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처님 오신날은 양력으로 5월 25일로 미국에서는 메모리얼 데이다.
이 날 미귝은 여름 휴가가 시작되는 날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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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큰스님께 갓 출가한 어린 스님이 눈을 반짝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스님,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떠 의미입니까?"
"구름 한 점이 일어난 게야."
구름 한 점이 생긴 거라고?. 부처님은 사방을 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선언하셨는데.. 구름 한 점이 일어난 것 뿐 이라니.
내가 태어난 의미 역시 그런가?
서너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님,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거야 생겼던 구름이 사라지는 거지.^^." 하신다.
자신이 출가한 이유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려워 출가를 감행했는데..
나의 어머니 죽음이란 사건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중요하기는 하나 별 의미는 없다는 것인가..
깜깜해져서 그 자리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서 있었다.
만일 나고 죽음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2600여 년 전에 인도의 조그만 성에서 왕자로 태어난 석가부처님 탄생을 매년 일주일 이상 풍성하게 축하하는 것인가?.
석가모니 탄생은 일반 사람들의 탄생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요란한 가운데 화려하게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유는 그가 부처님이 되셨기 때문이리라.
그런즉 부처님이 된 성도일이 탄생일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축하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부처님이 되었다는 성도일은 언제인지도 잘 모르며 지나친다.
유엔에서는 Vesak Day라 하여 남아시아 불교에서 5월 보름날을 부처님 오신 기념일로 정했으니, 올 해는 5월 12일 화요일 행사를 한다.
한국을 포함한 북아시아에서는 음력 초파일인데 남아시아에서는 음력 보름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가부처님은 한 분인데 이유가 무엇이든 태어난 날짜를 다르게 정한 채 행사를 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불자들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4월 초파일 행사를 절에서 치르고, 유엔에서 벌이는 베삭 데이 행사에 걸림 없이 참석한다는 것이다.
큰스님이 말하듯 태어남은 구름 한 점 일어난 것뿐이니, 태어난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태어남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부처님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람이지만 사람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겉으로는 여느 사람처럼 늙고 병들고 80살에 돌아가셨지만 내면은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
불자들은 부처님 삶을 최고 가치로 알기에 불자의 목표는 부처됨 [성불]이다.
그런 부처가 되려면 엄청난 수행이 있어야 하겠지.. 해서 부처님이 되었다는 성도일이 다가오면 불자들은 축하보다 나도 부처가 되는 길을 걷겠다는 다짐으로 용맹 수행을 한다. 겉으로는 침묵처럼 조용한 가운데 안으로는 용광로 같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한편 석가모니부처님 탄생은 우리처럼 아기로 세상에 나온 사건이다.
29년 후에 부처님이 될 분이 그날 태어났으니 불자들은 환희 속에 그들의 기쁨을 모두가 즐거워할 만큼 매우 화려하게 표현한다.
불자들은 오월이 오면 연등을 달고 초파일이나 보름은 물론 한 달 내내 부처님 오신 날인 듯 축하로 보낸다.
사람이면서 사람을 벗어났다고 하는데 앞의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는지..
사람은 몸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결합해 있는 존재다. 하여 인간인 나는 몸과 정신이 있으며 그것의 주인이라고 한다.
몸과 정신은 존재이며, 그것을 인식하는 자는 내가 되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문제는 내가 대상을 접촉하며 인식하는 자인 주체와 대상이 우리가 인식하듯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SF 영화에 나오듯 방금 전까지 매우 섹시하게 접촉되던 자가 외계 동물처럼 괴기하게 변해 마주하고 있다면.. 어느게 참 모습인가?
부처가 되었다는 함은 지금까지는 나요, 나의 것이라고 여기던 이 몸과 정신이 실은 내 것이 아님을 깨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내 몸이요, 내 의식으로 알고 지내왔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내 몸이 아니고, 내 정신이 아님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모니는 29살에 부처님이 되어 80세에 돌아가셨다는 데 부처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부처가 되기 전에는 내가 몸과 마음의 주인처럼 살았는데, 그 이후에는 살아가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 할 뿐으로 살았다.
그것을 부처라 한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밥을 먹고 나는 절에 간다'라고 하듯이 행동의 주인인 나가 있어, 그가 모든 행동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잠에서 깨어난 자를 나라고 하며, 절에 가는 자를 나라고 한다.'
주체인 나는 본래 없고, 행동하는 자를 향해 '나'라고 이름할 뿐이다.
행위가 있기 전에 나는 없다.
무슨 소리인지.. 어떻게 이 몸과 주인인 내가 없을 수 있고, 내가 없으면 누가 행동을 컨트롤 할 수 있는가? 하며 의심하는데..
그렇게 의심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바른 의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부처라 하면 '행위하기 전에 나는 없고, 행위가 일어나면 그것을 나라고 할 뿐'이라고 분명히 보고 있다.
콘트롤은 평소 지키고 있는 계와 율이 기준이 된다.
왜 불자들은 부처가 되려 할까?.
부처가 되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느끼면 굳이 부처가 되려고 수행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으로 떠나고 싶다면 그때 부처를 떠올리고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부처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 어딘가에 있다는 극락정토에 머물고 있는 분이 아니다.
이 세상에 머물고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있는 분이다.
오월이 되면 자연으로 나아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온갖 꽃들을 만나서 즐길 수 있는 것은..
꽃과 하나가 되면 짧은 시간이나마 일상에서 마주하는 온갖 시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일상에 있으면서도 스트레스나 시름에 물들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시원할까.
대부분의 불자는 부처가 되려는 꿈 대신에 세상에서 훌륭하고 유명한 자가 되기를 바라고, 부처님 품 안에서 안심을 느끼며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부처님은 존경과 축하를 받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고민을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길을 가르치셨다.
석가부처님은 우리 위에 있는 분이 아니라 형제나 동료처럼 평등하게 머문다. 우리는 부처님께 한없는 존경을 보내지만.
어린 스님은 생각했다. 불교는 흔한 구름 한 점이 부처님이라는 유일무이가 되는 종교라고.().
첫댓글 구름 저편에는....무엇이 있을까요? 글 잘 읽고 갑니당!
그림쟁이라 그런가?.
희야 동은 보라는 건 안 보고.. 공부시간에 딴 짓하는 악동처럼..
안 보이는 걸 보려고 해요^^.
구름 얘기하면 구름만 보면 되는데..
ㅎㅎㅎ
그렇다는 야그입니다.()^^.
사람?
누가? 사람? 이라구 했나?
지가... 지를... 만든거 아닌가?
조용히
그자리에 있다가 가는거 아닌가?
뭔? 큰 의미를 두는건... 뭐~여?
'생각'이 만들어 낸..
이 세상을.. '착각'에서 벗어나려해
자꾸.. 속는 느낌이 들어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