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노래
오길순
아기의 노래는 봄 강물처럼 낭랑했다. 얼음 같은 긴장도 녹일 듯한 힘이 있었다.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부르다가 ‘하하하하’ 마무리 지을 때는 단풍나무 잎 새를 바삐 날아다니는 산새들의 웃음처럼 경쾌하게 들렸다. 음악가인 외할머니 유전자를 받았을까? 시를 쓰는 친할머니 감성을 이었을까? 아직 말도 못하면서 다양한 손짓으로 흥을 돋우는 두 돌아기의 재롱에 잠시 코비드19의 불안도 잊혀졌다.
“어머니! 아기가 지은 노래예요. 신나면 이렇게 랄라랄라 하면서 잘도 불러요.”
며느리가 보내온 합창동영상이 보기 좋았다. 아기 따라 함께 노래하는 가족들의 합창이 행복의 언어 같았다. 입추가 지나도록 세상과 격리되다시피 지내고도 저토록 웃음꽃 가득한 모습이 그저 고마웠다. 긴 고립의 시간을 노래와 웃음으로 견딘 지혜가 사랑스러웠다.
지난 삼월쯤이었다. 아들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 이 곳 의료시설은 우리나라 같지 않아요. 코비드 19 환자들이 이대로 늘어나면 수용시설이 부족할 수도 있어요.”
조용한 억양으로 어미를 위안하려 애썼지만 세계적 유행상황은 이미 알려진 바였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환자가 발생한다는 소식에 아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친척들도 아들네 안부를 걱정스레 물어왔다. 거침없는 바이러스는 지구촌 종말이 올 듯, 혼란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어떤 시(市)도 공황상태인데 파급력이 몇 배라는 유럽, 더욱이 영국을 떠올릴 때면 의연하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지. 태양을 바라보며 침착해야 했다.
16세기 유럽의 서민들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다. 신을 믿었던 때문이다. 인구의 삼분의 일이 페스트로 희생되어도 서로 위안하며 순간을 견뎠다. 불굴의 의지 같은 의연함이 돋보인다. 몽테뉴는 그 시절을 삶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있을 신의 뜻이라면 생명도 아깝지 않았나 보았다. 영화 <타이타닉>호가 침몰위기에도 음악을 연주하며 죽음을 견디더니 그들의 의연함은 신에 대한 경외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영국은 NHS가 의료를 맡는다. 국영공공의료기관이다. 임신에서 출산, 아기의 성장까지도 국가가 돌보아준다. 그런데 총리까지도 사경에 넣은 코비드19 앞에서 공공의료의 개선점이 나타났나 보았다. 평화 시에는 넉넉한 시설이 유사시에는 확충이 다급한 것 같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에 스러지다니, 코끼리 같은 거구가 모기 침에 넘어지듯,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는 역병의 논리가 메시지로 들어올 때면 격리만이 살길이라며 문을 닫고 공포를 견뎠다. 목련이 진 자리에 녹음이 짙푸르러도 무심에 익숙해졌다. 단풍 들기 전에 바이러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어쩌다 길을 나서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썼는지 서로를 힐끗거리곤 했다. 하늘을 맘껏 숨 쉴 날이 언제 쯤 다시 올 것인가.
“아들아, 마스크만 잘 써도 예방이 된대. 아기들도 꼭 마스크를 씌워.” 어미는 애달픈 마음을 누르고 당부했지만 한 겹 마스크에 기댄 현실은 늘 안타까웠다. 지구촌을 거미줄처럼 엮었던 항공노선도 멈추니 세상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지난해만 해도 이웃 나라의 역병소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본색을 드러냈을 때, 악마의 모습이 그러한가 싶었다. 상상을 초월한 전염력에 목숨이 검불처럼 스러져나갔다. 소중한 목숨이 아까워서 모두들 발을 굴렀다. 암담한 현실이라니. 그런데도 방방곡곡 의료진들은 역병이 창궐한 곳으로 달려갔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데 의연히도 몸을 던졌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우스가 그러할 것 같았다. 행주치마 아낙네들이 임진왜란에 나섰다더니 장비도 없이 치료에 전념하는 의료진들이 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처럼 거룩해 보였다.
버들가지/움 튼 지가 언제인데//아직도 이 풍진 세상인가//앉아서 한탄할 새 없다/절망도 눈물로 닦아내고/방호복도 없이 역병의 동굴로/사자처럼 돌진한/간호사들 의사들 자원봉사자들//하늘과 땅이/몰라주어도 좋아라/소중 한 것은/오로지 생명 뿐//꺼져가는 심지 활활 돋우고 싶을 뿐//세계 전쟁처럼 선포된/죽음의 골짜기로/끝없이 달려간/그 많은 히포크라테스들//짓무른 상처/새살 돋도록/닦아주고 일으켜 세워준/거룩한 아스클레피우스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아스클레피우스(오길순)
2020년, 의료진의 숱한 인류애를 보았다. 날마다 훈장을 올리고 싶은 마음 조촐한 시로 적어보았다. 훗날 그들의 이타심이 역사의 거울에 영롱한 별처럼 비추일 것이다.
아들은 본디 책임감이 강했다. 이방인 가장에게 역병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기댈 곳 없는 어깨가 얼마나 황당할지 어미는 애만 태웠다. 지혜로운 며느리와 돌돌 뭉쳐 살아낸 지난 날,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때로 눈물겨운 날도 있었다.
몇 년 전, 며느리와 아기가 귀국했었다. 제 남편 학업에 방해될까,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피난 온 셈이다. 돌아가던 날, 공항에서 겪었을 일은 늘 마음 아리다. 짐까지 늘어난 귀가 길에서 제 남편이 공항에 없을 때의 당황이란. 마중을 나오던 아들이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고장으로 긴급사태가 되었나 보았다.
텅 빈 공항에서 낯선 이들이 흘낏거려도 옴짝할 수 없었을 일고여덟 시간. 젊은 여성이 갓난아기와 견뎠을 어둔 밤이 너무도 길었을 것이다. 그 새벽 지인의 차로 달려온 아들을 본 며느리. 빙하의 강에 이사한 오리부부가 두 발이 얼까봐 발싸심하듯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이 더러 있었다.
다행히도 아들네는 두 아이를 두었다. 코비드 19로 학교와 놀이터에서 격리되었어도 형제는 외로움을 모르고 지냈나 보았다. 터울 큰 형이 보호자처럼 놀아주니 아우는 베짱이처럼 노래를 불렀나 보았다. 랄라!랄라! 스타카토까지 넣어 부른 가족합창곡은 아비까지 재택근무 중이니 더욱 신이 났을 것이다.
해외의 삶은 애국의 길과도 같았다. 고국의 분위기에 따라 희로애락도 비례되었다. 모국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을 할 때, 해외 거주민의 애국심도 높아질 것 같았다. 특히 외국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늘 고심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훌륭한 민간외교관처럼 여겨졌다.
영국인들은 평소 의연해 보였다. 유모차에 비가 내려도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육아법인가 보았다. 혹은 하루에도 여러 번 내리기도 하는 가랑비가 일상을 의연하게 했나 싶었다. 웬만한 거리는 배낭을 메고 우의를 입고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게, 비 오는 날의 풍경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의연함이 지나친 것 같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코비드19로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제야 마스크 쓰는 것을 법으로 정했다니 자유의 대가는 큰 희생이 기다리고 있었나 싶었다.
십여 년 전 아들이 떠날 때, 곧 돌아올 줄 알았다. 군 복무 후 복학했을 때 아이엠에프의 후유증이 폭탄처럼 기다릴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 많던 일자리는 다 어디로 갔는가. 수십 장 원서지원 끝에 얻은 일자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문득 떠나겠다고 말했다.
결혼한 가장이 작은 적금통장 하나 들고 떠나는 뒷모습에 어미는 휘청거렸다. 공항에서 돌아올 때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와 얼싸안고는 말없는 눈물로 기원했다. 어려운 시대 자식을 대양으로 내보내는 게 죄인처럼 여겨졌다.
아직은 갈 길이 멀 것이다. 그래도 아들의 성심을 믿고 있다. 그동안 보건경제학 분야의 논문을 국제학회에 다수 발표했다. 그래서일까? 지금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교수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코비드 19에 대한 자료까지 연구한다니 인류를 향한 한 줄기 빛인 듯 아들을 향한 기도가 간절하다. 우환 중에도 며느리는 박물관 번역서<<편견과 싸우는 박물관>>(리처드 샌델 지음. 고현수, 박정언 옮김. 연암서가, 2020,6,20)를 상재했다. ‘사회적 정의를 이루는 박물관’에 공헌해 온 원작자의 뜻을 살려 박물관학계의 필수이론서로 정착되리라 기대를 해 본다.
코비드19 확산 소식이 아직도 들려온다.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방패이시다.’를 외우면 의연해지곤 한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편118:22까지 암송하면 세상 평화가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 랄라! 랄라! 하하하하! 아기와 함께 합창을 하다 보면 단풍나무 숲을 넘나는 새들처럼 가족들도 상쾌해질 것이다. 저 찬란한 태양이 우리들 머리를 비추는 한, 너와 내가 즐겁게 마주했던 그 옛날이 꼭 돌아오리라 믿는다.
<<다시 웃는 제대 군인>>(국가보훈처. 2020.10. vol.175)
오길순(수필가, 시인, 동화지도및구연가)
1999년 7/8월호 <<책과인생>><삼베홑이불>당선
2000년12월호 <<한맥문학>>시<까치는 어디로 떠났을까>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