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버스요금 탄만큼만 낸다
1993년도에 한상욱 조카와 함께 일본 무전 여행을 했던 시절을 되돌아
본다. 당시에는 일본도 지금처럼 교통카드를 쓰는 게 아니라 표를 사서 타고 내렸다. 우리는 버스도 처음이고 요금 내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당시의 경험이
신기했는지라 오늘 다시 회상해 본다.
우리는 동경을 출발해서 니코역에 도착했다. 니코에서는 관광버스대신 노선버스를 타고 우리끼리 자유로운 여행을 해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그 동안 이런 저런 시행 착오를 겪으며 어느 정도 일본에 익숙해졌다.
노선버스를 타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노선버스를 타면 행동에도 자유가 있고, 자연히 우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면서 마음대로 이것저것 보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의 일본여행 동안 우리가 지켜야 할 신조에도 들어맞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우리의 신조란 낭비를 삼가고 차분하게 일본 문화를 감상하고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니코 버스매표소에서 표를 사가지고 차에 올랐는데, 가는 도중에서 타는
사람들은 버스에 오를 때마다 번호표를 하나씩 빼 들고 오르고 있었다. 나와 한 사장은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소근거려 보았다. 여행 도중 잘 모르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가끔 물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물어보기가 좀 쑥스러울 때도 있었고, 때로는
상대가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우리들 스스로 일어가 짧다 보니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를 못해 그만 머쓱해지기가 일쑤였다. 못 알아 들었어도 얼른 고개를 끄떡거리고 수작을 끝내 버려야지,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주제에 재차 물어 볼 수는 없었다. 길게 이야기를 끌어 갈 수도 없었지만 자칫 우리의
실력이 금새 드러나면 분위기만 망칠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우리
스스로 토론하면서 추리력을 발동시켜 보는 것도 한편 재미있는일이었다. 자세히 보니 버스 운전사 머리
위쪽면에는 전자식 요금 현황판이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1번부터 20여
번까지 번호가 나열되어 있었고, 번호마다 그 밑에 요금이 시현되고 있었다. 이 요금판은 전자계산기처럼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요금이 불어나고 있었다. 이게
뭘까? 우리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한 사장 저게 뭘까?』
나는 한 사장에게 물었다.
한 사장은 한참 생각한
후에 말했다. 『저건 중간 정거장에서 타는 사람은 현황판에 나타난 만큼
요금을 깎아 주는 것일 거야.』
요금과 관계가 있는 건
분명했다. 문제는 어떤 식의 계산이냐는 것이었다. 나타난
번호는 무엇이고 금액은 어떻게 계산된 것이냐 이었다. 나는 한 사장에게 그럴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석연치가 않았다. 깎아주는 것이라는 것은 수긍이 가지 않았다.
크게 보면 그게 그거지만 깎아 준다기 보다는 타고 가는 거리만큼 차등을 둘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탄
만큼만 내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이지 값을 깎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에 와서 말이지만 만일 그 당시에 전자카드를 썼더라면 그 정도는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을 일이었을 터인데
그 시절에는 그 분야에서 많이 앞서 가고 있던 일본조차도 마냥 원시적이었다.
요금 차등제인 건 분명한데,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인지 얼른 머리에
떠 오르지 않았다. 좀 더 간단하고 편리할 것 같기는 한데 우리는 얼른 이해가 안 되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문화, 시스템, 습관에 익숙지 못한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모든 걸 빨리빨리 연결 짓기가 쉽지 않은 낯 선 광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에 모리오카 지역에
가서야 다시 버스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확연히 깨달았다. 우리는 JR 패스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국철만을 이용했지 별도로 경비를 지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버스나
택시는 가급적 삼갔기 때문에 니코 여행 다음으로 노선버스를 탄 건 모리오카에서 츠나기 온천 갈 때가 겨우 그 두 번째였다.
우리는 모리오카 역전에서
츠나기 온천까지 560엔씩 돈을 내고 차표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중간에서 타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버스에 오를 때 마다 예의 그 번호표를 빼 들고 버스에 오르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릴 때는 운전수에게 번호표와 함께 요금을 내는 데 얼마를 어떻게 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츠나기 온천장에서 모리오카로 돌아올 때는 온천장이 중간 정거장이었던지 표를 팔지 않았다. 그냥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 요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우리도 버스에 오를 때 예의 그 번호표를 하나씩 뽑아가지고
타게 되었다. 버스에 오르는데 한사장이 말했다.
『얼른 한 장 뽑아.』 『알았어.』
우리는 각각 번호표 한
장씩을 뽑아 들고 버스에 오르며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드디어 이 시스템이 무엇인지 우리가 직접 경험으로
알아낼 기회가 온 것이었다. 모리오카로 돌아와서 요금판을 보니 우리 번호표의 해당요금은 바로 우리가
온천장으로 갈 때와 같은 560엔이었다. 번호표는 다름 아니고
자기가 버스에 오른 정거장 번호였던 것이다. 내릴 때 요금판에서 자기 번호 밑에 나타난 금액을 내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탄 정거장에 해당하는 요금을 내면 되는 것이었다.
일본의 버스에는 왜 이렇게 요금판이 있어야 하고 정거장마다 번호표를 빼 들어야 하는가? 그건
간단한 이치였다. 자기가 탄만큼 요금을 내도록 한다는 발상이었다. 정거장마다
차별화된 요금, 즉 자기가 버스에 오른 정거장에 따라 자기가 내야 할 요금이 정해지는 것이었다. 요즈음은 신용카드나 교통 카드를 기계에 대면 바로 돈이 빠져 나가고 그것으로 고만이다. 다만, 한가지 우리가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와는 관계없이
얼마나 구간을 세분하고 구간마다 세분화된 차등 제 요금을 부과하느냐일 것이다.
일본의 버스 회사측에서는
이렇게 차등 제 요금을 부과하자면 그만큼 복잡한 기계설비를 하고 운영해야 하는데 그만큼 이에 소요되는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님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내버스가 한
정거장을 가거나 종점까지 가거나 요금이 거의 똑같은 것과는 그 개념이나 잣대가 다른 것이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은 정거장마다 표를 팔기 때문에 버스 시스템과는 달랐지만 적어도 거리에 따른 요금계산이 우리보다는 세분화되어
있었다. 우리네 지하철처럼 몇 개 구간으로만 나누고 각 구간의 요금을 일원화 시킨 것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은 차등화가 더 구체적이고 세밀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어떻게 생각할까? 가까운 거리에서 내리는 사람은 비싸다고 할 것이고, 먼 거리까지 가서 내리는 사람은 싸다고 할 것인가? 아마도 그보다는
우리네의 비합리적인 제도에 머리가 갸우뚱해질 것이다.
우리는 손님 편에 서서
손님이 얼마나 편리할 것인가? 불편할 것인가? 공정한 것인가? 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운영자 측에서 주로 생각하는 운영자 위주다. 모든
제도를 운영자편의에 따라 만들고 시행하는 운영자 편의주의가 보편화 되어 있다.
복잡한 기계를 설비하는
데는 추가적인 경비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비용 대 효과를 먼저 생각 해야 한다. 당장 들어가는 투자 때문에 이를 기피하려 한다면 그건 근시안적인 접근일 것이다. 추가적 비용 때문에 당장에는 손해가 되더라도 소비자 즉, 시민의
이익과 권리를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그게 더 이익이라는 발상이 가능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항상
소비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봉사정신, 그리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종의 장인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고 나라전체가 신용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정거장마다 요금을 달리하는
복잡한 계산을 하는 시스템은 우리네 정서에 어울리지도 않고 우리 문화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익
면에서 회사측에 유리하지 않다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어느 회사도 먼저 시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불리한 일을 선도하다가는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심하면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어느 관청에서도 이처럼 회사에 인기 없는 제도의 시행을 권장할 입장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 시민들
스스로가 이런 제도를 짜증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당시로는 250원만 내면 마음대로 탈수 있는 우리 지하철 제도가 얼마나 편리한가? 일본식으로
개편하다간 종점까지 가는데 1,000원이 될지 2,000원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멀리 가는 승객으로는 우리제도가 유리하다.
우리는 돈 액수도 문제지만
우선 복잡한 계산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그보다는 정거장마다 계산을 한다면 왠지 불안스럽고 겁을 먹게
된다. 탄 만큼 내라는데도 왜 불안할까? 지금까지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어떤 기준과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가 개편되면
손해보기 쉽다는 불안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건 상호신뢰감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정부에서 어떤 제도나 법을 제정했을 때 항상 발전적이고 유익했다면 시민들은 항상 긍정적으로 이를 환영하고 수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민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법이고 제도이든 이를 그대로 지키고 따르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이 실증되지 못했던 것이다.
법과 제도를 규제 일변도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 하던지 이를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처한 비극적 현실이다. 어쨌든 이 자그마한 버스요금 시스템조차도 온 시민의 의견 일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지금처럼 지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여행을 했던
때는 1993년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에도 아직 전자식 교통카드가
보급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교통 프로그램을 입력한 신용카드나 현금카드, 교통카드를 쓰기 때문에 그냥 차에 오를 때, 내릴 때, 찍으면 될 뿐이다. 정거장마다
요금 차등 제를 시행하는 일본 같은 나라에서 교통카드야말로 편리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다. 탄만큼만
내는 것이다. 그것은 공정사회를 가름하는 또 하나의 척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