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가히 ‘서민(庶民)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여당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하고, 야당도 서민을 위한 생활정치를 내세운다.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도 ‘서민의 삶에 온기가 돌도록 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서민의 어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성(百姓)’이라는 말은 성(姓)이 있는 사람을 일컬었다. 아무나 갖는 게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만이 어머니로부터 성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일반 평민들은 성이 없었기에 ‘백성’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을 일컫는 말이 바로 ‘서민(庶民)’이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이다. 갑골문의 ‘庶’는 집에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돼 있다.
‘서(庶)’의 의미는 무리(衆)·평범 등으로 확대됐지만 ‘소외된 자’라는 기본 뜻은 변하지 않았다. 정실 부인이 아닌 첩(妾)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서자(庶子)라 했다. 지배계층의 반대는 서민층이었다. 오늘날 서민은 경제적 의미가 더 강하다. 부(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금대출을 위해 ‘서민금융’이 생겼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 무주택자를 위해 ‘서민아파트’가 건설된다. 가난한 집의 경제를 ‘서민가계’라고도 한다. 중산층·민중·민초 등의 말이 계급이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데 비해 서민은 비슷한 대상이면서도 경제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정치 권력과 서민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맹자(孟子·BC372 ~BC289)의 해석은 의미심장하다.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왕은 어떠할 때 기뻐해야 하느냐”는 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시경·대아(詩經·大雅)편의 구절을 인용해 답한다.
“성군(聖君)인 주문왕(周文王)이 제단을 쌓기로 했습니다. 서민들이 달려들어 열심히 일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완공됐습니다(庶民功之, 不日成之). 힘든 일이었지만 서민들은 오히려 즐겁게 작업을 했습니다. 고대의 성인 군자는 이처럼 서민과 함께 즐거움을 나눴지요(與民偕樂). 그게 바로 왕이 기뻐하는 이유입니다.”(孟子·梁惠王)
정치지도자와 서민이 서로 마주 보고 즐거워하는 것,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최고 경지가 아닐 수 없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