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조촐한 바느질 가게를 갖고 있는 영자씨를 사람들은 모두 좋아한다.
영자라고 이름을 부르니까 젊은 여자로 혹 오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영자씨는 오십대 후반의 아주머니다.
아니 큰딸을 시집 보냈으니 이제 곧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될터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자씨라고 이름을 부르고,
본인도 그렇게 불리는것을 좋아한다.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라 미세스 서라든가 아니면 카톨릭신자인 그녀의 본명, 글라라가 있는데도,
그녀는 영자씨로 더 잘 통한다. 결혼한 여자의 그것도 나이든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것이 우리네 관습으로
어디 온당한일인가. 그런데도 그녀를 영자씨로 부르기 시작한것은 우리 아이들 아빠였다.
젊은시절, 사귀던 어자들의 이름이 우연찮게도 모두 영자였다고 해서, 영자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아이 아빠는
연인을 부르듯 유쾌하고 다정하게 영자씨를 부른다' 나도 그를 흉내내어 "영자씨"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미세스 서라고 부르면 격식을 차리는것같아 거리감이 느껴지고, 글라라라는 이름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개 어머니라든가 아주머니라는 평범한 호창보다 모두가 부를수있는 영자라는 이름이 너무 잘 어울리는
영자씨가 아닌가.. 이름이란 호적을 위해 있을뿐, 부를수 없는 한국 여자들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면 당당하고 신이난다.
장난끼를 조금섞어 "영자씨이"하고 부르면 친밀감이 물씬물씬 풍긴다.
영자씨를 부를때는 성난 얼굴이나 토라진 마음으로 부를수 없다.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영자씨도
이름이 불리면 함박꽃같은 웃음으로 마주 얼굴을 든다
영자씨는 큰키, 큰 몸집에 마음 씀씀이도 커서 그 옆에 있으면 늘 넉넉하고 편안해진다.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수 있는 소탈하고 수수한 그녀의 모습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오랜지기처럼
"안녕하세요"하고 정다운 인사말을 건네고싶게한다.
영자씨는 자신의 외모나 옷차림에는 무관심하다. 옷차림따위의 겉모습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않는다.
바느질 솜씨가 빼어나 다름사람들의 옷을 멋있게 만들어 주고 고쳐주지만 자신의 외관을 위해서는
별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옛말도 있지만 의식주가운데 영자씨가 가장 비중을
크게 두는것은 단연 음식이다. 음식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식견은 각별하다. 식도락가도 아니면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을까 하는일에 크게 마음을 쓴다. 함께 시장에라도 가게되면,
이건 이렇게해서 먹으면 좋고,저건 저렇게해서 먹으면 맛이 있다고 하는말이 어찌나 구수하고 군침이 도는지,
금새 시장끼가 느껴져서 이것저것 몇 보따리를 안고 돌아오게된다.
곰탕이나 설렁탕이나 혹은 비빔밥같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음식들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푸짐하기도 하려니와
유난히 맛이 난다. 깍두기나 김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김장철이 되면 영자씨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함께 일손을 모아 김장을 담그자는것이지만, 실은 영자씨의 손맛으로 맛있는 김장을 먹어보자는 속셈때문이다.
억척스럽고 신바람나게 일잘하고 손이 큰 영자씨는 무엇이든 먹고 남을만큼 담가야 직성이 풀려서
동네 사람들에게도 푹푹 퍼주는 것이 그녀의 큰 즐거움이다. 덩달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몫도 많아지니 자연히
이웃과 나누어 먹을수있는 넉넉한 마음까지 배우게 된다. 영자씨는 맛을 만든다. 맛과 맛을 조화시키고
음식과 음식의 궁합을 마추어 새로운맛,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낸다. 음식은 창작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수없다.
새로운 음식이 개발될때마다 옆의 아저씨는 기회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시식을 시킨다.
"어머, 너무 맛있어요."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면 "그것봐, 우리 집사람솜씨가 최고지." 하는듯 영자씨보다 더 흐믓한 표정으로 자랑스러워하시는 아저씨 모습을 보는것도 즐거운 일이다
영자씨의 집에는 자자분한 소품들이 가득차있다 그녀의 집은 흡사 작은 박물관이나 만물상같아서 구경거리가 많다.
이구석 저구석에 작고 앙징스런 물건들이 몸을 비비고 옹기종기 앉아있디. 양지바른 부엌의 싱크대위에는
중성세제병이 챙이 넒은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두르고 있는가하면, 토스터 오븐이 방석을 깔고 앉아있다.
냉장고의 손잡이가 꽃무늬 장갑을 끼고 수저들은 따뜻하고 보드러운 주머니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온갖 집기들이 봄 나들이 가는 가족처럼 화사하고 정겹다. 영자씨는 자신이 갖고있는 물건들을 다듬고 칠하고
단장해준다. 입지않는 스웨터의 몸통을 잘라서 잡지 꽃이를 만들고, 빈상자는 색종이 옷을 입혀 선반이 되고
화분대가 된다.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재능과 창의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다 읽고난 잡지책, 빈병이나 상자따위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물건이래도 쓸데 없는것은 없어서, 그 효용이 없어진후에도 이용가치를 찿아준다. 알뜰하고 실용적인 성격때문 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때문이다. 아들의 체취가 묻어있는 스웨터도 버리기 아깝고, 친구의 정성이 담겨있는 선물상자도
오래 간직하고 싶기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낡고 헤진 물건도 훙하기는 커녕 당 당한 모슴으로 제자리를 지키고있다.
그 당당함으로 인해 오히려 손상된 부분이 돋보이는듯싶고 금이 가고 이가 빠진 그릇도 마치 피카소의 그림속에서 튀어나온 예술작품인듯 귀중해보인다.
영자씨는 또 씨만 보면 심는다. 뒷뜰에 넒직한 채소밪이 있지만 방안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가득차있고 그안에서 온갖 화초들이 자란다. 화원에서 사온것이 아닌 영자씨의 화분에서 싹이 트고 잎이 나서 꽃이피고 열매가 맺는다. 먹다버린 과일이나 채소의 씨앗, 혹은 무슨 악초나 이름없는 풀에 치르기까지그녀의 호기심은
온갖 씨앗을 피에 섞어 씨앗과 함께 자라난다. 들에 지천으로 피여있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않는 흔하디 흔한 풀꽃이
여러가지로 상처와 별을 치료해준다는 것도 그녀를 통해 알게된 지식들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그녀의 마음이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젃6ㅕ주는 때문일까, 그녀의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여러사람들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먼저 전해준다. 어느집 아들이 결혼을 했다거나 누가 어디서
새로 사업을 시작했다거나 혹은 아무개가 어디로 이사를 가서 무슨별을 얻었다든등, 우리 이웃들의
사는 이야기들이 그녀를 통해 전해진다 그렇게 전해지는 소식들이 우리를 궁금하게하고 안타깝게하고 또 때로는 기쁘거나 슬프게 한다. 살아가면서겪게되는 많은 사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 다정하게 귀기울여 들여주는 이가 영자씨다. 우리 모두의 친구 영자씨다.
지인이 쓴 글라라 자매님에 대한글 옮겨봤습니다
첫댓글 이름을 불러주면 존재감이 생긴다고 할까요?
시부모님은 꼭 제 이름을 부르셨어요. 선미야...며느리가 아니라 이름을...
영자씨,,,흔하지만 정감이 가는 글라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