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등장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대통령은 빠른속도로 술잔을 비웠다. 시바스리걸을 주전자에 부어서 마시고 있었다. 양주잔은 주로 대통령과 김계원비서실장 사이에서 오고갔다.
차지철경호실장과 김재규정보부장은 술잔에 입술을 갖다대는 시늉 만 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신재순양이 보니 김재규가 맞은 편에 앉아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신양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차 실장이 또 한 마디를 거는 것이었다.
"요즘 정보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어. 부산사태만 해도 그렇지.".
대통령은 또 시국문제를 꺼냈다. 차 실장이 자극적인 발언으로써 대통령을 부추겨 이 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오늘 삽교천에 가 보니 공해도 없고 공기는 그렇게 좋은데 신민당 은 왜그 모양이오." "신민당은 주류가 중심이 되어 강경으로 돌아섰습니다. 정운갑을 미는 것은 비주류인데 국민들은 이들을 사쿠라시하니 힘이 없습니다. 주 류의 협조가 없이는 정대행체제의 출범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공작하 던 현 당직자 백지화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까짓 새끼들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차 실장은 예의 강경한 소리를 되풀이했고 김 부장은 대책 없는 비관론을 되풀이하니 대통령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한편 정승화총장은 오후 5시30분경에 총장실에서 나와 한남동 공관 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 오후 6시10분경에 공관을 출발했다. 전 속부관 이재천소령이 승용차 앞자리에 앉았다. 6시35분쯤 궁정동 정보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문초소 안에서 경비원이 바깥을 보더니 문을 열 어주고 누군가가 나와서 안내를 해주었다.
안내자를 따라서 들어가는데 뒤에 도착한 승용차에서 내린 한 중년 신사가 따라왔다. 사복차림의 전속부관 이재천이 그 신사에게 "우리 참 모총장이십니다"라고 소개를 했다.
신사는 문전에서 "제2차장보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더니 정총장을 안내하여 1층 대기실로 같이 들어가 앉았다. 이때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대령이 오더니 차장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부장께서 각하와의 만찬자리에 가시면서 두 분이 먼저 식사를 하 시라고 했습니다.".
김정섭차장보는 정승화 총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부장님이 대통령 각하의 저녁 부름을 받아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총장님을 모시고 있으면 끝나는 대로 오시겠다 고 하셨습니다.".
정승화 총장은 기분이 나빴다. 돌아갈까 하다가 전에도 있었던 비 슷한 일이 생각났다. 지난 봄인데 김재규가 3군 참모총장들을 저녁에 어느 음식점으로 초대해놓고서 불참하였다. 갑자기 대통령의 호출을 받 았다는 것이었다.
이때도 김학호정보부 감찰실장이 대신 와서 접대를 하다가 김재규 가 늦게 합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나동 안방.
김계원은 왼쪽 자리에 앉은 김재규 부장이 너무 몰리는 것이 안타 까웠다. 분위기를 바꾸어보려고 이렇게 말했다.
"김 부장이 칵테일도 잘합니다. 그런데 김 부장 칵테일은 어떻게 하는 거요." "술 한 잔에 물 두잔을 부으면 됩니다.".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김부장에게 위로의 뜻으로 술을 권했더니 큰 잔에다가 양주를 희석시키지도 않고 그냥 부어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김 재규가 암살준비를 위해서 만찬장을 뜬 시각은 지금까지의 수사발표에선 저녁 7시 직후로 되어 있었다.
이번에 기자가 관련 수사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저녁 6시40분 경임이 확실해졌다.
김재규가 두번째 자리를 뜨고 나서 상당히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아마도 10∼15분간 이석) 김계원 비서실장은 불안해졌다.
그는 '각하를 모시고 하는 행사인데 주인이 되는 사람이 자리를 비 워 송구스럽고 그 전에 정치문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때 난처한 입장 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혹시하는 생각이 나서 불안해졌다'(합수부진술 서).
그 사이 김재규는 슬그머니 안방을 나와 마당을 지나서 쪽문을 통 해 한 50m 떨어진 본관으로 갔다. 식당으로도 쓰이는 1층 회의실 문을 여니 정승화 총장과 김정섭 2차장보가 환담하고 있었다. 상의 양복차림 의 김재규는 좀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정 총장, 정말 미안합니다. 계엄사태하에서 정보부가 여러 가지 로 판단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했는데 대통령 각하께서 갑자기 만찬에 부르시니 안갈수도 없고...금방 끝내고 올테니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시오.".
김재규는 억지기가 있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이 사람, 국내담당차장보는 저보다 나라 안이 돌아가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빨리 끝내고 오겠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기다려주십시오. 김영삼이도 내가 다 손들게 만들어 놓았는데 제 말을 안들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정 총장과 김정섭 차장보를 모시는 책임을 지고 있던 윤병서비서 는 김재규가 이 두 사람과 한 5∼10분쯤 이야기하다가 나왔다고 기억했다.
김재규는 회의실을 나와서 2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그는 엄청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차 실장을 쏘아버릴까. 그런데 차 하나 쏘아서 근본 문제 해결은 안 되지 않는가. 한다면 각하를 제거해야지 하고 거사를 결심하게 되었 습니다.'.
김재규가 범행 이틀 뒤인 10월28일에 작성한 자필진술서의 이대목 은 당시 살의의 발전경로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범행 직후에 썼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그 뒤 여유가 생겨서 자신 의 행동을 과장, 미화, 합리화하기 전 비교적 순수한 상황 아래에서 작성 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진술서 그대로 그의 살의를 격발시킨 것은 이날 밤 차 실장의 오만방자한 언동이었다.
대통령과 저녁을 같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육군참모총장 을 별실로 초대할 때부터 김재규는 살의의 불씨를 지펴가고 있었으나 확 정된 의지는 아니었다.
이날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다른 모습을 보였더라면 김재규의 생각 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분위기는 두 사람이마치 짜고 그러는듯이 김재규 부장 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울컥해버린 김재규는 문제의 차지철을 죽이려고 하는데 대통령이 걸림돌이 되었다.
'더구나 대통령은 저 오만방자한 차지철을 편애해왔고 이 날도 합 세하다시피하여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가'하는 생각.