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보조자의 한 말씀 평화의 사도 2022-07,08 p32-37
프란치스칸의 길: 하느님 영원함에 참여하는 참된 자유의 길
우영성 안토니오 | 작은형제회 | 광주지구 영적보조자
예전에 대전 목동 본당 주임을 할 때이다. 당시 성당 들어오는 큰길에 성당을 안내하는 간판이 작아서 큰 것으로 바꾼 뒤 얼마 안 되어 주일미사 때 신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성당에 오시면서 큰길에서 성당 안내 간판을 본사람 손 한 번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성당 안내 간판이 있었어?"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다들 땅만 쳐다보면서 사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게 없죠! 가끔 위도 보면서 삽시다!" 사실 세례를 통해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 '영에서 태어난'(cf. 요한 3, 7) 사람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에 속한 사람들이면서,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처럼(cf. 요한 3.7)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현실의 상황 앞에서 우리는 자주 땅만 바라보고, '땅의 것들'에 집착하면서, 때로는 그것에 사로잡히면서 걸어간다. 사실 각박하고 거친 세상과 세상의 것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어려움, 시련, 병고 등이 우리를 땅만 바라보게 하기도 하고, 땅의 것들에 사로잡히게 하고 집착하게 하면서 '땅의 사람'으로 머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땅 위를 걸어가면서, 땅의 것들을 사용하면서도 참 자유로운 이들이 있다. 내가 장성에 와서 다양한 장례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중에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 장수복 마리아 자매가 참 많이 기억난다. 그분은 1979년에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시고 서약하신 지 40년이 되는 해인 2021년에 세상을 떠나신 분이시다. 사실 내가 광주지구형제회 영적보조자로서 활동하는 중에 이분은 특별배려회원이셨던 분이시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돌아가시자, 그분의 따님(사랑의 시튼 수녀회 수녀님)이 어머니께서 평상시 자신의 장례 때 1회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면서 일면식도 없던 저에게 직접 전화를 하여 당신 어머니 장례미사를 부탁하셨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가 예전에 본당 주보에 기고하셨던 글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그분의 글을 읽고 난 후, 그녀의 교적이 있는 본당 신부님과 조율한 후에, 장례미사에서 참석해서 기꺼이 강론을 한 적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참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았는데, 그녀가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이 되어서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체험 이야기였다. 그녀는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지원한 뒤에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칙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과 성체를 자주 접하면서 “복음과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어 함께 사시는 분' 덕분에 우리의 일상의 순간들이 '하느님의 영원성 안에 함께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주님이 주신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바라보면서 감사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렇다. 그녀는 이미 이 땅에서, 자신의 일상의 순간에서 '하느님의 영원성 안에 함께하는 사람'이었고, '영원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간 사람이었기에 죽음의 순간에 '하느님의 영원성'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미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느님의 영원성을, 즉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땅의 것들' (시기, 질투, 세상 걱정, 인간관계의 복잡함, 질병, 아픔, 어려움 등)이 무슨 제약이 되겠는가? 땅의 것들의 절정인죽음마저도 '하느님의 영원함 속으로 들어셈'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데 말이다. 그렇다. 이런 이들은 땅과 세상의 것들을 '하늘의 시각'에서 바라보기에 '선물'로써 감사하게 받고 사용하지만, 그것들에 집착하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관리자로 잘 나누면서 살아간다. 이들은 하늘을 닮아가는 이들이기에 땅과 세상의 사소한 것들로 아웅다웅 다투거나 시기질투하며 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약함에 대해 때론 견디고, 때론 침묵하고, 때론 손해 보는 듯 품는다. 이들은 '하늘의 사람'이기에 이 땅과 세상의 모든 것, 특히나 미미하고 무가치하게 여겨졌던 것들(가난한 이들, 작은 무생물조차)조차 하느님 안에 그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이들이기에 모든 것을 소중히 바라보고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자신이 이들-이것들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고 그들을 기꺼이 '형제, 자매'로 부르고, '형제, 자매'로서 다가가고, 머물고, 함께한다.
사실, 프란치스코가 이런 '참된 하늘의 영원성과 연결된 자유의 길을 걸어갔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역시 처음에는 회개하기 전 '땅의 것들'을 추구하고 거기에 사로잡히기도 집착하기도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주님 친히 그에게 '방향을 돌리도록'(회개) 섭리하셨고, 이후 '내려놓기'와 '소유 없이'의 여정을 걷게 되는데, 이는 곧 '하느님의 영원성'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아버지와 결별' 사건에서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저의 아버지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기에, 아버지를 저토록 노엽게 하는 돈을 돌려 드리고 아버지의 소유인 제가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 일체의 옷가지들까지도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부터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세 동료 20). 그렇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결합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그는 나환자들의 외모'에서 역겨움을 느끼고, 거리두기, 회피하기 등 '땅의 일반적인 시각'을 내려놓게 되었고, 오히려 그들을 섬기면서 “차츰차츰 육에서 영(靈)으로 넘어갔다" (211), 이후 그는 온 세상을 수도원'으로 삼고,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인 피조물과 함께 '영원하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만나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선의 대상인 모든 사람에게 '작은 형제'로서 다가가고 함께 걸으며, 이 땅과 세상의 일상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하심과 함께하심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면서 참으로 하늘의 사람', '하느님의 영원성'을 살아가는 사람의 거대한 '자유로움'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이 땅에서부터 '하느님의 영원성을 살아간 성인이기에 죽음마저도 '자매'로 당연히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프란치스코가 걸어간 이 길,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이 프란치스칸의 길은 참으로 '하느님의 영원성'을 이 땅에서,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이며,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길을 걷는 이들, '하느님의 영원한 자유'에 초대된 이들이다.
가끔은 우리는 말한다. “저 사람은 참 자유로운 사람이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야!"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무책임한 사람으로 여기는 그런 '자유'의 모습이 있지만, 성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준 자유는 진정한 '하느님의 영원성'에 기반을 둔 자유이기에 작고 소박한 우리의 일상에서 '하늘의 영원함'을 마음에 품고, 그 안에서 우리의 일상과 이 땅과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고, 때로는 가난하고 작은 이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형제, 자매가 되어 주고, 세상의 사건들과 현실을 하느님 안에 바라보면서 참여하고 연대하는 적극적인 '자유'이다.
우리 프란치스칸의 길, 참으로 복되고 복된 길이며, '하느님의 영원성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참된 자유의 길임을 자주 되새기면서 '하늘을 자주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