알바리뇨 품종을 생산해 주가를 올린 '셰이디 그로브'의 와인들이었습니다. 알바리뇨는 스페인산 화이트 품종으로, 아마 시푸드 와인으로서는 거의 완벽하다 싶습니다. 셰닌 블랑과 피노 그리지오의 중간쯤 되는 질감과 당도를 가지고 있는 와인인데, 혹시 게 요리가 있으면 여기에 맞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엔 이 와이너리의 와인메이커인 앤터니 풀러가 나와 있었는데, 참 인간미가 물씬 풍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알바리뇨도 맛있었지만, 그가 만든 레드와인인 '빅 노즈'는 코가 큰 자신의 모습을 풍자하며 만든 레이블이었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고 자신하는 '그라찌엘라'는 자신의 딸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원래 '사고를 쳐서'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것도 오랫동안 모르고 있다가 아이 엄마와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그리고 다시 낳은 딸이 그라찌엘라이며,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이라고 말하는 마음 따뜻한 아빠이기도 했습니다. 순박하고 착하게만 생긴 그에게 열정이 있다면 '스페인 와인' 이었고, 그래서 그는 워싱턴주의 뜨거운 콜럼비아 고지 지역에서,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스페인산 품종에 매진하는 와인메이커가 됐습니다.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모든 와인은 스페인 와인에 바치는 그의 헌사였습니다. 자기 소유인 포도밭에서 알바리뇨와 템프라니요 등을 키우고 있는 앤터니의 가장 큰 소원은 자신이 성공하여 지금은 동부에 가 있는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당당히 다시 데리고 오고 싶다는 것인데, 이 사람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뜻에서 앤터니가 만든 와인을 많이 사 마셔야겠다는... 그런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정말 괜찮은,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마셔본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날아온 꼬뜨 뒤 르와 산의 말벡 와인이었는데, 8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에서 다시 말벡을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괜찮은 말벡들이 나온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신세계 산 말벡과는 다른 프랑스 풍의 흙내음 물씬 풍기는 말벡들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고, 특히 오늘 소개된 조르쥬 비그로의 말벡은 저렴하면서도 구세계 말벡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것들이 생산된다는 게 와인 회사에서 파견된 티나의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은 아르헨티나. 신세계 말벡과 구세계 말벡을 함께 비교 시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확실히 신세계 버전이 더 화려합니다. 그것은 그간 쌓아온 이들의 '공력'이 만만치 않음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소개한 '미 떼루뇨'는 스페인어로 아마 영어의 '마이 테르와', 불어의 '떼르와 드 므와' 에 해당할 듯 했습니다. 리저브 말벡이었는데, 아르헨티나의 양조기술이 계속돼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밖에 많은 와인들이 있었는데, 모두 패스. 이유는 어느 선에서인가 저는 이미 와인을 다시 뱉지 않고 열심히 마시고 있었고, 그 결과 거의 맛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시카고에서 날아온 독일와인 전문 수입사 '바인바우어'의 세일즈 렙인 티나가 따라주는 스위트 와인들은 매우 즐거운 마무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왔기에,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지만, 이 좋은 인연들에 대해 감사해하고 또 이런 자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행사를 연 레나 아주머니의 '아메리칸 노스웨스트 디스트리뷰터'는 요즘처럼 와인 수입사들이 난무하는 때에 매우 특이한 와인들을 공급하려 하는 듯 했는데, 출신이 그래서 그런지 동구산과 그리스 산 와인들이 꽤 되는 것이 이채를 띠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쪽 로컬 와인들은 흙의 느낌이 과하다 싶게 강했고, 조금 플랫하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그것은 그쪽 사람들이 선호하는 와인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또 문화의 차이이기도 했습니다. 하긴 같은 지중해 음식이라도 해산물을 선호하는 지역에서 레드 와인을 만들 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드와인과는 다른 스타일이긴 해야겠지요. 저만 해도 이미 헤비한 맛의 미국 음식들이 입에 맞고, 따라서 와인의 선호도 역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니 와인과 음식,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결국은 뭉뚱그려서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이걸 따로 놓고 분석하려 들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했습니다만.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아내 덕에 이런 자리에도 다 가볼 수 있었고, 또 여기서 만든 인연들도 쭉 이어졌으면 하고 바랠 수 있었습니다. 인간미 넘치는 앤소니, 우아한 기품이 흐르는 레나 아주머니, 그리고 이날 만난 사람들... 비록 '비즈니스'로 맺어진 인연이긴 했지만, 레나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보여주는 호의와 환대는 단순한 비즈니스 차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헤어질 때 아내에게 "유 아 굿 키드"라고 말하며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는 레나 아주머니에게선 마치 아내를 자기의 딸이나 동생으로서 대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저는 이 와인이란 술이 갖는 마력에 대해 새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시 연락하자고 몇번이나 말하던 앤터니... 아마 저는 내년 와인 여행 때는 무조건 그의 와이너리를 찾아가 죽치고 있을 듯 합니다. 와인은,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넘어 인간과 인간을 잇는 다리가 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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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0.08 08:10

    첫댓글 와우~~~ 러시아 어와 아르메니아 어를...!!! 호쥐바쥐? 코쇼놈. (헝가리 어로 How are you? Thank you.) ㅋㅋㅋ ><

  • 09.10.08 11:06

    ㅋㅋ 꼭 X하는 것같으네여...

  • 09.10.08 11:41

    오우~~~!!! ㅋㅋㅋ ><

  • 09.12.03 05:27

    그러고 보니 씨엘로도 어째 *.....? ^^

  • 09.10.08 08:15

    나같은 사람은 어찌 보면 참 재미가 없다. 무슨 음식이든지 주면 주는 대로 가리지 않고 먹는다. 또한 남기지 않고 먹는다. 좋은 점도 있긴 하겠다... 음식 가지고 불평불만을 안 하니... 고로 와인도 암 거나 마신다. 절대 가리지 않는다. 먹을 만큼만 묵고... 졸리면 가서 잔다... ㅎ

  • 09.10.08 11:07

    여인들이 가장 좋아하지요.. 아무거나 주는대로 드시는 까다롭지 않은 분들을..ㅎㅎ

  • 09.10.08 11:43

    권 형이 애써서 글 올리셨는데 저같은 넘이 저런 댓글 달면 맥 빠지시겠다는... ㅋㅋㅋ 미안해요, 절대 장난이 아니고 진실이랍니다... -ㅁ-

  • 작성자 09.10.09 09:19

    사실 저도 아내가 해주는 건 아무거나 잘 먹는데요. 감히 어디서 토씨를 놓겠습니까...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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