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민박집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나는 날이다.
아침식사를 하며 다음 행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 둘이 온 팀은 영국으로 가서4일정도 머무른 후,귀국을 한다고 하였다.
사실 난 이번 일정에 영국이 빠져있어 좀 아쉽기는 했지만,뭐 내평생 유럽에 다시 가지 말라는
법도 없기에 영국은 살짝 남겨놓고 일정을 잡았다.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있었다.그런데,용모가 조금 범상치 않았다.머리도 짧고 츄리닝 차림이였다.
난 군에서 이제 막 제대하고 혼자 배낭여행을 왔나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 봤더니,마르세이유로 간단다.배낭여행을 왔냐고 했더니,시험을 보러 간단다.
프랑스에 시험을 보러 왔다.흔히 생각하기로 프랑스 하면 미술이나 파티셰 쪽을 많이 떠올리는것처럼
나 또한 그쪽으로 떠올렸다.
그런데.그 친구에게 나온 뜻밖의 말.바로 외인부대 시험을 보러 간단다.
어쩐지 외모에서 느끼는 포스가 좀 남다르긴 했지만,외인부대 시험을 보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나중에 파리로 다시 돌아와서 민박집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그 친구 다시 안왔단다.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온다고 했는데,안 온것을 보니 아마 일이 잘 된듯 싶다.
아침을 먹고,4명은 짐을 챙겨 나왔다.두 친구는 런던으로 가기 위해 북역으로 갔고,나랑 외인부대
시험 볼 친구는 리용역으로 향했다.9시 45분 기차인데,리용역에 도착하니 9시가 되었다.
차표는 예약해 두었지만,유레일 패스를 개봉해야 하는데,도무지 표파는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익스큐즈미,훼어 이즈 더 티켓 오피스?"하니,"오피스?"한다.그래서 예스 했더니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준다.그런데,알고 봤더니 그곳은 이포메이션이다.
무표정한 여자에게,'유레일 패스를 개봉하고 싶다'고 했더니,그 특유의 손가락질을 한 번 하며
저리로 가란다.미치겠다.차 시간은 다가오고,영어로 된 안내표지판도 없고...
겨우겨우 매표소로 가 유레일 패스를 개봉하기 위해 패스를 내밀자,이 직원 '봉쥬르'한 마디 하더니,
뭐라뭐라 불어로만 계속 떠든다.미치겠다.그래서 여권,예매표 닥치는 대로 내 보여 주니 그때서야
"오케이"한다.출발시간은 20분 남았는데,또 이 사람 키보드 한번 누르고 옆사람하고 잡담하고,
화면한번 보고 노가리 한 번 까주고...
정말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죽탱이 한 방 날아갔다.어찌어찌 해서 유레일패스 개봉을 끝내고,
얄밉지만 '오흐브와'를 날려주니,이 자식 생글생글 웃으면서 '오흐브와'한다.
짜식.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더니,그래도 그렇게 웃어주니,방금전의 그 노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다행히 그 친구도 마르세유로 가는 표를 구하고,우린 플랫홈으로 향했다.
조금 후,니스행 기차가 도착을 하고,그 친구의 건투를 빌며,악수와 함께 우린 각자의 길을 향했다.
프랑스 초고속열차 TGV.우리나라의 KTX랑 너무 똑같은 모습이다.KTX가 TGV기술을 이전받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단지,차안에서 김밥이나 도시락을 파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기차를 타고 남쪽지방을 가다 보니,차창 밖 풍경도 조금씩 달라진다.날씨도 조금씩 개어 가고,
발코니에 빨래를 넌 모습도 보이기 시작을 한다.
3시간 정도를 달렸나?바다가 보이면서,조금 씩 절경들이 보이기 시작을 한다.
니스 날씨가 좋다고 하더니,역시 그런가 보다 했는데,왠걸.
깐느정도 도착하니 날씨가 흐리고,비가 퍼붓기 시작을 한다.이런 젠장.
파리에서도 지겹게 본 비를 이 곳에서 또 보다니.
그래도 니스역에 도착하니,조금 빗줄기는 잦아 들었다.
NICE VILLE역.겉보기엔 조그마한 것 같았는데,그래도 꽤 큼직했다.해변까지는 약 20분 정도?
니스 시내를 달리는 트램과 꼬마기차.꼬마기차는 아마 관광용인 듯 싶었다.
니스역에 도착하니 3시가 훌쩍 넘었다.우선 주린 배 부터 채워야 겠기에,역 앞 샌드위치 가게에세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고,달랑 지도 한 장 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니스성으로 올라가면 니스 시내가 휜히 보인다는 말에 지도를 보고 무작정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작년 일본여행 같지 않고.유럽은 좁은 골목길이 많아서 무척이나 헷갈린다.
골목길로 들어가니 재래 시장통이 나왓다.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언덕배기가 나와
그곳으로 올라가면 니스 성이 나올것 같아 발길을 옮기니,막다른 골목.
막다른 골목길에서 보았던,성모상(?).불어로만 쓰여 있어 뭐라고 하는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비는 퍼붓는데,또 그 길을 터덜터덜 내려 올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골목길을 들어서,무조건 해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걷다 보면 나오겠지 하는 무대뽀정신으로
걷기 시작했다.좀 있으니,드디어 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고.가만히 보니,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바로 그 곳이 성터인 것 같다.
우산을 받쳐들고 한계단 두계단씩 옮기는 걸음은 무척이나 힘겨웠다.더군다나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평상시엔 운동도 안 하던 그 부실한 하체를 이끌고 가니 말할 나위 없었다.
한참을 올라가니,동야인 커플이 있었다.평상시 난 딱 보면 한국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근거도 없는 자부를 하고 있었다.
그 커플을 보니,생긴걸로 보아 일본인은 아니였고,차림새로 보니 중국인도 아니였다.
나도 흘끔흘끔 그 들을 보았고,그 들도 나를 보았다.사진을 한장 찍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무슨근거인지는 몰라도 난 한국사람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저 한국분이시죠?"
돌아오는 대답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我不是!"
"I`m sorry"를 모기보다 조그만 소리로 외치며,황급히 그 자리를 이동했다.
이 이후로 난 동양인이라도 조용히 옆에가 말을 들어 본 후,영어를 써야할 지 한국말을 써야 할
지를 판단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드디어 성터에 도착.
니스성터에서 바라본 니스해변.서양 남자아이들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이 이후론 좀 더 뻔뻔스럽게
국적불문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니스해변에 내려오니,아직 바캉스 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비가와서 그런지,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옆에 보니,어렸을 때 계곡에 놀러가면 돌맹이를 던져 물에서 몇 번 튀기나 하는 그 놀이를
하고 있었다.
배낭을 멘 어깨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해서 휴식도 취할겸 어깨도 풀겸 나도 옆사람을 따라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그리고,왕년의 명 사이드암 투수 이강철을 흉내내며 각도 조절하며
초구를 작렬했다.결과는 제대로 튀겨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직 몸이 안풀려 그런것이라 애써 믿으며 2구 3구를 연거퍼 던져보지만,애꿏은 해변의 돌멩이만
물속으로 이동시킬 뿐이였다.
나이가 드니 돌멩이도 날 괄시하나?ㅜ.ㅜ
조용히 앉아 바다만 바라보다,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모나코로 이동하기 위해,기차역으로
이동을 했다.
니스역에 도착해 도박의 왕국 모나코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
모나코 가는 도중 해변가.완전 해변가로 붙어 가는 이 코스는 경치가 빼어난 곳이 많았다.버스로 가면
더 좋은 길이라는데,난 그냥 기차를 탔다.
드디어 모나코 몬테카를로 역에 도착.역이 터널내에 있었다.아마도 산속에 굴을 파서 이곳에 역을 만든듯 하였다.아래는 모나코왕궁 성벽.궁에 들어 가 보진 못했다.
사실 몬테카를로항 야경이 참 멋지다던데,그 야경은 못보았다.하지만 나라 전체를 보면,절벽아래 위치
해 풍광이 참 좋은 듯 싶었다.
다시 니스로 가는 기차에 올라 탔다.이곳에서 밤차를 타고 드디어 이태리로 넘어간다.
혼자 있으려니 기다림도 힘겹다.뭐 나중에야 익숙해 지긴 했지만.
짚시가 구걸을 다닌다.돈이 없으면 먹을것이라도 달라고 구걸을 하는데,나를 보더니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쌩까고 그냥 간다.자기랑 같은 과라고 느껴서 그랬나?우쒸~
드디어 2시간의 기다림 끝에 피렌체행 야간 열차에 탑승.우리칸은 4명이 정원인 칸이다.
난 위층에 자리잡았고,내 밑에는 인도인 부부가 탑승을 했다.
사다리가 있다.난 당연히 사다리가 있으니,그냥 올라가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배낭을 짊어진 채
올라갔다.그런데,갑자기 사다리가 흔들리는가 싶더니,그냥 뒤로 나자빠졌다.다행이 탁월한 운동신경
덕에 잽싸게 뛰어내려 위기는 모면했지만,이태리 구경가기 전에 천국의 문부터 볼 뻔했다.
인도인 아주머니가 괜찮냐고 하신다.그러더니 친절하게 사다리를 놓아주신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쪽팔려서 뭣적은 웃음을 지으며 올라갔다.
그런데,좀 있으니,아주머니가 아저씨한테 뭐라뭐라 하니 아저씨가 내 자리로 와서 자다 떨어지지
말라고 낙상방지용 고리를 채워주신다.'쌩유'를 날려주며 다시 한 번 눈웃음.
참 친절한 부부들이다.매너도 참 좋고.
그런데,뒤늦게 탄 프랑스 놈 하나,이거 아주 제대로 진상이다.
자려고 누워 있는데,갑자기 문을 드르르 열더니,'봉주르'하며,예의 우리나라에서 뒷골목에서나
가끔 보이는,껌좀 씹으며 다리떠는.그런 폼으로 요란스럽게 입장을 하여 주신다.
그러더니,이 친구 계속 들락거리며,밖에서 계속 떠들고,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로 뭐라 지껄이며,
여자들에겐 계속해서 작업을 거는 것이다.
결국 내 인내심은 한계를 느끼고,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는 그간 잘 쓰지 않았던 그 말 한마디,
"에이 개나리 밭에 십장생"이 절로 튀어 나왓다.뭐 이렇게 해 봣자 어차피 알아 듣는 사람도
없을텐데...
기차가 출발을 하고,밤은 깊어 한걸음씩 이태리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