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패아(Toompea)
13세기 탈린은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으로
탈린의 올드타운(역사지구)은 상인과 일반인들의 거리인 저지대와 영주나 귀족들의 구역인
고지대로 나뉩니다. 저지대와 고지대를 이어주는 골목은 모두 두 개로,
짧은 다리라는 뜻의 ‘뤼히케 얄그’ 거리와 긴 다리 ‘픽 얄그’ 거리입니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오를 때는 뤼히케 얄그, 반대로 내려갈 때는 픽 얄그를 이용하면
골목길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고 해요. 저지대의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상공업자들의 공동조합조직인 길드(guild) 건물들이고, ‘톰페아(Toompe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탈린의 고지대는 톰페아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예술입니다
루터 교회를 뒤로하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중세풍의 우아한 분위기를
간직한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전망대에 서면 회색 성벽과 탑 그리고 녹색 숲과 어우러져
고풍스럽고 특별한 분위기가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 올라프교회
교회의 이름은 배 사람들을 보호하는 성인으로 추대된 노르웨이
왕국의 올라프 2세 하랄드손(Olav II Haraldsson)에서 유래한다.
1500년경 성올라프 교회 건물의 높이는 159m에 달해 (현재는 123.7m) 당시 세계에서 최고 높은 건축물이었다.
이 건축물은 거대한 높이의 첨탑 건축으로 멀리 바다 밖에서도 무역 도시
탈린을 알아보는 해상 표지판 역할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높은 건축물은 8차례 번개를 맞았고 건물이 3번이나 전소되었다.
화재 당시 불꽃은 핀란드만에 접해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붉은 지붕과 뾰족한 구시청사의 첨탑 그리고 은빛으로 물든 발트해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 탈린 시내를 보고 있노라면 왜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이자 `발트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를 금방 깨닫게 된다. 좀처럼 사람들은 전망대에서 구시가지로 발길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말간 바람 몇 줌과 울긋불긋한 구시가지 지붕들이 빚어내는 시각적인 소나타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1569년 덴마크 군함의 포격을 받았으며 1570년, 1577년 러시아에 점령되었다.
1710년 황제 표트르 1세가 이곳을 러시아 발틱 함대의 근거지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에스토니아 독립 전에 항만지구의 일부는 소련의 해군기지로 이용되었다
발트 3국 중 가장 아름다워 발트 해의 진주, 발트해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에스토니아(Estonia),
그곳의 수도 탈린은 독립 20주년을 맞이한 2011년 핀란드의 투르쿠(Turku)와 함께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된 곳입니다.
중세 풍의 성벽과 건물들 그리고 건물위로 돌출한 탑, 뾰족한 교회 첨탑과
자갈로 만든 꼬불꼬불한 길이 여전히 남아 14, 15세기의 중세 분위기를 잘 간직한 곳으로
1997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탈린은 상업 및 어업 항구이며, 공업 중심지이다.
조선업과 기계제작업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 걸친 기계공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소비재가 생산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문화 중심지로서 과학 아카데미, 종합기술대학, 미술대학, 사범대학, 음악학교 등이 있으며, 극장과 박물관도 여럿 있다. 인구 400,378(2003 추계).
안개가 잦은 날씨 덕에 2차 세계대전 때에도 폭격기의 폭탄이
올드타운을 피해 발트 해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래서지금의 아름다운 중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지대 전망대에 있는 상점주인이 비들기에 먹이를 주고 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오는 길가의 카페의모습.
스페인군의 장화로 물받이를 만들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갈 때는 픽 얄그를 이용하면
골목길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한자동맹으로 도시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탈린은
공공건축물, 교회, 상인들이 상주했던 건물 등 화려한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