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靑石 전성훈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오전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어떻게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둘레길을 걷기로 마음을 정한다. 보름 전부터 6월이 가기 전에,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둘레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문득 떠오른다. 오늘 가지 않으면, 가마솥이 펄펄 끓는듯한 여름이 지나고, 귀뚜라미가 들창 밑에서 노래하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는 9월이 되어야 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찾을 것 같아서다. 아침 약을 먹기 위해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6시 10분 집을 나선다. 아파트 앞 정류소에서 마침 다가오는 버스를 타고 방학동에 내려 북한산 둘레길 입구로 들어서니 6시 반이다. 배낭을 멘 발걸음이 그런대로 가벼워 부지런히 걷기 시작한다. 극동아파트를 지나서 숲길로 들어서니 갑자기 눈앞이 컴컴하다.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처럼 해가 나지 않은 숲속은 생각보다 어둡다. 걷는 이가 없어 한갓진 둘레길을 혼자서 한참 걸어서 쌍둥이 전망대를 바라보며 그냥 지나친다. 비가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지 그 많던 새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반갑다고 노래 부르던 아름다운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에 날이 밝았다고 ‘꼬꼬댁’하고 우렁차게 홰치는 어미 닭의 몸짓만 요란하다.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무수골 쉼터까지 걸으니 이정표 상으로 3km 정도이다. 무수골 쉼터에 도착하여 배낭을 벗고 시간을 보니 오전 7시 30분이다. 한 시간 정도 조용한 아침 숲길을 나 홀로 즐기며 걸은 편이다. 이른 아침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숲속에서 나무와 꽃을 찍는 아빠의 멋진 모습도 보이고, 마라톤 동호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어떤 부부가 골짜기 냇물에 수건을 적셔서 얼굴 땀을 닦는다. 이른 새벽에 왔는지, 내려가는 길이라면서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어 먹으라고 준다. 참으로 부지런한 부부이다. 드문드문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 숲속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낀다. 흐르는 땀에 몸이 완전히 젖어서 끈적거린다. 그 틈을 쫓아서 날벌레들이 쉼 없이 다가온다. 더는 쉼터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호원동 방향으로 걷는다. 무수골을 지나서 천년 사찰 도봉사와 용화세계(미륵불 정토)를 꿈꾸는 능원사를 거쳐서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 분소를 지나 도봉산 만장봉 가는 길로 들어선다. 산으로 오르는 게 아니기에 갈림길에서 호원동 다락원 이정표를 따라서 비좁은 숲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숲길로 들어서며 그 순간에 떠오르는 상념 하나, 무엇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이렇게 난리를 치듯 유난을 떤 이유가 무엇이냐?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히 짚이는 게 없다. 그저 급한 성격 탓인 것 같다.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 여전히 행동이 급하다. 아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그냥 넘어갈 것은 넘겨야지 하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육신이 따라주지 않아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제각각이다. 태어난 천성이 그런 걸 어쩌란 말이냐? 하고 어깃장을 칠 수도 있지만, 도대체 언제쯤이 되어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가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 철이 들자 이별이라고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놔두고 혼자서 먼 길을 가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도봉산의 우람한 삼 형제, 만장봉, 성인봉, 자운봉이 잘 보이는 포토존 쉼터에 앉아서 쉰다. 차가운 매실차를 마시고 사탕을 꺼내 입에 물고 있으니까 커다란 벌 한 마리가 자꾸만 주위를 맴돈다. 팔을 휘저어서 벌을 쫓아버리고 나니까 이번에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인 날벌레들이 덤벼든다. 이 계절에만 만나는 자연 현상인 것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전 11시경부터 내린다는 비가 한 방울 두 방울씩 쏟아지기 시작한다. 조금 더 쉬지 못하고 배낭을 둘러매고 다락원 입구를 향해 조심하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이제는 당분간 산행이나 둘레길과는 멀리하고 활활 불타오르는 여름을 잘 견디어 지내야 할 시간이다. (202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