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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올라 온 질문글을 소개하여 봅니다.
이견이 있으시면 댓글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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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의문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래의 답변은 온전하지 않을 수 있는 사견(私見)의 답변일 뿐이니, "이런 시각도 가질 수 있구나"라는 참고로만 하시고 평온한 일상의 생활에 흔들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름의 답변을 드려 볼까 합니다.
질문1) 저는 예지몽을 잘 꾸는데요,
1) 답변에 앞서 권투 경기에서 '기본자세'라는게 있습니다. 양발의 위치는 앞뒤로 균형을 잡으며 힘쎈 발을 뒤로 하고, 양팔은 굽혀 들고 상부와 머리를 보호하면서 힘쎈 손을 뒤로하여,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며 승리를 위해 공격을 준비하는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종류로는 잽, 훅, 스트레이트, 스텝 등의 자세를 상황에 적절하게 재빠르게 구사하여 항상 중심을 잃지 않고 기본자세를 유지하며 경기를 한다고 합니다. 물론, 헛점을 보이거나 중심을 잃을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데미지(damage)를 입기도 합니다.
2) 삶을 대하는 마음자세 우리는 삶의 당사자로서 권투경기의 기본자세처럼 안정된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기교를 구사함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미숙함으로 세상살이에서 여러 현상들로부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며, 어떤 생각과 일을 하거나 함께하는 구성원들에게나 모두가 만족하여 원만할 수 있는 현명한 처세(處世)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삶에서 평화를 기대 할 수 있기도 합니다.
3) 욕구의 원천 깊은 사념에 들다보면, 삶에서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내재된 욕구의 원천을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 가만히, 현재 주어진 모든 아무런 생각과 행위를 중단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케 하는 근원적 욕구를 쫒아가다보면, 예시적인 표현으로 암흑의 곳에 태양 같은 둥그런 욕구의 원천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태양에서 한 줄기 회오리처럼 솟아 일어나 우리의 생각 속에 무엇인가 하도록 '존재케 하는 근원적인 소스(source)'가 제공됩니다.
4)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욕구 이 욕구가 태초의 우주가 존재하는 근원적인 욕구라 할 수 있으며, 모든 생각과 행위를 일으키는 원천으로서 '만물에 내재 하는 스스로 존재케 하는 근원적 성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스된 욕구에 의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구체적인 생각을 구현하게 되며, 그 종류로는 '밥을 먹을 것인가?, 잠을 자야 할 것인가?,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놀아야 할것인가?, 친구를 만나야 할것인가?,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인가?' 등등의 욕구로 구체화 하면서 해소를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고 선택한 행위를 하게 된다 할 수 있습니다.
5) 욕구의 포괄적인 이해 이 근원적 성질은 자신이라는 존재에게만 내재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도 내재된 변화를 내게하는 '자연의 성질'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주의 모든 존재는 내재된 욕구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미래적 삶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 안에도 우주의 본성인 '스스로 존재케 하는 근원적 성질'이 내재함으로서 욕구에 의한 생각과 행위를 갖게 되는 동안 삶을 갖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고뇌의 원천적인 이해로 소멸 '깨달음'이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할 수 있는 깊은 사념을 통하여 내재된 본성을 발견하고, 생각의 영역에 구체화 하여 일체화 하고, 미래적 삶에 적용하고 구현함으로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는 삶에서의 모든 대상으로서 그들 간(間)에 주어진 (1)현실과 (2)고뇌와 (3)삶의 의미는 바로 만물에 내재된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 함에서 스스로 갖게 되는 모든 사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태초의 성질이 분리되어 내재함으로 존재하는 이유로 동질성과 만족을 추구하는 동안 삶을 갖게된다 할 수 있으므로, 다가오는 현상에 대하여 그 정당성에 대하여 구분하고 인정할 필요성이 있기도 합니다.
7) 욕구에 의한 기억 또, 이 '욕구'라는 것의 이면(裏面)을 들여다 보면, 욕구가 생기는 원천을 만날 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 공간, 시간이라는 정지된 평면의 3자(者)를 만날 수 있는데, 이 3개의 값으로서 성립된 제 4의 자(者)라 할 수 있는 '힘 또는 의지'라 할 수 있는 욕구라는 것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 욕구에 의하여 생각의 영역인 혼(魂)의 영역에 현상으로 구현되며, 이것을 기억이라는 저장기능을 통하여 영화처럼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라고 인지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8) 저장된 정보에 의한 시간 그러므로, 이러한 유(有)에 대한 시간적 개념은 외부의 것이라기 보다, 오직 순간이 저장된 우리의 기억에 의존되어 인식되어진 불완전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실재는 비존재(非存在)라 할 수 있는 오직 순간이라는 평면의 우주이나, 순간이 저장된 기억에 의존되어 과거.현재.미래라는 (3世)의 시간이 있는 입체의 세계로 인식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9) 꿈의 실체 꿈이라는 것은 생각의 영역에 구체화 되지 않은 잠재의식 속에 드러나지 않은 욕구가 수면중에 드러나 현실처럼 영상화 되는 것을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꿈이라는 것은 생각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리가 사물에 대한 잠재된 이미를 동원하여 꿈으로 생각처럼 일어나는 가상의 현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꿈에 나타나는 사물이나 현상으로서 아이, 여자, 남자, 할아버지, 할머니, 귀신, 물고기, 바구니, 피, 싸움, 불, 자동차, 동물 등등의 사물에 대하여 갖게된 감정적 이미지가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가, 해소되지 않은 욕구가 해당되는 이미지를 불러 영상화 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 예지몽(叡智夢)의 의미 사람들은 이러한 꿈 중에 예지몽이라는 의미를 두어 개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과거의 축적으로 현재가 되고, 현재의 축적으로 미래가 성립된다는 논리적 타당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갖는 삶은 이러한 논리에 의하여 현재의 삶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우리는 우주의 실재인 이 순간의 벽을 뚫을 수 없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것은 오직 생각 속의 내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고 일어나 기억되는 꿈이 있다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런가하고 불안감을 가질 때도 있기는 하나 나가서 일을 안 볼수도 없고, 꾸었던 꿈이 있다면 하루를 보내다가 어떤 원치 않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되짚어 보아 '꿈 땜인가?'라고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11) 예지몽에 대한 정의 예지몽(叡智夢)이라는 것에 대하여 정의를 하자면, 과거에 소스된 욕구가 생각이나 현실에서 완전히 만족스러움으로 해소되지 않아 내적 심리로 남아 자리하게된 잠재의식에 의하여 나타나는 꿈 중에서 현실에서 예지된 또는 예상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꿈을 예지몽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실에서도 주의력에 따라 얼마든지 예견되는 현상과 같은 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 예지몽에 대한 정리 그 자신의 잠재된 과거적 심리상태가 영화처럼 가상의 현실인 꿈으로 나타날 수는 있으나, 꾸었던 꿈과 현실이 똑 같이 동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 중에서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추론을 가질 수 있듯이, 꿈도 이와 같이 잠재된 심리에 의한 추론된 가상의 영상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 의문에 대한 답변 님께서 꾸신 꿈이 다음 날 똑같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은 심리학 용어로 '데자뷰deja-view 현상 또는 기시감(旣視感)'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기시감의 원인을 굳이 찾아본다면, 과거의 경험들에서 욕구가 생각과 현실에 만족스러움으로 해소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어 강박관념 또는 불안심리로 발전하여 지배를 받게 되어, 현실적인 감각을 상실하게 되어, 시간적인 현실이 구분되어 직시되지 않아 '기억의 착란현상'을 일으켜 꿈이 먼저인지, 현실이 먼저인지, 현실이 꿈이었는지의 왜곡된 현실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국어사전) 기시감 [旣視感] : ①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 등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았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
14) 기억의 착란현상에 의한 대처 방법 제의
결국, 기시감이라는 증상은 강박 또는 불안한 심리에서 기인된다고 볼 수 있으며, 불안한 심리는 해소되지 않은 욕구가 기형적인 잠재심리로 자리잡아 지속적으로 생각을 지배함에서 비롯되는 현실감각의 착란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욕구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의 심리는 의기소침하게 되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박심리가 비대하게 크지는 이유로 자존감이 상실되게 되며, 누군가 수근거리거나 웃거나 등에 대하여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이는 불필요한 오해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이러한 심리가 크게 작용하게 되면 환청, 환시 등의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현재의 생각과 행위의 의미가 미래의 원하는 결과를 위하는 과정에서 주어진 현재의 삶으로 볼 때에, 현재에 모두 해소가 되지 않음은 당연히 있게 마련인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미래적 삶에 대한 걱정은 조금씩은 품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적 삶에 필요한 이런저런 생각들은 순서를 정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실행하되 나머지의 연속된 계획은 시간을 보낼 수록 합리적인 순서로 수정 또는 변경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할 수 없는 걱정의 일들은 현재에 반영하면 마음만 다급해질 뿐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현실에 반영되지 않게 제쳐 두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잘 관찰하여 보면, 당장 해야 매진 할 일은 단순하여 몇 가지가 밖에 안된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잘 관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 정리정돈을 하여 이왕 주어질 삶의 시간이 보다 평온한 삶이 주어지리라 여겨집니다.
질문 1-1) 영은 마음을 초월하고 시공은 마음안에서만 존재하므로 하나인 과거 현재 미래를 마음대로 가 볼 수 있다. 위의 표현을 우주의 실재에 가까울 수 있도록 바꾸어 볼까 합니다. "생각은 물리적 시간을 초월하고, 시공은 기억에 의존된 생각이므로,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여겨 볼 수 있다."
질문 1-2) 영은 완벽하므로, 태어나기전에 이미 스케줄을 짜 놓았기에 완벽한 영이 그 스케줄을 꿈으로 먼저 메시지를 준 후 스케줄 대로 일이 발생한다. 영(靈)은 태초의 우주가 존재할 때 만물에 내재된 존재케 하는 근원적 성질로서, 사람에게도 내재한 스스로 존재케 하는 근원적 성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이 '영(靈)'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깊은 사념에 의한 자아의식의 통찰로 가능 할 수는 있으나, 이를 발견하고 배에 장착된 노처럼 우리의 생각에 따라 젓게 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일들이 짜여진 계획에 의하여 먼저 꿈으로 메세지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 개념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지로, 꿈에 의존하거나 추종하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합니다.)
즉 영의 수준이 높기때문에 미래에 가서 실현시킨 후 실재로 일이 발생한다. 입니다. '영(靈)의 의식이 생각의 영역인 혼(魂)의 영역에 온전히 구체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물질적 여건에 매임이 없는 가운데의 평온한 심리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태양의 불꽃처럼 현란하게 타오르지 않을 때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의 물질적인 삶을 동시에 가져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념이 몰려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먼지 앉은 집을 청소하듯이 정리정돈을 하여 평온의 마음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것이며, 때로는 가구를 옮기든지의 쓸고, 닦고, 버리고의 대청소도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질문2) (***중요)
물론 죽기전에 우주적 자아로 거듭나면 자식이 있던 없던 무관하겟지만, '나' 라는 개체적 '영혼'은 영원히 소멸을 하게 된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죽기전에 확실히 우주적 자아로 거듭난다는 자신이 없다면, 무조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야 자식 이라는 분신을 통한 '영혼'의 영속을 기할수 있겠는데요. 지요? 이 질문은 말을 돌려하지 마시고, ***직설적 답변을 요청드립니다.
제가 우주의 실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려하는 바가 있다면 지극한 사념에 의한 깨달음으로서 현실을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르지 못한 불완전한 개념으로 속단하여 그 의미가 상실될까봐 하는 우려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시대는 자연문명의 미성숙한 과거인류가 아니라, 과학문명에 들어선 인류이기에 감히 실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다른 이야기에 '산 속의 개미'와 '바다의 물고기'에 대한 예를 들어, 물질적 여건으로서의 '나'와 '너'라는 이원적인 의식에 탈피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나'와 같은 동질자의 의식으로 지구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깨달음'의 의식을 통하여 개체적인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하여 존재하므로 위하여 존재함으로서 주어진 개체적인 '나'라는 삶이 주어져 있음을 직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체적인 자아로서 이루어야 하는 '깨달음'을 통하여 체득된 동질감으로 이 순간 이후에, 무엇을 하든 '나'를 이루는 모든 존재를 위함이고 '또 하나의 나'인 미래인류를 위하여 선택하는 삶이 온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크게보면,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지구인류 모두의 일시적인 죽음이라면, 지구인류로서는 우주문명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여 비로소 영혼(靈魂)의 대(代)가 끊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문2'에 말씀하신 내용이 우주의 실재가 그러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름의 구차한 답변을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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