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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표현한 왕의 혼인잔치
설교본문 :아가서 5:1~16(열왕기하 23:30~25:30, 아가서 6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6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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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있거나 성경구절만 있는 곳은 해당 큐티방 묵상포인트를 참조하십시오. ●
오늘 먼저 살펴볼 열왕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전 22년이 얼마나 홀란스러운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에도 시기와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가서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실체감 있는 사랑의 교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제1부 : 남왕국 유다의 멸망
1. 급격히 몰락하는 유다와 예루살렘
요시야가 죽은 이후 유다는 급격히 몰락합니다.
요시야 이후 유다가 망하기까지 22년 동안 4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1) 여호아하스(왕하 23:30~33)
30. 요시야의 신하들이 요시야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그 땅의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3세라. 예루살렘에서 3개월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사람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 애굽의 바로 왕 느고가 여호와하스를 하맛 땅에 있는 립나(리블라)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유다로 하여금
은 100달란트(3.4톤)와 금 1달란트(34kg)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요시야가 죽자 그 땅의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하스는 3개월 동안만 왕 위에 있다가 애굽 왕 바로 느고에게 붙잡혀갑니다.
바로 왕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붙잡아 간 것은
애굽의 속국인 유다가 자기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왕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바로 왕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붙잡아 가서 가두었고,
여호아하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습니다.
그리고는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2) 여호야김(왕하 23:34~37)
34. 또 바로 왕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35. 여호야김이 바로 왕 느고의 요구대로 그에게 은과 금을 주니라.
그가 바로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세금을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각자의 재산 정도에 따라)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5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으로 세움 받은 그 다음 왕은 여호야김으로
애굽에 의해 왕이 되었으니 애굽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몰락하는 나라이고 바벨론은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나라이므로
바벨론을 외면할 처지도 못 됩니다.
그때 바벨론이 쳐들어오자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을 3년 동안 섬기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다시 애굽의 바로 왕을 섬깁니다.
이 일로 유다는 바벨론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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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김은 바로 왕 느고가 제시한 은 100달란트와 금 1달란트를 주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바로 왕 느고에게 바치고 남은 것으로 사치스런 궁전을 짓습니다(렘 22:13,14).
또한 선지자 우리야도 죽였습니다(렘 26:20, 23).
3) 여호야긴(왕하 24:8~16)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8세라. 예루살렘에서 3개월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 그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예루살렘을 포위하니라).
11. 이렇게 그의 군대가 에워쌀 때에(포위하고 있을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예루살렘에) 이르니
12.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하들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느부갓네살에게로 나아가매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으니
이때는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을 통치한 지 8년째의 일이라.
13.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의 보물들을 모두 빼앗아 가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성전의 금그릇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어 파괴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더라.
14. 느부갓네살이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1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아주 가난한) 사람들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
15.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사로잡아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그의 관료들과 내시들과
그 땅의 권세 있는 자들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16. 또 7천 명의 용사와 장인과 대장장이 1천 명, 곧 강장하여(용감하여)
전쟁에 나가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 역시 왕의 자리에 불과 3개월밖에 있지 못합니다.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크게 진노하여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는데,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군대를 직접 진두지휘합니다.
그러자 여호야긴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항복하여,
왕족과 귀족과 용사들과 장인과 대장장이들 1만여 명이 포로로 사로잡혀 갑니다.
4) 시드기야(17~20절)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삼촌인 맛다니야를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 시드기야가 21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간 후에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꿉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게 왕으로 세움 받았으니 바벨론의 지휘 아래 있어야 했으나,
그가 바벨론을 배반함으로써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그가 왕이 된 지 11년째 되던 해에 유다가 멸망을 하고 맙니다.
● 묵상 : 정신없는 폭풍 같은 세월 속에서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은 마치 구한말의 한국처럼 유다가 망하기까지 이렇게 정신없는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 혼란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결국 회개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그렇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마지막 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시간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주께서 오시는 날 그 끔찍한 멸망과 만나게 됩니다.
2. 사로잡혀 간 사람들 : 유다의 남은 자들(왕하 24:13~16)
13.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의 보물들을 모두 빼앗아 가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성전의 금그릇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어 파괴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더라.
14. 느부갓네살이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1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아주 가난한) 사람들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
15.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사로잡아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그의 관료들과 내시들과
그 땅의 권세 있는 자들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16. 또 7천 명의 용사와 장인과 대장장이 1천 명, 곧 강장하여(용감하여)
전쟁에 나가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고,
요시야 왕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사람들도 여호야긴 왕 때에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의 백성의 신실함을 회복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자들이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고,
사로잡히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이 멸망을 당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로잡힌 자들을 바벨론의 강력한 힘 속에 가두신 후
그 속에서 가나안 족속의 죄로부터 철저히 차단시켜
7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의 신실함을 회복하는 훈련을 하실 것입니다.
3. 바벨론에 포로 된 사람들
1) 1차 포로 : 주전 605년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김 왕 시대에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포함한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갑니다.
2) 2차 포로 : 주전 597년 여호야긴 때에(24:8~16)
(24:8~16 성경구절 위에)
여호야긴 왕과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2, 15).
이때 용사 7천 명을 포함하여 방백과 백성 총 1만 명,
그리고 공장과 대장장이 1천 명이 끌려갔는데,
그들은 모두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였습니다(왕하 24:14-16).
3) 3차 포로 :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왕하 25:8~12)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제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인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귀인의 집(큰 건물, 중요한 건물)까지 다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바벨론)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방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가고
12.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 땅의 비천한 자(가장 가난한 자)들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성이 함락되던 때 시드기야는 밤에 도망하다가 갈대아(바벨론) 군사들에게 잡혀
하맛 땅 립나로 끌려가 바벨론 왕에게 신문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왕하 25:4-7, 렘 39:4-7, 52:7-11).
이렇게 3차례에 걸쳐서 약 1만 8천 명 정도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4. 남왕국 유다의 멸망
1)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군사들에 포위됨(왕하 25:1~2)
1. 시드기야 왕 제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도성 안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벽 바깥 사방에 토성(土城, 공격용 흙 언덕)을 쌓으매
2. 그 성(예루살렘)이 시드기야 왕 제 11년까지 계속해서 포위되었더라.
시드기야 왕 제 9년(주전 588년) 10월 10일에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대로는 함락시킬 수 없으니,
바벨론 군사들은 성벽에 오를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의 흙 언덕(토성,土城)을 쌓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군대의 포위는 1년 반 정도 계속됩니다.
2)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유다의 멸망(3~12절)
3. 그해(시드기야 왕 제 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 성안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바벨론 군사)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시드기야 왕이 아라바 쪽으로 도망하였더니)
5. 갈대아(바벨론)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 그들이 시드기야 왕을 사로잡아 립나(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바벨론 왕이 거기에서 시드기야를 심문하고
7.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다음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제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인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귀인의 집(큰 건물, 중요한 건물)까지 다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바벨론)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방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가고
12.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 땅의 비천한 자(가장 가난한 자)들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드디어 시드기야 왕 제 11년(주전 586년) 4월 9일에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정복합니다.
성벽이 무너지자 밤중에 유다의 군사들이 도망을 하고,
군사들 틈에 시드기야 왕도 도망하지만 여리고 평원에서 바벨론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가서 심문을 받습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뽑은 다음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때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마치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짐승들처럼
참혹하고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3) 그달리야의 죽음과 애굽으로 도망한 사람들(22~26절)
22.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겨 놓은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관할하게 하였더라.
23.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총독으로 임명하였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그러나 7월이 되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이며 느다니야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바벨론) 사람들을 죽인지라.
26. 그런 다음에 바벨론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젊은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백성들과 군대 장관들이 모두 애굽으로 도망쳤더라.
바벨론 왕은 그달리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바벨론 왕이 유다 땅에 남겨 둔 사람들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에 잔류했던 사람들 중 이스마엘이라는 사람이
그달리야를 죽이고 애굽으로 도망합니다.
4) 애굽으로 도망한 사람들의 죽음(예레미야 41:17~43:7, 성경 참조)
그때 애굽으로 도망하는 자들을 인도한 사람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었습니다.
유다에 남아 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서 애굽으로 도망합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이들에게 애굽으로 가면
바벨론이 애굽을 침공할 때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지 않고
도리어 예레미야까지 사로잡아서 애굽으로 도망합니다(예레미야 41:17~43:7).
예레미야는 끝까지 그들을 따라가 애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설득하다가
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침공할 때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5.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길을 외면한 사람들
1) 회개의 기회를 외면했다
➀ 히스기야의 회개의 외면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고 했을 때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보여준 모든 것을 바벨론에게 빼앗길 것이며,
히스기야의 자손들 중에 바벨론의 환관이 될 자도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기 생애 동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잘된 일이라며
회개하기를 거부합니다.
➁ 므낫세 시대의 유다 백성들의 회개의 외면
므낫세는 55년 동안 왕으로 있는 동안에
유다 백성들 전체를 우상숭배와 향락의 죄에 아주 깊이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마지막 때쯤에 바벨론에 침략을 받아 잠시 포로 되었다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돌아와 회개를 하지만 너무 늦은 회개였습니다.
이미 유다 백성들에게 죄가 너무 깊이 들어가서
므낫세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➂ 요시야의 개혁을 거부한 유다 백성들
요시야는 모든 우상을 다 없앴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책에 따라 유월절도 회복하는 등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유다가 되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그러나 요시야 혼자만의 개혁이었습니다.
요시야와 그 핵심 측근들만이 애가 타서 하나님을 섬기려 애썼을 뿐,
유다 백성들은 요시야가 무너뜨린 우상을 다시 세우는 등
왕의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 왕 느고와의 전투에서 요시야를 죽게 하셔서
서둘러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고,
요시야가 죽은 지 22년 만에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게 하십니다.
2) 생명의 길을 외면했다
➀ 마지막 남은 생명의 길 : 바벨론에 항복하기만 하면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회개했다면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 때 앗수르 군사들을 물리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바벨론 군사들을 물리치시고 유다를 다시 회복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의 때에 회개하지 않으니,
므낫세 이후에는 유다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십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이 생명을 얻을 길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항복하기만 하면 됩니다.
➁ 왜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셨나 : 광야학교에서 훈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왜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셨을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왜 그토록 애절하게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권유하고 협박하고 애원하셨을까요?
므낫세 이후 유다 백성들의 죄가
몇 년 시련을 당하는 것 정도로는 회복이 되지 않을 정도로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먼 이국땅에서 70년쯤 사는 동안 죄의 습관이 완전히 고쳐지게 하신 후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광야 40년을 지나게 하신 것처럼
그들을 70년간 포로라는 혹독한 광야학교에 넣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➂ 그러나 하나님께 훈련받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훈련받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면 그냥 보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하면 멸망입니다.
그들은 아주 참혹하게 죽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7. 마지막 때의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남왕국 유다 백성들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가 지은 죄의 벌을 다 받으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과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됩니다.
● 묵상 :
그러나 유다 백성들이 고집을 부렸던 것처럼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기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주님의 은혜 속에 살기보다
세상의 즐거움 속에 살기를 더 원합니다.
은혜의 때가 지나가면 멸망의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은혜의 때가 지나가기 전에 서둘러 주님 앞으로 오십시오.
8.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왕하 25:27~30)
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12월 27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친절하게 대우하였고)
28.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대접하여 주면서,
바벨론에서 그와 함께 있는 다른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남은 생애 동안)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왕은 여호야긴에게 필요한 것을, 생계비를
종신토록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날마다 공급해 주었더라.)
27절에서 여호야긴 왕이 포로가 되어 옥에 갇힌 지
37년 만에 풀려나서 왕으로서의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포로 된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므낫세 때에 너무나도 깊이 박힌 죄의 습관이 고쳐지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포로의 고난의 시간이 그들을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회복되게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입니다.
● 묵상 :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는 남은 자들이 되십시오.
주님 오실 때 세상에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주께서도 한탄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두가 다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이때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는 남은 자들이 됩시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 2 부 : 유다 멸망의 원인
1. 유다의 멸망
1) 바벨론의 3차 침공과 유다의 멸망(대하 36:17~21)
17. 하나님께서 갈대아(바벨론)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인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 또 하나님의 성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 또 하나님의 성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궐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20.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백성들이 거기서 바벨론 왕과 그 자손에게 노예가 되어
바사(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70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시드기야의 배반으로 화가 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재차 침공하여(바벨론의 3차 침공)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다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병약한 사람들도 동정하지 않고 잔인하게 살해하였습니다.
성전과 궁전에 있는 것들은 모두 가져가고, 성전과 궁전은 불타 없어졌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2차 침공 때의 사람들이고,
이번의 제3차 침공 때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처럼 끔찍하게 바벨론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에스겔, 하박국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거듭거듭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죄악의 길에만 머물러 있다가
결국 이런 무서운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2) 페르시야의 고레스 왕 때 포로에서 귀환함(22~23절)
22.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왕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시간은 70년 뒤로 흘러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자들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은 믿음이 신실한 자들이었고,
포로 생활을 통하여 더욱 믿음이 신실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역대기는 그들에게 다시 신앙의 공동체를 세우자고 호소하는 일종의 설교문입니다.
2. 유다 멸망의 원인
1) 신앙의 개혁이 일상화(日常化)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동안 요아스, 히스기야 등 몇 명의 유다 왕들이 신앙의 개혁을 행하였습니다.
특히 마지막 신앙 개혁을 했던 요시야 왕은
이전의 그 어떤 왕들보다도 강력한 신앙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의 죽음 이후 불과 22년 만에
유다는 바벨론에게 끔직한 살육을 당하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유다가 이렇게 망한 이유는 이렇게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신실한 왕들의 신앙 개혁이
일회성(一回性)의 개혁으로 그치고,
신앙 개혁의 일상화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신앙 개혁은 그의 아들 므낫세에 의해 곧바로 무너졌고,
요시야의 신앙 개혁도 역시
그에 이어서 왕이 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2) 신앙 개혁의 일상화란? : 언제나 한결같은 신앙
신앙 개혁의 일상화는
왕이 달라져도 신앙 개혁의 흐름이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왕이 나왔을 때는 신실했다가
그다음 왕이 나왔을 때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식이 아니라,
누가 왕이 되어도 신앙의 신실함이 흔들리지 않고 이어지는 것
이것이 신앙 개혁의 일상화입니다.
가령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도
신앙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변해도 신앙의 흐름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신앙의 일상화, 신앙 개혁의 일상화입니다.
3) 하나님을 구하지 않은 실패한 개혁, 실패한 신앙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중에 초기에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았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믿음을 버리고 실패한 왕들이 몇 명 있습니다.
솔로몬과 요아스와 히스기야가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았다가 타락한 왕이고,
요아스는 그를 구해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눈치를 보다가
여호야다가 죽자 곧바로 타락한 왕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다윗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 많은 공로를 세웠으나
그가 15년의 삶을 연장받자 교만에 빠져 타락한 왕입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의 신앙은
하나님의 징벌이 두려워 징벌을 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신앙,
신앙의 원인이 그가 의지하는 다른 사람이거나, 자기의 자랑거리이거나,
두려움 때문에 하는 신앙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다윗 같은 신앙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 중에 하나님을 구한 왕, 하나님을 사랑한 왕은
오직 다윗과 요시야 왕, 이 둘 뿐입니다.
● 묵상 :
➀ 신실한 신앙의 일상화를 이루십시오.
신앙이 이렇게 간헐적으로 뜨거웠다가 다시 식는 식의 신앙은 잘못되기 쉽습니다.
가령 기도원에 갈 때만 뜨거워졌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식의 신앙은
대단히 위험한 신앙입니다.
신앙의 일상화를 이루십시오.
좋을 때도 슬플 때도 변하지 않는 신앙의 일상화를 이루어야만
주님 오실 때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어떤 분들은 전천후(全天候) 신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➁ 하나님을 구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신실한 신앙의 일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는 신앙,
누군가 눈치를 보면서 하는 억지로 하는 신앙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곧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기쁨이 없는 신앙은
언제고 변할 수밖에 없는 때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제 3 부 : 하나님 나라 잔치의 기쁨을 표현한 왕의 혼인잔치
1. 여인의 꿈 :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솔로몬
신부가 간절한 사랑을 담아 신랑을 초청하자(4:16)
신랑이 기뻐하며 그만을 위한 동산인 신부에게로 가서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고,
솔로몬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먹고 마시며 노래합니다(1절)
1)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여 문을 열어다오(아 5:1~2)
(남자)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젖도 마셨으니
(친구들, 합창단)
나의 친구들아 먹어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연인들아) 마음껏 마셔라!
(여자)
2. 내가 자고 있을지라도 내 마음은 깨어 있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네요.
나의 사랑하는 이가 문을 두드리며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여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하는구나.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는 즐거운 왕의 혼인 잔치를 마치고
신부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막 잠이 들려 할 때에 그의 사랑하는 신랑이
“나의 완전한 자여 문을 열어다오”하고 문을 두드립니다.
이미 혼인을 하였으니 신랑은 신부의 옆자리에 있을 텐데
갑자기 밖에서 신랑이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무슨 일일까요?
이것은 신부의 꿈속 이야기입니다.
신부의 꿈속에서 신랑은 머리털이 밤이슬에 젖은 채로 간절히 문을 두드립니다.
2) 여인이 문 열기를 주저함(3절)
3. 나는 이미 옷을 벗었는데 다시 입어야 하나요?
나는 발을 씻었는데 다시 더럽혀야 하나요?
신부는 잠을 자기 위해 발을 씻고 속옷까지 모두 벗은 상태입니다.
밖에 나가려면 옷을 다시 입고 발도 다시 씻어야 합니다.
막 선잠이 든 상태였으므로 신부는 밖에 나가는 것이 조금 귀찮아졌습니다.
밖에서는 그의 사랑하는 이가 계속 문을 열어달라며 두드리고 있는데
여인은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3)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의 부조화 : 마음은 있는데 행동은 안 됨(4~5절)
4. 나의 사랑하는 이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 때에 내 마음이 움직여서
5. 내 사랑하는 이를 맞이하려고 벌떡 일어나서 몰약에 젖은 손으로,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으로 문빗장을 잡았습니다.
이때 신부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부조화를 겪습니다.
마음으로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만 들어도 설레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의 음성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신부의 마음은 신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옷을 입고 발도 새로 씻어야 한다는 것이 귀찮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신랑은 문틈으로 손가락을 넣는 등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4) 문을 열었으나 그는 이미 가고 없습니다(6절)
6. 내가 사랑하는 이를 맞아들이려고 문을 열었으나
그는 이미 가고 없었습니다(혹은, 그는 몸을 돌려 가 버렸습니다).
나는 혼이 나가서(넋이 나가서,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그를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신부는 문을 열었습니다.
조금 늦게 문을 연 것이 조금 미안했는지
손에 몰약을 잔뜩 묻혀서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밖에 신랑이 없습니다.
머뭇거리는 동안 신랑이 돌아간 것입니다.
5) 여인은 넋이 나가서 신랑을 찾지만 야경꾼들에게 봉변만 당합니다(7절)
7. 성안을 순찰하는 야경꾼들이 나를 만나자 나를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성벽을 지키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져갔습니다.
신랑이 없자 여인은 넋이 나가서 신랑을 부르며 찾았습니다.
찾아도 없고 불러도 없으니 결국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다 성안을 순찰하는 야경꾼을 만나서
그의 사랑하는 이를 못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 대신 봉변만 당했습니다.
야경꾼들이 신부를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신부의 겉옷도 벗겨갔습니다.
2.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의 고백
신랑을 찾다가 봉변까지 당한 신부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부탁합니다.
“혹시 내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들었다고 말해주시오”(8절).
신부는 예루살렘 딸들의 이 질문에 대답하며
자기의 신랑이 다른 여자들의 신랑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할 자이심을 봅니다.
1~7절에서는 믿음과 회개의 때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였는데,
여기 8절 이하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참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1) 친구들, 합창단 : 네 신랑이 다른 신랑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아 5:8~9)
8.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여러분에게 내가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혹시 내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들었다고 말해주시오.
(친구들, 합창단)
9. 여자들 가운데서도 어여쁜 자여!
너의 사랑하는 자가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너의 사랑하는 자가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술람미 여인이 신랑인 솔로몬을 사랑하느라 병까지 들었다고 하니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그녀에게 묻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병까지 들었다고 하느냐?”
2) 순금 왕관을 쓰고, 순결한 눈에, 아름다운 향기에(10~13절)
(여자)
10. 나의 사랑하는 이는 희고도 붉어(깨끗한, 말쑥한 외모에 혈색 좋은 미남이어서)
많은 사람 가운데 단연 으뜸이십니다.
11.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습니다.
12. 그의 두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젖으로) 씻은 듯하고, 보석이 박힌 듯 아름답습니다.
13. 그의 두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 같으며,
그의 입술은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 백합화 같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의 신랑의 머리에는 순금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관을 쓴 이는 자기 신랑인 솔로몬 한 사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머리털은 예쁜 곱슬머리에, 눈의 흰자위는 젖으로 씻은 것처럼 순결하고,
그 눈동자는 보석이 박힌 듯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의 얼굴과 입술에서는 마치 향기로운 꽃밭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뚝뚝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부분은 그 머리에 왕관을 썼다는 것과,
순결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오직 예수님만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에게서는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가 납니다.
3) 보기에 심히 좋고 그의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14~16절)
14. 그의 손은 황옥이 박힌 황금 노리개(황금 방망이) 같고,
그의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합니다.
15. 그의 다리는 순금 받침대 위에 선 화반석(대리석) 기둥 같고,
그의 생김새는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으며,
16. 그의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이 사람이 바로 나의 사랑하는 이요, 나의 친구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의 신랑인 솔로몬의 손은 황금이 박힌 황금 노리개 같고,
그의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며,
그의 다리는 순금 받침대 위에 선 대리석 기둥 같고,
그의 생김새는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심히 보기에 좋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솔로몬에게 있는 모든 것이
심히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십시오.
1) 심히 좋고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
술람미 여인의 이 말은
솔로몬이 정말로 그렇게 멋진 남자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이 말이 성경에 포함된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처럼 심히 좋고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이 말이 그저 솔로몬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녀의 이 말이 결코 성경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이 말을 성경에 포함시킨 것은,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히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십시오(아 5:1)
(남자)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젖도 마셨으니
(친구들, 합창단)
나의 친구들아 먹어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연인들아) 마음껏 마셔라!
솔로몬 왕의 이 혼인 잔치는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의 마지막 혼인 잔치를 뜻합니다.
솔로몬 왕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자들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만(1절),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있을 그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혼인 잔치는 그 끝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구원의 기회를 잃고 멸망에 들어가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아직 평안의 때라 할 만한 지금
서둘러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장차 올 마지막 때의 그 혼란을 이길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 것처럼
주께서도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의 사랑에 여인이 마음을 활짝 열은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랑에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다시 오실 때의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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